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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섬멸장" 아즈란






"궁병대, 앞으로! 쏴라!"






 장군의 호령과 함께 인류군의 일단이 마왕군을 향해 일제히 화살을 발사한다.










"흥, 이게 몇 번째지? 질리지도 않고 잘도 하는군."










 전신을 붕대로 감싼 거인 - 마왕군 8대간부 "부독"이 지루해하며 팔을 휘두르자, 발사된 화살은 마왕군의 전위대에 닿지도 못하고 모두 중도에서 썩어 떨어져 먼지가 되었다.




 무인지경을 가듯이 "부독"은 자신의 주위에 있는 초목을 부식시키며 인류군에게 거리를 좁혀갔다.






 마왕군 8대간부 중에서 인류에게 가장 큰 피해를 준 자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인류군은 이 "부독"의 이름을 가장 먼저 꼽을 것이다.


 그곳에 있기만 해도 대지를 갉아먹고, 접촉한 것이 사람이든 무엇이든 부패시킨다. 8대간부 중에서도 탁월한 섬멸 능력을 자랑하는 무시무시한 마인이다.








"장, 장군님..."


"겁내지 마라, 계속 쏴라! 저런 큰 기술을 연발하고 있으니 다소나마 체력을 소모시킬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인류군이 화살을 겨눈 것을 확인하자 "부독"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귀찮군. 모두 썩어 없어져라."






 "부독"이 전방을 향해 손을 내밀자 수많은 붕대가 의지를 가진 촉수처럼 인류군을 향해 날아갔다.


 부식의 마력이 깃든 붕대는 스치기만 해도 인간 한 명을 부패시키는 접촉치사의 악의다.


 눈앞에 닥친 죽음의 기운에 몇몇 병사들의 입에서 비명이 새어나온다.








"히익...!"


"젠장... 여기까지인가...!"








 장군이 주먹을 움켜쥐며 분한 듯이 중얼거린다.




 뻗어나가는 붕대가 엄청난 속도로 인류군을 둘러싸고, 부패한 고기 덩어리를 만들기 위해 덮쳐드는 다음 순간이었다.








"하게두지 않겠습니다! '광역정화'!"








 또렷한 소녀의 목소리가 울린 다음 순간, 전장이 눈부신 빛에 휩싸인다.


 빛에 타는 듯이 인류군을 둘러싸고 있던 "부독"의 붕대가 먼지가 되어간다.




"이건...?"




 눈앞의 광경에 멍해져 있는 장군의 곁으로 흰 로브를 감싼 소녀가 달려온다.






"오는 게 늦어서 죄송합니다! 성천교 '대신관' 리액터입니다. 이로써 각하의 부대를 지원하겠습니다!"


"오오, 당신은 엑스님의 동료분... 이거 든든하군요!"






 인류군 최대 전력 중 하나의 가세에 인류군의 사기가 오르는 모습을 보고 "부독"은 귀찮다는 듯이 머리를 긁었다.






"신성마법인가... 그것도 무서울 정도로 광범위한. 이 정도라면 나에게 데미지는 안 들어가지만, 이러면 다수에게 부식을 날릴 수 없다. ...저 여자부터 해치워야겠군."


"어이쿠, 그러게 둘 수 없지?"






 리액터에게 덤벼들려고 하는 "부독"을 뒤에서 거대한 도끼가 습격한다.


 "부독"이 팔을 감싼 붕대에 마력을 담아 참격을 막자, 여자는 가볍게 휘파람을 불며 상대를 칭찬했다.






"와우, 역시 8대간부. 한 방에 끝내려고 했는데 말이야."


"죽어라."






 "부독"은 도끼를 밀쳐내고는 그대로 여자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리액터의 신성마법으로 붕대에 의한 원거리 부식은 막혔지만, 직접 접촉에 의한 부식 능력은 여전히 건재하다.




 그러나 "부독"의 팔이 여자의 몸에 닿기 전에 옆에서 돌진해 온 창이 "부독"의 팔을 꿰뚫었다.






"고마워, 빌라."


"어. 필로멜라에게 '그' 엑스를 떠맡겨버렸으니까. 어서 이놈을 처리하고 사과할 준비라도 하자고, 레비."






