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으으응-! 겨우 일이 끝났구만."

양 팔을 쭉 펼치며 기지개를 펴고서는 피곤한 목을 이리저리 돌리며 스트레칭 하던 지휘관, 방금 전까지 카리나가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달려와 헬리안이 득달같이 시켜놓은 일감들이 너무 많다며 조금만이라도 도와달라고 부탁했었다. 평소 야무지게 일을 하던 그녀와 친한 사이였고, 지휘관이 힘들때마다 그녀가 선뜻 나서서 도와주던 상냥한 그녀였기에, 헬리안에게 맞선 같은걸로 장난치지말라며 장난스럽게 꿀밤을 먹이고서는 일감을 조금 나눠받아 도와주었다.
다행히 나눠받은 일감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기에 저녁을 먹을 시간까지는 어찌어찌 해서 카리나에게 전달해 줄수 있었다. 활짝 핀 얼굴로 지휘관에게 연신 감사하다며, 후에 필요한 물건이 있다면 싸게 챙겨드리겠다며 꾸벅 인사를 하고 돌아가는 그녀의 모습에, 왠지 모를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러고보니, 지금쯤이면 빨래 건조도 다 끝났겠군."

얼마전까지 있었던 전술훈련의 장기철야 떄문에 제대로 갈아입지도 못한 쌓인 빨랫감들을 세탁해두고 일을 작업하던 그가, 시간이 맞아 떨어진 것에 오늘은 일이 그래도 잘 풀리고 있다며 휘파람을 불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으엉...이상하다?”

잘 풀리긴 개뿔이었다. 지휘관이 어리둥절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건조기 위에 올려놓은 옷더미들을 정신없이 파헤치고 있었다. 좌우로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옷들을 보며 그의 표정이 점점 굳어져만 갔다.

“하나, 둘, 셋, 넷…역시 하나가 없어…”

혼자 알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속옷 개수를 세던 지휘관, 역시 하나가 모자란다는 제스쳐를 취하면서 머리를 벅벅 긁어댔다. 분명 밀린 빨래를 세탁할때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갯수 그대로일텐데, 건조를 마치고 예비용 가방에 넣기 위해 옷을 잘 개어 넣을때 이상하게도 속옷이 하나 비어있었다.

이번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대체로 불분명하지만 거의 2주에 한번 주기로 이런 사건이 벌어지곤 했었다. 처음엔 그저 자기 손버릇이 나빠 어딘가 한두개씩 흘리고 다닌줄 알았다. 하지만 한두달이 지나자 단순히 자신이 어디선가 흘리고 다닌 문제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아니, 멀쩡한 숙소에 무슨 남자 속옷 도둑이 있는거도 아니고, 무슨 2주마다 속옷이 하나씩 없어지는게 말이 되냐고."

평소 운동과 훈련으로 단련된 잔근육의 양 팔로 팔짱을 끼고서 짜증난다는 투로 혼자 중얼거리는 지휘관은, 상부에 이걸 보고 해야하나 골똘히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자신이 맡은 제대의 이미지가 추락해버린다. 생각해봐라. 제각각의 아리따운 전술인형들이 모여 살고 있는 그리폰 숙소에 2주마다 지휘관의 멋드러진 속옷이 도둑맞고 있습니다~! 하고 상부에 보고가 올라간다면? 그 보고서를 크루거님이 읽으며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지휘관을 문책하는 상상을 하자 온 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아냐아냐...역시 내 선에서 끝내야 해. 괜히 윗까지 보고가 들어갔다간, 전원 신변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몰라...그건 안돼."

평소 자신의 휘하에 있던 인형들을 끔찍히도 아끼던 그였기에, 이번 소란으로 인해 인형들의 장비가 해체되고 코어가 뜯겨나가며 슬픈 모습으로 걸어가는 모습은 도저히 상상이 갈 수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저기, HK416"

다시 자신의 개인실로 돌아온 그가, 옆 책상에 앉아 사무를 보고 있는 자신의 충실한 부관인 HK416을 불렀다. 최근 상부의 명령을 받고 그리폰의 전술지휘관에게 합류하여 자리를 옮긴 404소대의 소대원 중 한명인 HK416은, 날카롭지만 싹싹하고 성실한 성격으로 퍽 지휘관의 마음에 들었었다. 그전까진 제대로 된 부관도 없었고 카리나가 이제까지 대신 부관으로써의 일을 같이 처리해 주었었기에 이참에 좋아하는 인형이 하나 있다면 부관으로 삼는건 어떻겠냐고 질타 반 조언 반이 담긴 목소리로 충고를 들었었다.
절대 나쁜 선택이 아니었다. 그 성격 그대로 부관이 된 이후로도 HK416은 자신이 쉴 수 있는 시간도 조금씩 버려가며 산더미처럼 밀려오는 일을 분담하여 같이 처리했고, 404소대의 작전임무가 비는 날에는 지휘관이 비는 사이 대신 업무를 처리해줄정도로 능숙하게 맡은 바 임무를 다 했었다. 조금은 과한 량의 일 때문에 힘들어하던 지휘관도 그런 HK416의 모습을 맘에 들어하며 다른 인형들에게 눈에 띄지 않게 그녀 몰래 더욱 더 신경을 많이 써주었다.

