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 대한 가치기준으로 인의예지, 도 등으로 결론내리고 이를 이루기 위해 여러가지 제도적 장치들을 만들면서 중앙집권적이며 일원적인 위계질서가 공간뿐만 아니라 사유체계에서도 강하게 내재됨. 조선시대 최고 교육기관인 성균관의 이름의 뜻에서 이런 흐름이 아주 명백하게 보임. 성균관에서 성과 균은 각각 성인재지미취 균풍속지부제의 앞글자를 따온 것으로 인재를 기르며, 풍속을 고르게 한다라는 뜻임. 조금 더 풀이하자면, 모든 사람들(좁게는 성균관 유생들이겠지만 이들을 가르치면서 파급효과가 만인으로 퍼짐, 격물치지 성의정심 수신제가 치국평천하)을 기계적인 평준화가 아닌 모두 완성시켜 100%로 균등하게 교화해버리겠다 라는 뜻임. 이게 서양 근대철학보다는 옥망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유한 편이지만 보편성을 증대하고 타자를 질서에 복속(교화)하려고 했던 점에서 고대 기준에서 매우 근대적이고 계몽적인 학문 아닐까 생각이 듬 오히려 욕망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인간에 대한 이해와 통제에 대해서는 서양 근대철학보다 더 체계적이고 치밀하다고 볼 수 있음


그런데 왜 유학이 지배적인 동아시아에서 서양과 마찬가지로 자연에 대한 조작과 통제를 추구하는 과학과 기술이 발달하지 못했는가? 내 생각에 유학에서 조작과 통제의 초점은 인간과 사회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함. 이런 얘기 또한 총균쇠나 풍우란이 말했던 것처럼 자연환경에 직결되어있는데 유학이 발달했던 중국에서는 한 사람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쉽게 영향이 가고 심지어 치수 못하면 다같이(공동체 단위로) 죽었음. 그리고 공동체를 떠나봤자 어차피 땅으로 연결되어있고 평야가 많아서 어디 벽지같은 데 가지 않으면 기존 인간들이서 벗어날 수 없음 그래서 인간들을 통제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거임. 


그런데 서양철학이 발달한 고대 그리스는 구심력을 가지는 평원이 적으면서 어느정도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에게해 지역의 분포를 가짐. 그러면 결국 가장 중요한 건 무역을 가능하게 하는 바다의 통제일텐데, 여기서 자연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고 생각함. 바다를 이해하지 못하면 역시 죽는데, 배에 탄 사람들만 죽지 공동체 전체가 죽지는 않아서 독립적으로 생각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듦. 또한 폴리스 내부에서 갈등이 생기면 배타고 다른 폴리스로 넘어가거나 심지어 지중해의 그리스 식민지, 이집트, 페르시아 등으로 가버릴 수 있음. 


물론, 중국도 치수문제로 자연에 대한 관심이 없다고는 할 수 없고 또한 그리스도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의 대립에서 보듯 인문환경에 대한 관심이 없다고 할 수 없음 다만 환경적 차이는 무시할 수 없고, 이는 서로 다른 사유의 흐름을 세팅하는 데에 큰 원인이라고 생각함.결국 서양철학은 탈레스가 던진 외부세계의 근원에 대한 질문을 밝히는데 반해 유학은 동양철학의 큰 흐름에 따라 인간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차이가 발생했다고 생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