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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렉스라는 내 소꿉친구는 지독하게도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검술 실력은 초일류. 5살에 검술 도장의 문을 두드려서 반년도 안 돼서 사범을 쓰러뜨린 천재다.




 참고로 같은 시기에 입문한 내가 그 사범을 쓰러뜨린 것은 10살이 넘은 후. 내가 5년이 걸려 도달한 검의 경지에 녀석은 단 6개월 만에 도달한 것이다.




 내가 한 도장에서 계속 수련하는 동안 녀석은 여러 도장을 습격해 부수고 다녔다. 국내 민간 도장을 어느 정도 제패한 후에는 추천을 받아 국군 국군 훈련에 참가했다고 한다.




 그런 렉스와 내 결투 전적은 처참했다. 10번 싸워 1번 이길까 말까 한 수준이었다. 나도 검에 자신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녀석은 항상 내 몇 발자국 앞을 걷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그와 함께 지내온 나의 콤플렉스는 나이가 들수록 커져만 갔다.






"……결심했어. 나는 모험가가 될 거야."


"렉스, 무슨 헛소리야? 너 국군에 내정 받았잖아."


"바보 같아, 그런 데 취직해 버리면 마음껏 놀 수 없잖아. 나 정도의 실력이면 모험가로 돈을 벌 수 있고 일하기 싫을 땐 마음껏 땡땡이 칠 수 있다고."


"자신의 검을 세상과 사람들을 위해 쓰려고는 생각 안 해?"


"내가 왜 남을 신경 써야 돼? 그래서 말인데. 나는 계속 결심하고 있었어. 만약 내가 모험가가 된다면 제일 먼저 누구를 파티에 초대할지."






 그 무렵 녀석은 내게 모험가가 될 거라고 털어놓았다. 렉스답다고 나는 생각했다.




 이 남자는 규칙 따위에 얽매이는 걸 싫어한다. 국군에 들어가는 게 제일 출세할 수 있겠지만 이 남자는 지위나 명예에 관심이 없다..




 그래서 모험가를 선택한 것도 몹시 납득이 가는 이야기라고 느꼈다.




"같이 가자. 내 파트너는 너밖에 없어. 아무리 처참하게 당해도 굴하지 않고 내게 덤벼들어 한 방 먹이는 남자는 너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렉스는 나를 파티에 초대했다. 내 기분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거리낌 없이 초대한 것이다.




"너와 함께 천하를 평정하고 싶어. 날 따라와 줘."






 ──── 그리고 나는 그 초대를 거절했다.










































 마족에게 사지를 붙잡혀 한심하게 엎드려 있는 내 눈앞에 나타난 건 렉스였다.




 내 콤플렉스의 화신이자 반평생을 함께 보낸 소꿉친구이며 언젠가는 쓰러트리겠다고 맹세한 라이벌이기도 한 검사 렉스. 그 남자는 내가 아는 것보다 조금 어른스러워 보였다.




 몇 년 만에 보는 거니 당연히 성장했겠지. 젠장, 예전보다 키도 컸고 체격도 단단해졌어. 과연 지금 싸워서 이길 수 있을까.




"흥, 너희가 보고받은 침입자들인가. 모여 준 김에 딱 좋군, 저것들을 처리해 버려."


"알겠습니다 형님."




 렉스를 본 지휘관 같은 마족은 따분한 듯이 콧김을 내뿜으며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마족이란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도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야생 마족 한 마리를 사냥하는 데에도 인간 모험가들은 여럿이 파티를 만들어 토벌하러 간다. 1대1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더군다나 마왕군을 자칭하는 저것들의 실력은 차원이 달랐다. '나를 다치게 하면 안 된다'는 명령이 내려진 상황에서조차 둘을 죽이는 게 고작이었다. 결코 내 실력이 나쁜 건 아니었다. 일단 평범한 모험가들보다는 실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내가 이 꼴이다. 마족이 인간을 얕잡아보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뒤에서 울려 퍼지는 검의 금속음에도 흥미조차 보이지 않고 지휘관 마족은 꽁꽁 묶인 내 몸을 들쳐 메고 조금 전까지 내가 갇혀 있던 방으로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인간은 마족을 이길 수 없다. 이 지휘관도 상식으로서 그걸 알고 있었다.




