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 https://arca.live/b/regrets/21444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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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라... 듣기 좋은 울림은 아니다. 예로부터 마녀는 증오와 혐오의 대상이었고, 실제로 하는 행위도 지저분하며 잔혹하기 그지없었으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젊고 아름다운 여성을 볼 때마다 마녀임을 의심했던 때가 있었다. 세상에 만연했던 마녀 혐오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모든 젊은 여성들은 얼굴을 가리며 살았고, 바깥에 나돌지 않았다. 허나 그 행동들이 더더욱 마녀 혐오자들을 자극해버린 탓에 분위기는 더욱 과열되었고 그들은 혐오를 넘어 무차별적인 폭력까지 다다르게 된다. 이 폭력에 중독된 자들은 스스로를 마녀 사냥꾼이라 칭하였고, 이들의 세력이 점점 불어나며 왕도에 흐르는 불안한 기류가 극성에 이르는 순간 발생한 사건이 바로 공주 사냥이었다.


"마녀라니..."


"..."


마녀에 대해 내가 알고 있던 모든 지식이 머릿속에서 떠오르며 나도 모르게 얼굴을 굳혔다. 내 표정을 읽은 그녀 또한 눈에 띄게 표정이 어두워졌다.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나는 그녀가 바보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방금 그녀가 뱉은 말의 무게는 쉽사리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혹여나 내가 마녀 혐오자였다면, 악인이었다면, 단숨에 그녀를 제압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좀 더 영악하게 굴자면 그녀에 대한 정보를 마녀 사냥꾼들에게 파는 방법도 있었겠지. 단어에 깃든 의미도 모른 채, 자신의 안위를 소홀히 여기는 그녀에 대해 화가 치솟는다.


"마녀던 아니던 상관없는데요. 다만 그 단어를 담는데 조심할 필요는 있어 보이네요."


"그거야... 뭐 당신을 믿으니까..."


그녀의 목소리가 떨리는 게 느껴진다. 정말 그녀는 모르는 걸까? 스스로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 정녕 깨닫지 못한 걸까? 그녀를 향해 느껴지는 분노는 무지에 대한 분노였다. 그녀 스스로 목을 옥죄는 어리석음에 대한 혐오였다. 어긋난 선택으로 끔찍한 결과를 그녀 스스로 불러왔을 지도 모를 일이다.

여러모로 할 말은 많았지만 정신적으로 무력함이 느껴지는 지금 상황에서 굳이 입을 더 놀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나는 그녀의 시선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 그렇게 믿음직한 인간 아니거든요. 마녀라고 밝힌 건 그냥 잊도록 할 테니 전 방으로 가보겠습니다."


"반지!"


"...네?"


"당신이 말한 반지요! 제가 만들었어요!"


한 달이라는 긴 기간 동안 묵게 될 방으로 향할까 싶어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 그녀가 내뱉은 한마디에 발목이 붙잡힌다.

그냥 무시하고 갈까 싶지만 역시 신경 쓰여서 고개를 돌리며 되묻는다.


"지금 뭐라고 했죠?"


"이제야 진솔한 대화를 나눌 시간이 온 거 같네요."


"솔직히 얘기할 까요? 하나도 못 믿겠어요. 마녀니 뭐니 하는 것도 제 삶에선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인물이었고 말이죠. 그야 옛날 얘기니까요. 게다가 당신을 처음 본 게 고작 보름 전인데 저의 무엇을 믿고 이야기를 하신다는 건지도 의문인데요."


"괜찮아요. 그냥 듣기만 해주셔도."


그녀는 내게 다가와 손을 붙잡고는 내가 앉았던 바테이블로 이끌었다. 갑자기 내 손을 붙잡은 것에 놀라긴 했지만 왠지 나쁜 기분은 아니다.

