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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갔었어, 플라체?"


"아, 미안. 실수로 동쪽 훈련소로 갔었어."




 미노 장군과 헤어진 후, 나는 그녀가 가르쳐준 길을 따라가 무사히 서쪽 훈련소에 도착했다. 동서 구분은 어렵구나.




 훈련소 입구 근처에는 살짝 화가 나 보이는 갑옷의 남자 렉스가 우뚝 서 있었다. 돌아가는 길에 여러 일에 휘말리는 동안 그가 먼저 도착한 모양이다.




"..."


"이화, 하무 말 없히 뺨흘 꼬힙히 마아."


"눈을 떼 버린 내 책임도 있으니까, 이걸로 용서해 주지. ...무슨 말썽을 일으킨 것은 아니겠지?"




 내 뺨을 우뇽우뇽 손가락으로 잡아당기며 노는 렉스. 그냥 길을 좀 잘못 든 것뿐인데, 그렇게까지 화낼 필요는 없잖아.




"말썽 일으키지 않았어."


"그럼 됐어."




 거짓말은 아니다. 나는 말썽을 일으키지 않았다. 멜로와는 결국 아무 일도 없었고, 관여하지 말라고 했던 미노 장군과 친근하게 이야기한 정도다.




 ...... 다만 여기서 그녀를 만난 걸 들키면 엄청 혼나겠지. 틀림없이 엄청나게 혼날 거다.




 미노도 "만나지 않은 걸로 하자"라고 했으니까 여기서는 입을 다물고 있자. 딱히 그녀와 뭔가 있었던 것도 아니니까.




"좋아, 그럼 들어가자. 해보자, 대련."


"응."




 나는 미묘하게 따끔거리는 뺨을 문지르며 렉스를 따라 훈련소로 들어갔다.




 그곳은 상당히 훌륭했다. 활의 과녁과 갑옷을 입은 인형 등이 늘어선 구역, 원형의 선이 그어진 중앙에서 겨루는 병사들, 한쪽 구석에 마련된 치료 기구가 완비된 보건 시설.




 이곳에 있는 병사들이 페니 장군이 이끄는 정예병들이겠지.




"...검성이다."


"재야 최강 모험가의 검이로군..."




 나와 렉스가 훈련소에 들어서자 사방의 병사들로부터 호기심 어린 시선을 받았다. 훈련을 멈추고 렉스의 검술을 구경하러 다가오는 자들도 있다. ...렉스의 검은 검사라면 돈을 주고서라도 보고 싶어 할 테니까.




 하지만 잘 보라고, 신입 검사들아. 진정 최강인 것은 과연 누구인지를. 이 며칠 사이 급격히 향상되어, 렉스마저 이미 추월했을지도 모르는 나의 초절 검술을.




"────핫!"




 그런 멍청한 기합과 함께 날아든 바람마저 베어버리는 호쾌한 일격. 나는 그걸 쉽게 받아넘기고, 유령처럼 몸을 흔들며 렉스에게 육박했다.




 이제부터 최강 검사의 칭호는 내 것이다!




































"큭."


"아니...응. 역시 강해졌구나 플라체. 슬슬 스승의 발끝 정도에는 다다른 거 아닐까 너."


"...시끄러워, 바보."




 내가 그 스승이야, 이 멍청아.




 역시 그럴 줄 알았어. 멜로와의 싸움에서 새로운 깨달음도 보였고, 또 성장도 실감했으니 진심으로 렉스에게 시합을 걸어봤는데... 한 방도 먹힐 기색이 없었다.




 당연하다. 렉스도 예전보다 강해졌으니까. 지금의 내가 조금 성장했다고 해서 그 차이가 메워질 리가 없다.




 ......하지만 내가 남자의 몸이었다면..... 근력으로 제압당할 뻔한 타이밍이 몇 번 있었다. 아무리 나는 근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검술이라지만, 힘이 있으면 좋은 건 마찬가지다.




 즉. 나는 이제 슬슬 본격적으로 육체개조를 할 필요가 있다.




