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ts물 소설 번역 채널






 거센 화염을 등지고 그 마족이 서 있었다.




 결사의 각오를 얼굴에 새기고, 그을음과 뜨거운 바람으로 더러워진 경갑을 입고.




 한때 '바람베기'라 불리며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던 검사의 말로가 검성 앞에 섰다.






"항복할 생각은 없나 보군?"


"나는 죽어도 너에게 패배를 인정하지 않아"


"그렇겠지!"




 찌릿한 검기가 공간을 가득 메웠다.




 동료라고 할 수 있는 마왕군 대부분이 불타 없어졌는데도 그 마족은 전의를 잃을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지금의 그에게는.




"렉스, 오늘은 반드시 너를 죽인다. 전처럼 초라한 꼴은 보이지 않겠어"


"그렇군. 나도 전처럼 실수를 두 번 다시 저지를 생각은 없어"




 렉스 외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검성은 검을 움켜잡았다.




 마족은 검을 느슨하게 늘어뜨렸다.




""승부다, 친구!!""






 곧장 두 사람은 달려들어 서로를 베었다.












































 도대체 왜일까.




 나는 왜 렉스와 싸우고 있는 걸까.




 마족은 혼자 고민하고 있었다.






 나는 죽었어야 했다. 그런데 왜 아직도 검을 휘두르고 있는 걸까.




 기세등등해져서 방심하다 덜컥 포위되어 죽임을 당했는데.




 그런데 나는 왜 렉스에게 달려들고 있는 걸까.






 강검이 울부짖고 내 검이 삐걱거린다.




 마족이 된 내 몸은 예전처럼 렉스의 검에 막히기만 해도 날아가 버리는 일은 없어졌다.




 그래서 호각이다. 겉보기에 나와 렉스는 호각으로 맞서 싸우고 있었다.






 렉스는 즐거운 듯이 내 검을 받아낸다. 춤추듯이 나는 저 녀석의 검을 받아 흘린다.




 이것이 바로 내가 예전에 바라던 것이다. 렉스라는 너무나 강대한 검사에게 패배의 맛을 보여줄 힘.




 그러니 내가 렉스에게 달려드는 행동은 틀리지 않았다. 틀릴 리가 없다.






 그래서 무심히 나는 검을 휘둘렀다. 렉스의 목을 향해 필살의 검을 뽑아들었다.




 그래, 이건 틀리지 않았다. 나는 렉스를 죽여야만 한다.




 자랑스런 마족을 위해. 존경하는 마왕님을 위해.
















"아아."




 그것은 검사의 정상결전이었다.




 검의 극치에 달한 두 남자가 모든 것을 쏟아부은 결투였다.




"아아, 망할."




 '바람 베기'는, '바람 베기'라 불리던 유검의 정수인 그 남자는 입술을 깨물며 분해하고 있었다.




"아아, 이 마족 녀석들. 나와 렉스의 신성한 결투를......"




 그래. 그 마족은 깨달아 버렸다.






"나와 렉스의 결투를 모욕하는군...!!"










 마족이 자랑스러워서 어쩔 수 없다.




 나는 마족 중에서 강해지고 싶다.




 마왕이라는 절대 강자를 따라다니며 자신을 높이고 싶다.




"망할 자식들!!"




 그런 욕망이 자신의 마음속에서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마왕에게 머리를 숙이고 마족의 일원으로 싸우는 것을 본능이 갈구하고 있다.




"바보 녀석들!!"




 안 된다. 나는 마족이다.




 마족의 장군, 마검왕이 만들어낸 전직 인간 첨병.




 그것이 바로 나다.




"틀렸다는 걸 알면서도..."










 렉스를 보면 증오가 멈추지 않는다.




 인간을 보면 겁이 난다.




 아아, 방심하면 베어 버릴 것 같다. 웃는 얼굴로 걷고 있는 행복한 인간들을 보기만 해도 참살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














 렉스의 대검이 큰 원을 그리며 날 날려버린다.




 검 자체는 받아 냈기에 데미지는 없다. 하지만 또 렉스가 유리한 간격으로 멀어져 버렸다.




 증오스럽다. 무조건 강하고 예리하며 묵직한 렉스의 검술이 증오스럽다.




 죽여야 한다. 이 렉스라는 내 친구를 죽여야만 한다.










"......"