이건 그녀가 아름다운 여성이었기 때문일까? 어쩐지 그리 생각하면 내 자신이 속물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등불을 치우고, 나를 의자에 앉힌 뒤, 내 바로 옆자리에 앉아 살며시 미소 짓는 점원.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무슨 말로 운을 띄워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듣기만 해도 괜찮다고 한들, 기왕 자리에 앉은 거. 무언가 얻어가는 게 있다면 좋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마녀라는 건 뭡니까?"


그나마 가장 궁금한 부분이었다. 사실 이 질문에 그녀가 무어라 대답해도 나는 믿어줄 용의가 있었다.


"마녀가 뭔지는 알고 계시죠?"


"대충은 알죠."


"아마 그 대충은 제가 지금 말해드릴 내용이랑 아주아주 다를 거에요."


점원은 웃음을 띄우며 말했다. 대체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지만 곧 그녀가 입을 열어 이야기를 시작하자. 그녀의 말대로 이루어졌다.


마녀는 실제로 존재하긴 했다. 실제로 무차별적인 마녀사냥이 극에 달했을 즈음엔 천 명에 한 명 꼴로 마녀가 잡혀 살해 당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마녀들은 엉뚱한 실험이나 독특한 마법을 다루곤 했었는데, 하필 마녀 혐오를 불러온 원인 중 하나가 연구에만 몰두하다 씻지 않아서 불결해진 탓이었는데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혹은 무시하고 도심 혹은 마을을 드나들면서 사람들에게 생리적인 혐오를 불러왔다고 했다. 이를 듣고는 황당함을 감출 수가 없어서 역시 사건은 때로 아무렇지도 않은 걸로 시작되기도 한다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잔혹하다는 소문이 퍼진 것도 나름 이유가 있었다. 마녀들이 주로 하는 엉뚱한 실험과 마법들에는 엉뚱한 재료가 들어간다는 것을 말이다. 가령 내가 던전에서 그토록 찾으려고 애를 썼던 반지가 눈앞의 점원이 현역 마녀일 적에 심심풀이로 만들었던 마도구였다는 알고 싶지 않았던 진실이라던가.


"그 반지를 만들 때 지었던 이름이 연모의 반지였어요. 수백 년 전에 만들었던 제 마도구 중 하나였죠."


"참, 놀랄 노자네. 그 마도구가 지금은 아티팩트로 불려서 2만금이라는 미친 시세에 팔리고 있는데 말이죠."


이는 그녀로서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던 모양이다. 애초에 그 던전이 자신이 지냈던 연구소였던 것도 잊고 살았다 했으니 원.

애초에 수백 년 씩이나 살아온 그녀 입장에서 잠깐 지내다 나왔던 장소를 굳이 기억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으음... 사람들은 때로 그 물건에 담긴 진실을 모르기에 거짓된 가격표를 붙일 수 있는 거겠죠."


"어쩐지 가끔 말하는 것도 음유시인 같더라니. 그럼 오래 살았다는 말도 농담이 아니었겠네요."


"그, 그래요. 엄청 오래 살았죠. 그, 그렇지만요!? 전 항상 20살이라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구요?! 생긴 것도 그렇지 않나요? 그러니까, 당신보다 젊고 어리게 보이니까 그 모습 그대로를 봐줬으면 좋겠네요! 음. 네."


나이를 먹으면 가죽만 두꺼워진다고 하더라니. 옛 어른들 말씀이 틀린 게 없다 아주. 하지만 이를 그대로 입 밖으로 내뱉는다면 곧 목숨에 커다란 위협이 다가올 것 같았기에 그저 웃으며 수긍해줬다. 어쩐지 그녀를 좀 더 이해한 기분이다.


"아무튼 마녀는... 수가 많이 줄었죠. 저는 이곳에서 태어나 마녀의 업을 이고, 연구에 빠져있다가 그만둔 뒤로 세계를 기행 했어요. 마녀사냥이 시작된 후로는 다시 이곳에 돌아와 모아왔던 돈으로 이곳을 산 뒤에 주점 겸 여관 일을 시작했죠."


"굳이 주점 일을 시작한 이유라도 있는 건가요?"