"...더 단련해서 근육질이 되어주마. 두고 보라고 렉스..."


"어어? 난 지금의 네 체형이 더 좋은데......"




 내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내가 근육질로 변한 모습을 상상했는지 렉스는 얼굴을 찌푸리며 불만을 토로했다.




 뭐야, 내가 단련하면 안 되는 거야?




"왜? 근력의 우위가 사라지면 날 이길 자신이 없는 거야?"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지금의 네 체형이 더 날씬하고 귀여워."


"응? 귀여운 게 검술에 무슨 득이 있어?"




 렉스의 발언은 의미 불명이고 부조리했다. 용모는 검술과 무관하잖아.




"...아- 어, 그러니까. 마르고 작을수록 검에 맞추기 어려워서 유리해. 특히 네 검술에서는 말이야."


"오오, 과연!"




 그렇구나. 확실히 피하고 받아내고 흘리고 반격하는 전술의 나로서는 작은 편이 유리할지도 모르겠다. 검성의 정점에 선 남자의 조언이니 참고해 볼 만하겠어.




"그러니까 플라체, 단련하더라도 적당히 해둬."


"알았어, 렉스."




 내 대답을 듣고 렉스는 왜인지 자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상한 남자다.




"그럼 난 쿨다운 겸 저쪽 병사들에게 시비나 걸어볼게."


"말썽 부리지 마."


"알고 있어."




 자, 오늘의 반성회를 해야겠다. 렉스에게 지고만 있을 순 없지. 마침 이곳에는 왕도 최고의 수준 높은 병사들이 있으니 수련하는 데 괜찮을 거야.




 적당히 우리의 겨루기를 구경하던 저쪽 병사들을 끌어들여 검을 겨눴다. 나는 렉스가 떠난 뒤에도 꼼꼼히 패인을 분석했다.












































"역시 강하구나, 나."




 내가 병사들 앞에서 렉스에게 털렸으니, 혹시 상대해 주지 않을까 봐 겁이 났는데... 권해보니 병사들은 줄을 서서 나와의 연습을 희망해 주었다. 역시 페니 장군의 부하답게 의욕과 사기가 충만하다.




 처음에는 한 명씩 상대했지만 별로 승부가 되지 않아 2대 1, 5대 1로 점점 인원을 늘리며 연습 대련을 했다. 뜻밖에 좋은 집단전 훈련이 되었다.




"제법 좋은 실력이었어, 페니 장군의 부하들. 나에게는 좀 모자랐지만."


"그렇죠."




 결과적으로 기세를 탄 나는 해가 질 때까지 페니군의 병사들을 상대했다. 이야기해 보니 페니의 부하들은 좋은 사람들이 많았고, 나와 병사들은 수련 사이에 의기투합해 친해졌다.




 그리고 해가 저물 즈음 되자 서로 피로가 쌓였는지 묘한 분이기가 되어서, 병사들도 포함해 연습이 과열되어 격렬하게 부딪치게 되었다.




 얼마나 심했으면 "조금이라도 가벼워져서 속도로 이기겠다!"며 전라가 되는 바보나 "이기면 사귀어 달라!"는 둥 고백 같은 걸 해오는 멍청이가 나올 지경이었다. 어쨌든 훈련소는 전에 없던 흥분에 휩싸였고, 그 기세로 밤새 연습할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런 캄캄한 훈련소에서 병사들과 왁자지껄 떠들고 있을때, "언제까지 하고 있는 겁니까!"라며 어린 소녀 엠마에게 호통을 맞고 해산하게 되었다.




 병사들은 소녀에게 욕설을 듣고 축 쳐져서 돌아갔다. 덧붙여 전라의 녀석은 조용히 감봉을 선고받았다.




"들었습니다, 멜로 장군과의 일. 역시 검성님의 파티원이시군요, 그 남자를 잘 이기셨군요."





 그리고 고맙게도 엠마 양은 나를 그대로 출구까지 배웅하겠다고 제안했다. 이 성의 구조는 복잡해서 도움이 된다.




