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글은 정치적 레즈비어니즘 혹은 분리주의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쓰여졌습니다.


- 영화랑 소설의 내용 구성이 좀 다르다. 소설은 김지영이 살아온 궤적을 통해 현 30대 여성이 어떠한 차별의 역사를 겪었는지를 주로 보여준다면, 영화에서는 2019년 현존하는 여성차별에 더 집중한다. 구성 측면에서 소설보다 영화가 더 낫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


- 사소한 비판점을 말하자면, 영화 전반적으로 정신의학에 대한 인문학적 반감이 깔려있다. 또 꾸미지 않는 여성에 대해서 병(리)적인 상황에 처한 것으로 묘사하는 것도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단, 원작 소설이 성차별로 인한 고통을 정신과적 치료로 치유할 수 있다고 극단적으로 묘사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안티테제를 시도한 것일 수 있다.


-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김지영은 결국 남성과 결혼함으로써 남성권력 가부장제에 부역하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왜 한국 남성과 결혼함으로써 한국 남성의 가부장적 권력구조를 유지하고 재생산하는 '배신자' 여성의 목소리를 들어줘야하는가? 작품에서 공유(캐릭터 이름은 기억 안 남)가 '나 때문에 너가 이렇게 되어버린 거 같아 매우 슬프다'라고 울부짖는 장면이 있는데, 그 말이 참으로 맞다. 결국 김지영의 고통은 남성과 결혼했기 때문에 받는 고통이다. 김지영이 현재 겪는 고통들은 남자 때문에 생긴 거고, 김지영이 남자 권력 구조에 동조하고 부역했기 때문에 생긴 거고, 스스로 남자랑 결혼 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김지영이 스스로 자초한 것이고, 가부장제에 소속됨으로서 그 고통을 확산시키고 있다. 여성학자 Sheila Jeffreys와 그가 이끄는 Leeds Revolutionary Feminist Group에서 밝힌 바와 같이, "남자와 함께 살거나 섹스하는 모든 여성은 자매들에 대한 억압을 유지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며 우리의 투쟁을 방해하는 것"이다. 왜 페미니스트들이 남성과 결혼함으로써 여성권리를 침해하고 배신한 부역자 혹은 무임승차자들의 의견을 들어야 하는지 깊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 그러므로 기본적으로 김지영의 말은 마치, 일제강점기 때 일본군(혹은 만주군)에 장교로 입대해서 조선인들을 학살하는 작전에 참가하는 친일부역 장교가 "힝 ㅠ 나는 조선인이라서 일본제국군에서 승진이 잘 안돼 ㅠ 이건 불공정해 ㅠ"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일본군 장교로 입대하는 것이 중대한 친일 부역이듯이, 여성이 남성과 결혼하는 것은 중대한 성차별 부역이다. 조선인 일본군 장교가 자기가 조선인이라고 승진이 안 된다고 불평하는 것을 독립운동가들이 들어줄 필요가 없다면, 마찬가지로 김지영이 남성권력에 피해를 입는다는 호소에도 우리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없다. 친일부역자가 조선인의 독립 투쟁을 방해한 것과 마찬가지로, 김지영과 같은 '흉자'들 역시 여성들의 투쟁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 영화의 결말은 더 문제적이다. 결국 김지영은 남성권력에 굴복하여 자신이 원하는 취업을 포기한다. 이혼이나 결별을 통한 투쟁을 하는 게 아니라. 영화 결말에서 김지영은 남편과 잘 협력해 문제를 현명하게 해결해나간다는 수정주의 혹은 타협주의적인 행보를 보인다. 다시 한 번 일제강점기로 예시를 들면, 이것은 마치 조선인이 "일본에서 조선이 독립하는 거 까지는 현실적으로 힘들고... 대충 일본제국과 잘 협의해서 적당한 수준의 조선인 자치권을 얻는 것으로 만족하자"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완전한 독립은 다른 권력체로부터 침해받지 않는 것에서 시작되며, 완전한 여성주의는 남성과 관계를 단절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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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에 트롤링 하려고 쓴 글입니다. 고찰채널이라는 곳이 있길래 한번 올려봅니다. 제가 쓴 글입니다만 페미니스트들이 아니고서야 이 글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할 여지는 없다고 보며, 다만 재미로 봐주시길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