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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경애와 사랑










 아침 이슬이 반짝이는 이른 아침의 초원을 한 소년이 달리고 있었다.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타오르는 듯한 붉은 머리카락을 바람에 휘날리며, 그 작은 손에는 나무로 만든 장난감 같은 검이 꽉 쥐어져 있다.








 "아빠처럼 강해지고 싶어? 그럼 우선 달리기부터 해야지. 발이 빠르면 대부분의 일은 어떻게든 된단다."








 어머니의 적당한 조언을 곧이곧대로 믿은 소년은, 그날부터 매일 아침 새벽 달리기가 일과가 되었다.




 오른손에 움켜쥔 나무검이 달리기에 방해가 되지만, 이것도 훈련이다.




 발을 빠르게 하는 게 목적이 아니다. 무기를 든 채로도 재빨리 움직일 수 있게 되어야만 한다.






"핫! 에잇!"






 움직임에 강약을 주려는 듯이, 갑자기 멈춰서 나무검을 휘둘렀다.




 들은 바로는, 아버지는 12살 때 '오크'라고 불리는 마물을 혼자서 물리쳤다고 한다. 소년의 지금 나이와 같다. 아빠가 할 수 있었다면 자신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소년은 상상 속의 '마물'이라 불리는 존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실제로 마물을 본 적 없는 소년의 모호한 이미지 속 괴물이, 검에 쓰러지고 땅바닥에 엎드린 모습을 상상하자, 소년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마물이란, 어떤 생물일까...? 옛날엔 마을 근처에도 가끔 나왔다고 하는데..."






 교회 수업 시간에 배운 '마물'이라 불리는 존재에 대한 생각에 잠긴다.




 0년도 넘게 전에, '마왕군'이라 불리는 마물의 군세와 인족 간의 큰 결전이 수도에서 벌어진 후, 마물은 인족의 영역에서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고 한다. 덕분에 소년은 태어나서 아직 '마물'의 실물을 이 눈으로 본 적이 없었다.




 소년의 아버지도 마왕군과의 전투에 관여했다고 하지만, 아무리 소년이 그때 이야기를 졸라도 아버지는 자세한 건 말해주지 않았다.








 "아빠의 옛날이야기는 너가 좀 더 커서 들려줄게. 아빠는 어릴 때 이런저런 일이 있었으니까, 너에게는 보통 아이처럼 평화롭게 살아갔으면 좋겠어."








 어머니에게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렇게 말했던 걸 떠올린다.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아버지는 왕도에서 군의 병사들에게 검술을 가르치고 있는 것 같다.




 그 검술 실력이 제법 유명한 건지, 때때로 마을까지 시합을 신청하러 오는 검객도 나타날 정도다. 평소엔 과묵하고 온화한 아버지지만, 엄마와의 알콩달콩을 방해받아 기분이 나쁠 땐 기백이 굉장해서, 한 방에 검호처럼 보이는 상대를 때려눕히는 아버지의 모습은, 어린 나이지만 자랑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앗."






 그런 생각에 잠겨 달리고 있었던 게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소년은 땅의 약간 움푹 패인 곳에 발이 걸려 중심을 잃고 말았다.




 달리던 속도 그대로, 땅바닥에 머리부터 힘차게 처박힐 것 같아, 소년은 무심코 눈을 감았다.








"이런, 괜찮니? 사랑스러운 아이여."








 살며시 다정하게, 하지만 힘찬 팔이 소년을 껴안았다.




 소년은 눈을 뜨고, 눈앞의 금발 미남 아즈란과, 그 뒤에 시립하고 있는 시종 타레스의 모습을 확인하고 얼굴이 밝아졌다.






"아즈란 삼촌! 타레스 누나!"


"오랜만이에요. 이크사 님."






 타레스가 메이드복 치마 끝을 잡고, 살짝 들어 올려 우아하게 인사했다. 부모님의 오랜 친구라는 두 사람에게, 소년 이크사는 아이다운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었다.


 아즈란은 팔에 안고 있던 소년을 땅에 내려주더니, 그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후후후, 또 컸구나? 인간의 성장은 빠른 것이야. 엑스와 아리에타를 만나러 왔는데, 안내해 줄 수 있을까?"












 **********












"이야, 엑스. 오늘도 너는 아름답구나."


"...이런 아침부터 무슨 일로 온 거야 너는."






 아들 이크사를 교회 수업에 보내고 나서, 나-엑스는 응접실에서 미간을 짚으며 아즈란과 마주하고 있었다.






"음, 오늘이 무슨 날인지 잊었나? 내가 마족 영토에서 나오는 이유가 그것밖에 없잖아."


"...한 달에 한 번씩 오고 있고, 꽤 대수롭지 않은 이유로 놀러 오는 것 같은데."