"......"








 서로 침묵. 몇 번이고 검을 주고받지만, 말은 주고받지 않는다.




 말을 주고받을 여유가 없다. 렉스를 상대로 입을 움직일 겨를이 없다.




 그래서 나는 말없이 렉스의 검을 계속 피하며 입술을 깨물고 울고 있었다.






 휘둘러진 낫베기를 아슬아슬하게 피해 렉스의 목을 베기 위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내 단검은 천천히 렉스의 목을 향해 빨려 들어가더니 저 녀석의 소맷자락에 튕겨 나갔다.




 닿지 않는다. 내 일격은 렉스에게 닿지 않는다.




 마족으로 타락해 비인간적인 근력을 손에 넣었는데도 렉스에겐 닿지 않는다.




"치사하잖아, 이런 거..."




 내 목표가 뭐였지?




 렉스를 죽이는 거였나?




 마왕님이 세계를 통일하는 것을 돕는 것이었나?




 아니, 아니야. 나는 그냥 ────
























"2409전 2336승이야, 친구."






 정신 차려보니 나는 대지에 몸을 던져지고 있었다.




 검은 저 멀리 어딘가로 굴러갔다.






"이젠 방심하지 않을 거다. 각오해라."






 그리고 렉스가 나를 내려다보며 웃고 있었다.




 나는 마족이 되어서도 렉스에겐 이기지 못한 모양이다.




 부정을 저질러 엄청난 근력과 튼튼한 육체를 손에 넣어도 나는 패배자인 듯하다.










 아니, 애초에.




 나는 이미 오래전에 마족에게 패배해 죽은 패배자다.

















































 '검성'과 '바람베기'의 결투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려서야 끝이 났다.




 100개가 넘는 극강의 검의 교환에 보는 이들은 모두 감탄했다.




 하지만. 결국 승리한 것은 렉스였다.




"멋지네, 렉스. 역시 넌."


"아하하하! 방심만 하지 않는다면 이 정도야!"




 렉스는 대검을 들이대고 누워 있는 '바람베기'를 기분 좋게 내려다보았다.




 방심하지 않고 노려보고 있었다.




"...... 아직이야, 렉스"


"응? 아니, 이젠 패배를 인정해. 지금부터 무슨 짓을 해도 내가 네 목을 베는 게 더 빠를 테니."


"그게 어쨌다고."




 이 무슨 지기 싫어하는 근성인가.




 검을 튕겨 내고 목에 대검을 겨눠졌는데도 그 마족은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나는 여기서도 이긴다.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너를 죽일 거야"


"...이봐"


"나는 진심이야, 렉스"




 주저앉은 몸뚱이를 떨며. 패배한 마족은 검성을 향해 포효했다.






"인간이었을 때의 내 목표는! 내 결의는! 너를 무적으로 만들어선 안 된다는 거였어!"






 ...... 그것은, 분명.




 '바람베기'라는 남자의 꾸밈없는 진심이었을지도 모른다.






"렉스가 이기는 게 당연하다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어디 있어! 승자는 찬양받아 마땅하잖아!"


"...친구?"


"나는 너를 혼자 있게 하고 싶지 않았어! 너와 함께 모험가를 하지 않은 것도 '너의 제자'처럼 대해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야!"


"..."


"너에겐 적이 있다고, 렉스.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어. 나는 너의 적이 되고 싶었어!"




 검을 겨눠진 마족은 볼품없이 울면서도 똑바로 렉스를 바라보며 그렇게 소리쳤다.




"이상하지, 나. 왜 마족 편을 들고 있는 걸까! 왜 마왕 같은 녀석한테 꼬리 흔들고 있는 걸까!? 내가 이해가 안 돼, 아무것도 모르겠지만 이것 하나만은 틀리지 않았다고 확신해."




 그 볼품없이 울부짖는 소리에 렉스의 얼굴이 얼어붙었다.




"렉스, 너는 적이라고. 너를 죽이기 위해 내가 살아 돌아왔다고. 그렇게 마검왕에게 들었기에 나는 내가 하는 일이 틀리지 않았다고 확신했어!"




 덜덜 떨리는 턱을 움직이며 마족이 된 검사는 목에 검날이 파고드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어나려 발버둥 쳤다.




"왜 날 살리려고 해! 왜 날 죽이려 하지 않아!"


