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ts물 소설 번역 채널





 그것은 당연한 듯이 거기에 있었다.




 평소처럼 그녀가 좋아하는 경장을 두른, 검은 머리의 고양이 눈동자를 한 소녀 검사가 파랗게 흐려진 눈으로 거기에 서 있었다.




 카린을 죽이려 공격했지만 빗나간 단검을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은 채 바라보며, 소녀 검사는 검성을 응시하고 축 늘어뜨린 양팔을 들었다.




"...... 이길 수 없어"




 이상할 정도의 살의와 악의, 망상에 사로잡혀 타락한 검사로서 렉스 앞을 가로막았다.


















"──── 플라체?"




 카린은 변해버린 동료의 모습에 말문이 막혔다. 플라체가 북동 요새로 이동한 건 들어 알고 있었다.




 그녀가 어째서 여기에 있는 거지? 언제부터 적에게 세뇌당해서 ────




"...... 아"




 그러고 보니 지원 사격이 없었다. 저 대량으로 솟아나온 마족들을 상대로 요새에서 출격을 기다리고 있었을 클라리스의 지원 사격이 단 한 발도 없었다.




"그럼 설마 요새가 함락된 건가?"




 그래, 이 공격이 시작되었을 때 이미 요새는 함락되었던 것이다.




"지금 그런 게 뭐가 중요해! 카린, 저건 뭐야!?"




 하지만 지금 렉스에게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가 알고 싶은 것은 ────, 낯익은 소녀가 왜 저기에 검을 겨누고 서 있는지였다.




"...저건 플라체 본인일 거야"


"살아 있는 거야? 죽은 거야!?"


"아직 세뇌당한 것뿐이라고 봐, 좀비가 된 기색은 없어. 저 바보를 얌전히 시키면 치료할 수 있을 거야"


"그래? 되돌릴 수 있어?"


"잘 모르겠지만 내가 해볼게. 우선은 붙잡고 이야기는 그 다음이야"


"좋아!"




 갑작스러운 '동료'의 습격에 동요하면서도 렉스는 기합을 가다듬고 느긋하게 대검을 겨눴다.




 친구에게 일갈을 들은 직후였다. 초라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간다 플라체!"




 진심이었다. 그것은 진심을 담은 외침이였다. 하루빨리 세뇌당한 그녀를 구해내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 플라체를 붙잡으려 렉스가 휘둘러댄 건 연습이나 겨루기 때와는 다른, 검성인 그가 기량의 모든 것을 쏟아부은 정말로 궁극의 일격이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빠르고 강력하며 정확무비한 일격이 가녀린 여검사를 덮쳤다.




"...... 아아아아아!!"




 아음속으로 휘둘러진 검성의 무시무시한 일격은 ────












"...... 또 그렇게 힘을 빼."










 소녀 검사의 머리카락을 스치기만 했다.




 흔들렸다. 내려친 팔에 산들바람처럼 미세한 중심의 흔들림이 퍼져나갔다.




 겨우 반 보 정도 다리를 벌린 것만으로 플라체의 피부를 스치며 허공을 갈랐다.




"......?"




 이상하다. 검성은 분명 그녀의 몸통을 쳤어야 했다. 베어 죽이지 않으려고 칼등치기로 했지만 절대 피할 수 없는 타이밍이었다.




 검으로 정확히 받아 흘리지 않으면 대응할 수 없는, 완벽한 칼날이었어야만 했다.




"진심을 보여."




 등골이 서늘해졌다. 검성은 혼란 중에 일격을 허공에 휘둘러 움직일 수 없게 된 찰나, 그것을 보았다.




 새파란 눈동자가 자신의 눈동자를 들여다보고, 소녀가 춤추듯 살며시 자신에게 다가와 ────




'내보여..."




 스테이크라도 자르듯이 거리낌 없이 그녀가 검성의 팔뚝에 검을 꽂는 그 순간을.




 검성의 팔뚝에서 선혈이 솟구쳤다. 너덜너덜한 검이 검성의 살을 정확히 도려냈다.




"이길 수 없어..."