"아 맞다, 깜빡했는데 시체는 꼭 냉동시켜 둬. 이전에 냉동고에 넣지 않아서 썩은 시체가 있었거든. 아까웠지."




 갑자기 지휘관은 걸음을 멈추고 뒤의 부하에게 지시를 내렸다.




 시체를 냉동하라니 소름 끼치는 명령이다.










"...... 싫어. 왜 굳이 마족의 시체를 얼려야 하는 거야?"










 돌아온 대답은 거절이었다.




 아아. 역시 저 녀석은 변하지 않았어. 렉스는 예전부터 이런 녀석이었어.




 이길 수 없을 상대에게도 태연하게 검을 겨누고 여유까지 지닌 채 때려눕힌다.




 천재, 기재라는 이름을 마음껏 누린 남자.






"그것보다 너. 그 녀석, 내 동료의 은인인 것 같아서. 아지트로 데려가서 감사회을 열어야겠거든."






 눈을 크게 뜬 지휘관이 천천히 뒤를 돌아본다. 그제야 어깨에 메고 있던 나도 그 광경을 눈에 담았다. 그건,






 시꺼멓게 물든 좁은 통로 한가운데에서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잘난 체하는 풍모의 검사가 잘려 나간 마족들의 시체 더미에서 웃으며 이쪽으로 오는 중이었다.




"……어, 어? 너희들 왜 다 전멸......"


"그래, 전멸. 손맛이 없더라고, 기대했는데 말이야"




 숨이 막힐 것 같은 피 냄새. 뚝 뚝 동굴 안에 메아리치는 물방울 소리. 그것들은 비현실적이면서도 현실이었다.




 그런 광경을 태연히 만들어 낸 렉스는 멍하니 서 있는 지휘관 마족에게 씨익 웃으며 한 손에 쥔 대검을 느릿느릿 휘둘렀다.




"자, 돌려받을게. 은인님을."




 거기서부터 녀석의 움직임은 눈으로 쫓을 수 없었다. 정신 차려 보니 녀석의 몸이 흐려졌다.




 철벅, 하고 양동이를 엎은 것 같은 소리가 통로에 울려 퍼졌다. 순간적인 부유감 후에 어느새 나는 렉스에게 안겨 있었다.




 ...... 아아. 이 녀석은 정말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우두둑, 하고 내가 아무리 날뛰어도 빠져나갈 수 없었던 금속제 사슬을 렉스는 웃는 얼굴로 가볍게 끊어 낸다. 그런 그를 나는 죽은 듯한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그래서 말이야. 음ー, 먼저 자기소개부터 할게 은인. 나는 렉스, 이름은 들어봤을 거야? 뭐, 검성이라는 거창한 칭호를 가진 보잘것없는 모험가야. 이번에 동료가 신세를 졌어"




 몇 년 만에 듣는 렉스의 목소리.




 한심하게도 적에게 잡혀 끌려가던 중에 운명의 라이벌에게 구해진 나는. 그 운명의 라이벌에게 존재를 완전히 잊혀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심코 이마에 혈관이 튀어나왔다.




 일단 나도 목숨을 구원받은 셈이다. 감사는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너무나 충격적인 사실에 내 얼굴은 저절로 굳어 버렸다.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아, 그. 조금 전엔 위험한 상황에서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메이라고 합니다. 직업은 흑마도사, 입니다. 견습이지만……"


"그리고 니는 수녀 카린, 잘 부탁해! 보다시피 회복술사야!"


 


 내가 굳어 있는 걸 자기소개를 재촉하는 걸로 판단한 걸까. 렉스의 파티원인 듯한 소녀 둘이 웃으며 내게 말을 걸어왔다.




 잘 보니 둘 다 엄청 귀엽네. 특히 내가 지키려고 했던 메이라는 여자아이.




 순수하고 상냥해 보이고 우아하고 애처롭고 밝아 보이고……. 간단히 말해서 죽을 만큼 내 취향이다.








 ...... 그렇구나. 렉스 녀석, 내가 검술 수련으로 솔로로 던전을 파고드는 나날을 보내는 동안 이렇게 귀여운 애들이랑 파티 만들어서 행복한 나날을 보냈구나…….