"친, 구..."


"내가 너의 적으로서 부족한 거야!? 날 너의 적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거야? 어떻게 된 거냐고, 렉스!!"




 그게 진심이었다.




 모든 것을 잃고 시체를 마왕군에게 이용당한 불쌍한 검객의 본심이었다.




 그는 명성을 원한 것이 아니었다. 최강자가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는 단지,




"나는 ...... 너의 적이다. 그렇지? 렉스."




 그저 너무 강해져서 절망하기 시작한 친구를,




 가족을 모두 잃고 기운을 잃어버린 친구를,




"...... 네 적수가 바로 여기 있잖아."




 ──── 그저 격려해주고 싶었을 뿐인 친절한 자였다.












"...... 아."




 렉스는 깨달았다.




 이 절친한 친구가 렉스라는 검객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있잖아, 잘 들어 렉스. 나는 이미 죽은 인간이야."




 간청하듯 마족은 렉스에게 말을 걸었다.




"죽어서 몸을 개조당하고 마음을 농락당했어. 그래서 여기 있는 건 너의 친구의 기억을 가진 마족일 뿐이야"


"...이봐, 무슨 소리야....."


"그러니까 너의 친구는 진작에 죽었고. 나는 그 기억을 가진 모조품일 뿐이야."




 피가 뿜어져 나온다.




 렉스가 들이민 대검에 '바람베기'가 스스로 목을 들이댄 것이다.




"이런 모조품을 친구라 부르면 원래의 내가 불쌍하잖아"


"아니, 기다려, 너"


"이 기억의 주인이라면 분명 끝까지 너의 적이 되려 할 거야. 그러니까 나는 포기하면 안 돼."




 쏟아져 나온 피에 동요한 렉스는 무심코 검을 느슨하게 해버렸다. 그리고 바람 베기의 몸이 자유로워졌다.




"렉스, 널 죽이겠어."






 그렇게 말하며 피를 토해내면서 렉스에게 돌진한 마족을,




"...... 그만해!"




 렉스는 반사적으로 발로 걷어찼지만 그래도 그는 몇 번이고 지지 않고 달려들었다.




 그것은 마치,




"나는 너의 적이야 렉스!"


"제발, 그런 짓은!"


"인정해! 내가 부족한 거야!? 내가 너의 적으로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거냐고!!"




 그것은 마치 렉스에게 훈계하는 것 같았다.




"그런 게 아니야! 네가, 네가 있어줘서 나는....."


"그렇다면!!"




 그 비통한 절규와 함께 바람을 두른 마족이 곧장 렉스의 배를 향해 팔을 뻗었다 ────






"──── 그래, 그것으로 충분해."




 그리고.




 마족은 렉스에게 달려드는 것을 멈췄다.




"고맙다..... 나는 네 적수가 될 수 있었을까?"


"충분했어, 젠장 ......"




 아니. 이제 그는 더 이상 렉스에게 달려들 수 없게 된 것이다.




"완패다."




 그의 몸통이 검성에 의해 두 동강 나버렸으니까.




"처음부터 그렇게 할려고 했어. 그러니 쓸데없이 동료를 위험에 빠뜨리지 말라고."


"뭐라는 거야.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너를 죽이는 건"


"내가 기억만 가지고 있는 가짜라는 걸 좀 더 빨리 알아챘어야 했어, 렉스. ...... 뭐, 멍청한 너한테는 좀 어려웠나 보군."




 마족의 얼굴에서 생기가 사라져 간다.




 푸르스름하고 비인간적인 피를 흩뿌리며 '바람 베기'의 기억을 가진 마족의 눈에서 빛이 사라져 갔다.




"이봐, 렉스. 이제 다시는 방심하지 않을 거지?"


"방심? 이제 방심 같은 건 할 리가 없잖아"


"그럼 안심이다. ──── 죽지 말라고, 렉스."




 그 마족이 생을 다하는 마지막 순간,




 그는 미소를 지으며 렉스를 바라보며 간청했다.




"있지, 나 기억이 없는데 제자가 있었던 모양이야."


"뭐? 모른 척하고 있던 게 아니었어?"


"아아, 그 아이 뒷일을 부탁해. 가짜 친구의 유언이니까"




 그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렉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부터 렉스도 그럴 생각이었다.




"정말. 저 아이, 뭔지 모르겠지만 엄청 강해졌더라."


