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ts물 소설 번역 채널

29. 아즈란 격진










"그아악...!"








 왕도에서 떨어진 산악 지대에 자리한 도시.


 그곳을 점령하고 있던 마왕군 중에서 아마도 집단의 수장일 뚜렷하게 뛰어난 전투 능력을 갖춘 개체가 무너져 내렸다.




 나-엑스는 손에 든 검을 가볍게 휘둘러 칼날에 묻은 혈액을 튕겨냈다.








"후우... 이걸로 시내에 남은 마왕군은 소탕된 걸까?"


"수고하셨어요 엑스 군. 부상은 없나요?"


"네, 괜찮아요 필로멜라 씨. 통솔하던 8대 간부가 없어지니까 적들도 혼란에 빠진 것 같네요."


"일단은 이 도시는 이제 괜찮겠죠. ...16신장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 게 걱정되긴 하지만."


"...그러게요."












 왕도에서의 결전을 끝낸 우리는 전이술로 각지로 이동하면서, 8대 간부의 군세가 지배하고 있던 지역을 그곳 인류군과 협력해 해방시켜 나가고 있었다.




 강력한 전투 능력을 갖추고 높은 지능으로 군세를 지휘하던 통솔자를 잃은 마왕군은 놀랄 정도로 취약했고 인류군은 각지에서 연승을 거듭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이에 왕도에서의 싸움에 모습을 드러낸 '마왕군 16신장'이라는 존재들이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는 상황에 나는 섬뜩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별도로 행동하던 빌라 일행과 합류하자 그들도 내가 느꼈던 섬뜩한 위화감에 동의했다.






"딱 잘라 말해. 우릴 얕보는 것 밖에 생각이 안 든다고. 왜 16신장은 움직이지 않는 거지?  8대 간부보다 위라면 전황을 뒤집을 수 있을 텐데."


"빌라 말에 동감이야. 그 아즈란이라는 녀석, 아마 우리 전원이 덤벼도 이길 수 있을지 모르겠어."






 우리가 직접 본 16신장은 '섬멸장'이라 이름 밝힌 아즈란이라는 마족 남자뿐이지만, 그와 동급의 존재가 다른 15명이 있다면... 인류군과 마왕군의 전력 차이는 절망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전장에서 마주했던 그가 뿜어내는 위압감을 떠올리며 살짝 몸을 떨었다.












'용사 엑스여. 인족의 강하고 아름다운 전사여. 부디 맹세해줘. 이 싸움에서 내가 그대를 쓰러뜨렸다면 나의 신랑이 되어 달라고."












 ...손등에 그의 입술의 감촉이 되살아나는 듯한 착각에 살갗이 오그라드는 걸 느꼈다.


 이것은 강대한 적을 앞에 두고 느끼는 것과는 뭔가 다른 느낌이 드는 것은 내 착각일까?




 빌라가 내 창백해진 얼굴을 보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알고있어 엑스. 만약 지면 놈한테 엉덩이를 내줘야 된다면 난 상상만 해도 혀를 깨물고 자해할거야. 아니, 어쩌면 넌 찌르는 쪽일지도 모르겠지만..."


"...빌라, 실은 좀 즐기고 있는 거 아냐?"






 내가 살벌한 기운을 빌라에게 쏘아대자 대화 내용을 잘 모르는 리액터가 내게 질문을 해왔다.




"어... 전 그 아즈란이라는 사람을 못 봤는데요. '성검'...이었죠? 그걸 쓴 엑스 씨로도 감당 못할 정도로 강한가요?"




 우리가 함께 여행을 시작한 이후 '성검'을 사용한 건 며칠 전 왕도에서의 전투가 처음이었다.


 성검의 힘을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여러 8대 간부를 내가 혼자 격파했다는 얘기를 들은 리액터가 의문을 가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아니, 아마 '성검'을 쓴 나라면 16신장도 쓰러뜨릴 수 있어."


"하지만 그건 최후의 수단이에요."




 내 말을 막듯이 필로멜라 씨가 이어서 말했다.




"현재 성검의 수는 2개 남았어요. 마왕과의 결전을 생각하면 최소 하나... 가능하다면 남은 성검은 전부 마지막 결전까지 아껴두고 싶을 정도예요."


"응, 나도 필로멜라 씨와 같은 생각이야. 16신장이 다 아즈란과 같은 수준의 힘을 갖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동급으로 여겨지는 존재가 15명은 더 있어. 그들 모두에게 성검을 쓸 순 없으니 우리 본인의 힘으로 그들을 쓰러뜨리지 못한다면 어느 쪽이든 앞날은 없어."




