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도 끝도 없이 난관에 처했을 때. 빼도 박도 못하고 나서지도 물러서지도 못하게 됐을 때, 사람들은 보통 눈앞이 캄캄해진다
고들 한다. 아무것도 없는 망망대해에서 구명선 하나 없이 표류한 것만 같은 기분. 벼랑 끝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봐야만 하
는 아득한 막막함.


‘……아드레날린 한 대 더 놔 줘.’


그런 것들을 마주보아야 하는 기분이 얼마나 엿 같은 지는 굳이 말로 설명하고 싶지 않다. 그런 비현실적인 기분을 현실적인
단어로 묘사하려면 표현이 꽤나 부족할 테니까.


‘난 아무것도 두렵지 않아. 나와 싸구려 인형 몇 개로 이렇게 많은 적들을 지옥으로 끌고 갈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해…… 네가 어떻게 하든 난 결국 승리하는 거야!’


하지만 그 반대를 설명하라면, 내 기분이 닿는 한 얼마든지 설명할 수 있다.


궤멸된 아군 병력을 추스르고 역공에 성공했을 때. 벽처럼 느껴지던 푸른 파도를 C4 몇 개라는 도박에 맡기고 뛰어넘었을 때. 스치기만 해도 찢겨나갈 것 같은 돌풍 속을 가까스로 헤치고 나왔을 때.


‘지휘관니임!!!’


정말 그런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면 긴장이 풀려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간다는 말도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지나친 막연함에 압도당해, 상황에서 벗어났는데도 왜 자신이 이곳에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자네는 확실히 우리에게 꽤 큰 가치가 있다. 우리 국가를 위해, 그리고 그보다도 고위의 사업을 위해 봉사해야 마땅하다.’


멈춰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리 아래는 걷고 있는가 하면, 심사숙고 해야지 하는 질문을 반쯤은 반사적으로 내뱉어 버리기도한다. 분명 잠을 못자 심란해 하고 있었는데, 깨닫지도 못하는 사이 잠에서 깨어나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일도 다반사다.


넋이 빠져 정신이 나간 상태. 그 상태에서 천천히 넋이 돌아오고 잃었던 이성을 되돌리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두가지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 난관에서 벗어났다는 걸 마침내 받아들이고 안도하거나. 벗어났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해 스스로 그 난관 속에 다시 한 번 자신을 가두거나.


‘지휘관님…….’


‘…….’


유감스럽게도 나는 후자였다.










창문 하나 없는 독방에서의 아침은 꽤나 절망적일 것이다.


아침이 되어도 빛 하나 들어오지 않고, 끝없이 기다려도 밤에서 벗어나질 못할 테니까.


밤에서 벗어나려고 스위치를 눌러 방의 불을 켠다 한들, 갑갑할 정도로 좁은 방안을 둘러보고 있노라면, 차라리 어두운 게 나았다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르지.


“…….”


그리고 아모스의 아침은 어느 의미로는 독방의 아침과 같았다.


창문이 없다던가. 혼자 쓴다던가. 주거의 자유나 신체의 자유는 보장되고 있지만,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어딘가에 묶여있는 것 같은 삶을 산다고 느끼고 만다.


물론 아모스 내에 창이 있는 개인실도 많고, 경우에 따라선 인형들도 2인실을 쓰는 일이 없지는 않다. 어디까지나 사전적인 의미에서나 통용되고 비유적인 의미에서 하는 말일 뿐이지만, 아모스를 감옥에 비유하는 건 내가 지휘권자라고는 해도 아모스에게 큰 실례일지도 모른다.


창문은 없다고 해도 커다란 디스플레이는 있으니까. 잠에서 깰 무렵이면 푸른 바다 속을 보여주는 저 전자적 창문은, 밀실인 것조차 잊게 만들 정도로 아름답다.


“으응…….”


그리고 푸른빛을 받으며 잠꼬대를 하는 나신의 여인은 그보다도 아름다웠다.


“…….”


한 순간 10년 전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땋아 올린 머리를 풀어헤치니 너무나도 익숙한 여자 아이의 모습이 있어, 어제 새벽 한참 들여다본 것도 잊고 나도 모르게 그 모습을 빤히 쳐다보고 말았다.


이렇게 보면 또 아무 것도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은데, 10년 사이에 뭐가 달라진 걸까.


