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처럼 소위 깨달았다고 말하는 자들에게

사랑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어본다면

그들은 아마 사랑은 곧 무라고 말할 것이다

이 말은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또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진정한 사랑은 존재함을 넘어서 있기 때문이니까


무라는 것은 침묵이며 지혜이며 사랑이다

무는 충만하며 충만하지도 않다

무는 중심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무로부터 만들어지니까

그러므로 무는 지극히 자연스럽다


무를 바라보는 자는 행복하지도 고통스럽지도 않다

그저 자연스럽고 고요하다.

아니 행복과 고통이 그에게 닿지않는다.


“스승님 해탈은 어떻게 성취합니까?”

그러면 스승님들은 보통

“해탈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깨달음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라고 답한다.


이 말을 하는 이유는

그들의 의식이 오로지 무를 바라보고있기에

그들입장에서는 정말로 그런게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렇게 말할수 밖에 없다.

해탈할 것도 깨달을 것도 없다.


또 왜냐하면 그들은 평생 해탈과 깨달음을 

어떤 것으로 상상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 몇십년의 노력을 하여 그것을

마침내 얻었을 때 자신이 그것이 있다는 착각 속에 

허우적거린 것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저 그 착각을 버리기만 하면 되었을 것을 말이다


집착을 버리면 그것이 자연히 중심에서 빛났을 것인데

좀처럼 그것을 내려놓지 못한다

집착하던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담배피는 걸 못 끊는 사람처럼


논리에 집착하는 철학자들도…

요건 요래서 말이 안되고

저건 저래서 말이 안된다고 한다

이런 것들도 집착이다.

생각은 생각일 뿐이고

논리는 논리일 뿐이다.

그 어느 것도 진리가 아니다.

진리는 논리의 영역을 벗어나 무의 영역에 존재하기에

철학자들은 집착하는 한 결코 진리를 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