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이력서를 쓰다 보니 떠올랐다. 취직한 뒤보다 취직 하기 전에 월급 타면 뭐할지 상상하는 게 더 재밌었다는 걸. 상상한 바를 취업 뒤에 대부분 이뤘는데도 말이다. 언제부터였을까. 보상의 만족도가 기대가 주는 만족감에 한참 못미치게 되었다. 그 이유를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설명할 생각이다. 그렇다. 공신력이 없다. 후술할 내용은 순전히 이력서 작성하다 지쳐 내 기분전환을 위해 쓰는 글임을 미리 밝혀두는 바이다.


  취업 얘기로 서두를 열었지만 난 기대로 얻는 만족도가 실제 보상보다 더 컸던 사례를 게임하면서 자주 느꼈다. 누군가 내가 하고 있는 게임을 보고 이거 재밌어? 라고 물었을 때 난 자주 이런 대답을 들려주었다. '기대감밖에 없는 게임이다.' 다들 게임을 좋아해서 그런 경험이 있는지 이렇게만 말해도 대충 알아듣는 눈치였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무슨 게임을 해도 이 게임에 뭐가 있냐고 누가 묻는다면 '기대감' 하나로 귀결됐던 것 같다.


  내가 라이브 서비스 게임을 하면서 겪을 수 있는 일 중 가장 싫어하는 건 예고의 예고다. 커밍 쑨이라 써놓고 특정 날짜를 공지해 업데이트를 예고하는 게임이 있다. 그런데 막상 그 날짜가 오면 그제야 앞으로의 일정을 발표하는 것이 내가 말하는 예고의 예고다. 그냥 처음부터 일정을 공개하면 안 됐나? 또 기다리는 것이 퍽이나 지루하고 답답하다. 그러나 예고의 예고는 항상 나에게 잘 먹히는 방식이기도 했다. 커밍 쑨이라고? 그래 얼마나 대단한 거 준비했는지 어디 두고나 보자. 그런 식으로 기다리다가 이제야 일정을 공개하면 또 두고 보게 되는 것이다. 기다리는 과정이 지루하고 답답하지만 어찌됐든 예고는 그 게임을 하는 동안 심심하지 않을 양념은 되었다. 업데이트 당일에 다음 업데이트를 기다리는 유저를 보면 합리적인 시간 끌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개발자 노트라는 것도 있다. 내용은 보통 게임 업데이트의 로드맵이다. 그때 누군가는 방향성이 맘에 든다고 과금을 한다. 패치할 날은 한참 멀었거나 기약이 없는데도 말이다. 실제 업데이트가 반영됐을 때 게임이 망가져서 불타는 경우를 겪었어도 어김 없이 선입금은 이뤄진다. 경험상 대부분의 게임은 업데이트 이후보다, 업데이트 로드맵을 공개할 때가 고점이다. 예시를 하나 들자면 가디언테일즈 시즌2가 그랬다. 로드맵이 공개될 때 가디언테일즈는 르네상스가 예정된 갓겜이었지만 막상 마계가 업데이트 되자 여러 이유로 불만이 터져나왔다. 회사는 다시 개선을 '예고'했다. 그러자 잠잠해졌다.


  일반화하기 어렵지만 게임을 잘해진 이후보다 기술을 체득하면서 실력이 점점 느는 구간이 더 재밌다. 나는 이 차이가 기대감의 유무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게임을 잘해질수록 게임의 이해도가 높아지는데 게임 연구가 끝나버리면 더이상 기대할 게 없다. 게임 시작도 전에 이미 한 판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물론 상성을 극복하는 일도 있고 우열을 가릴 수 없어 뒤가 안 보이는 경기도 존재한다. 그 작은 자극이 게임을 꾸준히 붙잡게 되는 요소지만 그것도 반복되면 언젠간 무감해진다. 그러면 이제 밸런스를 고치든, 신캐가 나오든 패치를 '기대'하는 일만 남는다.


  인터넷 서핑하다가 이런 카드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요즘 청년세대의 행복지수가 늘고 있는데 그 까닭이 미래에 대한 기대가 없어서, 라고 주장하는 기사였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할 일도 없다는 취지의 내용이었다. 그러나 나는 요즘 청년들이 기대를 접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기대가 결혼, 승진, 부동산 같은 극대의 것에서 극소의 취미로 축소된 게 아닐까 싶다. 보상을 확신하기 어려운 시대다. 남들처럼 노력했지만 지금 나는 과거에 기대한 모습과 얼마나 일치하고 있나. 이렇게 보상은 종종 실망스럽다. 그러나 기대는 언제나 만족스럽다. 어쩌면 우린 기대감이라는 보상의 부산물에 배를 채워야 하는 일종의 기근 상태가 아닐까. 망가진 보상 체계는 언제 수복되는가. 그때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