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ts물 소설 번역 채널




"끔찍해....."




 툭, 하고 중얼거린 그 목소리는 누구의 말이었을까.




 주위 모든 곳에 펼쳐진 '죽음' 앞에서, 나는 경계도 잊고 멍하니 서 있었다.




"..."


"마왕군은?"


"이미 떠났다고 합니다. 성 아래 마을의 자원이나 식량을 모조리 털어갔다고 합니다."


"...여기는 상인들이 모이는 지역이야. 좋은 무기나 마석, 식량이 모여드는 곳이지. 그렇군, 성 아래 마을이란 건 약탈하기 안성맞춤인 거리였군."




 그 참혹한 광경 앞에서 메이는 눈물을 머금고 조용히 훌쩍였다. 나 역시 방심하면 토할 것 같았다.




 이것이 전쟁이다. 이것이 생명의 교환이다.




 검사를 자처한 지 십수 년, 나는 단 한 번도 사람의 목숨을 빼앗은 적이 없다. 마물을 죽이는 일은 있어도 사람의 죽음을 접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더구나 눈에 가득한 시체나 토할 듯한 부패한 냄새 같은 걸 경험해본 적도 없다. 눈앞의 광경은, 냄새는, 신음은, 모두 사람의 죽음이었다.




"으윽..."




 옆에서 축축한 신음을 내며 메이 양이 입을 막고 웅크렸다. 귀족으로 태어나 클라리스의 보호를 받으며 살아온 그녀는 사람의 죽음을 접할 기회가 없었던 거겠지.




 그런 우리를 안타깝게 여겼는지 렉스가 툭, 하고 우리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메이, 플라체. 힘들면 숙소로 돌아가 있어. 난 주변을 조사할게."


"아, 아뇨! 저는...!"


"무리할 필요 없어. 아니, 오히려 쓰러지면 폐만 끼친다. ...어디에 마왕군의 잔당이 있는지도 모르는데 지친 동료를 보호할 여유는 없어."




 렉스의 얼굴은 무표정 그 자체였다. 시체의 산을 바라보면서도 태연히 서 있었다.




 반면 녀석의 말대로 내 얼굴은 창백했다. 메이 양도 땅바닥에 쓰러져 울고 있고, 잘못하다간 털썩 기절할지도 모른다.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동요하지 않는 사람은 렉스뿐이다. 녀석은 입술을 꾹 다물고 담담하게 시체 더미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그건 분명,




"...미안해. 내가 근처에 있었는데도."




 분명, 녀석만은 이 광경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한때 이 남자는 자신의 고향에서 이와 똑같은 비극을 겪은 적이 있다. 그래서 렉스는 이 지옥 같은 풍경에 대한 내성이 있다.




"아. 젠장 ......"




 내 친구는 바보다. 평소에는 사람을 멍청하게 대하면서, 이런 때는 구제불능일 정도로 어리석어진다.




"야."




 나는 작은 목소리로 후회를 토해내는 렉스의 떨리는 손을 잡고, 정면에서 녀석의 콧대를 머리로 들이받았다.




"아악!"


"이 멍청아! 제일 힘든 건 너잖아, 렉스. 강한 척 하지 말고 얼른 내 손을 잡아."


"뭐 하는 거야. 그리고 난 이 정도는..."


"만약을 대비해 토하고 편해질 수 있는 나나 메이가 경상이야. 하지만 렉스, 넌 이제 토하는 것조차 못 하잖아?"


"...아니, 난..."


"무리하지 마, 자 제대로 곁에 있어줄 테니까."




 이 녀석은 이럴 때 혼자 감당하려는 나쁜 버릇이 있으니까. 이 광경은 트라우마에 직격일 거야.




 한때 렉스는 맛보았겠지. 자신의 고향에서 이와 똑같은 광경을. 자신의 가족이 아무렇게나 쌓여서 눈을 감고 있는 그 모습을.




"저, 저도 왼손 실례합니다!"


"...메이."


"렉스 님, 저도 따라갈게요! 그러니까, 그..."




 지금 진짜로 숙소에 돌아가야 할 건 나나 메이 양이 아니다. 마음속에 누구보다 큰 옛 상처를 갖고 있는 이 남자, 렉스다.




"아......."




 메이 양과 내게 노려보이자 살짝 볼을 붉힌 검성은 관념한 듯 우리 손을 마주 잡았다.




"정말, 나 한심하구나. 고마워 플라체, 메이. 미안하지만 따라와 줘."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지 그랬어."



 마주 잡은 그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런, 처음부터 솔직하게 도움을 구하면 귀여울 텐데.




"...너희가 동료여서 다행이야. 플라체, 메이, 고마워."


"아아."


"네."




 툭 흘러나온 진심이 부끄러웠는지 녀석은 휙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조금이나마 괜찮아진 얼굴로 렉스는 걷기 시작했다. ...피비린내가 가득 찬 지옥을 향해.
































