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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그렇게 세상은 돌아간다








 자,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나 아리에타에게 전해졌다.


 먼저 좋은 소식부터.








 엑스 일행과 인류군의 활약으로 마왕군 8대간부가 전멸했다고 한다.


 만세..








 나쁜 소식이다.




 8대간부보다 더 위에 있는 마왕군 16신장이라는 자들이 나타났다고 한다.


 싫어어! 




 정말이지, 소년만화 같은 인플레를 하고 있어.


 이 느낌이라면 아마 다음엔 32업마 라도 나올 거야.








 하지만 그래도 승리는 승리다.


 8대간부가 총출동해 공격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인류군에는 눈에 띄는 손해가 없었다고 한다. 더 강한 적이 나타났다고는 해도 이 쾌승에 거리는 축제 분위기다.




 일단은 왕도 주변의 안전이 확인되었으므로 나는 테임과 마스터와 함께 왕성에서 은 고양이점으로 돌아가는 길을 걷고 있었다.




 거리에서는 영리한 상인들이 벌써부터 전승 축하라며 수상쩍은 가판대를 열거나, 활기에 눈이 멀어 일단 떠들고 싶을 뿐인 쓸모없는 인간들이 술집이나 길거리에서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그런 거리의 풍경을 보며 나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아, 한가하다고 해야 할지 기개 차다고 해야 할지... 위기감이 부족한 거 아냐? 그렇게 생각하지, 테임?"


"...위기감을 눈꼽만큼도 느끼지 못하는 복장으로 말해봤자 말이야."








 테임이 옆을 걷는 나의 차림새를 보며 딴지를 건다. 현재 나는 전승 축하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의미불명한 여우 가면을 옆으로 돌려 머리에 쓰고, 이 또한 인과관계를 눈꼽만큼도 느끼지 못하는 "먹어서 응원~ 용사사탕!"이라는 사과를 녹인 설탕으로 코팅한... 아아, 그만하자. 별다른 특징 없는 사과사탕을 한 손에 들고 핥으며 빈틈없는 들뜬 복장을 하고 있었다. 아니, 뭔가 축제 같아서 텐션이 올라가 버려서...


 테임에게 한심한 시선을 받고 있는 나를 마스터가 감싸준다.




"뭐, 군인들이 목숨 걸고 쟁취해 온 승리잖아. 그걸 맞이하는 우리가 어두운 얼굴을 하면 망칠 거 아냐? 마왕군 녀석들도 일단은 왕도 주변에서 퇴각했다는 얘기고, 조금쯤 들뜨는 건 벌 받을 짓은 아닐 거야."


"...뭐, 상관없지만 말이야. 그보다 이제 어쩔 거야? 일단 가게는 무사했고, 열어볼까 아버지?"


"이 분위기면 오늘은 술집 말고는 장사가 안 될 거야. 적당히 뭘 만들어서 거리에서 포장마차를 해도 되겠지만... 뭐, 오늘은 임시휴업이다. 나는 좀 아는 사람 집을 돌아볼 테니까 너희들도 맘대로 해."




 마스터는 그렇게 고하고는 난장판이 된 거리로 사라졌다.




"...아아, 어쩔 거야 아리에타? 할 일도 없는데 한잔하러 갈까?"


"응, 그것도 나쁘진 않지만... 아니, 나는 좀 가고 싶은 데가 있으니까 따로 움직이자. 밤에는 돌아올 테니까 나중에 보자."




 나는 남은 사과사탕을 와작와작 깨물어 배 속에 넣고는 테임에게 작별을 고했다.








"오케이. ...그럼 엑스 녀석 만나면 안부 전해줘."




 끼익, 하고 내 걸음이 멈췄다.




"...별로 어디 간다고 말한 적 없는데?"


"아니었어?"


"...맞긴 한데."




 이런 꼬맹이한테 행동을 간파당한 게 부끄러워 나는 퉁명스럽게 대응해 버렸다.




