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4ZGisl2BfLc&list=OLAK5uy_mZWw1ndlhXaoCR2ZEz6Watxkbapn1UWiU




하늘은 아직 맑았지만 별이 떨어지고 있다. 

그래,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느껴지는것도 있는 법이다. 


가려진 천장은 반사된 열기에 붉게 빛나고 있었다. 

그를 감싼 불길이 거세지고 있었다. 

한 때 그러했듯 다시 한 번 그를 집어삼키고자 천천히 그에게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그 불길은 그 때와는 달리, 그에게 적대적인 업화로 느껴지지 않았다. 


선생은 바닥에 대자로 누운 채, 그가 선택한 모든 선택들과 그의 후회 - 그리고 그의 여정들을 돌아보는 중이었다.

내가 했던 모든 선택들, 그리고 후회들은 모두 나에게 옳은것이었을까?

마지막으로 내가 했던 용서조차.. 과연 옳은 것이었을까?


선생은 어느것도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에게는 모든것을 확인할 시간조차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마지막 순간에야 그를 잡아삼키려던 심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 할 영원한 후회와 그 절망에서 자기 자신을 구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그의 본심이 원하는 일인지, 그의 화상 입은 영혼의 진심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그는 심연에 집어삼켜지지 않기 위해, 그 소녀들을 용서하는 '척'을 했던 것이 아닐까?

다시 한 번 키보토스의 소녀들을 만난다면, 차오르는 그 역겨움을 다시 한 번 이겨내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하하.."


아닐 것이다.

선생은 그 무엇도 확신하지는 못했지만 그가 호시노를 안아주었을 때, 그가 키보토스로 돌아온 이후로 처음으로 옳은 선택을 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마음이 가벼웠다. 

오랫동안 외면해왔던 그의 본성, 비명만을 질렀으나 최후에야 담담히 속삭일 수 있게 된 그 따뜻함을 믿어보기로 했다. 

아니 - 믿고 있다. 


나는 언제나 알고 있었다. 잔인했던 이 키보토스에서의 일상이 내 영혼의 바람이 아님을. 

단지 그의 원망, 후회, 그리고 복수심이 모든 것을 피로 가린 채 - 그를 속여왔음을. 

사람은 본성을 언제까지나 외면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닌 것이다.

선생 역시 자기 자신을 잃고서는 언제까지 덤덤하게 살아갈 수 있는 존재는 아니었다. 


착각이겠지만 - 몸조차 가볍게 느껴졌다.

그에게 오랫동안 달라붙어 있던 그 무거운 손길들, 차갑고 축축하며 그를 끌어당기던 그 손들이 잘려나갔기 때문일 것이다. 

어둠으로 그의 눈을 가린 채, 그에게 속삭이던 그 침식의 존재들에게서 그가 벗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선생은 조그맣게 한숨 쉬었다. 

모두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어른인 자기 자신이 .. 남들보다 고귀하길 원했던 그의 마음이 걸어온 길이 

결코 고귀하지 않았음을 이제야 인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선생은 손에 든 카드를 바라보았다. 

이 카드는.. 이제 탈출 이상의 역할을 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에게는 남은 것이 없었다. 카드에 바칠 것이 없었다.

어른의 카드 - 세상의 질서를 돈으로 엮어 낸 것 ..


...

...


과연 그럴까?


세상의 질서라는 것이 .. 돈 따위로 묶일 수 있는 것일까? 

어른이라 불리는 그들이 좋아하는 그런 물질적인 개념 따위로.. 질서와 감정들을 묶어낼 수 있을 것일까?

어른의 카드는.. 조금 더.. 


선생은 카드를 손으로 들어 눈 앞에 가져다 대었다. 

내가.. 뭘 더 바칠 수 있을까? 

세상의 질서는.. 내게서 무엇을 더 원하고 있을까?


선생은 카드를 이마에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기도하듯 간절하게 마지막 소원을 빌었다. 

세상의 질서에게 - 그의 남은 것을 바치겠다 맹세했다. 


" 아이들을 지켜 줘 "


잠깐의 침묵,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간절한 기도가 울렸다. 

그 경건함 속에서 잠깐이나마 눈을 감고 있던 선생은 감았던 눈을 다시 떴다. 

카드를 바라보고 살짝 미소 지었다.


그리고 그는 카드를 불길 속에 던져넣었다. 

그에게 남은 힘이 얼마 없었기 때문일까, 특별하지 않은 수수한 동작이었다.


' 난 이 곳을 떠나지 않겠어 '


키보토스는 그에게 아름다운 기억만은 아니었다. 

즐거웠고 따스했으나 - 곧 그의 영혼을 뒤트는 .. 그리고 사라지지 않을 화상을 입힌 고통의 기억이 있었다. 

그는 많은 것을 후회한다. 

내가 더 잘해낼 수 있었던 것들 - 그리고 내가 마땅히 하지 못한 일들 역시. 