"무슨 일이야? 지휘관"

부름에 답한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우중충한 하늘의 옅은 빛을 받은 하늘색 머리카락이 은은하게 반짝거렸고,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두 눈동자 안엔 깨끗한 비취색의 보석을 박은듯 영롱하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약간은 살짝 다물어진 분홍색의 옅은 입술엔 벚꽃 향기가 맴돌것 같은 인상을 자아내었다.
머리카락을 스윽 쓸어넘기며 약간은 다급해진 지휘관의 표정을 보더니 걱정된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뭐야, 무슨 일 있어? 표정이 안 좋아보이는데..."

"어...어...아...혹시 말인데..."

말을 꺼내면서도 이걸 이야기해야하나 말아야하나 한참을 고민하던 지휘관의 모습에, HK416은 초조한듯 검지 손가락을 베베꼬며 그를 조심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결심한듯, 지휘관이 무겁게 이야기를 꺼냈다.

"그...만약에 듣게 되도..."

"응."

"절대로 당황하지마, 당황하지말고 봤는지 못 봤는지만 말해줘."

"응."



"혹시, 내 건조기에 있던 사각팬티 못 봤어?"

말을 끝낸 지휘관이 그녀를 바라보자, 역시 하지말걸 이란 생각이 마음 속에서 축포처럼 터져나왔다. 뜬금없이 터져나온 질문에 당황스런 표정을 짓던 그녀가, 곧 말 뜻을 이해한 듯 곱게 윤기가 나는 두 뺨이 새빨갛게 빠른 속도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두 눈은 달랐다. 연신 걱정하며 노루 새끼처럼 그렁거리는 눈망울로 지휘관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던 그녀가, 당장이라도 떼거지로 달려오는 철댕이들을 유탄으로 싹 날려버리겠다는 위협적인 눈초리로 바뀌며 지휘관을 죽일 기세로 노려봤다.

"....할 말이 있고 못 할 말이 있지!!!"

"저 아니 그게..."

"아니 왜 나한테 그런걸 물어봐!! 지휘관 어디 약 먹은거야!?"

"아니...그러니까...이거 되게 중요한 일이야...화내지 말고 들어ㅂ..."

"왜 자기 팬티를 부관인 나한테 물어보는건데!? 내가 엄마야? 아무리 부관이라지만 지휘관의 속옷 하나하나까지 내가 챙겨줘야해??"

부끄럽고 약한 물거북을 봤다는 듯 마냥 양 손으로 지휘관의 가슴팍을 잡아 흔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HK416 때문에 속으로 엄청 후회 중인 지휘관이었다. 그래, 아무리 부관이라지만 솔직히 이건 너무 나갔다. 게다가 상대는 인형이라지만 엄연히 여성형의 모습을 갖춘 아리따운 아가씨였다.

"으아아아아! 진짜!! 그런거 물어볼거면 부르지마!!"

창피하다는 듯 연신 화를 내더니, 그녀가 가슴팍을 팍 놓고선 부끄러운듯 고개를 푹 숙이고 재빨리 방에서 뛰쳐나갔다. 머쓱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그저 그녀가 나간 방의 열린 문을 쳐다볼수밖에 없었던 지휘관이었다.

"다음엔 절대 물어보지 말아야겠다..."







"진짜! 지휘관은 왜 그런걸 나한테 물어보는거야! 부끄럽게!!"

바락바락 화를 내며 어두운 복도를 차박차박 걸어가던 HK416의 발소리가 저 멀리까지 퍼져나갔다. 주변을 걸어다니던 인형들은 지휘관의 부관이 얼굴을 붉히며 화가 난 상태로 저벅저벅 걸어가자 혹시 싸우기라도 한것인가 하며 궁금증을 가졌다.

"아무리 내가....내가 부관으로써 열심히 해주고 있다고 하지만, 너무 나갔잖아!! ㅅ...소...소소속옷을 왜 나한테 물어보는건데! 아이참!!"

시뻘건 홍당무가 된 채로 저벅저벅 한참 복도를 걷던 그녀가, 자신의 개인실에 도착해 문을 열고서는 오늘 기분이 안 좋다는 것을 표출하듯 쾅! 하고 문을 닫았다. 마침 자기 방에서 볼일이 있어 문을 열고 나오던 UMP45가 그녀의 모습에 놀라 눈을 꿈뻑거리며 멍하니 서 있었다.

"저기, 나인."