 순간적으로 렉스는 포효하며 몸을 회전시켜 원심력으로 소녀를 날려버렸다. 동시에 검성의 살점도 날아갔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끈거리는 아픔에 그의 고동이 빨라졌다. 진심으로 내질렀어야 할 일격이 너무 쉽게 피해졌고, 조급함에 이마에 땀이 배어 나왔다.




 지금 무엇을 했지? 저 녀석에게 무엇을 당한 거지? 그의 뇌리에서 미지의 움직임을 펼친 소녀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졌다.




"우와아아아아!"




 렉스는 절규했다. 그리고 비틀거리며 검을 겨눈 그 섬뜩한 검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무엇을 당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시키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자신이 먼저 덤벼들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페이스로 끌고 가지 않으면. 멍하니 있다간 어느새 온몸이 베어질 터 ────






"이길 수 없어."


"아아아아!!"






 렉스가 다시 내리친 검날은 어째서인지 땅바닥에 꽂혔다. 아까부터 검성은 마음대로 검을 휘두를 수 없었다.




 아니, 그렇다고 해서 이건 이상했다. 허공을 가르다 땅바닥에 꽂힐 정도로 서툰 동작을 렉스는 태어나서 이때까지 한 적이 없었다.




"어째서!?"




 혼란의 극치에서 박힌 검을 뽑으려 그가 발에 힘을 주는 그 순간,




"중심이 ────"


"빈틈."




 플라체의 팔이 렉스의 척추를 부드럽게 밀어올렸다. 검성의 큰 체구가 둥실 떠올라 원을 그렸다.




 자신의 강인한 다리로 땅을 차던 렉스는 그 기세 그대로 대지에 머리부터 처박히고 말았다.




"끄아아악!?"


"던지지 않으면 이길 수 없어. 렉스는 이길 수 없어..."




 쏟아져 나오는 핏물과 격통에 몸부림치며 검성은 순간적으로 주변을 마구 걷어찼다.




 그건 전략에 입각한 행동이 아니었다. 공포에 몸이 알아서 움직인 것뿐이었다.




 가까이 가서는 안 된다. 지금 저 소녀 검사에게 다가가면 죽임을 당한다.




 그 생각이 렉스를 닥치는 대로 움직이게 했다.




"...... 쳇"




 그 행동은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다. 렉스의 발차기는 맞지 않았지만 회피 행동을 취하게 된 플라체의 추격은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진심으로 세련된 일격은 플라체에게 통하지 않았지만, 적당히 찬 공격은 예측되지 않아 유효했다는 얘기였다.




 이렇게 해서 렉스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
















"...... 아?"




 구사일생이라고? 그게 뭐지?




 이 렉스가, 검성이라는 존재가,




 자신보다 체격이 뒤떨어지는 소녀에게 어쩔 수 없이 쫓겨다니고 있다니, 도대체 어떤 악몽인 거지?




"안 돼, 렉스! 방심하면 안 돼, 플라체가 조금 다쳐도 내가 치료할 테니까 진심으로 해!"




 수녀의 비명이 렉스의 귀를 때렸다.




 그래, 당연하다. 플라체는 저 마족이 된 절친과 마검왕을 상처 하나 없이 쓰러뜨린 여자다.




 방심해서는 안 될 상대다. 봐주면 안 될 상대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래서 렉스는 진심으로 베어버렸을 것이다.




"......"




 말없이 렉스를 내려다보는 검은 머리의 소녀.




 가볍기 그지없어 방어력이 거의 없을 것 같은 가죽 갑옷.




 너무 짧아서 단단한 갑옷을 뚫을 수 없을 것 같은 조잡한 검.




 그런 소녀를. 그런, 날아가 버릴 것 같은 가냘픈 소녀를 ────




 렉스는 전율하는 눈빛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카린, 메이를 안고 여기서 전력으로 도망쳐. 내가 시간을 벌게"


"응?"


"아니, 도망쳐 줘. 카린이나 메이, 저기 일꾼들을 지키면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냐"




 렉스는 피를 흘리며 치료를 하려고 다가온 카린을 손으로 제압하며 말했다.








"미안해, 카린. 나, 저 플라체한테 이길 수 있을지 모르겠어"








 그건 아마도 카린이 처음 보는 광경이었을지도 모른다.