“…….”


내 방으로 데려와 옷을 벗기긴 했지만 결단코 거기에 흑심이 있어서는 아니다.


외투와 스타킹을 벗긴 건 그저 불편할까봐. 와이셔츠의 단추를 풀고 브라를 벗겨준 건 혹여나 자면서 답답할까봐. 이불을 덮어주며 그 커다란 가슴을 한 번 주무른 건…… 솔직히 말하자면 그냥 주물러보고 싶다는 내 개인적인 흑심이 없진 않았다. 생각해보니 땋은 머리를 풀어준 것도 문득 머리를 풀고 다니던 예전의 모습이 보고 싶어져 한 것뿐이었다.


그래도 그게 다였다. 그저 손만 잡고 있어도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침대 위에 웅크려서 쌕쌕 숨을 몰아쉬는 카린을 보고 있자면 그저 마음가는대로 범하고 싶다는 충동이 끓어올랐지만, 그래도 잠든 카린에게 몹쓸 짓을 하진 않았다. 끌어안고 자긴 했지만 그 외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번뇌에 시달려서 그런 거니 이 정도는 이해해줬으면 하는데, 이해해줄까?


“응…….”


돌연 비몽사몽한 얼굴을 한 카린이 스르르 눈을 떴다.


아모스를 떠난 카린의 입장에선, 퍽이나 낯선 천장이었을 것이다.


“……?”


“…….”


“……!”


잠깐 멍한 눈으로 날 바라보던 카린은 자신의 상황을 자각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가, 속옷 하나 제외하곤 전부 헐벗은 자신의 몸을 보곤 당황하며 이불로 몸을 가렸다.


“다, 당신.”


“…….”


“저, 저한테, 이상한 짓…….”


더듬으며 떨리는 말소리. 새빨간 홍조를 띄고 노려보는 도끼눈. 그러면서도 부끄러워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우유부단함.


“안했어.”


“…….”


“아무 짓 안했어.”


아침이었다.


“끌어안고 자긴 했지만.”


“한 거잖아요! 변태!”


이해해주지 않는 모양이었다.


슬펐다.






그 후 카린은 이것저것 잔소리를 늘어놓다가, 제 풀에 지쳐 부끄러워졌는지 그만두었다.


‘욕실 좀 쓰게 해줘요.’ 포옥 고개를 숙인 채 그렇게 중얼거리는 게 너무 귀여워, ‘같이 들어갈까?’ 하고 농담을 했다가 괜히 이불을 뒤집어쓰고 얻어맞기도 했다.


“…….”


이것도 내일까지겠지.


가까스로 화해는 한 것 같지만, 내일이면 카린도 아모스를 떠나야만 한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맨몸을 드러내고 막연하게 얘기할 수 있는 것도, 어쩌면 개인실의 저 문을 지나기 전까지 일지도 모른다.


공사는 구분해야 한다. 오히려 지키지 않으면 곤란해지는 건 이쪽이다. 애초에 카린의 현재 신분은 내가 반말이나 할 수 있을 위치도 아니다.


나는…….


“에?”


정신을 차려보니 또 마음에 걱정 근심을 매달아 가라앉히고 있었다. 나는 어떻게든 그것을 떨쳐내려 몸부림쳤다. 나도 모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그 행동의 결과가 눈앞에 드러났을 때 난 숨을 멈추고 말았다.
“뭐, 뭐하는 거예요? 분명 들어오지…… 말라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물에 흠뻑 젖은 카린은, 벽에 등을 기대고서 처량하게 겁먹은 눈으로 날 올려다보고 있었다.


“…….”


“…….”


내가 지금 무슨 얼굴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화, 화났어요?”


“화 안 났어.”


화난 얼굴인 걸까? 오히려 배가 고파 죽을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을 것 같았다.


“그, 그럼 다행인데.”


“…….”


“저기…….”


그저 일시적인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여, 역시 이건 아닌 것 같아요, 지휘관님…….”


어찌 됐건 암묵적으로 화해했으니까. 어색한 것도 그저 잠깐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어젯밤에 그런 일이 있었다곤 해도, 이렇게 한 번에 허물없이 다가오는 건 아닌 것 같아요.”