"검술로는 약했어, 멜로. 딱히 자랑할 것도 없어."


"아니요 충분해요. 그는 페니 씨에게 골치 아픈 남자니까요. 제가 먼저 수를 써서 그를 이번 의뢰에 관여시키지 않도록 조치하고 있으니 안심하세요."




 멜로 이야기가 나오자 엠마 양은 조금 머리를 싸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역시 멜로에게 고생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이건 개인적으로 묻고 싶은 건데, 미노 장군은 어떤 녀석이야?"


"미노 장군 말씀이신가요? ...그건 어떤 의도로 물어보시는 건가요?"


"아-"




 이 아이가 정말로 페니의 참모 역할을 하고 있다면, 미노가 어떤 인간인지 알고 있을 것이다. 솔직히 오늘 만나서 이야기해 본 한에서는 미노에게 그다지 나쁜 인상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섬뜩하기도 하다. 렉스에게 저렇게까지 말하게 하는 여자가 평범할 리가 없다.




"렉스가 절대로 관련되지 말라고 강조하더라고. 멜로보다 심한 악마라고. 그래서 어떤 녀석인지 궁금해졌어."


"그렇군요. 역시 검성님, 사람을 잘 보시는군요."




 그렇게 솔직하게 묻자, 엠마는 조금 생각에 잠긴 듯 천천히 대답했다.




"...음. 적어도 그녀는 악마는 아닙니다. 오히려 다른 무시무시한 무언가겠죠."


"그게 무슨 뜻이야?"


"그 사람은 국가를 운영하는 가운데 최선책을 선택하고 있어요. 악랄하긴 하지만, 국가 운영에 필요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죠."


"엠마 양은 미노를 그렇게까지 나쁜 녀석이라고 생각하진 않는 거야?"


"천만에요, 최악의 정적이에요. 다만 적어도 미노 장군은 멜로 장군처럼 남을 괴롭히며 즐기는 성격은 아니에요. 제 입장에서는 '악마'라는 칭호는 멜로 장군 쪽이 더 어울리네요."


"...렉스는 미노 장군 쪽을 엄청 욕하던데?"


"네. 렉스 님 입장에서는 정말 미워할 만하겠죠, 미노 장군은."




 왠지 엠마는 굉장히 고르는 것 같다. 매우 난감한 표정으로 그 소녀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미노 장군은 남을 괴롭히는 취미는 없지만... 그게 '목적을 달성하는' 최선책이라면 남을 얼마나 괴롭히든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성격이에요."


"즉?"


"이전 인접국의 침공 때 지키려고 하면 지킬 수 있었을 자국의 마을을 '지켜도 금전적으로나 전략적으로 무의미하니까'라는 이유로 버렸다든가, 정적을 궁지에 몰아넣기 위해 가족이나 친구를 인질로 잡는다든가. 뭐 한마디로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에요."


"우와... 그런 녀석이었구나."


"그래서, 지난번 전쟁에서 미노 장군이 버린 마을이... 검성님의 고향이었어요. 아마 미노 장군은 몰랐겠죠. 검성님을 적으로 돌리는 그런 어리석은 선택을 그 여자가 할 리가 없으니까요."




 ...... 그랬구나.




 렉스의 마을이 불타고 고향에 남겨둔 부모님과 형제를 모두 잃은 그 사건. 렉스를 고독에 몰아넣은 그 과거는 미노 장군의 지휘가 원인이 되어 일어난 거구나.




"그 일을 렉스는..."


"알고 있어요. 그 사건이 계기가 되어 검성님은 우리나라 대장군 임관을 거절하고 모험가가 되신 거니까요."


"뭐!? 그 녀석, 대장군에 임명될 뻔했던 거야?"


"네..... 뭐 우리 대장군급 누구보다도 강하니까요."




 엠마 양에게 듣게 된 충격적인 사실.




 그렇구나. 그 녀석은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 모험가가 됐다."고 했지만, 사실은 그런 사정이 있었구나. 고향을 버린 녀석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며 싸울 마음은 들지 않겠지.