 전혀 여유가 없는, 검성 렉스의 '목숨을 걸고 싸움에 도전하는' 각오의 얼굴.
















































 ──── 만약 세뇌당해서 너의 모습이 바뀌면 그 순간 내가 책임지고 너의 목을 날려버릴게.








 그건 언제의 기억이었을까.




 렉스는 소녀 검사를 동료로 초대할 때 그렇게 말했다.








 ──── 솔직히 말하자면 너 정도가 세뇌당해서 적이 된다고 해도 내겐 상대가 안 돼. 그러니 안심하고 나를 따라와.








 그건 약속이었다.




 소녀 검사를 동료로 맞아들일 때의, 렉스의 맹세의 말.




"아......."




 이런 일이 지금까지 있었을까.




 무서워서 눈앞의 소녀에게 칼을 들이댈 수 없다. 자신이 날린 모든 베기가 그대로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그건 이질적이었다. 한때 '친구'가 목표로 했던 검술의 비밀을 자신보다 나이 어린 소녀가 구현해내고 있었다.




"강해졌구나"




 끝없이 흐려진 진흙탕 같은 푸른 눈동자가 곧바로 검성을 사로잡는다.




 산들 산들 흔들리는 저 자는 숨을 쉬는 틈을 타고 어느새 품으로 파고든다.




 무박자라고도 할 수 있는 그 돌진은 ────. 렉스로서는 흉내 낼 수 없는, 검술이라는 기교의 극치라고 할 수 있었다.




"있지, 플라체."




 공격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눈앞에 있는 검은 머리 소녀를 방치하면 목이 날아갈 것이다.




 하지만.




"고마워, 여기까지 강해져 줘서."




 폭풍처럼 사나운 회전베기를 날리고 바람으로 플라체와 거리를 벌리려 해봤자,




 그녀도 회오리에 춤추는 나뭇잎처럼 빙글빙글 흔들리며 폭풍의 중심으로 날아들어와,




 힘에 거스르지 않고 힘을 이용해 렉스를 베어들인다. 그건 이제 인간과 싸우는 느낌이 아니었다.




 자연 그 자체와 싸우는 것처럼 렉스는 느꼈다.








"미안해, 플라체. 봐줄 수가 없어"








 너덜너덜한 몸을 일으켜 세우고, 검성은 바람을 응시하며 조용히 웃었다.




"내 수련이 부족했어, 용서해줘."




 질 수는 없었다.




 지면 자신의 뒤에서 도망치는 소중한 동료들의 목숨이 위험하다.




 마왕군에게 왕도를 지배당하면 소중한 친구들이 죽임을 당할 것이다.




 그래, 아까 절친이 '자신을 죽게 만든' 이유가 이거였어. 나에게 동료를 죽일 각오를 하게 하는 사전 준비를 시킨 건가.






"널 죽인다, 플라체"


"──── 어?"






 렉스는 진심으로 진심이 되었다.




 이길 수 없는 상대, 죽여야 할 상대로서 플라체를 정했다.




"미안, 미안해..."




 눈가에 희미한 눈물을 띄우며 검성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곤두세우고 전신전령의 힘을 그 한 방에 바쳤다.












"곤경에 처한 매는 땅으로 내려온다."










 그 렉스가 펼쳐낸 비기는,




 봐서는 절대 반응할 수 없었다. 아니, 렉스의 속도에 접근하지 않는 한 그 검에 닿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음속을 넘은 광속에 근접한 칼날.




"휘검 '매'"




 가뜩이나 압도적인 렉스가 그 연마의 끝에 펼쳐낸 진정한 비기.




 이론상 이 기술을 받아내려면 마찬가지로 광속에 근접하게 검을 움직이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




 이 검의 간격 안에 들어온 순간, 렉스의 승리는 확정되는 것이다. 이 엄청난 비기를, 검성은 쓸 기회가 없다며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렇기에 플라체는 처음 보는 거여야만 했다. 처음 보는 비기에 대응 같은 걸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용서해줘, 플라체"




 그 렉스의 검에 살아온 인생 전부를 쏟아부은 일격이, 플라체의 목을 노렸다.
















"......"


"아아."




