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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갑자기 찾아온 돌발상황.




 절대 이길 수 없는 상대. 존재 자체를 이해할 수 없는, 궁극적으로 가장 강력한 마법사의 시체가.




 전장에 불어온 한줄기 바람에 끌려서 내던져져 있었다.




"언니.....?"




 메이의 멍한 목소리가 메아리친다.




"......왜?"




 그리고 내 입에서도 멍청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것은 결코 클라리스라는 지인의 죽음을 인식해 버렸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갑자기 렉스의 뒤에 나타난 그 남자는, 클라리스의 목을 렉스에게 던져 버린 그 남자는.




"넌....."


"그래, 나야."




 '바람베기'라고 불렸던 시절의...... 예전의 나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검왕을 향해 검을 겨눈 채 렉스가 얼어붙는다. 장내 사람들 모두의 시선이 난입한 수수께끼의 검사와 그가 내던진 머리를 향했다.




"언니, 언니!!"


"진정해!! 메이, 패닉에 빠지면 안 돼!"


"아니. 안 돼!! 어째서!! 싫어!!!"




 얼어붙은 듯한 시간 속에서 제일 먼저 움직인 건, 언니를 사랑하는 흑마도사였다. 그녀는 반쯤 광란에 빠진 채, 아직 적측 검사의 바로 곁에 굴러다니는 머리를 향해 달려가려 했다.




"안 돼, 메이!"




 카린은 생각했다.




 저 검사는 적이다.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저 클라리스를 갈기갈기 찢어놓은 거라면 틀림없이 마족 측의 존재다. 그리고 저 괴물을 죽일 만한 실력자다.




 언니의 죽음에 착란한 동료 메이를 가까이 가게 둬선 안 된다.




"누구야?"


"플라체! 이럴 때가 아니야, 메이 붙잡는 거 도와줘!"


"놔줘! 놔줘요 카린씨! 가게 해 주세요! 저를, 저를 언니한테!"




 카린이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 하지만 나는 멍하니 서 있을 뿐 움직이지 못했다.




 저건 뭐지? 왜 내가 저기 있는 거지?




 내 몸 안에 누군가 다른 존재가 들어가 있는 건가? 그럼 저 안에 들어가 있는 건 누구지?




 왜 저기 있는 내가 렉스와 친한 척 이야기하고 있는 거지?




"흠, 진정해 여동생! 메이가 저기 다가가면 위험해, 렉스에게 방해가 될 거다. 내가 그리로 갈테니."


"봐봐! 메이, 클라리스가 이쪽으로 다가오잖아!"


"거짓말이에요! 저게 클라리스일 리가 없어요! 언니가, 클라리스가 질 리가 없단 말이에요!"


"아하하, 그럴 생각이었는데. 나, 방심했군!!"




 이해할 수가 없다.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저 남자는 대체 무슨 존재인 거지. 내가 꿈이라도 꾸고 있나? 왜냐면, '바람베기는 나인데.




 저 남자가 검사라는 건 틀림없다. 방심했다고는 하지만 클라리스를 도륙한 그 실력. 거동과 태도에서 느껴지는 연륜이 쌓인 '무'의 기운. 그리고 렉스와 옛 친구인 것처럼 말하는 태도까지.




 ──── 내 몸에 렉스의 지인이 들어와 있는 건가? 그렇다면, 그건 대체 누구인 거지?




"렉스에게 충고를 받아 조심하고 있었을 텐데, 허술했어! 적의 접근 따위를 눈치채지도 못하고, 어느새 목이 날아가 버렸다니!"


"확실히 그 기척의 희박함은 바람 같네. 우리도 렉스에게 저렇게 다가갈 때까지 눈치채지 못했어..."


"거짓말, 거짓말이에요... 언니가, 언니가 죽을 리가..."


"언니는 목이 날아갔구나! 하하하!"




 응. 뭔가 혼란스러운 것 같네. 분명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거겠지. 내 시신은 사이코로에 의해 화장되어 버렸을 텐데. 저런 곳에 있을 리가 없잖아.




 게다가 지금, 클라리스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어. 아마 지금 내 정신상태가 제정신이 아닌 거겠지.




 전장에서 혼란스러워지는 건, 죽음을 의미한다. 빨리 정신 차려야 해...
















"응?"


"응?"