"...그러고 보니 너 지금 저 아이랑 싸웠었지"


"졌다기보다는 승부를 받아주지 않았다. 그런 느낌이었어, 보이는 게 다른가 봐."




 제자에게 추월당해 한심하다며 그는 자조했다.








"하지만 너라면 저 괴물도 어떻게든 할 수 있겠지. 맡겼다, 렉스."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는 영원한 잠에 들었다.








































































 북동쪽 요새.




 그건 마왕이 충동적으로 싸움을 갈구하며 공격해 들어간 인간의 중요 거점이었다.




"──── 진짜인가?"




 마왕이라는 카드는 마족에게 있어 비장의 카드다.




 '싸움'이라는 무대에 내보내기만 하면 이길 수 있는 말 그대로 절대 강자. 대책만 세워지지 않는다면 그보다 강력한 패는 존재하지 않는 조커였다.




 그랬어야 했다.




"이게 뭐지? 이건!? 내가 무슨 싸움을 하고 있는 거지!?"




 분명 그것은 사실이다.




 단독으로 마왕보다 강한 존재 같은 건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애초에 마왕의 강인한 육체에 데미지를 줄 수 있는 존재조차 양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였다.




 그 귀중한 '마왕에게 통하는 높은 공격력의 소유자'가




"너는 질량을 가지고 있는 거냐!? 가지고 있지 않은 거냐!? 거기 존재하긴 하는거냐!?"


"보면 알 거 아냐, 마족."


"모르니까 물어보는 거다!"




 '온갖 공격을 막아내는 신의 방어의 묘수'에 지켜지고 있는 이 이상한 진형 때문에




"어째서 내가 인간 따위에게 밀리고 있는 거지!?"


"너가 약하니까 그렇지"




 절대적 강자인 마왕은 진퇴양난의 처지에 놓여 있었다.








 옆에서 지켜보는 클라리스조차 그 검사의 기교의 1할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강대한 마족이 주먹을 움켜쥐고 휘둘러 내지른다. 그 세 가지 동작 각각의 '시작'을 살짝 어긋나게 해 적의 공격을 제어한다.




 손을 써서 조용히 밀기도 하고 일부러 빈틈을 보여 적의 공격 방향을 어긋나게 하기도 하며 이해할 수 없는 보법을 써서 적의 눈짐작을 흐트러뜨리기도 한다.




 그건 이미 검을 이용한 마술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세련된 동작이었다. 비력한 검사가 강력한 라이벌을 쓰러뜨리기 위해 평생을 바쳐 익힌 지고의 기술이었다.




"이길 수 있어..."


"이길 수 있겠어요, 클라리스 님."




 클라리스는 살짝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조금씩, 조금씩이긴 하지만 적 마족의 움직임이 둔해지고 있다. 반면 클라리스는 아직 마력에 여유가 있고 플라체에게서 지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 가면 무사히 승리를 거머쥘 수 있을 것이다.




"플라체가 무엇을 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어. 이해할 순 없지만 혼자서 얼마나 많은 공격을 막아내고 있는 걸까. 정말이지 렉스와는 다른 방향의 괴물이군"


"..."




 그렇게 말하며 작열하는 용을 훌쩍 만들어내 마왕에게 달려들게 하는 클라리스. 병사들은 둘 다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본인들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여기서 마왕을 처리할 수만 있다면 그걸로 인류의 승리가 확정된다. 마족이 인간 영토를 공격하기로 결심한 계기가 이 '마왕'이라는 절대 강자의 존재 때문이었으니까.




 그가 패하는 순간 남은 마족들은 앞다투어 도망칠 것이다.




"저 괴물이 마왕인지 적의 대장군급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저자를 처리해두면 나중에 굉장히 편해지겠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어쩐지 클라리스도 그걸 눈치채고 있었다.




 이 승부야말로 승패가 갈리는 결전이라는 걸. 여기서 놓치면 정면에서 저 마족을 쓰러뜨릴 수 없다는 걸.




"마도사들이여 모여라, 마력을 빌리겠다. 전사들은 내 곁으로 와 창고에서 회복약을 가져와라"


"알겠습니다"


"우리 한마음 한뜻이 되어 저 마족을 죽이자!"




 클라리스는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저 마족을 죽일 각오를 굳혔다.