 그렇구나.




"그래서 당신 이름은?"


"……묵비하겠어."


"이, 이봐."




 나는 조용히 분노했다. 이 분노는 끝이 없다.




 평생의 라이벌로 정하고 필사적으로 따라잡으려고 했던 남자는 여자애들이랑 시시덕거리면서 엄청 강해져 있었다.




 진흙탕에서 수련하던 나를 조롱하듯 강해져 있었다.




 용 서 못 해.




"아ー. 미안, 내가 뭔가 화나게 하는 짓을 했나?"


"……"


"아ー, 음……"




 렉스는 어색한 듯이 눈썹을 치켜든 내 모습을 살폈다. 딱 좋네. 절반의 생을 함께 보낸 인간을 완전히 잊어버린 댓가다.






 ──── 그래도 뭐. 나를 잊어버렸다면, 그건 그것대로 편한 일이다. 왜냐면 나는 ......






"……말할 필요 없어. 이제 죽을 인간의 이름을 들어봐야 소용없잖아?"


"이봐. ……너 무슨 소리하는 거야?"




 나는 어찌됐든 오늘 자결할 생각이니까.




"아까 마족이 '시체를 냉동하라'는 둥 말하고 있었잖아? 그 이유 알아?"


"마족이 생각하는 걸 내가 어떻게 알아?"


"저들은 인간의 시체를 개조해서 병사로 만들 생각이야. 살해당한 인간이 마왕군으로 덤벼든다면 제법 혼란스럽겠지?"


"……이, 이봐."


"────사실 이 몸은 이미 시체야. 저들에 의해 마음대로 개조된 시체에서 생산된 병사. 그게 나야."




 그리고 나는 모든 것을 말했다. 자신의 이름은 숨긴 채 이 동굴에 길을 잃고 사로잡혀 살해당한 것을.




 내가 저들의 주문 하나로 세뇌당해 적의 수중에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어때? 이런 이유야, 이해했어?"


"개소리 하지 마!! 젠장 마족!! 어떻게, 어떻게 이런 끔찍한 짓을 하는거지!?"





 이야기를 들은 렉스는 격분했다. 화가 나서 동굴 벽을 때려 거기에 큰 구멍이 뚫렸다.




 ......예전부터 꽤 직정적인 남자였어, 이 녀석은.




"……렉스라고 했나, 너에게 부탁이 있어. 이 동굴 안의 연구시설을 파괴하고 나면 나를 죽여줄 수 있어?"


"너……, 너! 그걸로 괜찮은 거야? 너는!!"


"죽은 자가 죽은 뒤에도 멀쩡하게 살아서는 안 돼. ……그러니까, 부탁해."




 그런 그를 타이르듯이. 나는 살며시 눈을 감고 렉스에게 등을 돌렸다.




"……잠깐 기다려. 너가 죽을 필요는 없잖아, 무슨 장치가 심어져 있는지 알게 된 것도 아니고."


"……"


"역시 그렇군요. ……처음 만났을 때부터 당신은 목숨을 가볍게 여기는 구석이 있었어요. 처음부터 죽을 작정이었군요."


"……"


"당신 이미 각오는 다졌나 보네."




 뒤에서 렉스 일행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나는 무슨 말을 들어도 뒤돌아볼 생각이 없다. 대답할 생각도 없다.




 ──── 그래도 운이 좋았다. 나를 마무리해 주는 것이 내 절친한 친구인 렉스라는 건.




"아직 어린데. 인생은 이제부터인데. 그렇게 쉽게 포기해도 되는 거야, 너는?"


"……"


"가족은 없어? 친구는? 연인은? 한번 죽었다고 해서 그들에게 인사도 없이 죽어도 되는 거야?"


"……"


"뭐라고 말 좀 해! 너!"




 이상하게도 죽을 각오를 한 나보다 렉스 쪽이 훨씬 더 미련이 가득했다.




 천상천하유아독존처럼 보이는 이 남자도 의외로 정이 많다.




"아까워. 그렇게 죽음을 서두르지 말라고……"


"……무서워. 지금은 각오를 다질 수 있지만 조금만 지나도 결의가 흐려질지도 몰라. 가족을 만나면 죽고 싶지 않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네."