 하지만 렉스는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그래선 아무 의미도 없다는 걸. 아무리 검속을 빨리한다 해도, 플라체는 따라잡을 수 없다는 걸.




"빈틈."




 목을 향했어야 할 참격은 크게 어긋나 플라체가 한 걸음 물러서기만 해도 검성의 일격은 허공을 갈랐다.




 그래, 그녀는.




 어쨌든 그녀는




"미래라도 볼 수 있는 거냐, 플라체 ......"




 광속을 뛰어넘어 싸우는, 앞을 읽는 검귀였으니까.


























































"오랜만이야."




 그 목소리는 어딘가 깊은 곳에서 들려왔다.




"슬슬 깨지 않겠어? 모처럼 건진 목숨을 함부로 하지 말라고."


"응?"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목소리.




 증오스러운 적 같기도 하고, 불쌍한 죄수 같기도 하며, 먼 미래의 자신 같기도 한.




 그런 묘한 느낌의 목소리였다.




"누구냐?"


"차갑네. 이전에 이름을 밝혔었잖아"




 멍하니 깨어난 나는 그대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캄캄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칠흑의 어둠만이 펼쳐져 있었다.




"여긴 어디지?"


"어딘지 모르겠군"




 그 알쏭달쏭한 대답에 나는 조금 짜증이 났다.




 넌 누구고, 여기는 어디야. 왜 내가 여기에 있고, 너를 상대해야 하는 거지.




"적당히 해라. 너의 목적은 뭐냐"


"목적? 그렇지, 이제 내 목적은 이뤄졌지"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인간이 되고 싶었어. 그것뿐이 내 소망이었지. ...저주받을 마왕이나 그 부하에게 배신이 들통난 모양이군"




 그 말을 듣고,




 나는 사이코로 화산에서 무념무상으로 머리를 짓이겨진 좀비 여성이 떠올랐다.






"──── 설마 넌, 자리바야?"


"오랜만이네, 드디어 내 이름을 기억해냈구나. 내 실험체."




 ...... 그래. 이 목소리의 정체는 나를 죽여 여자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게 한 장본인.




 마왕군의 부하, 마도왕 자리바 그 사람이었다.








"그렇구나, 결국 나는 죽어버린 거구나... 자리바, 여긴 저 세상이야?"


"아니, 달라. 뭐, 여기가 어딘지는 나도 잘 모르겠네."


"네가 있다는 건 내가 죽어버린 거 아니야?"


"아마 다를 거야."



 목소리는 있지만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울려 퍼지는 그 목소리는 이상하리만치 차분했다.




"있잖아. 대체 무슨 일이 어떻게 된 거야? 내가 죽은 게 아니라면, 여긴 어디고 나는 어떻게 된 거지?"


"여긴 어딘지 모르겠지만, 네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상상이 거네. ...이건 틀림없이 내가 설치해둔 부비트랩이야."


"부비트랩?"


"그렇지. 내 클론들에는 모두 '세뇌 방어'의 부비트랩을 설치해두었거든. 그게 발동되고 있다는 건 너가 마왕군에게 잡혀 세뇌 처리라도 받은 거 아닐까."


"...아. 맞다, 나는 마왕에게 항복했었지"


"흥, 참 운이 좋았네. 너의 세뇌는 곧 풀릴 거야. 원래는 나 자신을 위한 대세뇌 마법이었는데... 뭐, 됐나"




 킥킥, 그렇게 웃는 자리바의 목소리는 어딘가 밝은 어조가 되었다.




 아아 그렇구나. 이 여자 좀비, 자신이 클론 체로 옮겨갈 때 세뇌당할 가능성을 고려해서 미리 마법으로 대책을 세워뒀던 거구나.




 이 내 몸도 원래는 자리바를 위한 클론이었으니까. 그럼 이 몸은 자리바의 시술 대상이었나.




"...아, 맞다. 하나 물어봐도 될까 자리바?"


"뭐냐, 실험체"


"그 내 기억을 가진 마족은 뭐야?"


"응? 아, 그거 말이지. 네가 생전에 유명한 검사였다고 들은 마검왕에게 부탁받아서 말이야. 자금 지원과 교환 조건으로 만들어줬지."