하지만 내 가슴팍을 조심스레 밀어 내는 모습은, 어떻게든 상처주지 않으려 누그러진 말로 달래는 카리나의 모습은 어색함따위가 아니었다. 그 태도는 어른스러운 태도였다. 10년간의 골을 그저 하루아침에 메울 수는 없다는, 거리감을 표하는 태도였다.


“그러니까…….”


그런 걸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흣?!”


카린의 호흡이 닿는 거리까지 걸어 들어갔다. 밀어내던 손을 붙잡고서 벽에 몰아붙이고, 어깨를 붙잡아 도망가지 못하게 막아 세웠다.


“지, 지휘관님…….”


“거짓말.”


아픈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은 남녀가 서로 다르다고 했다. 남자는 덮어서 숨기고, 여자는 가슴 속에 묻고 산다고, 누구한테들은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렇게들 한다고 들었다.


그리고 미처 언급하지 못했던 사실이 있었다.


“그럼 그 목걸이는 뭔데?”


와이셔츠 사이로 살짝 드러나던 목걸이의 사슬. 그리고 이젠 가릴 것 하나 없이 가슴 위에 놓인 그 목걸이는 내 손가락에 끼워진 것과 똑같은 반지 하나를 매달고 있었다.


“이건…….”


변명이 되지 않을 걸 알 것이다. 그냥 어쩌다보니 계속 갖고 있었다거나, 벗어놓으려 했는데 미처 벗어놓지 못했다는 말은 안할 것이다.


“10년을 참았어.”


“…….”


“보고 싶은 것도, 닿고 싶은 것도, 안고 싶은 것도. 10년을 묻고 살았어.”


그러니 이 안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이 방 안에서라면, 서로에게 무슨 짓을 해도 괜찮지 않을까.


“카린, 나는…….”


스스로가 추잡하고 꼴사나웠다. 발정난 원숭이도 아니고 뭐하는 걸까. 자기혐오만이 마음속에 남아 비참하게 만들었다.


“나는 너 없인 안 돼.”


하지만 카린이 날 받아들일 수 없다는 건 더 싫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눈앞에 두고도 다가가지 못한다는 건…… 너무 아팠다.


“…….”


쏟아지는 물소리 사이에서, 몇 번이고 숨을 삼키고 심호흡을 다잡는 소리가 들렸다.


“……어제 새벽엔 저만 했었죠.”


머리를 적시는 감각이 조금 달라졌다. 물의 흐름이 바뀌었는지, 후두둑, 카린의 손을 따라 물이 바닥을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천천히 아래를, 가랑이 사이를 더듬는 손가락.


다행히도 의도적으로 뻗은 손길을 실수 취급하고 넘어갈 생각은 없는 듯 했다. 카리나는 구슬과 막대를 조심스레 어루만지더니, 부끄럽다는 한숨과 함께 말했다.


“조금만…… 이에요.”


소설작가, 희곡작가, 그리고 수많은 이야기꾼들은 이야기를 써내려가면서 한 가지 원죄적인 저주를 짊어지게 된다고 한다. 셰익스피어의 저주라는것이 바로 그것인데, 이미 선례로 수많은 클리셰의 기초들이 다져지고 만 끝에, 모든 이야기가 좋든 싫든 정해진 클리셰 안에서 순환되어 이루어진다는 저주이다. 클리셰라는 걸 어정쩡하게 벗어나려하면 그저 삼류작이 되어버리고, 훌륭하게 그것을 타파하여 클리셰의 틀을 벗어나게 된다해도, 그조차 클리셰 파괴를 위한 클리셰가 되어 결국엔 틀 안에 도로 갇히게 될 뿐이라고 한다.


우스갯소리로 셰익스피어가 써 내린 진짜 비극은 4대 비극이 아닌 그 쪽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나.


“응…… 츄웁, 쯉…….”


새삼 다행스러웠다. 내가 펜을 잡는다고 해봤자 나오는 건 수필 정도일 테고, 그마저도 루련 당국의 민감한 대외비 때문에 쓰여질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걸 생각하면 내가 그 클리셰의 저주에 놀아날 일은 없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남자들이 자기 여자에게 갖는 섹스판타지는 클리셰라는 말조차 거창할 정도로 천박한 틀 안에 박혀 있었다.


“츗, 츄흣, 응무…… 후아.”