"일단 말해두는데 아마 못 만날 거야. 그 녀석은 이번 싸움의 공신이고 앞으로의 전투의 열쇠를 쥔 중요인물이라고. 파티인지 회의인지 모르겠지만 지금쯤 왕성에서 꽁꽁 묶여 있을걸."


"만나지 못한다면 그것도 괜찮아. 기분의 문제니까."


"그런가. 그럼 뭐, 맘대로 해."


"응, 맘대로 할게."








 테임이 축제 분위기로 가득한 거리를 향해 간 것을 확인하고 나도 걷기 시작했다.


 훈련소로 갈까 하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왕성에는 아마 들어갈 수 없을 테고, 그렇다면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거기뿐이겠지.












 **********












"혹시나 했는데... 뭐, 돌아와 있을 리 없지..."




 나는 불이 꺼져 있는 엑스 일행의 아지트를 확인하고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뭘 하고 있는 거야... 그런 싸움 후에 바로 만날 리 없는데 내일 이후라도 괜찮았을 텐데."
















'맹세할게. 네가 원한다면 너를 위해 모든 걸 지켜 보일게.'
















"...젠장."




 그날 밤의 엑스의 얼굴이, 목소리가 머리에서 떠나주지 않는다.


 가슴이 조여드는 듯한 느낌에 나는 괴로운 듯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이건 아니야. 이 기분은, 가슴의 고통은 절대로 그런 게 아니야.








 왜냐하면, 나는 아니니까.




 나는 평범한 여자가 아니니까 엑스에게 그런 걸 품을 리 없어.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듯이 나는 스스로도 잘 알지 못하는 "그것"을 필사적으로 부정한다.








 왜냐하면 "그것"을 인정해 버리면 나는 분명 엑스의 곁에 있을 수 없어. 있어선 안 돼.












 이런 험악한 마음을 품고 있는 인간이 그 녀석의 옆에 있어도 되는 이유가 없잖아.










 인정하지 않으면 그의 곁에 있을 수 있어.


 언젠가 누군가와 행복해진 그를 웃는 얼굴로 축복해줄 수 있어.








"소중한 사람에겐 행복해졌으면 해. 그게 내 진심이야, 미라쨩."








 나는 여기에 없는 소녀를 향해 작게 중얼거리고는 불 꺼진 저택을 뒤로했다.












 **********












"...그래서 내가 왜 이런 꼴을 당하고 있는 거지?"






 엑스 일행의 저택에서 돌아오는 길에 가볍게 뭘 좀 뱃속에 넣으려고 수상쩍은 포장마차가 즐비한 거리로 향한 게 운이 다한 거였다. 나는 말도 안 되게 취한 바보 귀족 에이비스에게 시비를 걸렸다.






"우하하하! 왜 그래 아리에타? 내 술을 못 마시겠다고? 쓸모없는 폐급이 옮는다고? ...그, 그렇게까지 말하지 않아도 될 텐데... 으, 으아앙."


"아아, 정말 귀찮아! 순식간에 웃다가 울다가 하지 마 소름 끼쳐!"




 반쯤 강제로 술집 자리에 앉혀진 나는 코물을 늘어뜨리며 달라붙는 에이비스의 얼굴에 아이언 클로를 꽂았다.




"게다가 넌 제법 돈 있는 편 아냐? 경호원도 데리지 않고 이런 곳에서 술에 절어 사는 건 경솔한 거 아냐? 모르는 아저씨들은 어디다 두고 왔어."


"몰라. 어차피 나에게 질려서 부친 곁으로 돌아갔겠지. 그 자식들 아버지 명령으로 짜증나는 날 섬기고 있었을 뿐이니까."




 정말 에이비스를 두고 은 고양이점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조금 에이비스의 껄끄러운 부자 관계를 나는 왕성에서 너무 많이 봐버렸다.


 나는 녀석이 사준 과실주를 홀짝거리며 왕의 격투기 이후의 그 후 광경을 되새기고 있었다.