 어라. 클라리스의 목이 둥둥 떠다닌다. 아무리 눈을 비벼도 떠 있기만 하다.




 게다가, 지금 분명 말했어. 환청까지 들리는 걸까. 하하하.




"...어라?"


"왜 그래 메이. 뭘 그렇게 혼란스러워하는 거야."


"거짓말이지? 아니, 살아있을 리가 없잖아."


"머리만 남았는데도 쌩쌩하다니. 그런 게 가능해?"


"아니 아니, 나도 죽어가는 중이야. 구체적으로는 앞으로 반나절 정도만 살 수 있으니까, 빨리 날 몸통이 있는 곳까지 데려다 줬으면 좋겠어!"




 .......




 그렇구나. 클라리스는 목만 남아도 반나절 쯤은 살 수 있는 거구나. 뭐, 클라리스니까. 그런 일도 있겠지.




 이게 인외라는 녀석인가. 확실히 메이 말대로, 진지하게 상대하다간 망가지겠어.




"......"


"왜 그래 메이, 말을 멈추고. 둥둥 떠 있는 것도 힘드니, 좀 손으로 들어줘."




 꽈악, 하고 클라리스의 생목은 메이의 손에 들어갔다. 힉, 징그러워.




"그 녀석이 내 목을 날릴 수 있는 검사라고, 렉스에게 들었거든! 그런 일이 생겨도 괜찮도록 마법을 개발해뒀지."


"...말도 안 돼. 회복마법의 병용? 아니, 그런 술식 없잖아. 애초에 혈류를 유지할 수가 없는데..."


"하, 하하. 역시 클라리스예요. 하하."




 그리고 평소대로 메이의 눈이 죽은 물고기처럼 변했다. 클라리스, 그런 점이 문제야.




 목이 날아갔다면 얌전히 죽어라. 클라리스는 사람이 아니라는 게 증명된 거나 다름없잖아.




 폐가 없는데 어떻게 말을 하는 걸까? 모든 것이 수수께끼다.




"휴, 클라리스는 무사했군."


"뭣?!"




 렉스를 마주보고 있는 가짜 나는 말하는 머리를 보고 멍해졌다. 그야 당연하지, 놀라겠지.




"클라리스는 마술사니까. 저 정도로 목을 베어도 죽지 않는 모양이네."


"그런가... 아니, 이상하잖아. 내가 아는 마술사랑 달라."




 저기 있는 가짜 나는, 클라리스를 죽인 줄 알았나 보다. 무리도 아니지.




 죽지 않은 게 이상한 거지.




"후후후. 훌륭하게 내 죽은 척에 속아 넘어갔구나. 목을 베었다고 해서 동공을 확인하지 않은 네놈의 잘못이다."


"목이 날아가서 죽은 척도 뭣도 없잖아 언니."


"그렇군... 다음에 마술사를 죽였을 때는 동공을 확인하도록 하지."




 ...... 아니, 필요 없잖아. 목만 가지고 살 수 있는 생명체 따위는 클라리스 정도밖에 없잖아.




"그럼, 마력 절약을 위해 나는 잔다. 미안하지만, 날 몸통이 있는 곳까지 데려다 준 다음에 깨워 줘."


"어, 잘 자...?"


"뭐, 저 상태로는 제대로 된 마법도 쓸 수 없겠지. 무력화시킬 수 있었다면 그걸로 됐어."




 나 같은 녀석은 스스로에게 되뇌이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든 정신을 유지하려 애쓰는 것 같다.




 그런 미묘한 공기가 흐르는 가운데. 오직 렉스만이 진지한 표정으로 '바람배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클라리스가 살아 있어서 다행이네 너. ...상냥한 너라면 분명 정신이 든 후에 클라리스를 죽인 걸 괴로워했을 테니까. 그녀에게 나중에 감사인사라도 해 둬."


"뭐, 정신이라고?"




 바람배기는 렉스의 말을 듣고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하하하! 렉스, 너 설마 내가 세뇌당했다고 착각하고 있는 거야?"




 안도의 표정이 엿보이는 렉스와 대치하는 검사. 경장비에 몸을 감싼 짧은 검을 가볍게 쥔 그 남자는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난 세뇌 같은 거 안 당했어. ...그저 진정한 강함이 뭔지 깨달았을 뿐이지."