"...그래? 그건 그렇고"




 그렇다면 이상하잖아?




 기억을 가진 클론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기억을 가진 자신의 클론을 만들기만 하면 자리바의 염원이 이뤄지는 거 아닌가?




"기억을 가진 클론을 만들 수 있다면 굳이 내 뇌를 이식할 필요가 없는 거 아냐?"


"무슨 소리야?"


"클론을 만들 수 있다면 인간의 시체를 모을 이유나, 더군다나 날 써서 실험할 이유가 없잖아. 애초에 자신의 클론 뇌를 자신의 다른 신체에 옮기는 방법으로 실험할 수 있었을 텐데"


"아아 그런 거냐. 간단하지. 그 클론의 재료가 애초에 사람의 시체라서. 게다가 네 시체는 마침 잘 '썩어 있었거든'"


"...응?"








 자리바의 대답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무서운 답변이었다.




"썩, 썩어 있었다고!?"


"그래. 내 부하는 물정 모르는 놈들이라 시체를 보관할 때 가끔 냉장 보관을 잊어버리거든."


"뭐!?"


"그래서 네 시체는 적당히 썩고 구더기가 꼬이고 군데군데 부패해버리고..."


"그만해! 내 시체 설명은 그만둬, 듣고 싶지 않아!"


"네가 먼저 묻기 시작한 거잖아"




 용서 못해. 즉 나를 기습한 그 쓰레기 마족들, 내 몸을 아무렇게나 내팽개쳤다는 거구나.




 그래서 내 몸이 썩어버린 거라니. 사람 몸인데 좀 더 소중히 다뤄달라구.




"그런데! 내 몸이 썩었다고 해서 왜 이식을..."


"뻔하잖아. 그게 바로 내가 바라던 거니까"


"...음?"


"자신의 기억을 가진 클론을 만든다고 해서 그게 나라고 할 수 있겠어? 기술적으로는 내 기억을 가진 인간을 만드는 건 가능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클론이지 나는 아니야"




 ......?




 뭐야, 갑자기 뭘 어려운 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자리바 녀석은.




 자리바의 기억을 가진 자리바 클론 인간은 자리바라고 할 수 없는 거야? 그건 100% 자리바잖아?




"너의 클론이 있었잖아? ...저자는 너 본인이라고 할 수 있겠어?"


"음. 다르지. 저놈은 가짜야"


"그렇지. 물론 클론 본인으로서는 자신이야말로 진짜라고 생각하겠지만"




 아아 그렇구나, 그렇게 생각하면 이해가 간다.




 좀비 자리바 입장에서는 자신과 똑같은 기억을 가진 클론이 인간으로서 살아가는데, 자신은 좀비 그대로 지내야 하는 거잖아. 그런 거 싫어할 만하지.




 그렇다면, 자리바의 목적은 .......




"잘 생각해봐. 나는 좀비고, 몸이 썩어 문드러지고 있잖아."


"......"


"썩은 시체의 뇌를 재생시켜, 살아 있는 인간의 몸에 이식하는 기술. 내 꿈에는 그게 반드시 필요했고, 그 유일한 성공사례가 바로 너라고."


"그런 거였구나"


"나는 나 그대로 인간이 되고 싶었어. 그러기 위해 가장 큰 장애물이 '썩은 뇌의 재생'이었지. 그 기술의 가망이 겨우 서서, 이제 자금과 시간만 있다면 나는 원래 몸으로 돌아갈 수 있었는데... 안타깝군."




 슬픈 듯한 자리바의 목소리가 어둠 속에 메아리쳤다.




 이 사람 입장에선 한 걸음 남았던 거구나. 그날 처형되는 게 조금만 늦어졌다면, 자리바는 본뜻을 이뤄냈을 텐데.




 그래서 지금의 내 소녀 몸을 사용해 대마도사로서 사람들과 함께 싸우고 있었겠지. 그 옆에는 남자인 내 몸에 들어간 내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미안해 자리바, 널 도와주지 못해서"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애초에 널 죽인 건 나였잖아. 그런 의리 따위, 네겐 없겠지"


"그렇지. 하지만 말이야, 역시 미안해"


"이상한 녀석이군"




 내가 사과하는 게 이상할지도 모르겠지만, 자리바와 함께 싸울 미래가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조금 서글퍼졌다.