"인간형, 피부색이 회색이고 사체의 냄새를 풍기는 마족. 그게 이번에 습격해 온 적인 것 같아요."




 엠마와 함께 살아남은 성 아래 마을 주민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종합하면 그런 것 같았다.




"엠마 양, 그거..."


"좀비겠죠."




 오늘 새벽, 활이나 검을 든 좀비들이 성 아래 마을의 정착지를 습격했다. 밤의 어둠을 틈타 기습해 왔기에 국군의 대응이 늦어져 민간인들은 속수무책으로 학살당했다.




 모든 것이 끝난 새벽에야 비로소 엠마에게 정보가 들어왔다고 한다.




 ...... 마왕군의 첫 공격은 대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피해는 막심한 데다 강적인 렉스나 내가 나오기 전에 능숙하게 철수했으니까. 최소한의 피해로 대량의 자원을 빼앗아 간 셈이다.




"좀비...인가요. 맞아요. 좀비의 사체에 닿으면..."


"아!"




 그리고 적이 좀비라면 아직 피해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엠마 양, 주위 사람들에게 전해 줘. 만약 부패한 인간의 시체가 있다면 절대 만지지 말라고."


"...그렇네요. 바로 모두에게 전달하겠습니다."


"좀비의 살을 받은 인간은 좀비가 된다. 정말 성가신 마족이야."




 엠마 양은 즉시 근처에 있던 부하 병사에게 전령을 보냈다. 여전히 일 처리가 빠른 꼬마 아가씨다.




"죄송합니다 검성 님. 저는 잠시 자리를 비웁니다. 아직 적이 남아 있다면 대응 부탁드립니다."


"알았어."




 그녀는 그렇게 말하곤 병사들에 둘러싸여 어딘가로 가버렸다. 분명 그녀의 일은 산더미일 거다.




 그리고 그건 즉, 이 길거리에 쌓인 수많은 시신을 장례 지내는 데 아직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뜻이다.






















"시체에 닿으면 안 된다는 게 무슨 뜻이야! 형을...! 난 형을 빨리 잠들게 해주고 싶단 말이야!"


"...조금만 더 기다려 줘. 급하게 검시하는 사람들도 일하고 있으니까."


"개소리 마! 돌려줘! 형을 돌려달라고!"




 지옥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다. 국군에 의해 사망자를 한 명씩 검사하는 작업이 진행되었고, 살아남은 유족들은 가족의 시신을 빼앗겼다.




 불평, 불만, 원한. 그 목소리는 마왕군뿐만 아니라 병사들에게도 향했다.




"아아, 저 아이..."




 지금도 한 명, 내 눈앞에서 소년이 병사에게 달려들며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나는 그 절망에 물든 아이의 얼굴이 낯익게 느껴졌다.




"기다려, 꼬마야. 경솔하게 시체에 닿으면 너도 죽을 수 있어."


"하아? 넌 뭐야, 상관없잖아!"




 나는 달래듯이 소년을 껴안고 병사에게서 떼어 놓았다. 병사의 방해가 되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 이 아이를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오랜만이네, 꼬마야."


"...아, 너 어제 촌놈!"


"바가지 씌운 사과 고마워. ...너무 무리한 소리 하지 마, 병사들도 힘들어."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의 형이 마족에게 살해당한 것 같다. 그는 내 얼굴을 힐끗 보더니 화풀이라도 하듯 내 배를 있는 힘껏 내리쳤다.




 둔탁한 통증이 내장까지 스며든다.




"시끄러워! 형은 날 감싸다 죽었어! 그런데도 묘에 묻어줄 수조차 없다는 게 납득이 가겠냐고!?"


"용감한 형이었구나."


"그래! 형은 최강의 검사였으니까!"




 소년은 눈물을 글썽이며 유품인 듯한 검을 들어 올리고 절규했다.




"형은 성 아래 마을에서 제일가는 용병이었어! 형이 째려보기만 해도 누구나 공포에 질려 입을 다물었다고!"


"그렇구나."


"오늘도 그랬어! 5명 이상에게 둘러싸였는데도 날 도망치게 하겠다며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어! 적어도 3명은 마족을 죽였을 거야!"


"굉장하네."


"최강이었어. 대단했다고! 형은 용감하고 친절하고 멋있고..."




 이내 소년의 절규는 쉰 울음소리로 변했다. 땅에 엎드려 두 손으로 땅을 짚으며 병사에게 애원했다.




"형을 돌려줘..."




 하지만 그 목소리는 시체 냄새로 가득 찬 성 아래 마을의 거리에 쌓인 시신의 산에 메아리칠 뿐이었다.








 ...그런 소년 앞에 우리의 리더가 조용히 검을 들고 마주 섰다.




"이봐, 꼬마."


"누군데 넌? 이번에는 뭐야?"




 렉스는 조용히 절망하는 소년 앞으로 다가가 자랑스러운 대검을 힘껏 땅에 꽂았다.




