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용사는 태어나지 않는다. 만들어진다.

1화 : https://arca.live/b/monmusu/101007593


2화 : https://arca.live/b/monmusu/101007626


3화 : https://arca.live/b/monmusu/101007657


4화 : https://arca.live/b/monmusu/101007688


5화 : https://arca.live/b/monmusu/101477707


6화 : https://arca.live/b/monmusu/101861677


7화 : https://arca.live/b/monmusu/102074828


8화 : https://arca.live/b/monmusu/102318072


9화 : https://arca.live/b/monmusu/102659994



“족장 선거로 세계수혁명당의 칸틀러가 당선되었다?”


콧수염이 예사롭지 않은데다가, 손 모양이 여러모로 위험해보이는 깐프 녀석.


그런 깐프 녀석이 엘프 사회의 신임 족장이 된 것과 이번 사건에 어떠한 상관관계가 있는건가?


‘…저 귀쟁이 새끼가 시장을 공구리쳤나?’


그런 연유가 아니고선, 저 고블린년이 이 몸에게 이 신문 기사를 보여 줄 이유가 없다.


‘그게 사실이면, 터무니 없을정도로 대단한 녀석이다. 하긴…와꾸를 보니 왠지 그러고도 남을 녀석 같다만.’


관상은 과학이다.


저 귀쟁이 녀석의 사진을 보라.


아무리 서글서글하게 웃는 눈매지만, 동공 속에는 사람 한 두명쯤은 씹어 먹을 표독함이 서려있다.


마치, 결혼 못한 노처녀가 어리고 이쁜 여자에게 온갖 험담을 퍼붓는 그런 표독함이 말이다.


또한, 건치를 자랑하는 미소 역시 겉으로는 호탕해보이지만 ‘용사륜안’ 으로 분석하니 독함이 서려있다.


마치, 코다리 강정에 마라 소스 두바퀴 뿌리고 민트 초코 토핑해서 먹을 수준의 독함이…


‘추가로 오른 팔을 하늘 높이 치켜든 자세는 도무지 의미를 알 수 없지만, 엄청나게 위험한 사상을 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확실히 단정지을 근거 따윈 없지만, 이 몸의 뉴런과 시냅스가 위험하다고 속삭이고 있으니 결코 틀리지 않을 것이다.


여태껏 직감이 틀린 적은 없었으니까.


“저기, 용사님? 개빻은 면…아니, 심각한 표정을 보니 짐작가시는 거라도 있으신가요?”


그렇게, 한참동안 추리를 하던 와중에 귓가로 스며들어온 고블린년의 목소리.


저 년이 뭔가 불경한 소리를 입 밖에 꺼내려고 한 것 같은데, 우선 사안이 사안인 만큼 넘어가기로 했다.


“그래서, 결론은 이 콧수염 깐프새끼가 이번 사태의 주범이다. 이건가?”


“으으음? 과연 그럴까요? 그게 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요.”


“흐음?”


“어떻게보면 틀렸다고 할 수 있지만, 다른 관점에서보면 재대로 봤다고 할 수 있죠. 렌티큘러 프린팅 같다고 할 수 있겠네요.”


맞으면 맞는거고, 아니면 아닌거지.


무슨 쳐맞을 소리를 하며 간 보고 지랄인가.


저 년의 그러한 행태는 가뜩이나 점심도 굶고 쓸 대 없는 일에 심력을 소모한 이 몸에게 있어서, 신경 세포를 자극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네 년, 겁도 없이 이 몸과 장난질을 하자는건가?”


“…네?”


“랜티큘러고 뭐고 스틱스강 하류에 터잡은 가족에게 명절 기념으로 방문하겠다는 저의로 들린다만?”


“저…기요?”


첫 단추부터 잘못 꿴 모양이다.


건물에 도착하자마자 불 질러서 튀어나오게 한 다음, 신체를 이용한 ‘진실 된 대화’ 를 나눴어야 했는데.


그렇게해서, 있는 정보 없는 정보 다 내뱉게 했어야 했는데.


새로운 용사로 거듭나는 마왕년에게 용사로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던 이 몸의 욕심이 지금의 상황을 초래했다.


“…아아아!!! 그…그러니까!!! 용사님이 틀렸다는 건 아니고요!!” 


“흐으음.”


“잠시! 잠시!! 주…주먹은 내리고!!! 일…일단 말을 이어 갈 기회를 주세요!!!”


“흐으으음.”


이 몸의 서슬푸른 분노가 전해진건가?


필사적으로 살아남기위해 양 손 양 발 다 휘저으며 발버둥치는 저 꼬락서니를 보니까 말이다.