"어 왜? 언니?"

뒤따라 나온 그녀의 동생 9가 고개를 뺴꼼 내밀며 416이 들어간 방을 같이 쳐다보았다.

"쟤 오늘 무슨 일 있어?"

"글쎼? 아까 지휘관이 호출할떄만 해도 별 일 없이 갔는데?"

"흐응...그래? 지휘관이랑 싸웠나..."

뭔가 언짢은 표정으로 닫힌 문을 한참 쳐다보던 45가, 몸을 휙 돌리며 나인의 부드러워 보이는 어깨를 툭툭 치며 복도 반대편으로 사라졌다.





"진짜! 지휘관은 멍텅구리! 아으아아아아아!!"

자신의 개인실 안, 지휘관이 손수 마련해준 보라색의 사랑스러운 무늬가 수놓여진 자신의 침대 위 베개에 얼굴을 파묻으며 이불을 손으로 연신 쳐대던 그녀가, 지쳤다는듯 몸을 돌려 천장을 바라보았다. 대체 왜 지휘관은 나한테 그런걸 물어본걸까? 그런 것 정도는 스스로 찾을 수 있잖아..
시뻘개진 얼굴로 그저 천장만을 바라보던 그녀가 고개를 돌려, 고급 재질로 만든 나무 테이블 위의 사진첩을 바라보았다. 평소 가족처럼 지내는 404소대원들에게도 절대로 보여주지 않은 단 한장의 사진첩에는, 갓 착임한 지휘관의 새내기 시절 사진이 정성스럽게 꽂혀있었다. 누구에게도 주지 않는다며 바득바득 우기던 지휘관에게 애교스러운 목소리와 앙탈을 부리며 겨우겨우 얻어낸 사진이었다.
공기의 흐름이 천천히 바뀌어 가는 것 같았다. 부끄러움과 짜증, 그리고 질타로 물든 눈이 그의 사진에 고정되자 점점 그리워하는 눈동자로 바뀌어가기 시작했다.
혹시...아까 물어본건 정말로 자기를 믿고 그랬던거 아닐까...? 그 사람, 평소에 다른 인형들한텐 그런 말은 하지도 않잖아...하지만 아무리 친해도 그런 말은 좀...혹..혹시...
속으로 번민하며 지휘관의 의도를 생각해보던 HK416의 옅은 분홍빛 입술에서 새하얀 숨결이 살짝 베여나왔다. 어깨가 살짝 떨리며 숨소리가 조금 거칠어졌다. 평소 임무수행을 위해 꽉 조여입은 전투복 위로 봉긋 올라온 가슴이 거친 숨소리에 맞추어 오르락 내리락거렸다.
파르르 떨리는 눈썹 아래 비취색의 두 눈동자가 살짝 풀리며 그녀의 머릿속에서 문득 지휘관의 모습이 떠올랐다.
옆에 있던 베개를 푹 끌어안으며 멍하니 풀린 눈으로 부비적거리던 그녀가, 무언가 눈치를 보는듯 이리저리 주변을 둘러보았다. 잠시후 자신의 침대 구석의 틈에 불쑥 손을 넣더니, 이리저리 틈 속을 휘저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채 그저 멍하니 물건을 찾던 그녀의 손에 무언가 걸리자, 옅은 미소가 그녀의 보조개에 살짝 걸렸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팔을 올려 물건을 들어올렸다. 그리고서는 마치 어릴적 자신이 처음으로 선물 받은 소중한 곰인형을 끌어안고 자는 아이처럼 품속으로 그것을 끌어당겨 안았다.

“미안해 지휘관...그렇게 막 성냈는데...지휘관이 찾는 물건은 사실 내가 가지고 있어...”

몽롱한 시선으로, 다급하게 속옷을 찾던 지휘관을 상상하며 부끄러워하는 416의 양손에 쥐어진 물건은 다름아닌 그가 그토록 고민하며 애걸복걸 찾던 속옷이었다.

“이런 일...만약 들키기라도 한다면 절대 용서해주지 않겠지?”
"아까는...모른척했는데...읏..."

숨소리가 주변에 들릴 정도로 뜨겁게 새어나오며 그녀의 두꺼운 장갑은 서서히, 그러나 마치 그걸 원한다는 듯이 그녀의 새하얀 피부로 속옷을 갖다대었다. 흐트러진 하늘빛깔의 머리카락이 움찔거리는 그녀의 얼굴과 어깨에 맞춰 이리저리 흔들렸다.

"으읏....읏....크흡...”

그렇게 가까이 대지 않았는데도 짙게 베여나오는 그의 강렬한 수컷의 내음이 그녀의 비강을 뚫고 들어왔다. 안그래도 몽롱하던 정신이 더욱 더 헤이해질것만 같았다. 그 강렬한 내음이 전신에 퍼지며 마치 지휘관이 그녀를 부드럽게 부끄러워하는 얼굴에서부터, 가녀린 새하얀 목덜미의 선을 타고 쇄골로 내려와 어루만져주는것만 같은 느낌에 무심코 그녀가 다른 한 손으로 입가를 틀어 막으며 눈물방울을 찔끔 흘렸다.