"그럼 살아도 되잖아."


"만에 하나라도 가족을 휘말릴 수 있는 게 싫어."


"……아ー"







 약간 사투리가 섞인 수녀는 조금 문답을 하다가 포기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다물었다.




 그 눈빛은 연민일까, 아니면 경악일까.




"그래도 저는..... 제가 당신의 가족이라면 만나고 싶을거라고 생각해요."


"……끄윽."


"만날 생각만 하면 만날 수 있는데. 휘말리고 싶지 않다는 에고이즘으로 자살 한다면 절대 용서 못해요."


"……하지만"


"그런 슬픈 결말은 싫어요."




 그리고. 가장 마음에 아프게 꽂힌 건 마도사 양의 한마디였다.




 조금은 분노가 섞인 목소리로. 그녀는 나를 질타했다.




"……뭐어, 그, 일단 들어 봐. 난 엄청 강해서 말이야."


"알아, 아까 봤어."




 내가 그 마도사 양의 질타에 주눅 들어 있자 시무룩한 표정의 렉스가 머리를 긁적이며 내 머리를 움켜쥐었다.




"역시 가족에게 인사도 없이 가 버리는 건 좋지 않아. 만약 세뇌라도 당해서 너가 변한다면 그 순간 내가 책임지고 너의 목을 베어 줄게. 그러니까 나를 따라와"


"뭐?"




 그건 렉스 나름의 선의였던 걸까. 어쩐지 이 남자는 언제 돌변할지 모르는 나를 동료로 한다고 나섰다.




 슬퍼하는 마도사 양을 생각해서인가. 단순히 나를 불쌍히 여긴 것일까.




"솔직히 말해서 너 정도의 수준이 세뇌당해서 적이 된다고 해도 내겐 적수가 안 돼. 그러니까 안심하고 나를 따라와"


"……?"




 그리고 렉스는 말을 이었다.




 확실히 저 녀석 말대로일지도 모른다. 아까 렉스의 검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나대로 검을 닦아 왔지만 또 크게 차이가 벌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내가 감당하지 못했던 마족 무리를 순식간에 섬멸해 버린 걸 봐도 실력 차이는 쉽게 상상이 간다.




 ────하지만.




"그렇게 서두르지 말라고, 겨우 건진 목숨인데 나랑……"


"시험해 볼래?"


"나랑 함께……, 라, 뭐?"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싸워 보지도 않고 격하로 보이는 건 납득이 안 가!!! 나는 확실히 마족에게 졌지만 그건 기습당하거나 계속 구속당한 뒤였고 베스트 컨디션이었다고 말하기 어렵고!




 애초에 검사에겐 상성이라는 게 있다. 나는 아까의 마족과 궁합이 안 좋았다. 렉스는 궁합이 딱 맞았다. 그래서 내가 렉스에게 구해지는 꼴이 된 거다. 그런 가능성도 있는 거니까.




 즉, 나에게도 자존심이 있다, 그렇게 함부로 얕잡아 보이는 건 참을 수 없어!!




"……이, 이봐. 왜 갑자기 검을 뽑는 거야, 너"


"너도 뽑아 렉스. 자, 정정당당하게 승부하자. 누가 격하인지 가르쳐 주지"


"우와. 그렇구나, 너는 그런 타입이구나……. 좋아, 알기 쉽네. 받아 줄게!!!"




 분노로 목소리가 떨리고 있어서 내가 격분하고 있다는 걸 짐작한 모양이다. 렉스는 무척 기쁜 듯이 대검을 나를 향해 느긋하게 겨눴다.




"승부다! 내가 이기면 너는 내 동료가 돼라!!"


"시끄러워!! 아무거나 좋으니까 겨눠 렉스! 보여 주겠어!!"




 즉 뭐, 내 나쁜 구석이 나와 버린 거다. 지기 싫어하는 걸까, 도발에 약한 걸까, 화를 잘 내는 걸까.




 운명의 라이벌이었던 렉스가 상대인 것도 컸을 거다. 나는 온몸이 엉망인 것도 잊고 태연하게 렉스에게 달려들었다.


































".……흑흑, 흑흑"


"ー하하하!! 근성은 나쁘지 않았어, 하지만 내가 이겼네!!"