"좋은 아침이에요"










 그런 클라리스와 플라체 앞에




 마왕을 쫓아왔다는 듯한 부하 마족이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 뵙겠습니다, 인간들. 우리는 박쥐 일족이에요"


"...호오, 증원인가. 시체만 늘어날 뿐이다!"




 그, 마족 측의 원군을 보고 클라리스는 격분했다.




 그렇게 쉽게 일이 진행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저 마족은 분명 거물급이니 어딘가에서 방해가 들어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클라리스는 자신의 비기로 그 모든 걸 베어 넘길 생각이었다.






"오, 드디어 쫓아와 줬군 박쥐. 인간이 이 정도로 강하다는 건 듣지 못했다고!"


"네, 당연하죠. 우리도 경악하고 있습니다"


"그럼 힘을 빌려줘. 저 조그만 마법사를 때려눕혀!"




 마왕에게도 여유가 없었다.




 그는 체력이 깎이고 몸도 너덜너덜한데 적은 상처 하나 입지 않았다.




 패배와 죽음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고 굳세기로 유명한 마왕조차 궁지에 몰려 있었다.




"...마왕님. 적이 까다로우시다면 비열한 수단을 쓰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비열한 수단이 인간들의 전매특허는 아니겠죠"


"비열한 수단이라고?"


"네. 이 요새에는 군인 이외의 인간도 있었던 것 같아서요. 저 인간들은 의외로 정에 두텁다고 들었으니..."




 마왕에게만 촛점을 맞추지 않고 광범위를 불태워 전멸시킬 살육 마법의 술식을 풀어 새로 나타난 박쥐 마족까지 불태워버리려 거대한 불기둥을 만들어낸 클라리스의 눈에 비친 것은,






"......"






 박쥐에게 붙잡혀 눈물을 가득 머금은 채 자신의 여동생보다 나이 어린 소년의 모습이었다.












"...... 인질?"


"그렇습니다, 인간족의 마법사님. 이 아이를 살리고 싶으시다면 공격을 멈춰주시길"




 마족이 사람의 아이를 방패 삼아 위협했다.




 그건 클라리스조차 상상하지 못했던 사태였다. 왜 여기에 아이가 있는 건지, 왜 힘이 우세한 마족이 비열한 수단을 쓰는 건지, 언제 저 박쥐가 인질을 잡은 건지.




"......"


"자, 이 아이가 이렇게 무서워하고 있잖아요. 불쌍하다고 생각되지 않나요"




 혼란의 절정에 있던 클라리스는 무심코 마법의 손을 멈춰 버렸다. 그녀는 너무나 상냥한 인간이었다. 아이를 내버려두고 죽게 한다는 선택 같은 건 할 수 없었다.




"오오, 잘했다 박쥐!"




 그 틈에 마왕은 기쁜 듯이 도약하고는 ────








"누가 불쌍하다는 거냐! 이 썩어빠진 마족아!"




 마왕의 혼신의 일격으로 클라리스의 장벽이 깨어지는 찰나, 박쥐에게 목을 졸리고 있던 소년은 전력을 다해 클라리스를 향해 외쳤다.




"날 얕보지 마, 마족!"




 확고한 결의를 눈동자에 끓어오르게 하며 그 소년은 웃었다.




"날 죽일 생각이라면 마음대로 죽여. 나 따위에 신경 쓰느라 싸움을 멈추지 마, 전사들!"




 그 결연한 함성을 듣고 바람이 다시 마왕에게 휘감겼다.




"나는 소타다! 이 나라 제일의 큰 상인이 될 뻔했던, 마족에게 형을 죽임 당한 인간이다!!"




 다시 마왕은 공격이 빗나갔다. 그 틈에 클라리스가 만들어낸 불기둥이 마왕을 정면으로 덮쳤다.




 ──── 박쥐는 혀를 차며 그 소년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소년도 질세라 박쥐를 노려보았다.




"형의 원수에게 이용당하면서까지 살아남고 싶진 않아! 멍청해 보이는 언니, 내 복수도 맡겼어!"


"...... 맡기겠다. 멋진 각오다, 소타."




 소년의 눈에는 결심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이길 수 있다.




 이 괴물 같은 마족의 일격은 보고 나서 반응할 수 없어도 예측으로 대응할 수 있다.




