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용사는 태어나지 않는다. 만들어진다.


“세계수에 가까워 질 수록 귀쟁이 특유의 스파이시한 냄새가 후각세포를 자살 시키는군.”


온갖 고초를 끝으로, 비로소 알게 된 ‘시장 납치 및 암컷 타락화’ 사건의 전말.


깐프들의 추악한 열등감으로 발발된 사건을 좌시 할 수 없는 이 몸은 여우년과 함께 그들의 본진 ‘엘프의 숲’ 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이 모든 사건의 시발점, 칸틀러의 뚝배기를 미립자단위로 박살내겠다는 질서 선의 신념과 함께…


“참으로 고약한 냄새로구나. 모쏠아다의 자취방에서 풍겨대는 홀애비 썩은내가 이보다 더 향기로울 것이니라.”


“동감한다. 그런데…네 년 말이다.”


“으흥? 무슨 일 있느냐.”


“못 본 사이에 장신구가 늘어난 것 같군?”


“쿠후후…! 전리품을 조금 챙겼다네. 어떤가? 짐과 어울리는 패물이지 않느냐.”


“…”


도대체 이 여우년은 뭐하는 여우년인가?


이 몸이 한창 당대표년과 대담 나누는 과정을 조용히 배우고 있는가 했더니, 뒤에서 저런 개짓거리나 하고 있었다니?


물론, 국제 용사법에 의거하면 ‘범죄자가 소지한 물품에 한하여 소유권을 강제 이전시킬 수 있다’ 라고 명문화 되어있다만…


이 년은 자기가 뭘 했다고 당대표년의 주머니를 털어 본인 주머니에 한 가득 챙긴 것인가?


정말, 예전부터 느꼈지만 자기 밥 그릇 하나는 기가막히게 잘 챙기는 년이다.


어디나가서 굶어 뒤지지 않을 정도로 말이지.


“…그래, 챙긴 건 이미 챙겼으니 어쩔 수 없다 쳐도 이 몸의 몫은 어디에 있지?”


“물론 챙겼다네, 이걸 받게나.”


아주 당당한 낯색과 함께 이 몸의 손바닥에 ‘자주색 양귀비꽃 뱃지’ 를 건내 준 마왕년.


“흐음?”


이 몸의 손바닥에 올려진, 고풍스러움을 뿜어내는 뱃지를 잠자코 바라보니…


“…이 뱃지는?”


번갯불이 스쳐 지나가듯 머리 속에 누군가가 스쳐 지나갔으며, 또한 동시에 시나리오가 펼쳐졌다.


그 뱃지가 무엇이며


그 뱃지가 누구의 것이며


또한, 그 뱃지가 상정하는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 말이지.


“쿠후후! 그대의 눈빛을 보아하니, 단박에 알아맞춘 모양이로구나.”


“스칼렛 케시…이 년은 하다하다 깐프새끼들의 지랄병에도 관여한건가?”


“그럴 가능성이 높다네, 그 아이는 소위 방랑꾼 마냥 대외활동에 심혈을 기울였으니까.”


어쩐지 당대표년과 대화 속에서, 스칼렛년 특유의 냄새가 풍겨졌던게 그저 우연이 아니었다.


물론 자세한 사정은 칸틀러를 두들겨 패야 알 수 있는 법이다만…


이 몸이 추측하는 바로는 깐프들의 간지러운 부분을 살살 긁어 자극 시켰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 년의 정치질은 상대방의 뒤틀린 감정을 폭주시키는 것으로 시작하니까.


상대방에게 왜곡된 분노를 심어주는 것으로 시작하니까.


“용사여, 참으로 기묘한 우연이지 않느냐? 짐 조차 이렇게 엮일 것 이라곤 상상조차 못했다네.”


“신임 마왕의 영향력이 별의별 온갖 장소에 뻗었다는 증거이기도 하지.”