 몇 번의 격돌 끝에 나는 허무하게 벽으로 날아가 쓰러졌고 정신 차려 보니 목에 대검이 겨눠져 있었다.




 분해, 분해.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락된 거 같네?"


"그, 그런 것 같네요. 저 사람 꽤 단순해 보이는데……"




 멀리서 마도사 양의 그런 어이없어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달라, 렉스가 상대였으니까 흥분한 것뿐이지 원래의 나는 바보 캐릭터가 아니야.




"자, 약속대로 너는 내 동료야!! 이제 멋대로 죽는다는 소리 하면 용서 안 한다!"


"……끄느으으으읍……"




 그리고 렉스는 만면에 미소를 띠고 내 어깨를 두드렸다. 승자가 패자를 위로하는 그림이라기보다는 그냥 이겨서 기분이 좋은 것뿐이겠지.




 하지만 정정당당한 승부의 결과다. 검사로서 거역할 수도 없다.




 분해, 분해…….




"그럼 너가 말하는 연구시설이라는 걸 부숴 버리고 빨리 이 동굴에서 떠나자"


"그, 그래……"


"그렇게 풀이 죽지 말라니까. 좋은 걸 보여 줬네, 정말로. 아ー, 맞다, 너 이름이 뭐라고 했더라?"




 기분 좋게 내 등을 두드리는 렉스. 그렇구나, 이름을 밝혀야 되는구나…….




 이름을 들으면 이젠 나를 기억해 내려나? 이름마저 잊고 있었다면 한밤중에 목을 베어 줄 거다.




 ....…아아. 친구이자 라이벌이라고 생각했던 남자를 오랜만에 만나 정정당당한 승부에서 지고 존재마저 잊혀져 있어. 나는 얼마나 비참한거지.




 눈물이 멈추지 않네…….




"하하, 그렇게 울지 말라니까. 정말로 너, 자신의 실력에 자신 가져도 돼? 내가 너무 강한 것뿐이지 너는 충분할 정도로 강했다고"


"시끄러워, 위로는 필요 없어"


"위로가 아니라…… "




 일단 진정하기 위해 나는 렉스가 가지고 있던 손수건을 낚아채 얼굴을 닦았다. 남자가 쉽게 울컥하다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그리고 한숨 돌리고 훌쩍거리는 눈물을 억눌렀다. 그리고 마음을 굳게 먹고 나는 렉스를 향해 이름을 밝히려고 하는데────










"여자로서 너만큼 강한 녀석은 본 적 없어. 그런 귀여운 얼굴을 하고 있는데 울면 망가지잖아"










 렉스는 그런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었다.




"뭐? 여자?"


"뭐야, 너 혹시 남장하고 있었던 거야? 말투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알겠더라고"


"에, 에……?"




 뭐라는 거야? 내가 여자로 보인다고? 너 눈에 문제라도 있어? 딱히 나는 중성적인 얼굴을 하고 있는 건 아니다. 태어나서 이 15년 동안 여자로 착각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설마 렉스 녀석 아까 나랑의 결투에서 머리를 다쳐서────




"그, 그러고 보니 미안. 애초에 아까부터 미묘하게 가슴이 보이고 있거든. 너 옷이 너덜너덜하잖아? 어쩔 수 없이……"


"뭐, 가슴……?"




 렉스의 말을 듣고 렉스의 시선을 쫓았다.




 ...... 거기에는,








"뭐, 으와아아!! 렉스 님 뭘 보고 계신 거예요!! 검사 씨도 가려요, 가려어어!"


"어라, 뭐야. 그거 일부러 보여 준 게 아니었어?"


"그럴 리가 없잖아요!? 우, 우리 로브의 예비품을 빌려드릴 테니 렉스 님은 보면 안 돼요!!"






 ……통통하고 둥글게 부풀어 오른 푹신푹신한 언덕이 내 대흉근에 달라붙어 있었다.






















"으, 으음……"


"어, 어라? 검사 씨!?"




 여자가 되어 버렸다. 마왕군 네놈들, 자리바 네놈.




 내 성별을 건드렸어……끄윽!!








 .……현기증이 난다.




 나는 그 너무나 충격적인 사실에 핑그르르 눈을 돌리며 의식을 잃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