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불법행위 (1) 에서 이어짐.



5.공동불법행위

 불법행위에 여럿이 관여하여, 즉 공동으로 손해를 발생시켰다면, 이러한 행위를 공동불법행위라 한다. 공동불법행위가 성립하려면 가해자가 여러 명이어야 하며, 각각의 가해자는 불법행위의 요건을 모두 갖추어야 하고, 그러한 상황에서 가해자들이 공동으로 행위했어야 한다. 이 공동이라는 의미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리는데, 이들 사이에 공모를 한다는 합의나 의사의 공통이 있어야 한다는 주관적 공동설과, 그러한 주관적 인식은 필요없고 객관적으로 봤을 때 피해자의 권리를 공동으로 침해하여 손해발생의 공통원인이 되었다면 충분하다는 객관적 공동설이 있으며, 주류 의견이다. 판례는 객관적 공동설을 따른다. 여러 명의 행위 중 누구의 행위가 손해를 입힌 것인지 알 수 없는 경우라도 공동불법행위 책임을 진다.(760조 2항) 이 경우 각 행위자는 자신의 행위와 손해발생과는 관련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해야 책임을 면할 수 있다. 불법행위에서는 본래 피해자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하지만 위와 같은 가해자 불명의 불법행위에서는 그 입증책임이 가해자들에게로 넘어간다. 누가 손해배상의 대상자인지를 입증하지 못했다고 해서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을 부정하는 것은 피해자에게 지나치게 가혹하기 때문이다. 또한, 교사자나 방조자 역시 공동불법행위자로 본다.(760조 3항)

 

 공동불법행위가 성립한다면 모든 불법행위자들은 연대하여 배상할 책임을 진다.(760조 1항) 이 연대는 부진정연대채무로 해석하므로 각 행위자들은 불법행위와 상당한 관련이 있는 피해 전부에 대해 피해보상금 전액을 부담한다. 그러므로 피해자는 피해보상액 전부를 각 불법행위자들 중 누구에게나 청구할 수 있다. 단, 불법행위자들 내부적으로는 과실비율에 따른 부담부분이 있으며, 때문에 그 중 한명이 자신의 부담부분을 넘는 변제를 피해자에게 했다면, 다른 불법행위자들에게 그 부담부분의 비율에 따라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 구상권은 피해자에게 보상금을 현실로 지급했을 때 발생한다.

 

 만일 법원이 피해자에게도 과실이 있음을 이유로 과실상계를 할 경우, 공동불법행위자들의 과실은 원칙적으로 그들 전원에 대한 과실로 전체적으로 평가하여야 한다. 다만, 피해자가 각 불법행위자 개별로 소를 제기하여 수 건의 소송을 진행중이라면, 각 소송은 독립성을 지니므로 불법행위자마다 손해액과 과실비율이 다르게 인정될 수 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6.자동차운행책임

 자동차의 운행으로 사람이 사망하거나 부상당한 경우,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에 관하여 민법보다 우선하여 특별법인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이 적용된다. 이 법은 오직 사람이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었을 때에만 적용되며, 기물파손 등 인적 상해가 아니라면 적용되지 않는다. 자기를 위하여 자동차를 운행하는 자는 그 운행으로 다른 사람을 사망케 하거나 부상하게 한 경우,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진다.(3조) 이때 피해자가 손해배상을 보다 쉽게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해, 피해자는 상대 보험사에게 보험금을 가해자가 아닌 자신에게 지급할 것을 청구할 수 있다는(10조 1항) 규정이 있다.


 이 법에 따라 배상해야 하는 이는 자기를 위하여 자동차를 운행하는 자이다. 이는 운행지배와 운행이익을 가지는 자에게 그 운행으로 인한 손해를 지우겠다는 의도이다. 운행자는 운전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자동차 소유자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예로서 자신의 차를 운전하다가 사람을 친 경우 운행자는 차를 운전한 자동차 소유자이지만, 대리운전을 맡긴 경우라면 대리기사는 운행지배 및 운행이익이 없으므로  대리운전을 맡긴 차 소유주가 운행자가 된다.(94다5502) 만약 차 수리를 위해 자동차를 맡긴 상황이라면, 차를 맡은 정비업자만이 운행자가 된다.(94다21856)


 또 다른 배상요건은 피해가 자동차의 운행으로 발생하였어야 한다는 것이다. 운행은 주행과는 다른 뜻으로, 주행상태에 있지 않더라도 주행의 전후단계로서 문을 여닫거나 자동차의 사용과 관련된 각종 각종 장치를 조작, 사용하는 것도 운행으로 본다. 일례로 구급차 안의 들것으로 환자를 내리려다가 들것 조작을 잘못하여 환자가 땅에 떨어져 다쳤을 경우, 이는 운행 중 발생한 사고로 본다.(2004다20340) 택시 승객이 강간당할 위기를 모면하고자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리다 다쳤을 경우도 운행 중 발생한 사고로 본다.