 다시금 사태의 심각성에 내가 엄중한 표정을 짓고 있자 빌라가 거칠게 내 어깨에 팔을 두르며 야성적인 미소를 지었다.




"이긴 싸움 뒤에 왜 그런 굳은 얼굴이야. 우리는 저 8대 간부도 다 쓰러뜨릴 수 있었잖아. 이번에도 어떻게든 되겠지."


"...물론 그럴 생각이야. 널 믿고 있으니까, 빌라."




 빌라에 이끌려 나도 미소 지으며 톡 하고 그와 가볍게 주먹을 마주쳤다.








"엑스 님! 부상은 없으신가요!"




 뜻밖에 여성의 목소리가 내 이름을 부른 게 들리더니 인류군의 경호를 이끌고 한 여성이 내 앞으로 왔다.


 이 도시를 다스리던 영주의 딸로 마왕군에게 도시를 빼앗기고 왕도로 망명해 온 그녀와는 몇 번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나는 검을 거두며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에요, 에메랄다 양. ...드디어 여러분의 고향을 돌려드릴 수 있게 되었네요.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엑스 님들은 왕도나 다른 곳도 지켜야 했으니 신경 쓰지 마세요. ...이렇게 저희 도시를 되찾아주신 것만으로도 엑스 님께 감사드려도 모자랄 정도예요."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내 손을 잡고 촉촉한 눈동자로 날 바라봤다.


 ...피투성이까지는 아니어도 싸움으로 적당히 더러워진 나로서는 그녀의 비싼 옷을 더럽히진 않을까 노심초사하니 가능하면 너무 가까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그녀는 그런 내 마음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더욱 다가왔다.




"저기, 엑스 님. 이번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작게나마 연회를 준비하고 있는데... 괜찮으시다면 엑스 님도 함께 가시겠어요? 아버님도 꼭 당신께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어 하시고..."


"감사합니다, 에메랄다 양. ...하지만 죄송해요. 우린 가능한 한 빨리 왕도로 돌아가야 해요. 지난번처럼 마왕군이 왕도를 기습할지도 모르니까요."


"그, 그렇죠... 죄송해요. 엑스 님 사정도 생각 않고 들뜨고 말았네요..."




 내 말을 듣자 그녀는 노골적으로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 모습에 죄책감이 든 나는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그러니 감사 연회는 마왕 토벌 후 초대해 주시면 좋겠어요. 에메랄다 양이 괜찮다면 말이에요."




 그 자리를 누그러뜨리려는 듯 농담을 섞어 웃으며 말하자, 그녀도 이에 화답했다.




"네, 네! 물론이에요! 그때는 도시를 들썩이며 엑스 님을 환영해 드릴게요!"


"네, 기대하고 있어요. 그럼 이만."




 별로 이런 대화에 익숙하지 않은 건지 꽤나 힘차게 대답해준 그녀가 장하게 느껴졌다. 작별 인사로 다시 한번 그녀에게 인사를 하고 나는 전이술을 사용할 곳을 찾아 이동하기 시작했다.






 ...어라? 빌라와 필로멜라 씨가 이상한 눈으로 날 쳐다보고 있네?






"이봐... 그렇게 닥치는 대로 현지처 만드는 건 그만둬. 언젠가 찔려 죽을 거야, 진짜로."


"소용없어요 빌라 씨. 엑스 군의 그건 무의식이니까요. ...다른 여자에겐 저런 플레이보이 같은 짓을 하면서 왜 아리에타 씨한테는 저런 변태 같아지는 걸까요... 애초에 빨리 왕도로 돌아가고 싶은 것도 아리에타 씨 보고 싶어서겠죠, 아마도."


"그, 그런 거 아니에요! 난 왕도가 걱정돼서 빨리 돌아가고 싶은 거고..."


"그렇죠. '아리에타 씨가 있는' 왕도가 걱정인 거겠죠. ...뭐 마왕군의 습격을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건 사실이니 빨리 돌아가죠. 갑니다, 엑스 군."












 **********












"어서 와, 방해했구나. 나의 사랑이여."


"—-!?"








 전이술로 왕도의 저택에 돌아온 우리를 금빛 미남, 마왕군 16신장 '섬멸장' 아즈란이 거실에서 맞아주었다.




 우리는 경악하면서도 재빨리 무기를 겨누며 임전태세를 갖췄다.