"그야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으니까요. 이 마을은 작긴 해도 접근성이 좋아서 외부인들이 자주 오니까 이야깃거리가 자주 들어오죠. 저는 그 이야기들을 듣는 게 좋아요. 술자리에서 파티원들끼리 수다를 떠는 것부터, 모험가가 미지의 장소를 개척한 이야기라던가, 때로는 어디에서 어떤 사건이 있었다. 아니면 범죄자들이 몰래 암호로 대화를 해서 범죄를 공모한다던가요. 생각 외로 들리는 게 많고, 그에 따라 늘어나는 지식들을 탐구할 수 있어서 저는 이 일이 꽤 마음에 들어요."


평소에 이야기를 잘 늘어놓지 않는 점원 겸 마녀는 은근히 내게 이야기 하고픈 것이 많았는지 꽤 수다스러운 모습이었다. 사실 이렇게만 보면 수백 년을 넘게 산 마녀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꽤 신난 얼굴로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게 꼭 어느 마을에 가도 있는 흔한 처녀 같은 모습이라 흔히 떠오르는 마녀의 모습과는 전혀 부합되지 않았다. 그래도 그녀의 새로운 면이 신선하게 다가와서 나 또한 이야기의 흐름을 타고 맞장구를 쳐준다. 

허나 맞장구 쳐줄 때마다 더욱 신이 난 듯 다른 이야기를 시작하는 그녀를 슬슬 제지해야 할 필요가 느껴져 다른 질문을 던져보았다.


"그래서 묻고 싶은데 아까 잠깐 얘기했던 반지. 그게 대체 뭔데요?"


"네? 아, 그렇네요. 죄송해요. 한동안 말동무가 없다 보니까 너무 딴 소리만 했네... 아무튼 잠시만요."


"뭘요. 괜찮습니다."


"연모의 반지 말이죠? 하아... 그게..."


살짝 발그레해진 그녀의 얼굴을 보면 볼수록 마녀라는 생각은 점점 사라져간다. 그리고 연모의 반지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오자 그녀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가기 시작하는데 무언가 대답하기를 꺼려하는 것처럼 보여 의아한 마음에 되물었다.


"혹시 들으면 안되는 내용이에요?"


"아니요. 그게 아니라... 막상 얘기하려 보니까 당신의 여자였던 사람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으면 안돼서요."


"이미 떠나보낸 사람이니까 그냥 얘기해요."


"후우... 일단 알겠어요."


괜찮다고 안심을 시켰지만 그럼에도 불안함을 감출 수 없는지 한참을 뜸을 들이다가 결국 심호흡을 한 번 거친 뒤에야 입을 여는 그녀였다.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 나온 연모의 반지의 진실을 듣고 나는 이성이 뚝 끊어진다는 게 무엇인지 확실하게 느끼며 주점을 박차고 나섰다.


"허억... 헉...!"


심야에 들어선 밖은 어둡기 그지없었다. 뜨거웠던 낮의 공기는 시원하게 식어 있었지만 내 온몸을 휘감고 있는 분노를 식히기엔 역부족이었다.

미친 사람처럼 뛰고, 또 뛰었다. 그녀와 그 용병 자식이 뜨겁게 몸을 섞고 있던 돼지우리를 향해 숨이 차는 것도 잊고 달렸다.

숨이 차는 것도, 다리가 아픈 것도, 지금 당장 터질 듯한 분노를 참는 것보다는 쉬울 것이니 말이다.


"개새끼들... 개새끼들...!"


욕이 나오는 것도 제대로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분노에 휩싸인 나는 고작 어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미친 듯이 달리고 또 달렸다.



...



"아직도 안 나갔어?"


"...왜 이러는 거야 도대체! 내가 무슨 죄를 졌다고?"


"죄? 죄는 없죠~ 뭐, 보물 사냥꾼이 보물 못 찾은 게 죄라면 죄겠지만."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은 너무나도 차가워서, 내가 기억하고 있던 그녀가 아닌 것만 같았다.