"뭐, 애초에 나도 이미 죽었으니까. 여기서 너에게 말을 걸고 있는 이 나는 아마도 네 몸에 남은 나의 잔류 사념 같은 거겠지"


"잔류 사념?"


"그래. ...내가 그려온 꿈의, 그 사소한 물방울 같은 거라고나 할까. 너무 감상적으로 생각하지 마"




 그렇게 말하는 자리바의 목소리는 은근히 다정함이 깃들어 있었다.




 ...... 어쩌면 그녀는 나를 위로해주려 했던 걸지도 모른다.


 


"자, 슬슬 정신 차릴 시간이야 실험체. ...확인할 수 있는 한 주위에 살아있는 마족이 없어지고 나서, 잠시 시간이 지나면 정신을 차릴 수 있게 해뒀어"


"오, 그런 거구나"


"밖의 상황은 모르겠지만, 세뇌당한 이상 인간과 교전 중일 가능성도 있어. 결코, 방심하지 마"


"...아아"


"부탁해. 내 꿈은 사그라들었지만... 적어도 내 몸만이라도, 행복한 일생을 보내게 해줘. 물론, 그런 걸 부탁할 의리는 아니지만 말이야"


"아아, 아니야. 맡겨둬"




 그런 그녀의 말을 마지막으로.




"잘가 ────"




 ──── 내 시야가 밝게 물들었다,








"......읏?"






 그리고, 온통 불타오르는 평원을 비추었다.




 뭐야 이거, 지옥도인가?












































 시야가 밝아졌다.




 처음으로 내 눈에 들어온 건 피투성이의 누군가를 향해 검을 내리치는 내 오른팔이었다.




"......읏!?"




 지금이 맞출 타이밍이었다. 이대로 내리치면, 눈앞의 누군가의 목은 두 동강 날 것이다.




 누구지, 내가 지금 죽이려는 자는? 적이야? 아니, 세뇌당한 내가 싸우고 있었다는 건 적이 아니겠지.




 하지만 이제 와서 늦었다. 이런 갑작스럽게 휘두름을 멈출 수는 없었다. 내 검이 저 녀석의 경동맥을 파고들고 있었으니까... ────






"흥!"






 그대로 내 단검은 적의 턱과 목 근육에 끼워져 낚아채졌다.




 ...... 응?






"아프군... 하아 하아, 제법이구나 플라체.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어"


"..."






 그리고 나는 비로소 지금까지 싸우고 있던 상대가 누구인지 알았다.




 렉스였다. 나는 방금까지 렉스와 진검승부를 벌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구나, 렉스라면 목에 칼이 닿은 정도로 죽을 리 없지.




 렉스가 아니었다면 즉사했을 거다.




"아..."




 처참한 꼴이었다. 렉스는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살점이 군데군데 도려내진 채 어깨로 숨을 쉬며 서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렉스, 너답지 않아. 누구에게 그렇게 고전한 거야, 본 적 없는데 네가 저렇게 궁지에 몰린 걸.




"간다!!!"


"어, 아, 잠깐!"




 쾅, 하고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렉스가 온몸을 용수철 삼아 허리케인 같은 참격의 폭풍을 일으켰다.



 회전을 축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무한 연격. 그것은 틀림없이 내 몸통 정면을 노리고 있었다.




"죽, 죽겠어!?"




 피한다. 피한다. 받아 흘린다.




 진정해 렉스, 나는 이제 세뇌가 풀렸으니까. 아니, 말로 해도 모르겠지?




 렉스의 눈이 이상했다. 이런저런 각오를 하고 검에 마음을 맡기고 싸우고 있었다.




 젠장, 게다가 참격은 진심 모드다. 정신없이 진심인 렉스를 달래라니 어떤 농담이야, 죽겠어.




"...... 플라체에에! 너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렉스, 들어봐..."




 다행히 상처 때문인지, 아니면 봐주는 건지 몰라도 검속은 대단치 않았다. 전에 봤던 진심 모드보다 한결 느렸다.