책상 밑에 숨은 카린이 어떻게 내 물건을 물고 핥아댔었는지, 그 필사적인 표정이 어땠고 성감대를 자극당하는 감각이 어떠했는지는, 10년이란 세월을 지내면서도 결코 흐려지는 일이 없었다.


“츄룹. 하움…… 응.”


가슴팍을 때린 물이 튀어대며 카린의 머리를 적셨다. 몸을 타고 흘러내린 물줄기는 배를 스친 후 음경 끝에 매달려 방울졌다. 카린은 무릎을 꿇고 내 물건을 입에 물었다. 마치 급수기를 핥는 고양이처럼. 봉사로 시작한 펠라치오였지만 갈증을 느끼듯 혀를 움직이는 방식에 묘한 조급함이 느껴졌다.


“으응……!”


눈꺼풀에 물이 튀자 카린이 움찔했다. 한쪽 눈은 감고 다른 한쪽 눈을 치뜨며 올려다보는 광경에, 한순간 잔잔해진 인내심의 표면이 술렁였다.


할짝, 할짝. 한쪽 눈을 치뜬 채 힘줄을 가볍게 건드리는 혀끝. 물을 흠뻑 뒤집어 쓴 머리에 손을 올려 쓰다듬으니, 카린은 페니스를 입에 문 채로 눈을 꼭 감았다.


아랫배와 허리를 감아 돌며 저릿하는 쾌감.


“…….”


숨이 찼는지 카린이 페니스를 입에서 떼고 숨을 몰아쉬었다.물건에 들러붙어있던 타액이 잠깐 진득이 늘어지다가 흐르는 물에 씻겨나가자 뭔가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쪽, 고개를 좀 더 숙여 입술이 가볍게 구슬에 닿는다. 새끼고양이가 품속에 파고들 듯 페니스 아래를 코끝으로 문지른다. 올려다보는 눈 속에서 흘끗 모습을 드러내는, 흐르는 물로도 끌 수 없는 거센 불길. 예속되듯 복종하는 것만 같은 그 자세에 양물이 한층 더 커지는 것을 실감하고 만다.


나는 수도꼭지를 돌려 샤워기의 물을 잠갔다.


“꺅……!”


움찔거리는 물건 끝이 카린의 뺨을 스쳤다. 날뛰지 말라는 듯, 카린은 까딱거리는 물건의 머리끝을 부드럽게 입술로 덮은 후 사탕 빨 듯 내 물건을 쪽쪽 빨아댔다.


난 카린의 머리를 양손으로 붙잡고 손을 떼지 않았다. 잡고서 되는대로 허리를 막 박아댄다거나, 목 끝까지 집어넣는다거나 하는 건 지나치게 가학적일뿐더러 카린에게도 힘들 테니 하지 않았지만, 그저 기분만 내는 느낌으로 머리를 잡고 조금씩 앞뒤로 흔들어 보기는 했다. 카린도 그 정도 강압은 눈감아주는 건지 내가 살짝 머리를 움직일 때마다 약간 더 괴로운 신음을 내뱉는 등 어울려주었다.


“우웁, 읍, 으뭅!”


타자기를 두들겼던 고운 손이 이제는 자지를 훑고 있었다.


피아노 대신 클라리넷이나 플루트를 연주해도 꽤나 섹시했을지도 모르겠다.


“응흣!? 으으으응!”


하반신이 녹아 없어지는 것만 같았다. 허리의 왕복을 따라 파도치던 혓바닥의 감촉에, 10년하고도 그보다 더 길었던 하룻밤을 억누른 정욕이 불시에 터져 나왔다.


울컥울컥. 끝도 없이 싸질러져 나오는 하얀 정액. 해방감과 함께 뱃속에 토해내지 못했다는 아쉬움마저 함께 느껴야만 하는 허무하면서도 충실한 사정행위. 아쉬운 마음에 아직도 싸지를 게 남았다는 듯 카린의 입속에서 양물을 까딱 대고 있는데, 문득 카린이 눈물을 지으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리고 그제서야, 나는 입에 물린 자지와 분홍빛 탐스러운 입술 사이, 마치 원형 띠처럼 울컥울컥 흘러나오는 정액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으…… 우으…….”