“좋다. 항변 할 기회를 주지. 허나, 똑같은 실수를 하면 두 번은 없다.”


“알…알겠어요! 성격도 참…! 우선, 서론으로 칸틀러가 당선 된 배경에 대해 말씀드릴게요.”


말을 마치는 동시, 신문 뒤편에 표시된 그래프를 보여준 고블린년.


그 그래프에는 칸틀러의 득표율이 무려 99.7%, 말도 안되는 수치로 당선되었음을 나타냈으니..  


“불법 선거라도 한건가? 북방설산에 거주하는 불곰수인 선거에서나 볼 법한 득표율이군.”


“그렇지 않아요. 놀랍게도 경쟁 후보들도 인정한 결과죠. 즉, 극 소수를 제외한 모든 엘프들이 칸틀러를 지지한다는거죠.”


“흐음…만인이 지지한다라?”


“칸틀러는 엘프들의 공통적인 불만 요소를 정확하게 자극했어요. 전 그런 행보가 무수한 사상을 가진 엘프들을 하나로 뭉치게 한 요인이라고 봐요.”


“대륙 최고의 똥고집들을 한대모아 하나로 모았다니…그 요인이 뭐지?”


“…엘프들의 열등감. 대륙 최고 종족으로서의 무너진 자존심.”


“무너진…자존심.”


엘프들의 자존심은 두 말 하기도 서러울 정도로 강하다.


나름, 대륙 태생부터 함께 한 종족이라는 프라이드는 그들의 내면 속에서 ‘신에게 선택받은 대륙의 주인’ 이라는 선민의식을 품게했으며


이러한 선민의식은 나머지 종족을 싸그리 묶어 ‘열등종족’ 이라고 본인들이 스스로 지껄일 정도다.


물론 역사를 공부하면 아주 이해못할 건 아니다.


대륙 문명의 기초가 된 마법과 문자, 그리고 복식체제를 창시한게 그들이니까.


지금의 마이아 대륙의 번영도 엘프에서 시작 된 건 자타공인 인정하는 사실이니까.


그런데, 그런 종족이 열등감을 느낀다?


그 이유는 굳이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답이 바로 나왔다.


“…태초의 중심이었던 그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도태되어 골방 늙은이 취급 받고 있어서 그런건가.”


“역시 용사님은 바로 이해하셨네요. 네, 정확하게 맞췄어요. 엘프들은 우월감으로 타 종족들을 배척하고 스스로 고립했죠. 아주 오랜 시간동안 말이에요.”


“그리고, 그 시간동안 타 종족들은 기술을 발달시키고 새로운 문명을 개척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말이지.”


태초 문명의 창시자라는 명성에 무색하게, 현재 엘프는 시골뜨기보다 더 한 원시인에 가까운 취급을 받고 있다.


오죽, 이런 사회현상은 대중매체에서도 최신 문물을 접하고 놀라 자빠지는 엘프를 희화화하는게 클리셰로 나올 지경이니까.


“그렇죠. 그런 요소들은 엘프 사회 내부에서도 위기감이 피어났어요. 자신들이 열등하다 무시했던 존재에게 명백하게 뒤쳐지고 있으니까요.”


“칸틀러는 그 부분을 캐치하고 엘프들로 하여금 위기감을 증폭시키는 동시에 상처 난 자존심을 자극했다는 뜻이로군.”


“진짜 대단하세요. 용사 짬밥은 괜히 있는게 아닌가 싶네요.”


“흐음! 네 년이 말 한대로 배경은 이해했다. 그래서 깐프의 열등감이 이번 사건과 무슨 연결고리가 있는거지?”


“어휴! 성격도 참 급하셔…! 이어서 말하자면, 그 열등감을 바탕으로 나온 엘프들의 시대정신…엘벤스라움. 칸틀러는 엘벤스라움을 주창하고 있어요.”


“엘벤스라움?”


“마이아 대륙은 태초 엘프의 소유였으니 우린 다시 주인으로서 복귀하겠다…즉, 대륙의 만물과 모든 종족을 엘프의 치하에 두겠다는 사상이죠.”


“허구한 날 나무 옹이에 쳐박다가 뇌가 좆이라도 된건가.”


상당히 위험한 사상이다.


이런 위험한 사상을 가진게 신임 마왕만 있는게 아니라니?


정말, 마이아 대륙이 좆망하기 일보직전의 상황인가? 라는 고뇌를 품게 만드는데 충분했다.


“그래서, 귀쟁이 새끼들은 한따까리 치려고 전쟁준비라도 하고있나?”