 이제 의식과 주먹질의 방향만 유도하면 클라리스를 지켜낼 수 있다. 클라리스가 나 대신 저자를 처리해줄 것이다.




"젠장, 도망가자 박쥐! 시간을 벌어라..."


"제가 시간을 벌 수도 없을 것 같군요. 그리고 저 마도사에게 등을 보이고 도망칠 수 있을 거라곤 생각되지 않습니다"


"제기랄!"




 박쥐는 곤란한 듯이 어깨를 으쓱하고 금색은 절망의 음색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그건 분명히 우리가 우세하다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미노가 말한 게 좀 이해가 갔다. 그렇구나, 역시 나는 뒤에 초화력의 마도사가 있는 상태일 때 가장 빛난다는 거로군.




 공격을 모두 클라리스에게 맡기고 나는 공격을 피하기만 하면 된다. 이건 뭐랄까 굉장히 편하다.




"플라체!! 한 번만 더 버텨다오!!"


"응!!"




 내 뒤에서 무지갯빛으로 빛나는 폭염이 피어올랐다. 그것들은 모두 역대 최강의 마법사에 의한 강력한 나를 향한 지원사격이었다.




 얼마나 든든한 일인가. 클라리스라는 괴물이 뒤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이렇게 마음이 편해지다니.




 이 요새를 지키는 것뿐이라면 나는 그녀와 함께 100년이고 지켜낼 수 있겠어. 질 것 같지 않다는 건 바로 이런 느낌이구나.




"어떻게 해봐, 박쥐!"


"지금 열심히 하고 있잖아요. 정말이지, 이번 일로 깨달았다면 다시는 제멋대로 출격 같은 걸 하지 말아주세요"


"알았으니까 어떻게 좀 해봐!!"




 초조함이 섞인 마족들의 목소리.




 저 마족만 치우면 이제 박쥐를 베는 일만 남았다. 잘 된다면 저 고결한 사기꾼 사과 소년도 구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건 기합이다. 기합 넣을 때다.




"으윽, 슬슬 힘이..."


"...기회다!"




 비틀, 하고 마족의 몸통이 흔들리며 무릎을 꿇었다. 그 직후 클라리스는 열광선 같은 엄청난 열량의 마법으로 마왕을 불태워버렸다.




"으아아아악!!"


"사라져라! 페디아의 땅의 먼지가 되어라!"




 이걸로 끝난 건가. 드디어 이긴 건가 ────


















"거기까지다, 인간! 자 소년, 조금 전 말을 다시 한번 해보렴?"




 그렇게, 승리를 확신한 순간.




 다시 박쥐 괴물이 소년의 목을 잡아들며 목소리 높여 선언했다.




"...아, 아"


"무리도 없죠. 조금 전엔 좀 무모한 용기를 발휘해서 저런 마음에도 없는 말을 지껄였던 거겠죠, 소년"


"아, 아..."


"저기 뒹굴고 있는 얼굴이 으깨진 병사의 시체를 봐. 기억나지, 차갑게 불타 숯이 된 너의 형을"




 ...... 그 소타의 얼굴에서는 조금 전까지의 곧은 결의가 사라져 있었다.




"죽음은 끝이에요. 당신은 길가에 버려져 구더기에 몸을 갉아먹히고 새까만 숯이 되어 깜깜한 땅속 깊이 묻힐 거예요"


"하지만, 아니, 나는"


"무서운가요? 끔찍한가요? 자, 말해봐요. 당신은 한마디만 빌면 살 수 있어요"




 아아. 그 마족이 해냈구나.




 비장한 각오로 죽음을 각오한 소타에게. 그 '죽음의 공포'를 말로 새겨 넣었어.












"......살려."










 조용한 요새에 그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무서워. 무서워졌어, 죽기 싫어 ......"


"...... 소타"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아니. 그게 정상이다.




 소타라는 소년이 어리면서도 고결한 각오를 했기에 나도 클라리스도 계속 싸울 수 있었다.




 하지만 보통은, 보통의 소년이라면 박쥐 마족에게 목을 잡힌 채 죽인다고 위협당하면 울음을 터뜨리는 게 당연하다.










"죽고 싶지 않아. 플라체... 살려줘..."


"...응, 그렇구나"






 그렇다면.




 네가 도와달라고 한다면 나는 그걸 무시할 수 없어.