작은 입으로 다 받아내기엔 역부족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 쳐도 그냥 뱉어내면 될 텐데, 뭐 하러 맛도 없는 걸 입에 계속 물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민감해진 귀두 끝을 마무리하듯 톡톡 핥아대는 혀 끝. 후들거려 넘어질 것만 같은 다리를 어떻게든 바로 세우려 안간힘을 쓰려 하니, 돌연 샤워기의 소음이 멎은 자그마한 샤워부스 안에서 꼴깍, 하고 목을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카, 카린?”


내가 아까 카린을 보고 급수기를 핥아대는 고양이 같다고 말을 했었나. 어쩌면 약간 정정할 필요가 있을 지도 모른다. 고양이가 비록 단맛은 못 느낀다지만, 페니스를 입에 물고 머리를 움직여가며 흘러내린 정을 빨아 마시는 모습이 마치 시럽 꼭지에 달라붙어 꿀물을 빨아대는 고양이처럼 보였다.


꼴깍, 꼴깍, 어지간히 농도가 짙은 모양인지, 제법 뻑뻑한 액체를 삼키는 소리가 그 나름의 존재감을 갖고 여러 번 샤워부스 안을 울렸다. 입 안에 있는 걸 다 삼키는데 세 번, 손과 기둥, 구슬까지 타고 흘러내린 정을 전부 핥아서 정리하는데 네 번, 그리고 아직 요도 안에 남은 것까지 손으로 훑어내며 빨아먹음으로써 다섯 번. 그 다섯 번으로, 사정한 후 물 한 방울 묻히지 않은 자지가 말끔해졌다.


“어…… 어땠…… 어요?”


여전히 페니스를 움켜쥔 채, 흥분된 호흡조차 가라앉히지 못하고, 칭찬과 총애를 갈구하는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카린.


“흐읍!?”


오늘만큼이나 휴가가 간절했던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오늘이 근무일만 아니었다면 앞뒤 잴 것 없이 짐승마냥, 이성 잃은 강간범 마냥 카린의 머리채를 붙잡고 그 탐스러운 엉덩이에 허리를 부딪쳐 댔을 것이다. 그렇게 두어 시간을 샤워부스 안에서 보내고, 아침인지 점심인지 구분도 안 되는 시간에 식사를 하고, 또 돌아서기 무섭게 카린의 옷차림을 헤치고 몸으로 깔아뭉갰을 것이다.


“으응! 응핫! 앗! 거긴……!”


실제로 반은 그렇게 된 것 같았다. 덮친 것도 키스한 것도 전부 충동적으로 벌어진 일이었지만, 그래도 이성의 편린은 남아있었는지 섹스 대신 손장난으로 전날 밤의 애무를 재현해내고 있었다. 한 번 성처리가 이루어졌는데도 나는 또 발정난 개새끼마냥 숨을 허덕이며 카린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카린은 그런 내 시선을 부끄러워하며 차라리 눈을 감고 입술을 맞대기를 선택했다.


“지, 지휘관님! 조금만 천천히…… 아앙!”


남은 건 시간인가.


“너무 거친 건…… 싫어…… 응앗♥


금속이 아닌 육벽에서 흘러나오는 물소리가 언제 멎을지는 알 수 없었다. 시간문제 때문에 섹스 대신 애무를 택했다지만, 그 조차도 이성적인 판단이 맞았을지는 끝을 보기 전까지 알 수 없었다. 결국 흥분감의 끝에 뇌가 익어버렸던 걸까? 어느 순간 생각을 그만두고, 그저 중지와 약지를 미친 듯이 쑤셔대고 있는 내가 있었다.


카린으로서는 꽤나 고생이었을 것이다. 힘들고 지치고 쉬고 싶은데도, 남정네의 손에 붙잡혀서 아침부터 그런 꼴을 당했으니.










뭐 어찌 됐건 내가 그 강제추행스러운 애무를 그만둔 건 카리나가 현기증을 호소하고 나서였다.


안아 든 채 욕실에서 나와 몸을 닦일 생각도 못한 채 침대에 뉘이니, 카린은 눈앞이 핑핑 도는 듯 어지럼증과 매스꺼움을 호소했다.


물을 마시게 하고 한 10분 정도 보고 있으니 다시 괜찮아졌지만…… 결국 그 후 정신을 차린 카린에게 나는 또 한 번 이불을 뒤집어 쓰이고는 너무 과했다며 얻어맞아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