 

 자동차운행자가 피해보상책임을 면하려면 피해자가 승객일 경우에는 그가 고의나 자살행위로 피해를 입었음을 증명해야 하며, 승객이 아닐 경우에는 자신와 실제 운전자 모두 운행에 주의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피해자에게 과실이 있거나 전혀 다른 요인이 발생하여 사고가 일어났으며, 자동차의 구조상 결함이나 기능장애가 없었다는 것을 모두 증명해야 한다.(3조 1호) 당연히 이를 증명하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에 본 법에 의해 운행자는 사실상 무과실책임이나 다름없는 책임을 지게 된다.



7.환경오염책임

 환경오염에 의한 손해배상은 환경정책기본법에서 별도로 규율한다. 환경오염 또는 환경훼손으로 피해가 발생한 경우, 해당 환경오염/훼손자가 피해를 배상하여야 한다. 원인자가 둘 이상이고 그 중 누가 진정한 원인인지 알 수 없다면 서로 연대하여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44조) 즉, 환경오염이 발생하면 그 원인을 제공한 사람은 무과실책임을 지며, 앞서 본 가해자 공동불법행위처럼 원인제공자가 여럿일 경우에는 설령 진정한 원인제공자가 불명이더라도 연대하여 책임을 지게 함으로서 피해자의 입증책임을 완화해주고 있다.


 만일 환경오염으로 인한 피해가 민법 750조의 일반불법행위 요건을 충족한다면 그에 따른 손해배상청구권이 발생하는데, 환경오염문제에 대해서는 위법성 여부를 고려할 때 침해되는 이익과 침해행위를 상관적으로 고려하여 그 침해의 정도가 공동생활을 함에 있어 일반적으로 용인할 수 있는 정도(수인한도)를 넘어섰을 경우에만 위법성을 인정하고 있다.


 또한 환경오염은 그 특성상 피해자가 이를 정확히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에 가해행위와 손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는 것만 입증하면 된다는 개연성이론을 도입하여 피해자의 입증책임을 완화해주고 있다. 예를 들어 폐수방류로 인해 양식장의 어류가 폐사하였음을 주장한다면, 해수에서 정확히 몇 ppm의 오염물질이 배출되고 이 물질이 공장폐수에서 나왔으며 해당 농도는 물고기에게 치명적이라는 것을 모두 증명하지 않아도, 폐수가 방출됐다는 것 – 폐수 일부가 양식장에 도달했다는 것 – 그 후 물고기가 폐사했다는 것만 증명하면 불법행위가 성립한 것으로 본다.(81다558)



8.제조물책임

 제조물의 결함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경우, 이와 관련된 내용은 제조물책임법으로 규율된다. 제조물책임법은 현대의 대량생산/대량소비 체제에 따른 소비자 피해 구제책의 일환이며, 이를 위해 객관적인 결함이 제조물에 존재하기만 하면 제조업자의 귀책사유를 묻지 않고 무조건 배상책임을 지우는 무과실책임을 도입함으로서 제품의 안정성 향상을 유도하려는 목적의 특별법이다. 이 법에 따르면 제조업자는 제조물의 결함으로 생명/신체/재산에 손해를 입은 이에게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지게 된다.(3조 1항) 

 여기서 제조물이란 다른 동산이나 부동산의 일부를 구성하는 경우를 포함한, 제조되거나 가공된 동산을 의미하며(2조 1호) 부품도 포함된다. 반드시 가공되었어야 하므로 미가공 농수산물은 제조물이라 볼 수 없다. 

 그리고 제조업자란 제조물의 제조/가공/수입을 업으로 하는 자를 말하며(2조 3호 가목), 설령 제조업자가 아니더라도 자신을 제조업자로 표기하거나 오인할 수 있는 표기를 한 자도 같은 배상책임을 진다.(2조 3호 나목) 만약 피해자가 제조업자를 알 수 없다면 그때는 제조물을 공급한 자가 배상책임을 지지만, 공급자는 피해자의 요청을 받고 상당한 기간 내에 실제 제조업자나 자신에게 공급한 자를 알려준 경우에는 책임을 면한다.(3조 3항)

 마지막으로 제조물의 결함이란 해당 제조물에 통상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안전성이 결여된 것을 말하며(2조 2호), 성능이나 품질이 표준 이하임을 뜻화는 하자와는 의미가 다르다. 즉, 하자가 있다 해서 반드시 결함이 있다고는 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결함은 의도된 설계와는 다르게 제조/가공되어 생긴 제조상의 결함, 합리적인 대체설계를 하여 결함을 없앨 수 있었음에도 그리 하지 않아 생긴 설계상의 결함, 제조업자가 합리적인 설명이나 경고를 했다면 피해를 막거나 줄일 수 있었음에도 이를 도외시한 표시상의 결함을 모두 포함한다. 이러한 결함에 의해서 피해를 입었을 때 본 특별법에 의하여 손해배상책임이 확정된다.