 **********












"그런 일이다. 여기서 본 것, 들은 것은 함구할 것. 어기면 짐은 너희를 엄중히 처벌하지 않을 수 없다. 알겠나?"








 레기우스 왕의 말에 나는 할 말 없이 전력으로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그걸 확인한 레기우스 왕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다시 옥좌에 앉았다.






"그럼 물러가도 좋다. 대피소까지 가는 길을 모르겠다면 누군가에게 안내시키겠는데?"


"아, 아뇨, 괜찮습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 가자 에이비스."






 약간 더듬으며 나는 옆에 주저앉아 있던 에이비스를 일으켜 세워 얼른 옥좌의 방을 떠나려 한다.






"기다려라. 에이비스."






 하지만 레기우스 왕 옆에 대기하고 있던 도바리 아저씨는 아직도 내 블라우스 자락을 붙잡고 놓지 않는 에이비스에게 볼 일이 있는 모양이다.




"네놈, 경호대는 어찌했냐."


"그, 그들은 우수한 군인입니다. 이번 결전에 인류군의 힘이 되길 바라며 전선에 지원을..."


"그건 알고 있다. 내가 묻고 싶은 건 '왜 그런 짓을 했느냐'다."


"아, 으... 그, 그건 저도 약간이나마 부친과 형님께 도움이 되고자..."


"쓸데없는 짓 하지 마라."




 에이비스의 말을 도바리 아저씨가 단칼에 끊어냈다.


 조용한 목소리였지만 에이비스를 입 다물게 하기엔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무슨 공을 세우면 내게 인정받을 거라 생각한 거겠지. 무의미한 짓 하지 마라. 너는 형하고 다르다. 쿠베이라가 다스리는 군사적 재능은 너에게 없다."


"아, 아... 죄, 죄송합니다..."


"재주 없는 자가 분에 넘치는 뜻을 품어봤자 주위를 불행하게 할 뿐이다. 쿠베이라의 역할은 나와 너의 형이 다할 것이다. 너는 너 자신의 길을 찾아라."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이 도바리 아저씨는 에이비스에게서 시선을 떼고는 레기우스 왕을 향해 돌아서서 뭔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가자, 에이비스."


"..."






 너덜너덜해진 걸레마냥 된 에이비스를 내버려 둘 수도 없고, 나는 녀석의 손을 잡아끌며 옥좌의 방을 뒤로 했다.












 **********












 뭐, 그런 일이 있었던 거다.


 이런저런 생각이 없는 건 아니지만, 남의 집안사에 부외자인 내가 이러쿵저러쿵 입을 대는 것도 이상한 얘기겠지. 나는 딱히 이 녀석의 친구도 연인도 아니니까 말이야.




"그리고 이제 술 마시는 거 그만둬. 얼굴색 엉망이야."




 얼굴이 빨간색을 넘어 보라색이 되어가는 에이비스에게서 나는 잔을 낚아챘다.




"돌려줘어. 내 잔 돌려줘어."


"자기 한계도 모르냐, 너는. 저기요, 계산 좀 부탁드려요."




 좀비처럼 느릿느릿 움직이며 내게서 잔을 되찾으려 하는 에이비스를 무시하고 나는 계산을 끝냈다. 물론 에이비스 지갑으로.












 **********










"우웩... 기분 나빠..."


"그 따위로 술 퍼마시니 그렇지. 자, 토하면 좀 편해질 거야."




 왕도 내부를 흐르는 개울가에서 무릎을 꿇고 엎드린 자세가 된 에이비스의 등을 토닥이고 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정성스레 이 녀석 돌보고 있는 거지, 나는.


 ...뭐, 아는 사이니까 길거리에 이 녀석을 내버려둔 결과 강도한테 습격당하거나 했다면 확실히 찝찝할 것 같긴 하다. 귀가할 때까지는 신경 써줄까.




 일단 어깨를 빌려주는 중에 토악질 당하면 최악이니까 여기서 먼저 위 속을 게워내게 하고 싶은데, 아까부터 욕만 하고 토하려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토하는 법도 모르나 이 녀석은. 아기냐.




