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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아침 일찍 누군가 싶었더니... 뭐야, 플라체인가"


"좋은 아침"




 잠에서 막 깬 그녀는 머리가 엉망이었다. 평소에는 아름답게 정돈된 금발을, 복슬복슬하게 부풀리고 잠 덜 깬 눈으로 얼굴을 비볐다.




"미노에게서 이야기는 들었어?"


"하암. 그래, 나와 요새로 향한다 했었지? 준비할 테니 좀 기다려 다오"


"알았어"


 


 다음날 아침, 클라리스의 저택. 신속히 준비를 마친 나는 그녀와 합류하기 위해 아침 일찍 방문했다.




 아침 일찍 현관문을 연 클라리스의 차림새는 잠옷 모습이었다. 그녀의 기상은 제법 늦은 모양이다.




"응? 플라체 씨? 좋은 아침이에요"


"오, 메이도 묵고 있었네"


"네. 안녕하세요"




 마찬가지로 잠옷 차림의 여동생 마술사가 안쪽 방에서 얼굴을 내민다. 메이는 친정에 돌아와 있던 것 같다.




 그렇구나, 렉스와 내가 성벽 밖에 나가 있었고 카린도 교회에서 계속 묵고 있으니까.




 메이 혼자 남아서 숙소에 묵을 이유도 없겠지.




"아직 목만 남았던 클라리스는 컨디션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서 집안일을 도와달라고 했어요."


"그렇군."



 그런 이유도 있구나.




"게다가 오늘부터 언니도 집을 비우니까요. 저도 오랜만에 본가에서 마도서를 독파하려고요"


"그렇구나."


"아 맞다, 내 자물쇠 달린 책장은 건드리지 마. 농담이 아니라 진짜 위험하니까."


"응. 절대 건드리지 않을 테니 안심해."




 그런 사이 좋아 보이는 자매를 보며 흐뭇해하면서, 나는 잠옷 차림의 메이가 내어준 홍차를 즐겼다.




 자물쇠 달린 책장이라... 저기서 체인으로 칭칭 감겨 덜덜 떨며 꿈틀거리는 책장 말하는 건가?




 뭐야 기분 나빠. 절대 관련되고 싶지 않아.




 
































"...... 내가 미노에게 복종하는 이유?"




 해가 높이 떠오르는 한낮. 클라리스와 나는 메이에게 배웅받고 둘이서 북쪽 요새로 향해 출발했다.




 우리에게는 경호원이 없다. ...거짓말 같겠지만 미노가 말하길 우리는 '중간에 경호원이 있으면 오히려 적에게 위치가 들통 나기 쉬워 방해만 된다'고 한다.




 그래도 말이야, 훈장까지 받은 사람을 그냥 밖에 내던지는 거야?




 역시 미노 녀석은 속으로 날 VIP로 보지 않는 게 틀림없어.




"클라리스는 그 여자가 한 짓을 용인하고 있어?"


"아니. 나는 그 여자가 싫어, 죽을 정도로 말이야"


"그럼 왜 얌전히 따르는 거야?"




 미노는 냉혹무비하고 극악비도하지만 왜인지 클라리스라는 소녀는 그녀의 명령에 거역하지 않고 담담히 따르고 있다.




 클라리스 같은 사람을 사랑하는 상식인(?)에게는 미노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은데 말이야.




"...가장 큰 이유는 페니와 엠마의 부탁 때문이야. 그 두 사람에게 미노에게는 반항하지 말라고 못박혔거든"


"그 두 사람이?"


"그래. 나는 그 두 사람을 신뢰하고 있어"




 ....... 뭐, 그 두 사람은 확실히 믿을 수 있지만.




"다른 이유로는...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는 생각하는 게 서툴러. 제멋대로 날뛰어 자주 남에게 폐를 끼쳤었지. 몇 번이고 말야."


"클라리스가?"


"그래. 그 중 가장 심한 건, 내가 오해로 아무 죄없는 어린아이를 죽일 뻔했던 것."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클라리스는 후회하듯 자신의 과거를 고백했다.