 반면에 나는 멀쩡했다. 체력에도 아직 여유가 있으니 어떻게든 받아 흘릴 수 있었다. 달리 말해 나도 받는 데 필사적이어서 렉스에게 말 걸 여유가 없었다.




 언제까지 돌 거야 렉스, 너 팽이냐.




"...우, 으윽"


"...하, 하읏"




 ...... 아. 설마, 지금 상황이.




 렉스가 여기까지 상처 입은 게, 내 탓은 아니겠지?




"플라체!"


"렉스!"




 렉스 같은 남자와 싸워서 내가 멀쩡하고 체력도 여유가 있을 리가 없었다. 굉장한 강적과 싸운 뒤에 나와 연전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




 이 남자 혹시 나를 다치지 않게 잡으려고 싸운 게 아닐까?




 원래부터 공격이 닿기 힘든 나한테 봐주면서 일격을 먹이는 건 버거웠을 거다. 렉스의 일격은 맞으면 나를 죽일 테니까.




 그래서 전에 마족인 나를 처리했을 때처럼 봐주면서 싸워서 헛되이 상처를 입고. 상냥하고 동료 사랑이 넘치는 렉스라면 충분히 있을 얘기였다.




 젠장, 렉스라면 어떻게든 해줄 거라고 가볍게 생각했었어. 그래, 이 남자가 동료인 나를 죽일 리 없잖아 ────






"으읏! 빗나갔나 이 자식!"


"...히이익!?"






 그렇게 생각하고 방심한 순간 렉스는 생각에 잠겨 움직임이 멈춘 내 목을 향해 대검을 휘둘렀다.




 ...... 반응이 순간 늦었다면 내 목이 날아갔을 거다.




 이, 이거 죽일 생각이야!




"미안하지만 이번엔 죽여줄게 플라체..."


"...? 네!?"


"플라체에에에!"




 죽일 생각 만만하시네! 기다려, 봐줬던 게 아니었어? 그럼 왜 너 그렇게 너덜너덜한 거야!




 역시 연전인가? 설마 마왕 쓰러뜨린 뒤에 나랑 연전하느라 여유가 없는 거라던가? 아니, 마왕 죽었으면 그 순간 내 세뇌 풀렸어야 하는 거 아냐?




 잠깐, 좀 진정해봐 렉스. 이야기하자, 어?




"기, 기다려"


"플라체, 너는, 너만은!"




 뭐야? 그것도 내가 미움 받고 있어!? 설마 정신없는 동안에 뭘 해버렸나 나!?




 예를 들면 카린이나 메이를 다치게 했다거나? 그래서 렉스가 격노하고 있다는 것도 있을 수 있겠지.




 너만은라니 뭐야. 그렇게까지 나 엄청난 짓 저질렀어!?




 무서운 상상이 차곡차곡 떠오르고 내 얼굴은 점점 파래졌다. 싫어, 만약 내가 동료들을 다치게 했다면...








"너만은 ──── 계속 같이 있고 싶었는데!"








 그렇게 말하며 달려드는 렉스의 눈에는 피와 섞인 미묘한 눈물이 고여 있었다.




"너는 친구가 죽은 나에게 남겨진... 살아갈 희망이었어"


"..."


"살아갈 의미를 다시 가르쳐 준 그리고 내가 있어야 할 곳까지 따라와 준 단 하나뿐인 여자였어"




 검성은 그렇게 말하고는




 받아 흘려 땅에 꽂힌 대검을 짚고 비틀거리며 일어서서 나를 미소지으며 노려보았다.




"미안해, 약속 지킬 것 같지 않아. 세뇌당해 이상해진 너의 목을 날려버릴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렉스"


"네가 이겼어 플라체. 나도 수련을 게을리 한 적은 없다고 생각하는데... 아직 부족했나 보네"




 아아, 조금 전의 맹공격은 남은 체력이 적은 렉스가 마지막 힘을 쥐어짜낸 혼신의 참격이었구나.




 이제 이 남자에게 검을 휘두를 여력 따위 남아있지 않았다. 좋아, 그럼 이제 세뇌가 풀렸다는 걸 알려주자.




"...세뇌당해서 이상해진... 그런 너한테 하는 말이라 한심하지만......"