 창을 휘둘러 "부독"을 튕겨내자 빌라가 인류군을 향해 외쳤다.






"너희들! 이놈은 나와 레비가 상대할 테니 리액터의 방어는 맡긴다! 아가씨의 신성마법이 무너지면 단번에 밀려나니까!"


"아아, 맡겨주십쇼! 주위의 잡졸들은 우리가 상대하니까, 당신들은 '부독'에게 전념해주세요!"






 장군의 대답을 듣자 빌라는 "부독"에게 창을 겨누며 사나운 미소를 지었다.






"...그럼 시작할까! 따라와, 레비!"


"알았어. 엑스 말고도 싸울 수 있는 녀석이 있다는 걸 마왕군에게 가르쳐주자."


















 **********
















"바, 바보 같은... 용사도 아닌 너희 같은 잡병에게..."








 눈앞에서 빌라와 레비의 연격을 받아낸 8대간부 "부독"이 쓰러졌다.


 주위에서 인류군 병사들이 환성을 올리지만, 나-빌라는 극심한 피로감에 창을 땅에 꽂고 쓰러져버린다.






"...젠장, 저놈들은 다들 사람을 엑스의 들러리 취급하네. 나를 얕본 걸 저 세상에서 반성해라."


"뭐, 리액터와 인류군의 지원을 받아 2명이 겨우 이겼으니까 거만하게 굴 순 없지만 말이야~"




 레비가 땅에 大자로 누워있는 내 배에 엉덩이를 내려앉았다. 뭘 자연스럽게 남의 위에 앉는 거야. 엉덩이 주물러버린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로이 있어도 되는 거야? 움직일 수 있으면 엑스와 필로멜라를 지원하러 가라고. 나는 이제 움직일 수 없으니까 말이야."




 마지막 힘을 짜내어 눈앞의 엉덩이를 주물러보려던 내 손을 레비는 휙 피하더니 엑스와 필로멜라가 싸우고 있는 전장 방향을 가리켰다.




"저쪽은 문제없어. 마침 방금 엑스가 마지막 8대간부의 목을 날려버렸거든."


"...대단하네, 용족의 시력은. 나에겐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뭐, 어쨌든 이걸로 마왕군 8대간부는 전멸이다.


 왕도에 침입할 수 있었던 마왕군은 결국 엑스와 교전한 8대간부뿐인 것 같고, 왕도와 인류군에도 눈에 띄는 피해는 없는 것 같다.




 인족과 마족의 일대 결전이었지만, 끝나고 보니 인류군의 완승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런 대승리일 텐데도 내 마음은 개운하지 않았다.




"...뭔가 시원찮은데 말이지."


"뭐야. 이렇게 크게 이겼는데 뭐가 불만이야?"




 레비의 엉덩이를 바라보며 나는 내면의 답답함을 그녀에게 토로한다.




"전개가 사천왕 때와 같은 패턴이라고. 확실히 마왕군의 간부급은 쓰러뜨렸을지 모르지만, 손맛이란 게 없어. 저들에게 손실을 줬다는 손맛 말이야. 인류군은 아직도 마왕군의 근거지가 어딘지도 모른다고? 정말로 마왕군에게 데미지가 들어갔는지 알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세계 각지에서 인족에 대해 침략 행위를 벌이는 마왕군이라 불리는 존재.




 저들과 인족의 싸움은 소강상태를 끼고 수백 년 이상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긴 세월이 흘렀다는데도 인족은 아직도 마왕군의 근거지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포로를 잡아 심문해보려 해도 마왕군을 구성하는 대부분의 마물은 야생동물 수준의 지능밖에 없고, 언어를 해독할 수 있는 사천왕이나 8대간부 같은 존재가 나타나는 건 늘 격전지다. 그런 곳에서 강대한 전투력을 가진 존재를 죽이지 않고 사로잡는다는 건 다소 무리가 따른다.




 그런 여러 가지 사정이 겹친 결과, 인족의 마왕군에 관한 정보는 놀랄 정도로 빈약한 게 현실이다.




 우리는 마왕군의 핵심을 이루는 간부를 쓰러뜨린 셈이지만, 실제로는 어떨까?


