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위협하는 마왕이 등장하고, 그에 대항할 용사가 등장. 진부한 이야기다.

용사님이 스스로 선택한 동료들과, 국가에서 붙여준 짐꾼 하나가 모험을 떠난다는 이야기 역시 진부한 이야기다.

그리고 역시나, 내가 그 용사파티의 짐꾼인 것도 진부한 이야기다.




**********




'동료를 제물로 바쳐라, 그리하면 열릴지어다.'


마왕의 성 주변을 지키는 거대한 벽. 그 곳에는 표지판이 달린 문과 작은 단검이 있었다.

저 단검으로 동료를 찌르면 문이 열리는 모양이지. 눈을 찌푸리며 손익을 계산한다.


"동료를 희생하라니 잔혹하네. 절대로 하지 않을거지만, 만약 방법이 이것밖에 없다면.."


바로 앞에서 들려오는 용사의 중얼거림를 대충 흘려들으며, 조용히 짐을 내려놓는다.

계산은 끝났다. 지금 이 문을 떠나보낸다면 용사의 모험이 훨씬 길어질거다.

딱봐도 들어가는 방법을 알아내는 데 1개월, 방법을 알아내고 마왕성으로 들어가는 데 1개월. 2개월은 족히 걸리겠지.

아니면 희생용 동료를 따로 구한다거나. 용사님은 사람이 좋아서 그런 방법은 안 쓰겠지만.


"뭐, 제가 죽을게요."


이 표지판이 사실이라면 마왕 퇴치를 2개월 정도 앞당길 수 있다.

2개월동안 모험으로 용사도 성장하겠지만, 그건 인도적인 방법으로다.

마왕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장할텐데, 용사는 정직하게 몬스터 퇴치로만 성장해나간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죽어주는 게 용사파티의 승률이 제일 높다는 뜻이다.


"이 검으로 목을 찌르면 되는 것 같죠?"

"잠, 잠깐만. 굳이 죽을 필요는 없지 않아?"


표지판 앞 검을 집으려다, 뒤에서 들려오는 용사의 목소리에 잠깐 멈춘다.

뭐가 문제지, 하고 돌아본 그 곳에는 당황한 표정의 용사가 있었다.


"이 표지판이 사실이라면 용사님이 엄청난 이득을 얻는 거잖아요. 제 계산이 잘못됐나요?"

"만약 거짓일 경우에는.."

"새 짐꾼을 고용하시면 되죠. 용사님이 죽으실 수는 없잖아요."


내 말에 용사가 입을 다문다.

조금 설득이 필요하겠네, 싶어 차근차근 설명을 시작한다.


"들어주세요. 이 표지판이 사실이라면-"


아까 했던 생각을 그대로 입 밖에 낸다.

어째선지, 이야기를 거듭할수록 용사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만약을 위해 '희생용 동료'의 희생은 카운트하지 않을지 모른다, 는 말을 덧붙이자 용사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그러니까, 제가 지금 죽는 게 용사님의 승률이 제일 높다는 소리에요. 반대하시나요?"

"반대, 당연히 반대하지.."


기어들어가는 용사님의 목소리에 속으로 놀라며 대답한다.


"합리적인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용사님."

"..에일린, 이라고 불러줘. 루스.."


쥐어짜듯 나오는 용사님의 목소리에 당황하며, 잠깐동안 말을 삼킨다.

..루스, 라는 건 내 이름이었지?


"진짜, 이번만큼은 안 돼. 제발.."


..아예 눈물까지 흘린다.

뭐지? 대체 왜 우는거지? 이제는 소꿉친구로도 보지 않을텐데?


"왜, 왜 그러십니까 용사님..?"

"에일린!"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하셨지 않습니까..?"


그 한마디가 용사님에게 트리거가 됐는지, 용사님은 아까보다 더 많은 양의 눈물을 쏟아냈다.




--예전에 난, 용사님이 용사가 아닐 때 고백했던 적이 있다.

대체 어떻게? 라고 물으면, 소꿉친구니까 라고 대답해주겠다.


나는 나름대로 그녀와 친했다고 생각한다. 쉬는 날이 생길때마다 만나서 함께 놀았고, 많은 추억을 만들었으니까.

둘이 함께 별을 바라보며 미래를 이야기하기도 하고, 음식을 나눠먹기도 하는.. 그저 친한 소꿉친구였다.