던전에서 의식을 잃고, 머물던 장소로 돌아와 치료에 전념하여 기적적으로 일주일 만에 생환할 수 있었던 내가 어째서 이렇게 된 걸까.

용병놈은 히죽거리는 얼굴로 나의 그녀에게 다가가 거침없이 입술을 맞추고 혀를 섞었다. 눈빛 만으로 살인을 할 수가 있다면 그때일 것이다.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에서 나는 그녀가 용병놈에게 협박을 당했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그게 상식적인 판단이었으니까. 하지만 어떻게 알 수 있으랴. 이미 그녀는 나를 배신하고 완전히 용병 자식의 노리개가 되었다는 걸.

그 증거로 그녀는 용병의 갑작스러운 딥키스에도 잠깐 놀랐을 뿐, 오히려 눈을 감고 거친 숨소리를 내쉬며 거리낌 없이 그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 개망나니 같은 용병 새끼! 당장 그 짓거리 안 멈춰?!"


"음?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죠? 제 여자를 어떻게 하던 당신 알 바가 아니잖습니까."


"뭐, 뭐? 네 여자? 그녀는 나와 결혼을 약속한 사이다...!"


눈에 힘이 들어가고 울부짖듯 소리를 쳐보지만 두 남녀는 아랑곳도 않으며 길고 긴 타액 교환을 나누었다. 그 꼴을 멈추게 할 수 있으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범주의 광경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입가를 살짝 닦아내더니 다시 차가운 눈빛으로 돌아와 내게 모멸 가득한 시선을 보내온다. 


"다시 말하지만 당신이 다시 살아난 건 기뻐. 하지만 당신과 더는 같이 일 못해."


"갑자기 왜 그러는 건데? 내가 고칠 수 있는 문제라면 고칠 게! 그러니까...!"


"아니, 이미 끝난 문제야."


그녀는 잠깐 손짓을 하더니 자신의 목에 걸려있던 목걸이를 해체했다. 그리고 위치를 이동 시켜 자신의 손 위로 올려놓는데 이미 원형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그 잔해들을 바라보며 믿기 힘든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해체한 목걸이는 다름 아닌 내가 선물한 목걸이였으니까.

함께 보물 사냥꾼을 하고, 함께 밤을 보내고, 함께 몸을 맞대던 긴 시간 동안 목에 걸어왔던 목걸이를 내 눈앞에서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부숴버린 모습에 나는 울분에 찬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으, 아아아아아아...!"


"너를 위해서 쓰던 건 돌려줄게. 이 금 잔해가 있으면 어디서 2금 정도는 나오지 않을까?"


그녀는 쥐고 있던 목걸이의 잔해를 땅바닥에 흩뿌리며 말했다. 마치 우리가 지금껏 쌓아온 관계가 무너지는 모습으로 보여 절규하기도 했다.


"대체... 도대체 왜...?!"


"알다시피 선배님은 네가 찾지 못한 반지를 이미 찾으셨고, 내가 힘들 때는 곁에 있어주셨으니까. 그리고 우리 전부 당신을 옆에서 간호했음에도 오히려 당신은 선배님을 거짓말로 매도했지. 그래서 질렸어. 당신이란 사람에게."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 지도 모르겠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모든 게 변해버렸다.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우리의 관계는 이미 파국을 맞이하고 만 것이다. 내가 모르는 무언가 수작질이 있을 것이란 이성적인 판단도 당시에는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렇게 나는 무릎을 꿇고 절망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는 수밖에 없었다.






-다음에 계쏙






쓰는데 마음에 안들어서 지웠다 쓰다 반복했는데 지금도 좀 마음에 안들어서 지웠다가 다시 쓸 수도 있어

항상 읽어줘서 감사하고 내 생각엔 2~3편 내로 끝날 거 같긴 한데 이야기가 항상 제 통제나 예측대로 흘러가지 않으니 확신은 못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