"세뇌당하지 않았다고? 지금 너는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은데."


"지랄하지 마, 정신 똑바로 차렸어. 나는 그저 마음 깊이 마왕님을 섬길 뿐이야."




 스윽.




 '바람배기'를 자칭한 나의 가짜는 렉스에게 검을 겨눴다.




"렉스. 한때 난 너를 거대한 벽으로 여겼어. 언젠가는 꼭 이겨야 할 라이벌이라 생각했지. 하지만 말야, 마왕님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


"강함이란 건 말이야. 싸워서 이기는 게 아니야. 싸우기도 전에 이미 적수가 안 된다는 걸 깨닫게 해 주는 존재를 일컫는 거다."


"...호오? 그럼 넌, 그 마왕님이라는 자에게 꼬리를 흔들며 따르고 있다는 거냐. 한심하군."


"아아, 완패했어. 싸우기도 전에, 그분에겐 이길 수 없다는 걸 알았거든. 렉스, 너랑은 달라."




 경장갑을 낀 검객이 경멸하는 표정으로 검을 든 렉스에게 걸어온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렉스, 마검왕에게 이긴 건 대단해. 나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길 수 없었으니까."


"나는 최강의 검사니까."


"렉스, 넌 나에게 이길 수 없다는 압박감 같은 걸 주지 않아. 마왕님과는 다르게."




 무방비하게, 빈틈투성이로 그 남자는 렉스를 향해 걸어간다. 마치 렉스를 얕보기라도 하듯이.




"난 마왕님의 강함에 반했어. 그래서 더 강해지기 위해 스스로 마족의 편에 섰다. 세뇌 같은 건 전혀 당하지 않았어."


"...흠."


"굳이 말하자면... 마족의 강인한 육체를 갈망해서 몸에 마족의 인자를 심어 달라고 한 정도겠지. 난 강해지고 싶어서 인간을 배신했다."


"..."


"이해했나 친구. 아니, 옛 친구."




 아니야. 저 자식은 내가 아니야.




 난 지는 걸 인정하는 걸 너무 싫어해. 싸워보지도 않고 마왕에게 굴복할 리가 없어. 정신이 멀쩡하다면 더더욱.




"난 적이다."


"웃기지 마. 어차피 속고 있을 뿐이겠지, 평소대로 말야."


"맘대로 그렇게 생각해. ...크큭, 한때 친구였던 자가 적이 되어 버린 기분이 어때? 렉스, 난 너랑 한 번쯤 진심으로 서로 죽일 듯이 싸워보고 싶었어. 네 목을 베어 버리는 순간이 기다려지는군..."




 하지만. 그 '바람배기'를 자칭한 남자의 말투는, 태도는, 표정은 마치 나를 닮은 꼭두각시 같다. 과연 렉스는 지금 그 말을 듣고 얼마나 동요하고 있을까.




 이를 악물고 있는 렉스.




 이런, 렉스가 저 자식을 나라고 착각한다면 가짜의 계획대로 되는 거야. 여기서 차라리 내 정체를 밝히는 것도...




"저기, '바람배기'라는 검사 양반! 네, 몸을 마족에게 개조당했을 때 어떤 느낌이었어?"


"아? 확실히 머리에 이상한 기계를 달고 전파를 쏘는 동안 시술이 끝났지. 그 날부터 마족이 너무 자랑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어!"


"완전 세뇌당했잖아!"




 라고 걱정하고 있었는데, 카린은 쉽게 수수께끼의 인격이 이식되어 있는 것을 간파했다. 다행이다, 이러면 렉스도 동요하지 않겠지.




"역시 넙답네."




 렉스의 얼굴이 부드러워진다.




 ......저 자식, 설마 바보인 건가. 보통은 그런 일을 당한 기억이 있다면 자신이 세뇌당했다는 걸 눈치채지 않나?




 저렇게 멍청한 모습이라면, 저 속에 있는 게 지성으로 가득 찬 나일 리가 없다.




 틀림없이 나와는 다른 누군가가 들어가 있다. 대체 누구인 거지...?




"저기, 들어봐 친구. 너의 여동생 나탈이, 지금 내 아지트에 살고 있어."


"응?"


"뭐, 손댈 생각은 없으니 안심해. 다만 걱정하고 있었어, 너에 대해서 말이야. ...오빠의 원수를 갚겠다며 날 베러 왔었거든."