“...으읏...지휘관...지휘관의 속옷...하으으...햐앙...”

부비적 거리는 손놀림이 점점 거칠어지며 울상이 된 그녀의 두 눈가에서 또록 눈물이 뺨을 타고 한줄기 빛을 그려놓았다. 격렬해지며 내뱉는 숨결은 멀리서도 희미하게 보일정도로 새하얗게 서리고 있었다. 작은 턱에, 붉은 홍조끼를 띈 오른쪽 뺨에, 오똑하게 잘 세워진 콧대에 한번 부비적거릴때마다 이따금 웅크린 작은 체구가 움찔거리며 새하얀 숨결과 신음소리를 내뱉곤 했다.

“읏, 크읏....햐아앙...으으응...미안해요...지휘관...흐윽...지휘관...지휘관님..."

부비적거릴때마다 천에서 스며나오는 수컷의 구린 체취가 점점 농후해지며 그녀의 비강을 살며시 자극시킬때마다, 416은 평소와는 다른 하이톤의 얇은 소리가 흐느끼듯 새어나왔다. 혹여라도 누군가 들을까봐 조마조마하는 마음 너머로는 그 순간의 긴장감이 그녀의 달아오르고 있는 몸을 더욱 더 가속시키고 있었다.
새하얗고 부드러운 볼살에 자그마한 원을 그리며 속옷의 촉감과 향기를 느끼던 416은 전신을 비틀어대며 자신의 다른 한손으로 상의를 조심스럽게 천천히 벗어나가기 시작했다. 조심스럽게 천천히, 자신의 전투복에 달린 단추를 하나씩 풀어나갈때마다 죄여오던 압박감이 서서히 풀려나오며 그 자켓이 흐트러져대었다.
세번째 단추가 풀리자, 꽁꽁 싸매여져있던 그녀의 완만한 곡선을 그리던 예쁜 가슴이 자기주장을 하듯 봉긋 튀어나왔다. 그 주변을 감싸던 검은색의 수놓은 레이스가 달린 속옷 사이로 연분홍색의 유륜이 투명한 천 사이로 비치며 주변 사람들을 유혹할것만 같은 자태를 뽐내었다.
416의 한손은 지휘관의 속옷을 부드럽게 부비며 천천히 그 체취를 들이키고, 다른 한손으로는 봉긋하고 예쁘게 드러난 가슴을 부드럽게 휘어잡기 시작했다. 잡은 형태의 모양으로 변한 가슴을 천천히, 부드럽게 돌리자 그녀의 분홍색 옅은 입술에선 희열과 탄식의 소리가 봇물처럼 주욱 터져 나왔다. 참을 수 없다는 듯 거칠게 내뱉는 숨소리와 쪼르륵 새어나오는 눈물은 그녀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사람에 대한 굶주림과 인내, 깊이 감추고 숨겨두었던 사모하는 마음이 얼마나 사무쳐있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읏...읏읏....흐엥....흐야아...지휘관니이임...지휘관니이임...”

연신 지휘관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며 분홍빛이 도는 뽀얀 유두를 레이스가 달린 속옷 사이로 들어간 손가락으로 튕기고, 때때로 약하게 잡아당기며 가슴으로부터 오는 감각에 들썩이던 416의 시선이 문득 자신의 매끄러운 허벅지로 쏠려왔다. 지휘관의 반나절동안 입고 있던 위험한 촉감과 강렬한 채취를 탐닉하던 416의 마음에 반응한건지 가느다라면서도 잘 빠진 허벅지의 선을 타고서 끈적거리는 투명한 액체가 침대의 시트에 얼룩을 남겼고, 커피색의 스타킹 올을 차례차례 하나씩 엮어가고 있었다. 순간 416의 복부가 무언가에 맞은듯 쿵 하고 세차게 두드리듯 쑤셔오기 시작했다. 416의 떨리는 목소리가 간절히 원한다는 듯 작게 새어나왔다.

“아...아직 저녁 먹으려면 시간이 남았는데...아래가 이래선...”

조심스럽게 가슴을 움켜잡던 손을 천천히 떨구어, 자신의 허벅지를 타고 내려오던 투명한 액체를 살짝 휘져어 올렸다. 이따금 야릇한 소리를 새어나오지 않게 연분홍색의 입술로 꾹 누르며, 검지와 중지 사이로 끈적거리며 가느다란 얇은 실을 만들어내는 모습에 416의 동공이 살짝 흔들렸다. 이성의 끈이 하나둘씩 얽힌 매듭이 풀려나 끊어지려 하듯, 참을 수 없다는 듯한 풀어진 얼굴로 자신의 치마 속 아래의 둔덕을 손가락으로 한번 훑어지나가자, 질척거리는 소리가 416의 귓가를 지나며 그녀의 몽롱한 마인드맵을 더욱 더 자극 시켰다.