 나는 미노처럼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진 결과를 용인하지 않아. 내 검은 눈앞에서 울고 있는 누군가를 위한 검이니까.




"...... 허억, 허억."


"다행이군, 잔챙이 마족. 봐주겠어"




 나는 검을 탁, 하고 그 자리에 내던졌다.




"플라체..."


"미안해 클라리스. 저건 버릴 수 없어"


"그런가. 아니, 어쩔 수 없겠지"




 아쉬운 표정으로 지팡이를 떨어뜨리는 클라리스.




 미안해, 내 고집에 휘말려서. 내가 포기한다는 건 사실상 클라리스를 버리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이 녀석 감히, 나를..."


"하하하. 마족, 나 따위에게 고전할 정도면 절대로 너희들은 인간에게 이길 수 없어. 나보다 훨씬 강한 검사가 왕도에 있거든"


"뭐라고?"




 뭐, 나 정도가 져도 대세는 변하지 않겠지. 이 마족도 강했지만 나 정도면 어떻게든 할 수 있는 상대다. 그렇다면 렉스에 맞설 리가 없지.




 렉스에게 부담 줘서 미안하지만 전엔 내가 도와줬잖아. 이번엔 내 뒷받침을 맡겨도 될 거야.




"그럼 실컷 날뛰라고, 마족들."


"..."



 사나운 형상으로 노려보는 금색 마족을 보며 나는 조용히 비웃었다.




 아직 렉스가 있다. 진정한 최강자가 왕도에 버티고 있다. 마족의 패배는 기정사실이다.




 나보다 강한 렉스가 뒤에서 기다려주고 있으니 ────
































 아아. 나로는 렉스에게 이길 수 없어.




 렉스가 나 대신 이겨줄 거야.




 나는 렉스에게 미치지 못해.


































































"────."


















 




새벽, 왕도 성문 앞.




 거기서 한 마족이 숨을 거두었다.




"너라면 저 괴물도 어떻게든 할 수 있겠지? 그게 무슨 뜻이야?"




 그 마족의 유언은 심히 수수께끼 같았다. 그건 자기 제자를 부탁한다기보다는 마치 자기 제자를 막아달라고 하는 것 같았다.




"...... 렉스. 이미 죽었어."


"그래."




 이 남자는 무엇을 전하고 싶었던 걸까. 마족으로 타락해서도 친구로서 렉스에게 싸움을 걸어온 이 남자는.




 검성은 마지막까지 강적으로 남아준 친구의 얼굴 위로 눈꺼풀을 덮어주었다.




"죽어버렸구나. 그런가..."




 친구의 마지막 말을 곰곰이 되새기며




 렉스는 자신이 내려친 그 마족의 주검을 안아들고 눈물방울을 흘리며 ────










 그 렉스의 젖은 뺨을 닦아주려 하는 수녀의




 등 뒤에 검은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을 눈치챘다.






"카린!"




 끌어당긴다.




 렉스는 정신없이 팔을 뻗어 수녀복 소매를 자신의 가슴께로 잡아당겼다. 칼바람 소리와 함께 찢겨진 옷감을 등지고 카린은 렉스에게 안기듯 쓰러졌다.




 위기일발. 갑자기 휘둘러진 검격은 카린의 스카프를 베어냈을 뿐 허공을 갈랐다.


























"...... 렉스, 넌 이길 수 없어."


















 렉스가 얼굴을 들자 소녀 검사가 거기 있었다.




 상처투성이의 너덜너덜한 작은 검을 가볍게 쥐고 흔들흔들 바람에 검은 머리카락을 나부끼며.




 새파란 눈동자의 고양이 동공을 한 소녀 검사가 그저 곧게 검성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것이 한계 ─────"




 스윽, 하고 그녀의 오른팔이 올라갔다.




 그 검사는 검을 움켜쥔 채 어깨까지 팔을 들어올리고 무언가에 기도하듯 눈을 내렸다.




"플라, 체...?"




 렉스가 멍한 목소리를 냈다.




 그것은 렉스에게 낯익은 소녀였다.




 고독한 자신에게 무엇보다 소중한 동료이자 가족이었던 여검사.




"......"




 그 적을 인식하고 멍하니 서 있는 검성의 의식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듯




 바람과 함께 소녀 검사가 소리 없이 렉스의 눈앞에 육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