그렇지만 이 모든 과정이 그에게 후회만으로 남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후회와 절망만을 안은 채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소녀들을 믿은 것이 그의 선택이듯, 그녀들을 용서한 것이 그의 선택이듯. 

마지막 순간까지 그녀들과 함께 하는 것 역시 그의 선택이리라.  

단지 하나만이 조금 아쉬웠다.


" 치나츠가 보고 싶네 "


선생은 미소 지었다. 바닥에 누운 채로 웃었다. 

웃음 소리는 천천히 잦아든다.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이었다.

선생은 그렇게 잠들었다. 


다가오던 불길이 선생을 삼켰다. 

선생은 타오르는 그 불길이 예전보다는 따뜻하다고 느꼈다. 



///


"...콜록... 콜록.. "


와카바 히나타는 그녀에게 다가오는 처형부의 소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 남지 않은.. 거의 마지막에 가까운 소녀였다. 

그녀의 곁에는, 그녀와 함께 싸워 온 시스터후드의 동료들은 더 없었다.


꺼져가는 생명들. 꺼진 생명들. 

그녀는 마지막 순간까지 구원을 바라며 싸웠던 소녀들에게 희망을 기도했다. 


팔이 떨린다. 히나타 역시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총을 드는 것조차 힘들다 느껴졌다. 

그녀가 자주 사용하던 고정식 계열의 총기는 무거워서 - 그리고 총알이 떨어져서 더 사용할 수가 없었다. 

히나타는 가지고 있던 마시로의 총을 쥐어 들었다. 그 총 역시 가볍지는 않은 총이었지만 .. 훨씬 무거운 총을 들던 히나타에게는 충분히 들만한 무게로 느껴졌다. 


.. 그리고.. 그 총에는 의미가 있었다. 

모든것을 끝내기에는.. 용서를 담아 쏘기에는.. 이것보다 더 좋은 총은 없으리라. 

히나타는 손에 든 총을 살펴본다. 단 한 발.. 한 발의 총알이 남아 있었다.


그녀에게 비적거리며 다가오는 처형부의 소녀 역시 정상적이지는 않은 것 같았다. 

눈가에서 피가 흘렀고,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듯 더듬거리며 그녀에게 다가온다. 그 와중에도 총을 놓지 않은 채, 정면에 선 히나타를 향해 똑바로 걸어오고 있었다.

소녀가 히나타를 겨누었다. 히나타 역시 그녀를 겨누었다. 

서로가 서로를 인식했지만 - 두 소녀는 모두 손이 떨려서 잘 맞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탕 - 


울려퍼진 총성은 - 두 소녀의 것이 아니었다. 

처형부의 소녀가 머리를 잃은 채 쓰러진다. 소녀의 머리에서 튄 피가 정면에 서 있던 히나타의 방향으로 날아드는 것이 보인다. 

히나타는.. 저런식으로 출혈이 발생하려면 어떻게 총이 쏘아져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처형부 소녀의 뒤였다. 그녀의 아군이 위치해야 할 뒷편에서 날아든 총알이 그녀의 생명을 앗아갔다.

그리고 그녀의 생명을 거두어 간 소녀 - 

이제는 아군 따위도 의미가 없게 된.. 자신의 편조차 아무렇지 않게 쏘아 죽인 소녀가 히나타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 ... "


나카마사 이치카 - 그녀 역시 여기저기 상처가 많아 보였다. 왼쪽 팔이 부러졌는지 덜렁거렸고 걸음걸이가 비틀비틀 불안해 보였다. 

히나타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그녀를 보며, 그녀가 과연 살아있긴 한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그녀가 기억하는 이치카라는 소녀는.. 저런 소녀는 아니었다. 

히나타는 정의실현부의 면면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아니었지만.. 평화롭던 시기의 지나치던 정의실현부는 모두가 웃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저토록 증오와 분노만을 담고 있는 회색 눈빛도.. 한 때는 따뜻함을 품고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눈 앞의 이치카는.. 그녀가 기억하던 정의실현부의 파편을 담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피투성이다. 검은 옷조차 붉게 물들였다 착각될만큼 온 몸을 피로 적시며 다가오고 있는 이치카는 증오밖에 느껴지지 않는 그 격정의 눈으로 히나타를 노려보고 있었다. 

히나타는 마주한 이치카의 눈에서조차 피투성이인 그녀의 영혼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파편처럼 퍼진 피투성이의 감정만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눈을 돌려야만 했다. 


히나타의 손이 눌린다. 총성이 울렸다. 이치카를 쏘았다. 

다리에 힘이 빠져 앉은 채 쏘아낸 것이었지만 - 일어나 쏘았더라도 크게 달라질것은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입에서 마지막 총을 쏘아낸 한숨이 흘러나온다.


" 하아.. "


겨울바람에 그녀의 한숨이 흩어지기도 전이었을 것이다. 

그녀의 앞에서 발걸음 소리가 멈춘 것은. 


... 빗나갔구나..


눈을 뜬 히나타의 앞에 이치카가 서 있었다. 