"나는 내가 믿는 사랑이 전부라고 생각했어. 얼마나 시야가 좁았던 걸까."


"클라리스가 사람을 죽이려고 했다고?"


"그래,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했지. 어떤 악한 남자에게 속아서 좋은 쪽으로 이용당했어. 잘못된 착각 그대로 아이에게 특대 화염구를 날렸어. 맞았다면 새까맣게 타버렸겠지."



 꽉 눈을 감은 클라리스의 눈에서 작은 눈물이 흘러내린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다지 머리가 좋지 않아. 스스로 생각하다 보면 분명 속을 거야. 그래서 나보다 머리 좋은 사람에게 마법의 칼날을 맡기고 있는 거지."


"...그렇다고 해서 미노 같은 자한테."


"저 녀석은 그리 잘못되진 않아, 사악하지만 정확해. ...선의로 움직여서 타인을 상처 입히면 그 선의의 소유자마저 상처받게 돼. 하지만 미노는 모든 걸 예측하고 날 이용하고 있어."




 ...... 너무 큰 힘의 소유자도 고민이 많은 모양이네. 힘을 잘못 휘둘렀다간 큰 참사가 일어나니까.




"그리고 만약 날 나쁜 일에 이용한다면, 그녀를 포함해 악의를 갖고 관련된 자를 해치는 저주를 걸어놨어. 그걸 들은 미노의 얼굴이 일그러지던데, 뭐 괜찮을 거야."


"...그런 저주가 있어?"


"열심히 만들었지."


"제발 그 저주를 후세에 전하지 말아줘."




 그런 거 얼굴이 일그러지는 게 당연하지. 그래, 그럼 미노도 그리 쉽게 클라리스를 악용하진 못하겠구나.




"그런데 그 죄 없는 아이는 어떻게 됐어?"


"다행히도 그 아이 바로 곁에 영웅이 있어서 말이야. 의젓하게 그 영웅은 죄 없는 아이를 구하고 떠나더군."


"영웅?"


"오오, 정말이야, 그 사람은 아이를 좋아하는 쾌남아였어. ...그 소녀는 지금도 그 영웅과 함께 길을 걷고 있지."




 ....... 문득 천진난만하게 웃는 로리콘과 어린 소녀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설마 지금 얘기의 '아이'가 엠마인 건가.




"페니는 굉장한 남자야. 저 녀석에게 맡겨두면 어떻게든 될 거야, 그런 안심감 같은 걸 갖고 있어."


"...그냥 로리콘이 아닌 거네....."


"물론이지. 그래서 페니가 지난주에 실종됐다고 들었지만, 분명 좋은 일을 하고 있을 거야."


"실종!?"




 뭐야, 그게 무슨 소리야? 이런 중대사에 대장군이 실종이라니.




"녀석이 실종되기 직전, 미노에게 따르고 자신 대신 나라를 지켜달라고 머리를 숙였어. 그렇다면 나는 페니를 믿을 수밖에"


"정말? 아니, 그럼...."




 이런 어려운 시기에 페니가 실종됐다니 군이 혼란에 빠져서 제법 피해가 생기지 않을까? 그런 머릿속에 떠오른 불안을 나는 고개를 저어 부정했다.




 페니에겐 엠마가 함께하고 있다. 그녀는 작지만 제대로 된 군사다.




 분명 나름의 생각이 있을 거야. 지적인 나로서도 생각하지 못할 고도의 두뇌 싸움을 벌이고 있을 게 틀림없어.




"그렇다면 우리는 미노를 따라 나라를 지키자. 그것이 페니가 우리에게 기대하는 일일테니."


"...그렇게 들으니 의욕이 생기네. 엠마와 미노가 지혜 겨루는 동안, 나는 백성을 지키는 데 전념하면 되는 거구나."


"그래. 간단하지?"




 나는 검사다. 복잡하게 생각하는 게 일이 아니야.




 눈앞의 적의 목을 떨어뜨리는 것, 그것이 내 일이다.