 제조물책임법은 입증에 대해서는 별도로 정하고 있지 않아서 피해자가 결함의 존재와 손해발생사실, 그리고 둘 사이의 인과관계를 모두 증명해야 한다. 다만, 환경오염책임과 유사하게 제조물이 정상적으로 사용되는 상태에서 손해가 발생했고, 그러한 손해는 일반적으로 제조물의 결함 없이 발생하지 않으며, 해당 손해가 제조업자의 실질적인 지배영역에 속한 원인으로부터 초래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한 경우, 실제 결함이 있었는지를 증명하지 않아도 결함으로 인해 발생한 손해로 추정하는 것으로 증명책임을 완화해주는 규정이 있다.(3조의 2)


 제조물책임법상의 손해배상내용 중 특이한 것은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한다는 점이다. 배상책임자는 제조물의 결함으로 생명/신체/재산에 확대손해를 얻은 피해자에게 그 손해를 배상하여야 하며(3조 1항), 제조물의 결함을 알면서도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결과 생명이나 신체에 중대한 손해를 입은 자가 있다면, 그 손해의 3배 이내의 범위에서 배상책임을 진다. 발생한 피해의 최대 3배에 달하는 훨씬 큰 책임을 진다는 면에서 징벌적 의미가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이 손해배상청구권은 피해자와 법정대리인이 손해와 제조물책임을 지는 자가 누구인지를 알게 된 날부터 3년, 또는 제조업자가 제조물을 공급한 날부터 10년 내에 행사하여야 한다(7조 1~2항). 다만, 해당 손해가 신체에 누적되어 잠복기간이 지난 후에야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라면 제조물을 공급한 날이 아니라 그 손해가 발생한 날부터 10년을 기산한다.(7조 2항 단서)


 

9.의료과오책임

 의사의 과실로 인하여 환자에게 손해를 끼쳤을 경우, 의사는 의료과오에 의한 손해배상책임을 진다. 그러나 불법행위책임을 지우기 위해서는 피해자가 가해자의 고의/과실을 입증하여야 하는데, 의료행위가 가지는 전문성, 밀실성, 재량성, 폐쇄성 등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환자측에서 의사의 과실을 입증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판례는 피해자 보호차원에서 의료과실에 한하여 일정한 정도의 증명이 완료되었다면 의사의 과실과 손해와의 인과관계를 추정해줌으로서 의료과오의 증명책임을 완화해주고 있다. 추가적으로, 의사의 과실이 인정될 경우 그 의사가 근무하는 의료기관의 장은 사용자로서 배상책임을 질 수 있다.(756조)

 

 의료과오책임이 인정되려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손해가 의사의 과실로 인하여 발생하여야 한다. 이 과실은 보다 높은 주의의무가 요구되는 의료행위의 특성상 의료행위 당시의 평균적인 의료수준을 기준으로 과실을 평가하는데, 이는 일반적인 과실의 기준보다 더 높은 기준이다. 단, 긴급한 치료가 필요하거나, 관련물자/장비가 부족한 상황에서 의료행위를 하여야 하는 상황이거나, 의사가 비전문분야의 의료행위를 하여야 하는 상황이거나, 환자가 특이체질인 때에는 주의의무를 완화하여 과실을 판단한다.


 의사가 환자에게 부담하는 의무를 행하지 않았다면 이 또한 의사의 과실이 된다. 의사에게는 의료행위 후 나쁜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거나, 사망 등 중대한 결과가 발생할 수 있는 의료행위를 하기 전에는 환자에게 해당 내용을 충분히 설명한 후 승낙을 받아야 하며, 특히 그 위험이 전형적으로 발생하는 위험이거나 회복불가능한 중대한 것이라면, 비록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할지라도 설명의무가 면제되지 않는다.(95다56095) 설명 대상은 환자와 그 법정대리인이며, 배우자는 해당사항이 없음에 유의해야 한다.(2013다28629) 설명의무를 다했다는 입증책임은 의사에게 있다.(2005다5867) 이를 하지 않았다면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것이 되어 과실이 인정되고, 그 자체만으로 정신적 고통을 준 것으로 평가되어 위자료청구권이 발생한다.(750~751조) 단, 의사가 설명을 하였어도 환자가 수술을 받았을 것이라고 인정되는 경우라면 의사의 설명의무 위반과 환자의 권리침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으므로 의사는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 이러한 설명의무는 한의사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