 사천왕을 격파했을 때와 같이, 저들에게는 이 정도 싸움은 간보는 전초전에 불과한 게 아닐까? 


 그런 불안감과 조바심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그런 심중을 토로하자 레비는 놀란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빌라는 싸움과 음탕한 생각밖에 없는 녀석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바보 취급하는 거냐, 볼품없는 드래곤. 엉덩이 주물러버린다 이녀석."






 레비의 발꿈치가 내 이마에 꽂혔다.












 **********








 왕도 외곽의 어느 삼림지대.




 인족과 마족의 최전선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서 꿈틀거리는 그림자가 있었다.








"크... 젠장... 이, 이럴 리가..."




 용의 모습마저 유지할 수 없게 되어, 원래부터 무너져가던 인간형을 더욱 흐트러뜨리며 "환영"이 숨도 넘어가듯이 기어가며 중얼거린다.










"...적어도 마왕성에 돌아가 용사와 왕의 '힘'에 대해 총사령에게 전해야..."


"아아, 그건 보고할 필요 없어."










 뒤에서 "환영"의 가슴을 누군가의 팔이 꿰뚫고 있었다.








"아...?"


"수고했어, '환영'. 8대간부의 일은 이걸로 끝이야. 슬슬 쉬는 게 좋겠어."


"총사령... 왜...?"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남자, 마왕군 총사령의 모습을 확인하고 "환영"의 얼굴은 경악으로 굳어버렸다.




"너희가 전멸함으로써 그 마력이 마왕성에 환원되어 새로운 간부가 탄생하지. 어중간하게 살아남는 건 곤란하다고. 뭐, 내버려 두어도 너는 오래가진 못했겠지만, 내가 직접 손을 쓰는 이유는..."








 총사령이 "환영"을 꿰뚫은 팔에 마력을 담자 이번에야말로 "환영"은 완전히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그렇군. '사심'이라는 거지."




 먼지가 된 "환영"을 향한 말에는 약간이지만 '증오'의 색채가 있었다.












"...자, 이번엔 인사뿐이야. 알고 있겠지, '섬멸장'. 너의 힘은 너무 많이 죽인다. ...왕도에는 '그녀'가 있어. 만일의 사태가 있어선 곤란하니까 말이야."












 **********










"...햐앗! 나는 도대체 무엇을...?"




 정신을 차려보니 나-엑스는 필로멜라 씨와 함께 전장 한복판에 서 있었다.


 왜인지 주위의 인류군 병사들이 우리를 향해 환성을 올리고 있다.




"...정신이 돌아오셨나요, 엑스 군?"








 필로멜라 씨가 한숨을 내쉬며 내 머리에 치유마법을 외우고 있었다. ...아아, 이건 바로 그 패턴이구나.








"어... 필로멜라 씨. 8대간부는 어떻게 되었나요?"


"왕도 외곽에 침공해 온 8대간부라면, '부독'은 빌라 씨와 레비, 그리고 리액터 씨 세 분이 격파했어요. 남은 두 명은 엑스 군이 정신 나간 사이에 두 명 다 해치웠으니, 이걸로 마왕군 8대간부는 전멸입니다."




 필로멜라 씨가 땅을 가리키자 거기에는 8대간부로 보이는 마족의 목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으음, 전혀 기억에 없다.




"...죄송해요, 엑스 군."


"에? 왜 필로멜라 씨가 사과하시는 거죠? 오히려 사과해야 할 건 제 쪽인 것 같은데..."




 조금 전까지의 기억은 남아있지 않지만, 폭주하고 있던 내가 필로멜라 씨 일행에게 폐를 끼쳤을 거라고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하지만 필로멜라 씨는 내 말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계속했다.




"...인류군의 승리를 위해서라고는 해도, 또 엑스 군의 마음을 이용하는 듯한 싸움 방식을 해버렸어요. ...용서해달라고 말할 순 없어요. 하지만 적어도 사과는 하게 해주세요."




 그렇게 말하고는 필로멜라 씨는 깊이 내게 고개를 숙였다. 나는 급히 그녀에게 얼굴을 들게 했다.




"으아악—! 하, 하지 마세요! 필로멜라 씨! 전 신경 쓰지 않아요!"


"하지만..."