"렉스가 장군이라... 뭐 렉스니까 말이야."


"부러우신가요? 하지만 플라체 님도 원한다면 장군이 될 수 있을 거예요. 어때요? 듣기로는 당신의 실력이라면 제가 일을 꾸민다면 대장군도 노려볼 만해요."


"어, 진짜?"


"물론이죠. 페니 씨와도 싸워보셨다면서요? 3대 장군 중 2명을 이길 수 있다면 아무도 문제 제기 못해요. ...플라체 님, 진지하게 해볼 생각 없으세요? 우리 페니파에서 전력으로 지원할게요."




 내가 ...... 대장군? 스승이 계속 "사실은 내가 대장군이 되었어야 했는데..."라고 투덜거리던 검사의 최고 권력자가 될 수 있어?




"당신의 검술 실력을 모험가로 낭비하는 건 아까워요. 페니 장군도 분명 기꺼이 천거해 주실 거예요."


"...호오."




 내가 대장군이라... 대규모 병사를 이끌고 앞장서서 적에게 돌진해 대난투를 벌이는 역할인가. 그야... 검사로서 동경하는 바 중 하나이긴 한데.




"관심 있으시면 꼭──"


"거기까지 하는 게 좋아 엠마 양."




 스윽, 하고.




 성문 근처에 도착한 내 목덜미를 잡는 의문의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우리 검사를 국군으로 스카우트하지 말아 줄래?"


"어머, 아니에요. 별로 당신과 적대할 생각은 없어요 검성 님. 플라체 씨가 흥미 있어 한다면 도와드리겠다는 얘기였을 뿐이였어요."


"그걸 보고 빼가려는 거라고 하는거야. 게다가 플라체를 데려다가 정치 싸움의 말로 쓰려는 건 추천하지 않아. 저 녀석은 인지를 초월한 바보거든."


"누가 바보라는거야!?"




 그 의문의 남자의 정체는 렉스였다. 일부러 나를 마중 나온 것 같다.




"그런 식으로 빼가려고 한다면, 페니의 쪽도 경계해야겠는데."


"...으, 죄송합니다. 멜로 장군을 이길 수 있다고 듣고 욕심이 났어요..."


"그래, 하지만 두 번째는 없어. 플라체는 넘겨주지 않을 거야. 저 녀석은 내 여자니까."


"그, 그건 큰 실례였습니다. 죄송해요. ...역시 그런 관계이셨군요, 두 분은."


"아니라니까! 이봐 렉스, 오해의 소지가 있는 표현은 그만하라고 했잖아!"


"내 동료들은 모두 내 여자야."




 렉스는 그대로 퍽, 하고 내 머리에 손을 얹으며 좀 민망해하며 이쪽을 보는 엠마 양을 견제하듯이 나를 끌어당겼다.




"넌 장군 같은 재미없는 일은 그만두는 게 좋아 플라체. 절대 어울리지 않을 거야."


"어울리든 어울리지 않든 간에, 너를 갈기갈기 찢어버릴 수 있게 될 때까지는 이 파티를 떠날 생각 없어."


"그거면 돼."




 물론 나도 국군에 들어갈 생각은 없다. 대장군은 검사의 동경이긴 하지만, 그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타도 렉스. 이걸 이루기 전까지는 수련 시간을 빼앗기는 일에 종사할 수는 없다.




"그럼 이만 검성 님, 전 아직 일이 남아있어서 여기서 실례할게요."


"그래 엠마 양."


"...잠을 안 자면 키가 안 크니까 제대로 수면 시간은 확보하라고."


"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씁쓸한 웃음을 짓던 엠마는 서둘러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다. 스카우트 현장을 렉스에게 들켜서 민망한 모양이다.




"자, 우리도 돌아가자. 메이도 여관에서 기다리고 있어."


"응."




 그런 소녀를 흐뭇하게 지켜보며, 나와 렉스는 어두운 밤길을 둘이서 나란히 걸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