자비나 동정이 느껴지지 않는 - 잔혹하게 물든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안타까움을 느꼈다. 

서로를.. 용서하는 자가.. 구원 받길 원했는데.. 

하지만 결과는 결과일뿐이다. 

공정한 싸움이었다. 그녀 역시 .. 살아남은자로써 구원받을 자격은 있으리라. 

누구보다 용서와 구원을 바라던 그녀로써는 인정해야만 했다. 

그렇기에 히나타는 마지막 순간 - 그녀에게 구원을 바래주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당신이.. 구원받길 .. ㅇ..


탕 - 


그리고 이치카는 히나타의 말을 다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짜증이 났다. 

구원이니 뭐니.. 무슨 개지랄들이야.. 빨리 뒤지기나 하라고.. 


근거리에서 울려퍼진 그 총성에 히나타의 머리가 사라지고 - 그녀의 터져나온 머리에서 튄 피들이 이치카의 몸을 더럽혔다. 

딱히 의미는 없었다. 그녀의 옷은 이미 피로 붉게 물들어서 이제와서 핏덩이가 좀 묻었다 한 들, 그냥 조금의 비린내를 더할 뿐이다. 

이치카는 바닥에 쓰러지듯 주저 앉았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하.."


그리고 마침내 그녀의 입에서 마른 웃음이 흘러나온다. 안도감이 - 그리고 성취감이 차올랐다.


".. 살아남았지 말임다.. "


붉게 물든 것 같은 회색빛의 눈동자를 치켜들었다. 웃음이 새어나온다. 

선택받은 것이 그녀 자신이라는 것 - 살아남은 것이 그녀 자신이라는 그 모든 사실에 만족감을 느낀다.

... 구원이니 뭐니.. 용서니 뭐니.. 중얼거리던 멍청한 여자들은 모두 죽었다.

바닥에 저렇게 핏덩이가 되어 눌러 붙어있다. 

이치카는 주변에 스러진 수 많은 시체들을 보며 - 그녀가 틀리지 않았음을 다시 한 번 확신했다.


".. 살아남는 자가.. 정의인검다 .. 죽으면.. 고깃덩이일뿐이지 말임다.. "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싸움은 생각보다 길었다. 적어도 10시간은 넘게 이 곳을 벗어나지 못하고 싸운 것 같다.

이치카는 결과를 기다렸다. 이 모든것에 대한 보상을 - 살아남은 그녀가 마땅히 취해야 할 모든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선생님은 어디 계시지..? 나를 구원해 줄 그 남자는 어디 간 걸까?

이제 이 곳을 벗어나서.. 이제 뭘 하지..?


.. 배고프네.. 

일단... 돌아가서 씻어야겠어..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이치카가 하는 생각들은 대수롭지 않은 생각들이었다. 승자만이 할 수 있는 - 살아남은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일상이었다.

승자의 권리로 그런 생각을 하던 그녀는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딱히 의미없는 동작이었을 것이다. 승자의 여운 따위를 느끼고 있는 그녀가 취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동작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늘을 올려다 본 이치카는 시선을 감히 돌릴 수가 없어졌다. 

그녀의 눈동자가 커지고 - 그녀는 굳어버린 듯 하늘에 눈동자를 고정했다.

불안감이었다.

충격이었다.

그리고.. 그녀를 감싸 흐르는 압박이었다.  


뭔가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었다. 

스쳐지나가는 잠깐의 불안감 따위가 아니었다. 

이치카는 순간이지만 심장이 멈출 것 같은 이유없는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하늘.. 하늘에서.. 뭔가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어.. 


이치카는 놀라움에 커진 눈동자로 감히 하늘에서 눈을 돌리지 못한다. 

이유조차 설명할 수 없는 그 압박감이 - 포식자를 앞에 둔 피식자처럼 그녀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순간이지만 -

빛이 퍼지는 것 같았다. 세상이 .. 뒤집히는 것 같은 .. 색의 반전이 일어났다 느꼈다. 


그리고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 


에필로그랑 완결을 조금 나눠서 낼게요. 


에필로그가 있습니다. 길지는 않을거에요. 모든것이 정리되는 화가 될 것 같네요. 

이번화는 조금 생각이 많아져서 늦었는데 아마 다음화는 최종화로써 늦어도 3일 안에는 쓸 것 같아요. 

분량 자체가 크게 길지 않은 에필로그라 최종화의 역할을 해 줄 것 같네요. 


보충수업부 등 색채 이후의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다들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드릴 말씀이 참 많네요. 

부족하고 중간중간 망설여졌던 소설이지만, 쓰면서 소설을 쓰는분들에 대한 존경심이 들었습니다. 


긴 말은 에필로그 때 할게요. 하고 싶은 말도 많고, 개인적으로 감사하고 싶은 말들도 많지만 진짜 완결도 아닌데 여기서 완결처럼 다 말하기가 그러네요 ㅋㅋ 


부족한 소설이지만 여기까지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에필로그에서 뵈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