그때의 나는 언젠가 우리 둘이 사귀어 결혼까지 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만큼 사이가 좋았다는 거지.


하지만, 그녀는 아니었다.

고백 할 타이밍을 놓쳤다는 이야기다. 고백하려 불러낸 그녀가 당당하게 자신의 연애 소식을 알렸으니까.

뭐, 어찌저찌 얼버무린 후 관계가 소원해진 것 역시 진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녀의 애인이 그녀를 장난감 삼았다는 것도, 그래서 내가 잠깐 손을 댄 것도 진부한 이야기지.

뭐, 내가 아무리 말한들 이미 소원해진 관계. 그녀가 날 믿을리는 없었고 그날 연이 끊겼다는 이야기다.

"제발 믿어줘, 에일린..!" "이름 부르지 마." 라는 말로 헤어졌고, 어찌저찌 용사파티에서 재회. 그게 전부다.


다시 만난 에일린, 그러니까 용사님은 화가 누그러진 상태였기에 싸움은 없었지만 옛 사건이 사건인지라 사무적인 대화 말고는 나누지 않았다.

물론 화가 많이 누그러졌더라 하더라도 날 미워하는 건 여전할텐데.


"흑, 흐윽.."

"왜, 왜 우시는 겁니까..?"


어째서 우는 건지, 내 머리로는 이해할 순 없었다.

작별의 눈물인가..? 평소보다 강하게 머리를 긁으며, 손에 잡은 단검을 꽉 쥐었다.


"루,스.. 미안, 미안해.."

"아니, 왜 사과를.."


뭐지, 내가 잘못 알고 있던 게 있나?

뭔가 이야기를-


파직, 잠깐 머리가 지끈 아파온다.


아니, 아니지. 잘못 생각했네. 용사님이 우는 건 동료의 희생을 눈뜨고 볼 수 없으니까 그런거잖아.

그뿐이다. 이미 헤어진 소꿉친구를 위해 울어줄 이유는 없으니까.


-게다가, 이제 간신히 죽을 이유를 찾아냈으니까.


"어쨌든, 대화는 다 나눈 것 같으니 슬슬 찌를게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지나치게 차가운 목소리를 뱉은 내 목에 의문을 가지며, 내 목에 단검을 쑤셔넣었다.

다행히 눈물 범벅인 용사님이 날 막는 것보다, 찔러넣는 속도가 더 빨랐다.


"안, 안 돼! 안 돼, 안 된다고..!"


다음 짐꾼은 좋은 사람으로 구하시길,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기에, 거짓이 아니라 다행이라 생각했다.




**********




-망가진 사람과 함께 모험하다니, 그래서는 안됐다.


재회했을 당시 그는 눈이 완전히 죽어있었다.

헤어지기 이전에 있었던 어둠이, 그를 완전히 잡아먹은 것 같았다.

말 그대로 망자. 회복 기적을 사용했다간 피해를 입을 끔찍한 눈.

..하지만 난 그 눈을 평가할 자격이 없었다. 내가 만들어낸 눈이었으니까.


그와 나는 소꿉친구였다.

시간이 생길 때마다 만나고, 수많은 추억을 함께 만들며 살았던 소중한 소꿉친구.

함께 별을 보며 미래에는 뭘 하고 있을까 얘기하고, 서로 하나씩 산 음식을 바꿔먹기도 하는.. 쌍방짝사랑인 소꿉친구였다.

그때의 나는 그의 고백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대답을 들려줄지, 어떤 표정을 지을지 전부 생각해뒀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나는 점점 초초해졌다.

나는 이렇게 좋아하는데, 분위기를 만들어도 고백하지 않는 건 날 좋아하지 않는 게 아닐까 하고.


..그래서, 난 최악의 수를 둬 버렸다. 그때 했던 실수를 아직까지 후회한다.

'질투를 유발하겠다'는 1차원적인 멍청한 수.

그가 아닌 다른 애인을 만들었던 거다.


'그래서, 할 말이 있는-'

'내가 먼저! 나 남자친구 생겼어!'


돌이켜보면 멍청했지. 눈동자에 어둠이 차올랐으니까.

하지만 멍청하게, 나는 그 감정이 질투인 줄 알고 계속해서 그를 자극했다.


'..아,하하. 난 괜찮아.'