"...그, 제가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엇을 해서라도 여러분을 지키고 싶었다는 건 사실이니까요. 오히려 저를 잘 컨트롤해주신 필로멜라 씨에게는 감사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그러니까 필로멜라 씨는 잘못한 게 없어서..."




 내가 당황해하는 모습이 웃기기라도 했던 건지 필로멜라 씨는 쓴웃음을 지었다.




"...감사합니다, 엑스 군. 그럼 사과는 아니고 쓸데없는 참견을 하나. 그 상냥함은 엑스 군의 좋은 점이에요. 하지만 누구한테나...특히 여성에게 너무 상냥하게 대하는 건 곰곰이 생각해봐야 해요. 아리에타 양의 기분도 헤아려줘야죠?"


"엣...에에에!? 그, 그건 무슨..."
















"흠, 네가 용사 엑스인가?"
















"——!?"




 갑자기 내 뒤에 나타난 남자에게 우리는 무기를 겨누었다.




 ....8대간부를 섬멸한 직후라 긴장이 풀렸다고는 해도 전혀 기척을 느낄 수 없었다. 도대체 이 남자는 뭐지?




"그렇게 무서워하지 마. 수백 년 만에 인간계에서 처음 대화를 나누는 상대에게 그런 태도를 보이면 조금은 상처받는단 말이지."




 마치 무대배우 같은 과장된 몸짓으로 남자는 슬픔을 표현한다.




 나를 뛰어넘는 장신에 허리까지 늘어뜨린 빛나는 금발. 그리고 피 같기도 하고 보석 같기도 한 붉은 눈동자.


 "아름다움"이라는 개념의 정점 중 하나를 형상화한 듯한 미남에게서 발산되는 위압감에 필로멜라 씨의 지팡이를 쥔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우선 8대간부의 섬멸, 실로 훌륭했어. 설마 이렇게까지 일방적으로 저들이 패할 줄은 몰랐어. 결코 8대간부가 약했던 것이 아니야. 너희들이 예상 이상으로 강했던 거지. 이번 대의 인족 전사들은 수준이 높은 것 같네. 덕분에 마왕성에서 잠들어 있던 내 출전 차례가 온 셈이지. 실로 좋아!"






 금빛 미남이 즐거운 듯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








 ...좋지 않아. 그는 아마 마왕군의 간부급. 그것도 8대간부보다 훨씬 격이 다른 존재다.








 적의를 향하고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우리를 향한 호감마저 느껴지지만, 그에게서는 억누를 수 없는 폭력적인 힘의 파동이 느껴진다. 만약 이 자리에서 덤벼든다면 8대간부와의 싸움으로 지쳐있는 우리로선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나의 불안을 간파한 듯이 금빛 미남은 상냥하게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




"그렇게 불안해하지 마. 이번엔 너희에게 인사하러 온 것뿐이야. 용사의 얼굴을 직접 보고 싶어서 총사령에게 제멋대로 말했거든. 전투는 하지 말라고 못 박아두었지."






 "총사령"...?




 마왕군은 마왕 자신이 군세를 이끄는 게 아닌 건가?




 내 머릿속에 잠깐 스쳐 지나간 의문을 지워버리듯이 그가 우리를 향해 공손히 인사를 했다.












"마왕군 16신장 '섬멸장' 아즈란이다. 서로 좋은 싸움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어. ...그리고."












 아즈란이라 이름 밝힌 마인의 모습이 사라진 다음 순간, 놈은 내 팔을 붙잡고 있었다.








"뭐...!?"








 이 무슨 속도야...! 전혀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어...!








"훗..."








 경악으로 눈을 부릅뜬 내 얼굴을 보고 아즈란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러더니 어째서인지 그는 내 손을 잡은 채로 한쪽 무릎을 꿇고 납작 엎드렸다.
















"용사 엑스여. 인족의 강하고 아름다운 전사여. 부디 맹세해줘. 이 싸움에서 내가 그대를 쓰러뜨렸다면 나의 신랑이 되어 달라고."














 그렇게 말하고는 그는 기사가 맹세를 세우듯이 내 손등에 입맞춤을 해왔다.








 내 등골에 전투에서 느끼는 그것과는 다른 소름 끼치는 한기가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