"렉스, 들어봐 실은"


"플라체, 난 너를 좋아했어."


















 .......


















"원래부터 너 같은 여자가 너무 좋았어. 밑도 끝도 없이 밝고 겉과 속이 똑같고 선량한 여자 말이야. 진심으로 약해졌을 때 어르지 않고 받쳐주는 여자가."


"...어, 어."


"알아차렸어? 만난 지 며칠 만에 나는 너에게 반해버렸어. ...설마 친구의 제자일 줄은 몰랐지만..."




 ──── 네?




 아, 어, 그런 거야? 그렇구나, 일단 나는 여자 몸이지. 그럼 그런 일도 있겠구나.




 ....... 아니, 어?




"왜 죽이지 않는 거야?"


"..."


"...응? 플라체?"




 잠깐. 잠깐만 기다려.




 생각할 시간을 줘. 뭐야 그거, 좀 그런 건 염두에 두지 않았는데.




 왜 갑자기 고백이야. 왜 이런 타이밍에 그런 소릴 하는 거야. 아, 그렇구나 지금이 마지막 순간이라 그런가 이 자식.




"플라체...?"


"..."




 잠깐, 그건 좀 무리한데. 아니, 역시 렉스를 그런 눈으로 보는 건 무리야.




 휴, 진정해 진정해. 응, 진정했어.




 그렇구나, 거절하면 되는 거지. 내가 정신 돌아왔다는 걸 전하면서 거절하자. 이러면 만사 해결 좋았어.




 자, 냉정해진 김에 다시 렉스를 마주할까.






"──── 뭔진 몰라도 빈틈!"


"...... 에엑!?"






 드디어 진정해서 고개를 들었을 때,




 렉스가 나를 발견하고 뛰어들어와서 그대로 나를 땅바닥에 쓰러뜨린 것이다.




"아, 아하하하!! 이겼다, 내가 이겼어! 뭔진 몰라도 방심한 틈을 타 붙잡았다고!"


"뭐엇!? 렉스 그게 뭐야, 이미 결판 났잖아!"


"마지막에 웃는 자가 승자라고!! 어서 검 놓아라 이 괴물 자식아!"


"아악! 젠장, 이 바보 힘! 놔줘!"




 방심하면 큰일 난다는 게 이런 거였구나.  붙잡혀서 힘겨루기가 되면 빈약한 내가 렉스를 당해낼 리 없었다.




 어이없게 검을 빼앗기고 나는 렉스에게 붙잡혀 버렸다.




"좋았어. 이제 플라체도 정신 차리게 해주지"


"...아. 그건 말이야 렉스"


"왜 그러나 플라체. ...음? 뭔가 너 눈이 정신이 돌아온 것 같은데?"




 피투성이의 거한에게 올라타져 팔다리를 움직일 수 없게 붙잡힌 나는 어이없다는 듯한 목소리로 렉스에게 사실을 고했다.




"아까부터 정신 차렸다고. ...말 걸었잖아, 싸우는 중에"


"...응?"


"그리고 중간부터 전혀 반격 안 했잖아, 눈치챘어야지"




 그, 꽤나 부끄러운 사실을.


















































"나 죽고 싶어...."


"......"




 렉스가 우울해졌다. 불쌍하게도.




 아니 마왕에게 순순히 굴복해서 적이 된 내가 나쁜 거지만, 너라면 껌 씹듯 해낼 거라 생각했어. 용서해줘.




"있지 렉스..."


"여러므로 부끄러워 죽고 싶어...."




 안 되겠군. 눈이 죽었어. 한 번 정신을 차리게 해야겠어.




 어... 확실히 죽고 싶어 하는 녀석한테는 채근을 해야 했지.




"뭐하고 있어 렉스! 야이, 이 부끄러운 녀석아!"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


"효과가 없나, 이건 심각한 상태군...."




 추격으로 도발해봤더니 렉스의 눈이 점점 더 죽어갔다. 역효과인 것 같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다시 태어나면 나 문어가 되고 싶어."


"이 문어 새끼야!"




 그런 평화로운 도발하기는........




 전투가 끝난 것을 눈치챈 카린이 병사들을 데리고 돌아올 때까지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