'어라..?'


하지만 그의 눈동자가 완전히 빛을 잃어 완전히 '죽어' 버렸을 땐,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하긴 했다.

하지만 그 때의 어리석은 난 그걸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뭐, 지금 만나는 사람도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네가 고백하면 언제든지 찰 수 있으니까 어서 고백해!

같은 생각을 하며, 눈치 채 주길 바랐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내 애인에게 폭력을 휘둘렀다는 소식을 들었다.

의도가 다분한 습격, 방심을 노려 뒤에서 가격, 살의를 담은 계획 범죄..

흘려들은 소문에서 그는 극악무도한 범죄자가 되어 있었다.


..말했었지? 지금 만나는 사람도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고.

흘려들어오는 소문, 애인의 증언, 빙빙 돌려 말하는 그.

몰아붙여야 할 사람을 잘못 선택한 나는 그에게 진실을 요구했고..


'제발 믿어줘, 에일린..!'

'이름 부르지 마.'


..최악의 이별을 만들어 버렸다.


지금은 진실을 알기에 그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알-

-아니, 그때도 그는 진실만을 이야기했다. 단지 내가 그의 말을 믿지 않았을 뿐이다.

평생을 함께한 소꿉친구의 말보다, 한줌조차 되지 않는 추억을 가진 애인의 말을 더 믿었던 거다.


뭐, 당연히 그 결과는 소꿉친구라는 관계의 끝. 재회가 기약없는 이별이었다.

진실을 알게 된 후에는 이미 늦어 그는 떠난지 오래였다.

사과를 해야 하는데 사과받을 대상이 그 곳에 없다는 사실에, 그 자리에서 다시 울어버렸다.




---그래서, 용사로 선택됐을 때 그를 원했다.

망가진 그는 단순한 우연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상관없었다.

내가 속죄할 방법은 저 죽은 눈을 되살리는 것 밖에 없었으니까.


모험 처음에는 그가 기운을 되찾은 줄 알았다.

사람들과는 그럭저럭 어울리고, 가끔씩 말장난도 하는 등 평범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아직 되돌릴 수 있는가보다, 하고 신나했지만.


'저보다 용사님의 목숨이 더 무거우니까요. 방패로 쓰셔도 전 아무런 감정도 없어요.'

'...'


죽은 사람은 살아날 수 없는 죽은 사람. 망가진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언뜻 보기에는 멀쩡했으나, 가끔씩 죽음을 원하는 망자처럼 어둡고 끈적한 말을 뱉었다.

..그건, 그의 마음속 심연 바닥에 고여있던 감정이었다.


사람의 마음 속, 그것도 깊은 곳에 심연이 자리잡았다는 건 중대한 문제다.

심연은 언제나 달콤한 말만을 속삭이며 차츰차츰 몸을 좀먹어가니까.

그도 똑같았다. 내게 차여 생긴 심연이, 이별을 맞이햇을 때 그를 심어삼켰고..


'뭐, 제가 죽을게요.'


..완전히, 그를 망가트렸다.


'어쨌든, 대화는 다 나눈 것 같으니 슬슬 찌를게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방금까지 당황했던 그의 얼굴이 차갑게 식으며, 보는 것만으로 기겁할만한 칠흑같은 눈으로 말한 말.

억지로 망가지는 걸 막아뒀던 머리가 이성의 끈을 놓아버린듯, 그가 아무것도 느끼지 않게 됐다는 걸 어렴풋이 깨닫는다.


그의 손이 움직여 목으로 향하는 몇초간 생각한다. 이대로 놓아버려도 괜찮은 걸까, 하고.

내가 붙잡을 자격은 있을까? 내가 망가트린 그가 원하는 건 죽음인데, 그 정도는 양보하는 게 맞지 않을까?

..내가, 과연 그를 고쳐낼 수 있을까? 고칠 자격은 있는걸까?


'안, 안 돼! 안 돼, 안 된다고..!'


하지만 고민하기엔 이미 늦어, 막기도 전에 그는 자신의 목을 헤집어 놓았다.

털썩, 바닥에 쓰러진 그의 눈에서 빛이 완전히 사라져 간다.


"아, 니야. 난 이런 걸 원했던 게 아니라고.."


아아, 그의 죽은 눈이 완전히 죽어간다.