“...이대로 지휘관이 날 부른다면...어떻게 가야하지...? 행여나 너무 늦는다면서 만약 방 안에 오시기라도 한다면...”

망연자실하며 자신을 질책하는 따끔한 말투와 다르게, 속이 타들어가며 더욱 간절히 원하는 그녀의 손가락은 이미 젖어버린 음부를 조금씩 질척이며 훑어가고 있었다. 찌걱찌걱대며 점점 더 많은 실과 줄기를 만들어내는 그녀의 음부의 이따금 손가락이 입구의 틈 사이로 옅게 들어갈때마다, 문 밖으로 새어나갈듯한 교성으로 그녀는 스스로를 위로하며 애타게 지휘관의 이름을 불러대었다.
허리가 활처럼 휠때마다 그녀의 입가에서 탄식과 희열의 교성이 터져나오며 그녀 자신을 놀래키고 있었다. 누군가가, 404 소대원들이, 자신이 그토록 애정하던 지휘관이 자신의 방에 들어와 이런 음란하고 변태스러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까봐 너무나도 두려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손가락은 전혀 멈추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런 생각에 그녀의 손가락은 점점 질구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그녀의 본능을 돌기에 비비며 각인 시키기 시작했다.

"햣...햐앙...햣...햐아아아아아...너무 좋아...이런 생각이 오싹하게 만들고 있어...앗...응...으으으앙..."
"들키면 안되는데...들키면 안되는데 오히려 아래쪽은 지휘관님한테 들켜하고 싶어하는거가타...으에엥....햐응..."

자신의 추태를 적나라하게 지껄이며 희열과 쾌감의 늪에 점점 빠져들어가던 그녀의 시선이 문득 쉬어가고 있던 한 손에 쏠려있었다. 지휘관의 속옷 가운데, 소변을 편하게 보기 위한 속옷 구멍에 그녀의 가느다란 두 손가락이 삐져나와 까딱거리고 있었다. 그 순간, 416의 얇은 입술 아래로 그녀의 체액이 슬그머니 고어더니, 턱 아래로 천천히 주르륵 흘러내렸다. 마치 지휘관의 솟아오른 음경을 연상시키던 그 두 손가락에 조그마한 혀를 가져다 대며 이리저리 핥기 시작했다. 제대로 된 행위를 해본적 없어 어색하게 손가락의 윗부분부터 아래로 살짝 흝어대며 천천히 그녀의 입 안으로 손가락을 혀로 감고 말아넣었다 빼기를 반복했다. 지휘관의 속옷에서 풍겨나오는 체취가 두 손가락에 묻은 채 가까워지며 그녀의 코와 입 안을 자극시켰다.

"이러니까 마치…정말로 지휘관의 자지를 물고 있는거 같잖아...?"

묘한 느낌의 상상에 416의 허리가 요염하게 들썩거리며 가쁜 숨을 빠르게 내뱉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모양새는 정말로 지휘관의 자지를 이리저리 핥아대는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 생각에 416의 눈동자의 초점이 흔들리며 침으로 가득한 혓바닥으로 더욱 더 자신의 손가락을 폭력적으로 유린시켜가기 시작했다.

“츄븝...츄르르릅...으읏...으응...츕....츄우...츄르릅..."

손가락을 이리저리 물고 핥으며 색기가 가득찬 신음소리를 내고 있는 416의 마인드맵은, 그간 404소대의 소대원들이나 임무에서의 전투 같은 생각은 이미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을 믿고 의지해주는 상냥하고 따스한, 때때로 바보같은 모습을 보여주던 그 남자만이 그녀의 마음 속 가운데 자리잡고 있었다.
안젤리아의 피폭 이후, 자신들을 지휘해줄 사람들이 없어질까봐 그녀는 404소대원들에게 그리폰의 전술지휘관에게 합류하라고 지시했었다. 몇번 그를 만난 적이 있지만, 자세하게 그 사람에 대해 알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악몽같았던 내전이 끝나자, 가까스로 찾은 평화에 그와 같이 지낼수 있는 시간들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자신이 생각했던 기대 이상의 사람이었다. 평상시 그녀가 봐왔던 인간들과는 달랐다. 자신이 그저 인형이라는 선입견을 가지지 않고, 마치 자신과 똑같은 사람처럼 친절히 대해주며 신경 써 주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부관이 되어달라고 했을때는 겉으로는 예의상 인사를 차렸지만, 그날 밤 하루종일 잠들지 못할 정도로 두근거리는 마음과 기쁨이 교차하지 않았던가? 지금 내가 하는건 뭐지? 그런 사람에게 더욱 더 이쁘게 보이고 싶고 더욱 더 잘 보이고 싶은건 순수한 욕망에서 나온 것일까? 아니면 짓궂게도 이것도 설계된 하나의 장치인걸까?
그런 그녀의 하복부에, 격렬한 두 손가락의 피스톤질이 세차게 그녀의 젖은 질구 안 주름들을 쓸어내며 두드리고 있었다. 한번 깊숙이 손가락을 질구 안에 쑤셔넣을때마다, 끈적거리며 조금씩 새어나오는 투명한 애액이 시트를 흥건하게 적시며 그녀의 순수하면서도 음란한 욕망을 더욱 더 드러내보이고 있었다. 질내의 주름과 돌기를 한번 훑으며 비빌때마다 작은 입에선 가녀린 교성이 터져나오며 지휘관을 더욱 더 애타게 부르짖었다.