"뭐, 우리의 일은 페니에 비하면 쉽고 단순하지만 말이야. 요새를 사수하고 광역 마법으로 적을 섬멸할 뿐"


"...미노 녀석, 마왕이 올지도 모른다고 하지 않았어?"


"정말 와준다면 좋겠지만. ...그래, 잘 되진 않겠지."




 와주는 건 전혀 좋지 않은데.




"적의 대장 마왕이란 자는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어. 당당한 전사라면 분명 선두에 서서 부하들을 고무할 텐데. 슬그머니 숨어 있는 대장이라면 분명 예상도 못한 곳에서 모습을 드러내겠지"


"아. 확실히 정말로 마왕이란 자가 강하고 무적이라면 앞장서서 돌격해 올 텐데 말이야"


"그래. 그래서 유감스럽게도 지금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은 마왕이 갑자기 요새를 급습할 가능성은 낮아. 온다면 플라체의 스승이라는 그 마족..."




 클라리스는 거기까지 말하더니 내 눈을 보고 불길하게 웃었다.




"적이 그 마족이라면 플라체만 있으면 두렵지 않아. 그래서 이번엔 우리는 조역에 전념하자. 렉스가 마왕을 쓰러뜨릴 거라 믿고."


"응. 나도 렉스를 믿고 있어"


"그렇겠지? 그렇다면 우리는 마음을 다잡고 주어진 역할을 다할 뿐. 북동 요새에 모인 병사들과 함께 마왕군의 배후를 위협하는 인류의 중심이 되자."


"...맡겨둬."




 북동 요새에서의 내 역할은 '클라리스의 경호'. 클라리스의 견해로는 마왕이 요새를 방문할 가능성은 낮다고 한다. 하지만 또 마족인 내가 클라리스를 해치우기 위해 강습해 올 가능성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




 그 잘 모르겠는 나의 모습을 한 마족을 이번에야말로 해치우는 것. 그것이 이번 전투에서의 내 목표라고 할 수 있겠다.




"곧 요새에 도착한다. 내가 초라한 모습을 보인 그리운 요새에."


"...근접전이 서툰 클라리스로서는 어쩔 수 없었지."


"아니, 이번엔 지지 않아. ...긴장 늦추지 말라고 플라체. 조역을 맡은 우리야말로 인류의 존망을 짊어지고 있는 거야."




 이윽고 이전에 내가 혼자 돌격했던 익숙한 낡은 요새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는 렉스가 순식간에 데려다줘서 몰랐는데 이 요새는 왕도에서 제법 거리가 있다. 그리고 왕도 앞 평야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높이도 갖추고 있다.




 원거리 마법의 달인인 클라리스를 위한 요새구나.






"요새의 병사들이여!! 사랑의 화신, 자애와 은혜의 상징, 궁정 마술사 클라리스가 돌아왔다!! 영접하라!!"






 그렇게 목소리 높여 선언한 그녀는 만면에 미소를 띠고 의기양양하게 두 팔을 들어올리고는 ─────












 그 순간, 휙 하고. 그녀의 몸에 두르고 있던 칠흑의 로브가 걷어 올려져 백옥 같은 피부와 순백의 팬티가 드러났다.




"......!?"




 ───── 차巾縛り.




 기괴한 현상이었다. 갑자기 걷어 올려진 클라리스의 로브는 그대로 그녀의 상반신을 감싼 채 묶여버렸다.




"음? 음!? 으음!?"




 너무나 갑작스러운 사건에 클라리스는 당황한 목소리를 내며 옷을 되돌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갑자기 크게 웃는 금발 소녀가 걸어 다니는 팬티로 급변. 그런 이상한 광경에 넋이 나가 눈을 흰자위로 굴리고 있던 나는 어느새 다가온 변태의 모습을 눈치채지 못하고 ────




"히히히..."




 음흉한 웃음소리를 듣고서야 나는 뒤를 돌아보고, 시야 한쪽에 노인의 주름진 손을 포착했다. 내 허리띠를 역겨운 얼굴을 한 노인이 잡은 그 순간, 나는 비로소 수상한 자가 소리 없이 다가왔다는 걸 알아챘다.