"'섬멸장'...!?"


"남 행세는 상처 받는다고. '아즈란'이라고 불러주지 않겠나? 나도 그대를 엑스라 부를 테니."




 무기를 겨누고 있는 우리에게 다정한 눈길을 보내며 그는 우아하게 찻잔을 기울였다.




 ...잘 보니 테이블엔 우리 5명분의 잔도 준비되어 있었다.




"타레스, 그들에게도 홍차를."


"네, 아즈란 님."




 아즈란이 목소리를 높이자 부엌에서 메이드복을 입은 여성이 찻주전자를 들고 나타났다. 얼핏 보면 인간처럼 보이지만 이마에서 솟은 뿔이 그녀가 인간과는 다른 존재임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녀는 인원수만큼 찻잔에 차를 따르더니 우리에게 살짝 목례하고는 다시 부엌으로 사라졌다.




"내 잔과 찻잎은 여기 오는 길에 상점가에서 샀지. 전승 축하 세일로 반값이더군. 잔에 그려진 고양이 그림이 참 사랑스러운 물건이야. 정말 잘 샀다고 생각하지 않아?"


"...이제 뭐부터 태클 걸어야 할지 모르겠네, 이거..."




 창을 겨눈 빌라가 기운 빠진 얼굴로 중얼거리자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아아, 내가 여기 있는 걸로 문지기나 거리를 순찰 중인 경비병들을 나무라지 말아 주었으면 좋겠군. 나 정도의 실력자가 인식 방해 마술을 쓰면 보통 인간으로선 내 정체를 간파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말이야. ...그나저나 언제까지 그렇게 서 있을 작정이지? 앉아봐. 타레스가 내린 차가 식어 버리잖나."




 우리의 살기를 눈곱만큼도 신경 쓰지 않는 아즈란에게 필로멜라 씨가 지팡이를 내리며 신중히 말을 걸었다.




"...일단 교전할 의사는 없다고 봐도 되겠죠? 아즈란 경."


"경칭은 빼도 좋아. 나는 귀족은 아니니까. 너희들이 어떻게든 하자면 이 자리에서 싸워도 상관없지만... 그건 너희들도 곤란할 걸? 나는 힘 조절이 서툴러서 말이야. 싸움이 시작되면 무심코 왕도 일대를 날려버릴지도 모르지."




 그렇게 고하더니 아즈란은 손끝에 작은 칠흑의 구체를 만들어냈다.




 ...새끼손가락 끝만 한 크기의 '그것'에 적어도 이 저택을 증발시킬 정도의 마력이 담겨 있다는 건 피부에 엉겨 붙는 위압감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여러분, 무기를 내려주세요. 여기서의 전투는 악수입니다. 얼마나 피해가 나올지 모릅니다."




 우리가 필로멜라 씨의 말에 따라 무기를 내리자 아즈란은 싱긋 웃으며 손끝의 흑구를 지워냈다.




"이해해줘서 기쁘군. 자 앉아 앉아. 다 같이 차라도 마시며 수다 떨어보자고."


"...너의 목적은 뭐지? 엑스를 노린 거라면 우린 방해꾼 아냐?"




 창을 겨누진 않았지만 날카로움은 한층 더해진 빌라의 눈빛이 아즈란을 꿰뚫었다.












"훗.........."












 다음 순간, 아즈란은 빌라의 등 뒤에 있었다.












"뭣...!?"




"질투하는 거니?"






 등 뒤에서 덮치듯 빌라를 끌어안은 아즈란이 빌라의 늠름한 가슴팍을 슥 하고 손끝으로 부드럽게 훑었다. 토할 것 같은 광경이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




 빌라가 반사적으로 아즈란의 머리에 창을 꽂았다.




 하지만 어느새 아즈란은 다시 빌라의 뒤에서 사라지고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빌라는 덜덜 떨면서 아즈란에게 입가에 거품을 물며 소리쳤다.





"너너너너 엑스를 노린 게 아니었어!?"


"난 강하고 아름다운 것이라면 가리지 않고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성정이라서. ...빌라, 라고 했나. 싸움이 끝나면 너도 나의 신랑감으로 맞아들이마."


"그냥 남자를 가리지 않는 쓰레기잖아!?"






 빌라의 말에 아즈란이 오해하지 말라는 듯 미간에 주름을 모았다.










"오해는 하지 말아주었으면 한다만, 사랑할 만한 존재라면 난 성별은 상관없다고."


"그냥 가리지 않는 쓰레기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