 그런 세뇌당한 불쌍한 검사에게. 렉스는 위로하듯 말을 건넸다.




 여동생인 나탈의 이야기. 혹시 세뇌를 풀려고 하는 걸까.




"나탈, 나탈...인가."


"그래. 너의 여동생."


"...크, 크큭, 하하하하!! 그게 누구야? 유감이지만 난 여동생 같은 거 없어!"




 하지만 그 검객의 대답은 ───── 폭소였다.




 저 남자는 나탈을 모르는 모양이다. ...역시 저 남자는 내가 아니군. 적어도 내 기억은 가지고 있지 않아.




"......뭐?"


"난 여동생이 없다. 어머니도 없다. 친구도 없다. 어쨌든 난 마족으로 다시 태어났으니까!"




 젠장. 내 몸으로, 내 목소리로 맘대로 지껄여대다니. 어디의 누구야, 저 몸을 사용하고 있는 건.




"......"


"나탈? 누구였지, 그런 역겨운 이름을 가진 건방진 애가 있었던 것 같은데 ...... 기억이 안 나네...? 아하하하하하하하하!"


"...저, 시스콘 녀석이 이렇게...... 마족 놈, 잘도 이런 짓을 해 주는군."


"나는 마검왕의 맹우이자 마왕님의 충실한 신하다! 남의 금고를 함부로 뒤지는 얄팍한 여동생은 가족 같은 게 아니야!"


"나탈을 두고 온 게 맞았나 보군. ...... 그런 너를 보여주고 싶지 않았어."


"남이 번 돈을 마음대로 가져가서 예전부터 꼴 보기 싫었어. 크큭, 다음에 만나면 안기려 하는 순간 목을 날려 버린다."




 ───── 아니야. 이 남자, 설마 내 기억을 가지고 있는 건가?




 금고를 뒤지는 여동생이라니 나탈 정도밖에 없어. 게다가 저 자식의 말은 내가 마음속 깊이 감춰 둔 어두운 감정과 일치하다.




 설마, 그럴 리가, 거짓말이지? 저 자식... 적어도 기억은 내 것인 건가?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저 녀석이 사용하는 자세와 몸놀림은 내 동작 그 자체 ─────










"웃기는 놈이군! 그럼, 내 바로 뒤에 있는 너의 제자도 잊어버렸다는 거야!?"


"당연하지! 이 내게 제자 따윈...! 제자 따윈... 어? 제자?"




 어? 제자? ...아, 나구나.




 그러고 보니 나는 '바람배기'의 제자인 척 하고 있었지.




"렉스. 난 제자 같은 거 없어."


"실망이다. 최악이야. 당사자를 눈앞에 두고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니..."


"엥?"




 '바람배기'가 당황하고 있다. 그럴 만하지. 난 제자 같은 거 데리고 있지 않으니까.




 ...... 아, 이거 위험할지도. 저 자식이 내 기억을 가지고 있다면, 내가 제자라는 게 거짓이라는 게 들통날 거야.




 음... 좋아, 일단 소리치자.




"스승님!! 저를 잊으신 겁니까?!"


"뭐? 너 누구야?!"


"당신 정말 인간이야!?"


"마음까지 마족이 되어 버리신 거군요!"


"어어어?"




 메이와 카린에게 욕설을 들으며 눈을 동그랗게 뜨는 가짜 나.




 그렇겠지. 내 기억이 있다면 저렇게 되겠지.




"저 자식은 너의 사랑하는 제자 아니었나, 정신 차려 이 개자식아!"


"어?!"




 ...... 엄청난 분노다. 아마 렉스는 이보다 더 어둠 속으로 떨어진 내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던 거겠지.




 제자 앞에서 억지로 시치미를 떼는(렉스 시점) '바람배기'를 마주하고, 렉스는 자신의 자랑스러운 대검을 들어 올렸다.




"정신 차리게 해 주지 친구! 그 썩어버린 근성을 때려 고쳐 주마!"


"잠깐... 누구야? 진짜 누구야?"


"아직도 그러고 있냐아아아!"




 그리하여 마침내, 숙명의 대결. '바람배기'와 검성의 싸움이 몇 년 만에 목숨을 건 채 펼쳐졌다.






"...... 어어!?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