“지휘관...지휘관......지휘관님지휘관님지휘관...으흣...지휘관니이이임....”
"미안해요...당신이 아끼는 부관이...지휘관님의 속옷 훔쳐서...이렇게 음란하게...자위하고 있어요오...햐앙..."

눈물범벅이 된채 희열의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그녀가, 더욱 더 커다란 쾌감을 원하며 부드러워 보이는 체액 범벅의 혓바닥으로 손가락의 펠라를 쉴새없이 해대며, 다른 손으로는 이미 충분히 젖다못해 넘쳐흐르는 질구 속을 계속해서 쑤셔넣으며 사랑을 갈구하는 신음을 지르고 있었다. 이따금 질 내부를 손가락으로 벌리며 기분이 좋아질 약점을 두드릴때마다, 416의 허리가 음란하게 튕겨대며 이리저리 몸을 베베꼬았다.

“으읏….햐아앙…..으게엑……으흣…ㅁ….못 참겠어어…이런거…여기 오기전엔 전혀 몰랐는데…”
"너무 행복해서...행복해서...흐으윽..."

행복한 비명을 지르며 마치 짐승처럼 격렬한 행위에 절여진 416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울려퍼지며 그녀에게 속삭이듯이 들려왔다.

저기, 너 이대로 지휘관이 목덜미를 부드럽게 훑어줬으면 좋겠지? 이대로 지휘관의 혀가 거칠게 네 혀를 유린하며 가득가득 채워줬으면, 이대로 지휘관의 손가락이 풍만하고 봉긋한 두 유방을 짓궂게 잡아채며 형태가 바뀔정도로 주물러줬으면, 이대로 지휘관의 손가락이 흥건하게 젖어 새어나오고 있는 보지에 들어와 질척일정도로 휘저어줬으면, 이대로 지휘관의 자지가 그대로 뚫고 들어와 격렬하게 젖어버린 보지를 유린하면서 안아줬으면, 이대로 지휘관의 정액이 텅 빈 자궁 속을 가득 채워줬으면 좋겠지?

"흐읏...흐으응...아냐...아니야......"

왜 그렇게 부정해? 사실, 누구보다도 따뜻하게 사랑 받고 싶었던건 너 아냐?

"으응...햐아응...아니야...그렇게 음란하게 받고싶은게 아냐..."

거짓말쟁이, 너무 서툴러. 사실 그렇게 당하고 싶었잖아? 낮에는 충분히 지휘관이 널 아껴주고 안아주며 사랑해주니까, 욕심이 마구마구 솟아났으면서.

"끗....끄그으으으으윽....흐으......"

언제까지 그렇게 자기 마음을 굳게 닫고 있을래? 언제까지?


속삭이는 목소리가 점점 강렬하게 자신의 머릿속을 때려가며, 마치 자신을 쾌락의 늪으로 빠뜨리려는 악마처럼 온 몸을 유린시켜갔다. 저항하려는 정신이 약해지며, 머릿속으로 격렬하게 지휘관이 자신의 부드러운 속살과 봉긋하게 솟아오르는 가슴, 그리고 그 위에 빳빳하게 세워진 유두의 돌기들을 꼬집으며 격렬한 피스톤질을 당하고 있는 자신을 생각하자 한차례 더 격하게 허리를 튕기며 얼굴이 천장에 보이게끔 몸을 옆으로 굴렸다. 질구 내의 돌기를 재빠르게 유린하는 손가락은 멈출 틈이 없었고, 이제는 침범벅과 지휘관의 체취가 지독하게 베인 손가락을 미친듯히 입과 혀로 애무하는 그녀의 눈동자에는 고조된 감정과 행복감, 사무친 마음이 뒤섞인 눈물이 주륵주륵 뺨을 타고 시트를 적셔가고 있었다.

“햐아앙…안돼….안돼안돼…으그긋…햐앙…안돼…더 이상은…아아앙….”