"어쩔 수 없네. 야, 입 벌려. 깨물지 마라."


"아... 뭘...?"


"자아!"


"으윽...!?"




 반쯤 벌어진 에이비스의 입에 나는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외부에서 갑작스러운 자극에 에이비스는 개울에 위 속의 내용물을 성대하게 토해냈다.




"끄... 우엑... 하아... 하아..."


"조금은 편해졌지? 입가를 가볍게 씻으면 갈 거야."








 에이비스가 등을 토닥이던 내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으윽... 젠장, 젠장. 모두들 나를 얕보고 있어...! 어차피 너도 속으로는 나를 얕보고 있는 거잖아!"


"속으로도 뭐도 그냥 바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우와앙! 제기랄!"






 에이비스가 반쯤 우는 얼굴로 내게 덮쳐왔다. 작작해, 술 냄새난다고.






"젠장! 좋은 기회야... 여기서 그날의 속편을 해줄 수도 있다고!"


"딱!"


"아파!"




 내가 가볍게 주먹으로 쥐어박자 술 때문에 힘 빠진 에이비스는 손쉽게 나가떨어졌다.




"그럴 마음도 없으면서 시비 걸지 말라고, 성가셔 죽겠네. 알코올 빠졌으면 좀 진정하라고."




 나는 고꾸라진 에이비스 곁에 앉아 녀석이 진정될 때까지 좀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


 이 녀석의 경우 알코올 말고도 토해내야 할 게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충격이었어? 아버지한테 들은 말."


"............"




 낯선 사람이 아는 척 하는 말에 격분할 줄 알았는데, 에이비스는 의외로 침착했다. 내 말을 받아 중얼거리듯 녀석은 말하기 시작했다.




"...알고 있었어. 내게 쿠베이라의 인재로서 어울리는 재능이 없다는 걸. 게다가 재능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걸 메우려 다른 이들보다 노력조차 하지 않았지. 부친이 날 버리는 것도 당연해."




 씁쓸한 자조적 미소를 지으며 에이비스는 계속했다.




"이번 경호대 일도 그래. 인류군 지원? 그런 건 눈꼽만큼도 생각하지 않았어. 어떻게든 공을 세우면 혹시 아버지와 형이 칭찬해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이상도 신념도 아무것도 없는 바보 애새끼의 얄팍한 생각일 뿐이지."




 에이비스는 한바탕 쏟아내고는 드러누워 내 얼굴을 올려다보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아아, 네 말대로야. 난 어쩔 수 없는 바보에 구제불능의 쓰레기야."
















"...뭐, 그럴지도 모르지."


"..."




 나는 부정하지 않았다. 이 녀석은 바보에 쓰레기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결백한 선인은 아니다.












"하지만 상관없지 않아? 바보에 쓰레기라도 말이야."


"...하아?"




 내 말에 에이비스가 의아한 얼굴을 했다.




"세상의 인간이 모두 하나같이 숭고한 이상이니 자랑스러운 신념이니 하는 걸 갖고 행동한다면 답답해서 질식해버릴걸."




 나도 굴러서 누워 에이비스와 시선을 맞췄다.




"나나 너 같은 적당한 인간이 있어야 세상이 잘 돌아가는 거야. 아마도."












 실제로 나는 이 녀석의 바보 같은 행동에 따라준 덕분에 엑스 일행의 저택 앞에서 느낀 가슴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잊을 수 있었다.








"너가 바보라서 구제받은 녀석도 있다고."




"...흥,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는 여자로군..."




"그러니까 말하잖아. 나도 너도 적당한 인간이라고 말이야. 이상이니 신념이니 그런 진지한 녀석들은 너희 아버지나 엑스 일행한테 맡기고 우리는 우리에게 할 수 있는 걸 찾아가는 거지."










 나는 기세를 모아 일어서서 조금은 제정신이 든 바보를 내려다보며 씨니컬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우리는 누군가와 함께 세상을 돌려가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