 그러나, 그에게 오늘은 무언가 특별한 날이었던 모양이다.


 머리를 짜내며, 오늘이 무슨 날이었는지 떠올리려 하는 나에게, 그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어디선가 거대한 꽃다발을 꺼냈다.






"하아, 너와 아리에타의 결혼기념일인 게 뻔하잖아?"


"결혼기념일을 남이 축하해 주는 건가... 뭐, 마음은 받아두지."






 나는 아즈란에게서 꽃다발을 받아들었다. 이 근처에선 보기 힘든 품종이다. 나중에 거실이라도 장식해 두자.






"마족 영토 쪽은 어때? 최근에, 레비 씨가 용족의 사자로 방문했다고 들었는데."


"별로 뭐 그다지 특별한 건 없어. 애초에 용족은 현세의 다툼에는 기본적으로 불간섭이었으니까. 그녀 레비를 통해 용족과 마족은 서로 불간섭 협정을 맺은 것뿐이야."


"그런가..."






 왕도에서의 결전으로부터 10년 넘게 지났다고는 해도, 우리와 마족이 손을 잡을 수 있는 날은, 아직 먼 이야기인 것 같았다.




 그래도, 그 전투 이후로는 큰 다툼도 없이 평화로운 세상이 계속되고 있다. 그들과 이웃으로 지내는 날도 언젠가는 반드시 찾아올 것이다.






"그나저나, 이크사는 올해 몇 살이 되는 거지?"


"응, 아아, 그 아이라면 올해로 12살이 돼."






 갑자기 아들 이야기를 꺼낸 아즈란에게, 나는 별다른 생각 없이 대답한다.






"흠... 어른이 되려면 멀었지만, 슬슬 손이 덜 가게 될 무렵이겠지."


"그렇지. 독립이 가까워 보여 조금 서운하긴 하지만 말이야."






 조금 쓸쓸하게 웃는 내 손을 아즈란이 꼭 잡았다.






"가끔은 기분 전환으로 여행이라도 어떨까? 사람의 부모라도 휴식은 필요하지. 물론, 나도 같이 가지. 네가 없는 동안은 마을의 수호자로 타레스를 두고 가면 돼. 뭐, 나와 너 사이잖아. 사양은 필요 없다고."






 아즈란이 불륜 여행을 권유했다.


 싱글벙글 상냥하게 미소 짓는 아즈란의 뒤통수에 프라이팬이 내리쳐져 시원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 자식. 결혼기념일에 뭘 당당하게 남의 남편에게 손을 대?"






 부엌에서 프라이팬을 든 채 나타난 아리에타에게 아즈란이 미소 지었다.






"남자가 아니면 모를 수도 있지."


"나가."






 기분은 알겠지만, 먼 길 달려와 준 손님을 당장 돌려보내는 건 역시 망설여진다. 나는 아리에타를 타이르면서, 아즈란에게 받은 꽃다발을 그녀에게 건넸다.






"뭐, 축하해주는 건 기쁘지만 말이야. 이크사도 너랑 타레스 씨에게 친한 것 같고."


"아리에타 님, 괜찮으시다면 저 꽃을 꽂게 해드리겠습니다만."


"응, 아아, 괜찮아 신경 쓰지 말고. 애초에 타레스 씨는 손님이니까 앉아 앉아. 지금 차 내올 테니까."


"흠, 붉은 머리. 나랑 타레스는 대응이 꽤 다른 것 같은데?"






 아즈란의 말을 완전히 무시하고 아리에타가 우리 앞에 찻잔을 늘어놓았다.


 컵에 차를 따르면서 아리에타가 아즈란 일행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남의 결혼기념일 축하하기 전에 아즈란 너희도 슬슬 정착해야지."


"응? 무슨 뜻이지?"






 아즈란이 아리에타의 말 의도를 모르겠다는 듯 멍한 얼굴을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아리에타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너랑 타레스 씨는 언제 결혼하냐고."


"뿌웃."






 아리에타의 갑작스러운 발언에, 나는 차를 뿜었다.






"케헥! 콜록!"


"우왓, 갑자기 왜 그래 엑스. 더럽잖아."


"아, 아니, 갑자기인 건 너 쪽이잖아. 아즈란과 타레스는 그런 사이가 아니..."


"....타레스 씨도, 아무리 마족의 수명이 길다고는 해도, 이렇게 계속 모호하게 있다간 평생 이대로야. 할 말은 똑바로 하지 않으면."






 아리에타에게 물을 받은 타레스에게 우리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녀는 그 인형 같은 무감정한 미모를 전혀 흐트러뜨리지 않은 채, 아리에타의 물음에 대답한다.