"미안해요 지휘관니이이임, 사실 지휘관님한테 격렬하게 당하고 싶었어요오오..햐아앙...아앙..."
"지휘관님한테 거칠게 어루만져지면서 사랑받고 싶었어요...흐으으윽....흐에에에엥....아앙...."
"지휘관니임..지휘관님지휘관님지휘관님지휘관님지휘관님지휘관님지휘관님지휘관님지휘관님지휘관님지휘관님지휘관님지휘관님지휘관님지휘관님지휘관님지휘관님지휘관님지휘관님지휘관님지휘관님지휘관님지휘관님지휘관님지휘관님지휘관님지휘관님"
"안돼....안돼안돼안돼...지휘관님 때문에 가버려어어.."

그 순간 그녀의 교성이 끊기며 그녀의 두 눈동자가 크게 열렸다. 허리가 뒤로 젖히며 봉긋한 가슴이 탄력있게 그라인드를 그리며 천장을 향해 솟구쳤고, 찌걱거리며 음란하게 질척이던 보지 속에서 하염없이 조수가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연신 몸을 부르르 떨며 고개를 뒤로 젖히고서는 입을 다물줄 모르던 그녀의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뚝뚝 고운 뺨을 타고서 흘러내렸다.

“아학…..아하악….으….으응….으엣……하아…..”

간신히 할수 있는것이라곤 가파르게 숨을 고르면서 겨우겨우 얇은 신음소리를 내는것뿐인 416이 이내 허리를 숙이며 그대로 힘없이 침대에 풀썩 늘어져버렸다. 페르시카와 리코는 대체 무얼 만들고 싶었을까, 사람과 거의 완벽한 쾌감이 전신을 애무하며 쓸어담듯 그녀의 모습은 이따금 경련을 일으키며 쉽사리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가련하게 입술을 뻐끔뻐금 거리던 416이 조금은 진정된 듯 행복한 미소를 지으면서 무언가를 향해 실없는 웃음을 흘려보냈다.








“하아….하아….또 저질러버렸네…”

어질러진 주변을 바라보며 한숨을 짓는 그녀의 얼굴엔 어딘가 그늘이 져 있었다. 숙소에서는 특유의 그녀의 냄새가 어지럽게 퍼져있었고, 침대 시트에는 416의 흔적과 체액이 고스란히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에겐 그런것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이런다한들 지휘관에게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건 아니라는 것, 어차피 제자리걸음일게 뻔한건데…이제 지휘관은 404소대의 비공식적인 전담지휘관이 되었다. 그런 바보 같은 모습은 이제 버려야해, 좀 더 냉철해질 필요가 있어...그런데도, 그런데도 416의 가슴 한켠엔 자신을 따뜻하게 맞이해주며 미소를 지어주고, 자신을 따스하게 안아주는 지휘관의 모습이 아련거리며 남아있었다.

“으긋….으흐흑….”

어느새 416의 두 눈가에서 눈물이 그렁거리며 맺히고 있었다. 방금전까지의 쾌락은 잊혀진채 마음 속에선 자신의 추태와 지휘관에 대한 그리움, 그저 상상으로밖에 할 수 없는 두 사람의 관계가 그녀의 마음을 후벼파며 격렬하게 가슴 속을 찢어발기는것만 같았다.

“좀 더...더 가까이 가고 싶어...”

“지금도 충분히 행복하지만, 조금 더 그와 깊어지고 싶어..."

"인형일뿐인거 알아...인형일 뿐인거 아는데...그래도...그가 너무 좋은걸..."

온갖 생각들이 마인드맵 속을 휘젓고 다니자, 416은 몸을 웅크리며 홀로 끅끅대며 울기 시작했다.







"......저기...이제 다 끝났지?"


“…….지휘관?!”


"......하아...."





눈이 마주친 지휘관의 표정은 매우 당황스러워보였다. 매끄럽지 못한 헛기침을 한번 하더니 부끄러운 듯 고개를 홱 하고 돌려버렸다. 방금전까지만 해도 희열과 행복감에 흔들리던 두 눈동자는, 이제 수치와 부끄러움, 그리고 가장 좋아하던 상대에게 들켜버렸다는 사실에 공포와 충격으로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저….저….저기 지휘관….?”

떨리는 목소리로 지휘관을 불러보지만, 그는 여전히 시선을 맞추지 못한채 고개를 돌리고서는 푹 숙이고 있었다.

“저…..뭐라고 한마디라도 좀 해볼래….? 그…그러니까….어….어어…어디서부터 본거야? ㅇ…아니….언제부터 본거야?”