 쿵, 하는 무거운 소리가 성 아래 마을에 울려 퍼졌다.




"내 이름은 렉스다. ...최강의 검사지."


"아니야! 최강은 우리 형이야, 너가 아니야! 형이 훨씬 더 강하고 친절해!"


"하지만 네 형은 죽었어. 그러니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검사는 나야."


"뭐라고!?"




 렉스는 거리낌 없이 분노하는 소년 앞에 서 있었다.




 이 녀석은 이럴 때 차가운 말을 던지는 남자가 아니다. 뭔가 생각이 있는 거겠지. 조금 내버려 두자.




"네 형의 실력을 난 몰라. 어쩌면 네 말대로 최강의 검사였을지도 모르지."


"그래 내 형은 최강이라고!"


"그럼 그 최강의 이름은 내가 이어받도록 할게."




 그렇게 말하고 렉스는 한 장의 종이를 소년에게 건넸다.




"내 이름은 렉스. '검성' '매의 눈' 렉스. 네 형에게서 최강의 칭호를 이어받은 자다."


"뭐? 검성...?"


"네가 최강의 검사의 동생이라면 ...그 검을 짊어지고 날 베러 와라. 네 형의 '최강' 칭호를 되찾으러 오라고."




 렉스가 건넨 종이에는 우리 아지트의 위치가 적혀 있었다.




"네가 실력을 쌓아 날 이길 수 있다고 생각되면 그때 내가 직접 상대가 되어 주지."


"..."


"그때까지는, 네가 날 찾아올 때까지는 내가 계속 네 형의 '최강' 칭호를 가지고 있을게."




 렉스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소년에게 등을 돌리고 떠났다.




"가자, 플라체."


"...응."




 과연 렉스의 말에 얼마나 의미가 있었을지는 모르겠다. 소년은 렉스의 뒷모습을 멍하니 말 없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모든 걸 잃고 자포자기하면, 인간이란 자살을 떠올리게 돼."


"...그런가요?"


"그래."




 어려운 표정을 짓고 있는 렉스는 뒤돌아보지 않고 조용히 말을 이어갔다. 나와 메이는 그대로 렉스의 뒤를 따라갔다.




"그럴 때 이 세상에 미련이 없다면... 사람은 정말로 죽어 버려."


"...렉스, 설마 너..."


"고향이 불타버린 날, 자살해버릴까....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어."




 너, 고향을 잃었을 때 그렇게까지 생각했던 거구나.




 그럴 만도 해. 소중한 가족을 한꺼번에 다 잃은 거니까.




"하지만 다행히도 난 미련이 있었어. 친구... 플라체, 너의 스승. 난 그가 있었어. 단 하나뿐인 친구가 아직 살아 있어 줬기에 멈출 수 있었지."




 어, 내 존재가 그렇게 컸어? ...무리도 아니네. 고향이 불타버렸으니까. 고향 밖의 아는 사람이라곤 나밖에 없었겠지.




"하지만 저 녀석에겐 이제 아무것도 없어 보였어. 아마 형의 장례를 치르고 나면 그 자리에서 죽으려 들겠지."


"그, 그런 상태인 거예요 그 아이가?"


"아마도.... 그래서 그럴 때는 위로하는 게 아니라 자극을 줘야 해."


"그렇구나. 네가 그렇다니 그런 거겠지. 나도 기억해 둘게."


"...플라체는 정말 멍청하구나."


"뭐!?"




 왜, 왜 갑자기 욕하는 거야 이 녀석. 설마 지금 싸움 걸어오는 거야?




"꿈도 희망도 잃고 죽고 싶을 때는 자극을 주는 게 좋다고 가르쳐 준 건 플라체 너잖아."


"음? 난 그런 말 한 기억 없는데. 착각 아냐?"


"...아, 착각인가 보네. 잊어버려."


"뭐야, 멍청이는 렉스 아냐!?"




 정말이지. 사람을 멍청이라 부르고선 착각이라니... 렉스는 머리가 얼마나 나쁜 거야. 앞으로도 내가 옆에 있어 줘야겠네.




"자, 엠마 양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자."


"...알겠습니다."


"응."




 렉스가 자조하듯 웃었다. 바쁘게 사방으로 지시를 내리고 있는 고용주에게 가려고 하는 순간 ────
















"어머, 우연이네 렉스 군."




 우연히 근처를 지나가던 한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


"안녕, 날씨 좋네. 후후, 그렇게 심술궂은 표정 짓지 마. 무서워."




 그 여자는 이런 지옥 같은 광경 속에서도 싱긋 웃음을 거두지 않고 새하얀 옷을 입고 서 있었다.




"여기서 뭘 하는 거야. ...미노."


"그야 문관으로서의 일이지."




 국군 최악. 악마의 화신, 소름 끼치는 인간의 형상을 한 무언가.




 페디아 국군 3대 장군, '신산귀모'의 미노가 미소를 지으며 길거리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