"아리에타 님. 확실히 저는 아즈란 님을 존경하고 있습니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주종으로서입니다. 남녀 간의 그것이 아닙니다. 오해 없기를."












 타레스는 일절의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말투로 그렇게 고하고는, 탁자에 놓여 있던 주전자를 들어, 옆에 앉아 있던 아즈란의 입에 차를 따르기 시작했다.






"꿀꺽꿀꺽꿀꺽꿀꺽."


"그나저나 아리에타 님. 마왕성에 갈 때 선물로 지난번에 추천해 주신 차가 매우 훌륭한 것이어서 제가 아직 어렸을 때 아즈란 님에게 주워졌을 때의 은혜를 갚을 수 있으면 하고 신하로서의 예의를 이크사 님을 임신하셨을 때는 어떤 기분이셨나요?"


"꿀꺽꿀꺽꿀꺽꿀꺽."


"아, 미안. 진정해요? 타레스 씨. 아즈란이 물에 빠져 죽을 것 같으니까."






 일절 표정에는 내비치지 않지만, 격하게 동요하는 모습의 타레스를 아리에타가 달랬다.






"...알겠지, 아즈란. 내 말에 타레스 씨가 이 정도로 동요하는 거면, 그 의미를 모를 정도로 둔감하진 않겠지?"


"아아, 레이디를 이 정도로 당황시켜 버리다니, 신사로서 부끄러울 따름이야."






 차로 흠뻑 젖은 입가를 우아하게 닦으며, 아즈란이 타레스에게 구애하기 시작했다.






"네가 나에 대해 연모해 주는 걸 모르는 건 아니었어. ...하지만, 내가 그걸 받아들이는 걸 네가 바란다고는 생각하지 못했기에, 나는 오늘까지 너를 신하로서 대해 버렸지. 이런 하찮은 남자를 네가 용서해 줄 수 있을까?"


"아즈란 님... 아니요, 제가 필요 이상으로 신하로서 당신과의 거리를 두어 버린 것뿐입니다. 당신은 언제나 제 뜻을 존중해 주셨어요. 만약, 허락된다면... 앞으로는 아즈란 님의 신하가 아니라, 반려자로서 당신 곁을 걷게 해주시겠어요?"


"흥... 반려자라면, 우선은 그 남남같은 호칭부터 고쳐야겠지?"


"...아, 아즈란... 님."


"후후, 뭐, 갑자기는 무리겠지. 천천히 익숙해지면 되겠지."






 완전히 둘만의 세계에 들어간 것 같다.




 아리에타가 아즈란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부드럽게 웃었다.












"이크사의 교육에 안 좋으니까 다른 데 가서 해."












 **********












"미안하구나 엑스. 앞으로의 생활에 대해 서둘러 타레스와 둘이서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생겼어. 이크사에겐 놀아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전해 주게."


"아리에타 님. 신세 졌습니다. 이름을 지을 때는 두 분께 이름을 지어 받으면 하고."








 아즈란과 타레스 씨는 나 아리에타와 엑스에게 그렇게 고하고는, 서둘러 마을에서 마족 영토로 돌아갔다.




 ...... 왠지 무거운 역할을 타레스 씨에게 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뭐 두 사람이 행복해 보였으니 좋다고 하자.








"하아, 아침부터 뭔가 정신없었네."


"그렇지. 결혼기념일이라 휴가 냈길 잘했어."






 나와 엑스는 서로 피곤한 듯이 웃었다.






"그치만, 아이 이름이라... 그러고 보니 마족은 임신 출산까지 얼마나 걸리는 거지? 인간이랑 같을까?"


"글쎄. 야생동물 같은 하위 마물은 그렇다 치고, 아즈란이나 타레스 같이 사람과 가까운 타입의 마족은 모르는 게 한둘이 아니니까."






 아이 이름인가. 이크사 때도 리액터 일행을 휘말려들게 해서 한참 고민했었지.


 벌써 10년도 넘은 일인데,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르는 광경에, 나는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고 말았다.






 그러자 엑스가 불쑥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저기, 우리도 어떨까. 둘째."


"아하하, 봐 줘. 난 이제 30 넘은 아줌마라고."


"지금도 너는 매력적이야. 나는 완전 괜찮아. 이크사도 남동생이나 여동생이 갖고 싶다고 했고..."


"으윽, 아, 아니, 근데 솔직히, 출산은 한 명만 해도 힘들었다고 할까, 한 명 더 낳는 건 좀 버거울 것 같아~라는 게."








 큰일 큰일. 이대로 가다간 어영부영 한 명 더 임신하게 될 거야.






 기세등등하게 밀어붙이는 엑스에게 어물어물하며, 나는 사랑하는 아들 이크사가 빨리 돌아오길 바라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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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외편적인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입니다.


다음 편부터 마무리에 들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