“흐음~ 칸틀러라는 자가 스칼렛과 엮여있다면…이번 일은 그 아이에게도 도전장 보내는 격이 되겠구나.”


마왕년의 말이 맞다.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모르지만, 동맹 비스무리한 관계라도 맺었다면 칸틀러를 공격하는게 본인을 공격하는 셈이 될 태니까.


“오히려 좋군. 귀쟁이년들의 야욕을 막는 것이 스칼렛의 계획에 차질을 준다면…우리가 원하는 방향 아니겠나?”


“쿠후후! 상정 외의 상황에 꼬리 털 바짝 세우며 당황 할 모습이 눈에 그려지는구나.”


“동기부여가 확실하군. 그리고 마침…”


그렇게 대화를 나누던 와중, 어느덧 엘프의 숲 입구에 다다른 이 몸과 여우년.


자연 본연의 모습을 간직한 거대하면서도 울창한 나무들과 그 나무에 매달린 무수한 덩굴들이 손님을 맞이했다.


“마땅히 출입구라고 할게 보이지 않는군.”


빼곡히 자리잡은 나무 틈 사이에 비집고 들어가는 수를 제외하곤 통상적인 출입구 개념이 없는 이곳.


한 눈에 보더라도, 외부와의 접촉을 완강하게 거부하겠다는 의지가 고스란히 서려있었다.


나도 안 나갈태니, 너도 오지말라는 그런 의지가 말이지.


“…그런데, 그런 녀석들이 외부로 나아가 세계를 정복하겠다라? 정말 모순이 따로없군.”


“쿠후후! 그렇기에 세상일은 상상치 못한다고 하지 않겠느냐?”


“그래. 칸틀러에게도 상상조차 못한 일이 벌어질거다…그건 그렇고, 본론으로 들어간다.”


“으흥? 작전이라도 짜려는게냐?”


“그렇다. 마왕년, 네 년이라면 이제 어떻게 할거냐?”


“으흐으음, 어떻게 한다라?”


“훌륭한 용사가 되기위해선 작전 구상은 필수다. 잘 생각하고 답하도록.”


“으으음…그대의 뜻이 그리하다면야.”


말꼬리를 맺는 동시, 턱을 괴며 두뇌회전에 들어간 마왕년.


좌우로 꼬리털이 빠질 정도로 흔드는 모습을 보아, 이 몸의 질문에 나름 골똘히 생각하는 모양이다.


“끄으으응.”


게다가, 침음까지 삼키면서 말이지.


“…아! 그렇구나!”


그리하여 잠시 후, 나름 참신한 수법을 구상했는지 손가락을 튕기며 씨익 웃는 마왕년.


자신감에 가득찬 낯색과 함께 ‘그대라면 무조건 만족 할 거라네!’ 라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용사여, 그대가 마왕성에 쳐들어왔을 때를 기억하는가?”


“당연히 기억하고 있다만, 몇 번째 때 쳐들어온 걸 말하는거지?”


“열 번째라네. 짐은 그 때의 방식이 이 상황에서 최상이라고 판단하네.”


“호오? 분명 열 번째 침공 했을 때라면…”


바야하르 침공 횟수가 두 자리에 도달했던 당시.


정문으로 침공, 쥐구멍으로 침공, 비밀통로로 침공, 심지어 난간에 붙어서 쪽문으로 침공 등등.


온갖 할 수 있는 침공업적을 다 쌓았던 이 몸은 ‘열 번째 침공 기념’ 및 매너리즘을 방지하고자 기발한 방법을 고안했었다.


“…메이드로 변장해서 네 년의 침소에 침략했었을 때로군.”


그렇다.


좌뇌와 우뇌를 최대한 짜내어 고안했던 획기적인 방법.


그것은 다름아닌, ‘메이드로 변장’ 해서 마왕의 침소에 깜짝 침공이었으니…


“당시 야밤에 치킨 뜯어먹다가 놀란 네 년의 낯색이 일품이었지.”