하지만 그렇게 죽어가면서도, 그의 표정만큼은 점점 평온하게 바뀌어가서.


"죽지마, 제발 죽지 말아줘.."


내 마음에 심연을 품어놓기 충분했다.




**********




"마왕 토벌을 축하드립니다! 이 이후에 계획은 있으신가요, 용사님?"

"..제가 빚을 진 사람을, 찾아갈겁니다."


그가 목숨까지 이용해 열어준 문을 넘은 그 순간부터, 내 목숨은 지나치게 무거웠다.

'여기서 죽으면 그의 죽음이 헛된다'는 생각 하나로 여기까지 버텼으니까.

그의 목숨을 내 목숨 위에 얹고, 지금까지 힘내왔으니까.


"용사님이 빚을 진 사람이라, 잘 상상이 안 되네요. 살짝 언질 가능할까요?"

"..좋아했던 사람입니다."


마지못해 한마디 뱉자, 앞에서 질문을 쏟아내던 자가 입을 다문다.

했던, 과거의 울림 때문에 충격받은 건지 특종이라 충격받은 건지 구분할 수 없었다.


"그럼 제가 오래 잡아두는 건 실례겠군요,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네."


앞에 앉은 자는 의자에 걸어두었던 모자를 챙긴 뒤 내게 인사를 건넨 뒤 떠나갔다.

눈치가 좋다는 어필인가. 내가 지금부터 죽는다는 건 꿈에도 못 꾸겠지만.


그의 목을 헤집었던 단검은, 지금 내 주머니에 있다.

..사과하러 갈 수 있을까. 나도 천국에 가고 싶은데 말이야.

여신님, 죄송합니다.


단검을 꺼내든 나는, 그와 같은 방법으로 단검을 움직였다.

어째선지, 나도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을것만 같았다.




**********



"..수고하셨습니다, 용사님. 어째서 그런 선택을 했는진 이해합니다."

"죄송합니다, 여신님.."


사후세계,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 죽은 영혼들이 거치는 중간계.

그곳에서 여신과 만난 나는, 의무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천국으로 가는 문은 제 기준으로 오른쪽, 용사님 기준으로 왼쪽인 저 파란 문입니다."

 "..그이는 어디로 갔나요?"


내 말에 여신님은 소리없이 입을 벌렸다 이내 닫고는, 펼쳤던 손을 꽉 쥐었다.

하하.. 좋은 대답은 안 나오겠네. 그래도 여신님의 말이 나오기 전까진 울지 말자..


"..그 분은 영혼이 너무 많이 닳으셔서, 이쪽으론 오시지 않았습니다."

"하, 하하.."


좋은 대답을 듣는 건 기대도 안 했는데, 이건 너무하잖아..

그대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미 죽은 몸이라 눈물을 흘리진 못했지만, 큰 소리로 울고 싶어졌다.


"용사님.."

"흐, 흐윽.. 루스.. 내가, 내가 잘못했어.."


정말로, 정말로 사과할 기회가 없어져버렸다.

..따라가고 싶었는데, 이래선 따라갈 수 조차 없잖아.


자업자득.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낸 건 자기 자신인데, 그 떠나보낸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다.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네. 생각할수록 자기혐오가 끝없이 치솟는다.


..그가, 내가 만든 심연에 잡아먹혀 죽었다면.

나도, 내가 만든 심연에  잡아먹혀 죽으면 되는 게 아닌가.

속죄까지는 무리여도.


어떻게든, 어떻게든 새로운 목표를 만들어낸 나는 감정을 진정시키며 울음을 그친다.

영혼이 마모되어 사라졌다는 건, 완전한 소멸을 의미한다.

..따라갈게.


"..여신님. 한가지, 부탁을 드려도 괜찮을까요."

"제가 가능하다면 얼마든지 들어드리겠습니다. 하지만, 그 분에 관한 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를 심연에 빠트려 영혼을 마모시킨 주제에, 내 영혼이 멀쩡하다니 말이 안되잖아.

억지로 웃으며, 여신님께 소원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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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사과할 대상이 사라지는 것' <--- 이게 GOAT임

그나저나 좀 참신한 소재로 쓰고 싶었는데 평범한 엇갈림 후회물이 되어버렸네

그래도 여기까지 봐줘서 고맙다

구독자 대회는 장편이면 가산점 들어간다는데 내가 장편을 못써서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