“전쟁이라면 전쟁이라겠다만…오래 산게 폼은 아닌지, 무력이 아닌 ‘다른 수단’ 으로 작업하고 있어요. 바로 이게 포인트에요!”


“다른 수단이라?”


“용사님, 최근 1년간 주요 도시에서 엘프와 우효교류 협정을 맺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우호 협정? 본인들이 무시하는 종족과?”


“이상하죠? 엘벤스라움을 주창하는 자들이 타종족과 우호를 위한 교류를 한다는게요.”


“귀쟁이들이 겉과 속이 다른게 하루 이틀 일이겠나. 뒤에서 칼빵 놓으려고 앞에서 가면을 썼을태지.”


“그렇죠, 그게 귀쟁이 종특이니까요. 그리고 그러한 생각에 뒷 받침 할 만한게 말이죠…이걸 보세요.”


고블린년의 말마따나, 그녀가 양 쪽에 펼쳐둔 신문기사로 시선을 향한 이 몸. 


한 편에는 엘프와 시장이 ‘우호증진을 위한 교류’ 라는 이름으로 손을 잡은 기사들과


다른 한 편에는 그런 시장들이 ‘원인불명’ 으로 실종되었다는 기사들이 서로 매치되어 있었다. 


“전 용사님이 말한 사건이 단순한 납치 사건이라기보단, 거미줄처럼 엮인 복합적 사건이라 추정해요.”


“…”


어디까지나 고블린년도 추정이라고 했다만, 추정치고는 너무 시기가 교묘하다.


일련의 사건들이 엘프 사회의 분위기와 엮여, 간접적으로 연관이 있다고 느껴지니까.


“…흐음.”


시장의 납치와 암컷타락.


귀쟁이향이 물씬 풍긴 고리대금업자.


그리고, 칸틀러와 엘벤스라움.


제각각 놀고있는 퍼즐들 사이에 어떠한 연결고리가 있는건가?


“어이, 여우년. 그만 쳐 졸고 네 견해를 말하도록.”


“쿠흥?!”


중대사를 논하고 있는 와중에도 슬그머니 쳐 졸고있는 저 여우년은 진짜 뭐하는 여우년인가?


금수 새끼라서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아프면 싸는건가?


이런 여우년의 모습을 보면, 수 년간 마왕 직위에서 군림한 것도 불가사의 할 따름이다.


“크흐으음…! 용사여, 짐은 그대와 같은 생각을 품고 있노라.”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고 그딴 말을 지껄이는거지?”


“수상해도 너무 수상한자 아니더냐? 당장 세계수에 매달아서 진실을 토하도록 만들어야하니라.”


“흐음?”


“미시가 교미하니 자시고 진실은 주먹에서 나오는 법이지 않겠느냐?”


저 여우년 봐라?


그냥 막무가내로 말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이 몸이 품고있는 생각과 상당부분 일치 하는 건가.


역시 길쭉한 귀때기는 폼으로 달고 있는게 아닌건가.


혹은, 해양 생물처럼 저 년도 좌뇌와 우뇌를 교차하면서 수면을 취한 덕에 자면서도 들을 수 있는건가.


수인이란 정말 알 수 없는 종족이다.


“미안해요 용사님. 저도 마음 같았으면 확실한 정답을 주고 싶었지만…여건상 쉽지 않네요.”


“그렇지 않다. 이 정도도 훌륭한 수준이니까.”


“하지만! 풀리지 않는 실타래의 틈새를 비집을 수 있는 또 다른 정보가 있어요!”


이윽고, 빈 종이에다가 무언가 열심히 끄적이기 시작한 고블린년.


“…이건?”


그건 다름아닌, 주소와 함께 간략하게 표기된 위치도였다.


“이 부근에서 가장 유명한 고리대금업자들이 모인 사설길드 위치에요. 만약, 시장이 용사님 추측대로 고리대금업자와 커넥션이 있다면 정보를 얻을 수 있겠죠.”


“좋은 정보군. 모름지기 정보란 두들겨패서 얻는게 가장 확실하니까.”


“그게 아니더라도 확실히 담가주세요. 저 녀석들 패악에 진저리 나니까요!”


“네 년의 정성을 보아 고려하도록 하마.”


그렇게, 점점 쌓여가는 정보와 비례하여 쌓여가는 의혹들.


여전히 미궁 속에 해매는 기분이지만, 그래도 점점 앞으로 나아갈 수록 틈새 사이로 옅은 불빛이 일렁거리고 있다.


‘…오직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저 불빛 너머에 출구가 나올지, 혹은 또 다른 미궁이 나올지 알 수 없다.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야한다.


그것이 용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