몸을 급습하는 당혹감에 말조차 꼬여버린 416이 다급한 마음에 지휘관에게 재촉하듯 질문을 던졌다.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떨구던 지휘관은, 그녀가 침대 시트에서 자신의 도둑맞은 속옷을 꺼내들때, 제대로 세탁하지 않은 속옷의 체취를 깊게 들이키며 몸을 부르르 떨때, 상의를 천천히 탈의하고서는 자신의 몸을 어루만지던 때, 지휘관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의 욕망을 아낌없이 부르짖으며 가버리던 때, 일이 끝나고 자기는 왜 다가갈수 없냐며 웅크려 오열하던 때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보았다며 416에게 스스럼없이 말해주었다.

“…거....거짓말이지?"

416의 표정이 급격하게 굳어지더니, 마인드맵에 심각한 오류라도 생긴마냥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몸이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전부…전부 봤다고? 처음부터 끝까지…하나도 남김없이? 그것도, 자기가 가장 좋아하던 상대에게?

“저기…진짜야? 진짜로 다…본거야??”
“......”
“거짓말이지? 분명 방문은 닫혀 있었을텐데......”
"...분명 난 노크를 세번이나 하고 없는 줄 알고 문을 열고 들어왔는데요..."
"아....아아아아??? 지....진....ㅉ...."
"그보다...왜 내 속옷을 훔쳤는지...그걸로...ㅇ....으....ㅈ....자...”

부끄러워하면서도 HK416을 연신 추궁하던 그가, 입에 담기 힘들어보이는 단어를 뱉으려하자 고개를 푹 숙이며 목소리를 점점 줄여나갔다.

".....아깐 그렇게 나한테 잘도 화내면서 모른척 했겠다..."

“....흐구...흑....흐에에엥....흑....흐규....”

갑작스럽게 터져나온 그녀의 어린아이 같은 울음소리와 눈물에, 당황한 지휘관이 한발 뒤로 발걸음을 주춤하며 고꾸라졌다.

“지휘관님...지...지휘관님...정말로...어...정말로...미안해요...흐이잉...흑...으에엥...”

부들부들 떨며 지휘관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울음을 터트리며 계속 사과를 하는 HK416의 모습에 지휘관의 얼굴엔 그저 당황한 기색만이 맴돌고 있었다. 추궁해야하는 것도 잊은채 지금 HK416을 어떻게 해야하나 그저 가만히 서서 망설이고만 있었기 때문이다.

“미안해요오...흑....흐윽...부관으로써 이미지도 있는데...부관이란 인형이...흑...으흐흑...”
“HK....”
“미안해요....으흑...흐에엥...어떤 처벌이라도 받을테니까...흑...해체되어도 좋으니까...제발...제발 지휘관님...용서해주세요...으흑...”

어린아이처럼 쓰러져 하염없이 울음을 터트리는 그녀가, 지휘관은 순간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도 가련해보였다. 처음 그녀의 모습을 보았을때 손에 들린 속옷을 보고 잠시 충격이 그의 머리를 세차게 가격한것만 같았고, 잠시 뒤 믿었던 그녀에 대한 배신감이 물밀듯 쏟아져 들어왔었다. 어떻게, 어떻게 그렇게 모른척하면서...
지금은 달랐다. 연신 지휘관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며 안아주기만을 바랬던 그녀의 모습에, 마음 속에서 타오르던 분노는 사그라들었다. 방 안에서 그녀의 진심어린 고백을 들었을땐 그토록 그녀가 왜 자신의 부관이 되고 싶어했는지 이제서야 이해가 갔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일단은 조금이라도 추궁해야지 하고 단단히 굳게 마음을 먹고서 그 행위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HK..."

이상했다. 그녀의 진심어린 고백과, 아이처럼 순수하게 울음을 터트린 모습에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무언가가 자신의 마음속에서 싹틔어 자라나는 것만 같았다. 허리를 숙여 자신의 바지를 잡고 용서를 비는 HK416을 일으켜세웠다. 두 눈에 아직도 흐르고 있던 눈물을 엄지 손가락으로 천천히 부드럽게 쓸어 넘겨주었다. 그리고서는 자신의 두 팔로 가녀리게 떨고 있는 그녀의 작은 몸을 껴안아주었다.

"지...지휘관님...?"

"일단...일단...진정하자. 이야긴 나중에 할테니까...진정하고...진정되면 이야기해줘."

진정될리가 없었다. 가슴 깊이 자신을 꾹 끌어안아준 지휘관에게 너무나도 미안했다. 그가 부드럽게 닦아준 눈가에 뜨거운 눈물이 또 다시 새어나오며 복받친 감정을 토해내려하고 있었다. 참을 수가 없었다.

결국 지휘관은 그 날 저녁도 먹지 못한채, 한참을 울어대는 HK416이 지쳐 잠들때까지 그녀를 토닥이며 안아주었고, 그의 빈 자리는 밀려오는 작전보고서를 겨우 끝낸 카리나가 심통맞은 표정으로 지키고 있었다는건 훗날 그녀에게 직접 듣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