"팬티 좀 보여ㅈ─────"










 ...... 그 순간. 세상이 파랗게 물들었다 ─────


































"....클라리스. 이 변태 어떡할까."


"때려눕혀."


"그래, 마음껏 할게."




 볼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드물게 눈을 치켜뜨는 클라리스. 놀랍게도 그녀에게도 수치심은 존재하는 모양이다.




 나는 허리띠를 벗기려 잡고 있던 노인을 즉시 내던졌다. 노인은 반응당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땅바닥에 데굴데굴 굴렀다.




"변태녀석."


"허억."




 한 걸음. 나는 쓰러진 노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칼을 칼집에서 뽑아 들고 무게 중심을 조용히 내린다.




"...... 으음."




 스윽, 노인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건 후퇴를 결심한 사람의 눈이다.




 이 에로 영감, 물러날 때는 알고 있는 모양이군.




"하는구나, 아가씨. 마족의 목을 친 것도 수긍이 가는군... 그럼 이만!"


"─────"




 역시 노인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달아났다. 하지만 그 움직임은 내게는 둔중할 뿐이었다.




 누워있던 사람이 일어나 뛰기 시작하기까지의 과정. 손을 땅에 대고, 허리를 들어 올려, 자세를 가다듬고, 다리를 내딛고, 가속한다.




 이런 다리 힘 약한 영감이 이 나에게서 도망치겠다니 대단한 배짱이군.




"...... 응?"


"놓칠거 같아?"




 노인이 도망치려 첫발을 내디딘 바로 그 순간. 나는 그 중심이 흔들리는 걸 따라 몸의 중심축을 돌려 노인을 머리부터 땅바닥에 처박았다.




"...... 억!"


"성패."




 이렇게 해서 나와 클라리스는 출정 직후 운좋게 성범죄자 체포에 성공했다. 이제 국군 요새로 향하자. 거기서 포로로 가혹한 노동에 종사시켜 주자.




 뺨을 부풀리며 노인을 때리는 소녀가 기분이 풀릴 때까지.














"로렐 님!! 어찌 된 일이십니까!?"


"노인 학대야... 노인 사냥을 당했어!"




 요새로 끌고 가 보니 깜짝 놀랐다. 이 성범죄자는 장군이었다.




"내 부하들아, 이놈들을 잡아라. 그리고 팬티를 걷어올려라"


".....우리 장군이 매우 실례했습니다"


"왜 사과를 하는거지!?"




 부하들도 이 노인의 악습을 잘 알고 있는 듯, 방에 들어오자마자 차가운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런 남자의 지휘로 싸웠던 거니, 고생했겠군.




"아........"




 크흠, 하고 소녀의 헛기침 소리가 요새에 메아리쳤다.




"나는 미노에 의해 이 요새의 방어를 다시 맡게 된 궁정 마술사 클라리스다!!"


"알고 있습니다, 클라리스 님. 쾌유를 축하드립니다."


"그녀는 나의 경호역 플라체다."


"이럴 수가! 당신이 바로 그 유명한 '신검' 님이셨군요,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잘 부탁해."




 다행히 부하들은 제법 제정신인 것 같다. 이런 성범죄자를 요새의 수호자로 삼다니 미노는 역시 나쁜 녀석임에 틀림없어.




 자세히 보니 이 노인, 전에 성 아래 마을에서 성추행해 온 부랑자 아닌가. 내 허리띠랑 카린의 팬티 돌려줘 이 자식.




"이 요새의 지휘권은 나에게 있다."


"그 말씀 맞습니다, 클라리스 님"


"그렇다면 저기 괴한을 포박해"


"알겠습니다."


"히익!?"




 아직 눈빛이 조금은 흐릿한 클라리스는 성추행 영감을 즉시 부하들에게 붙잡게 했다. 좋은 판단이다, 클라리스는 지휘관으로 적합할지도 모르겠네.




"잠깐, 나, 나는 전 대장군이자 현 총사령관인..."


"그냥 성범죄자잖아"




 이렇게 로렐은 순식간에 요새의 지휘관에서 독방 거주자로 전락했다.




 자초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