“당연하지 않는가. 설마, 그대가 여성의 모습으로 침공하리라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느냐.”


참고로 첨언하자면, 마왕년은 놀라서 자지러지는 그 순간에도 양 손에 닭다리를 놓지않는 곤조를 보여줬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식탐이라고 해야겠지.


“아무튼, 제법 좋은 제안이다. 아무리 귀쟁이년들이 마력감지에 민감 할 지라도 이 방법은 먹힐 수 밖에 없으니까.”


“그렇도다. 짐 조차도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낌새를 눈치 챌 수 없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사천왕이었던 리치도 눈치 채지 못했지.”


이렇듯, 대륙에서 마력으로 둘 째 가라면 서러운 마왕년이나 리치도 눈치채지 못했던 방식.


사전 준비과정이 다소 용기가 필요하고, 유지하는 내내 신경써야 할 부분이 많긴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놓고보면 최적의 판단이라 여길 수 있다.


“좋다! 말 나온김에 곧 바로 행동으로 옮기도록 한다.”


말을 마치자마자 4차원 주머니를 꺼내든 이 몸.


“흐음…”


원칙적으로 꺼내어 보여주고 설명에 다다르는데까지 5초도 걸리지 말아야 할 터인데.


“분명, 이 부근에 보관했을 터인데.”


한동안 방치해둔 탓에 온갖 작업도구로 뒤섞인 탓에 찾는게 쉽지 않았으니…


“용사여, 짐의 성에서 얼마나 훔친게 많으면 고작 물건 하나 찾는게 오래 걸리는게냐? 혹은 아다새끼라서 구멍을 못찾는게냐?”


“아가리 여물도록. 그리고, 훔친게 아니다. 물건의 위치를 이 몸에게 옮긴 것이니까.”


“쿠후후…! 아다새끼라는 건 부정하지 않는구나.”


가뜩이나 바로 찾지 못해서 짜증 나려던 찰나에 눈치없는 여우년이 겐세이까지 부리니, 더 꼬이는 기분이다.


“…”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


“…”


세계수에 걸친 태양의 시선이 점점 수면 아래로 떨어지려는 무렵…


“…여기 있었군.”


기여코, 우여곡절의 시련 끝에 작업도구를 찾아낸 이 몸.


숨이라도 돌릴까 싶었다만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지체한 탓에 지체없이 본론에 들어갔다.


“이 도구가 이번 작전의 열쇠다.”


“흐으응? 그건 철 가위가 아니느냐? 제법 날이 매서롭게 서 있구나.”


“맞다, 한 번에 안 끝나면 여러모로 골치아프니까 날을 잘 다듬어놨지.”


그렇다.


겉으로 보면 평범한 가위이며, 실제로도 평범한 가위의 기능을 가진 이 작업도구.


하지만 용기를 내어 눈 딱 감고 한 번만 ‘싹둑’ 하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만드는 그런 도구다.


“용사여, 그걸로 뭘 할 생각인게냐?”


“자르겠다.”


“자른다는게 설마 짐이 생각하는…”


“아마도 네 년의 생각과 일치 할 가능성이 높겠군.”


“…쿠후후후후.”


얼굴빛이 많이 복잡해진 마왕년.


자르겠다는 이 몸의 말 한 마디에 생각이 많아졌는지, 좀처럼 당황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역시 그대의 생각의 범주는 타의의 추종을 불허하구나.”


“마왕, 잘 듣고 가슴에 세겨라. 용사란 때때로 버려야 할 것을 과감하게 버릴 줄 알아야한다.”


“그렇게 말이냐?”


“이렇게 말이지.”




싹둑ㅡ!




“…호오, 이것이 용사의 각오…”


세계수에 걸친 태양의 시선이 더 이상 보기 힘들게 된 무렵.


불어오는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과 더불어 날카로운 쇠붙이 소리가 공터를 매웠다.


그래.


공터를 가득 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