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용사는 태어나지 않는다. 만들어진다.

1화 : https://arca.live/b/monmusu/101007593


2화 : https://arca.live/b/monmusu/101007626


3화 : https://arca.live/b/monmusu/101007657





“마왕, 네 년을 용사로 만들겠다.”


“쿠후후! 마왕인 짐을 말이더냐?”


“과거는 중요하지 않다. 용사는 태어나는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법이니까.”


“상당히 흥미로운…아니, 상상조차 못 한 제안이로구나!”


셀 수 없을 정도로 수 많이 쌓인 ‘용사 데이터 베이스’ (사제용어로 짬밥이라 한다.) 를 토대로 도출한 이 몸의 결론.


그 결론의 끝은 다름 아닌, 저 반푼이 마왕을 용사로 만드는 것이다.


전문 용어를 첨언하자면 ‘약간의 정신개조가 가미 된 신분 세탁’ 을 하겠다는 것이다.


“역시 모쏠아다에다가 마이아 대륙 선정 ‘콘돔회사의 실패물’ 로 선정된 자의 신묘한 계책이라니…자세한 계획을 들어보고싶구나.”


“이런 시발년이?”


뭔가 여우년의 워딩에 듣기 좆같은 수식어가 섞여있으나, 지금 상황에서 따지고 들어갈 수 없는 노릇.


더더구나, 이 몸의 계책에 진심으로 흥미를 느꼈는지 벚꽃빛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모양새를 보니 꾹 참고 설명을 이어갈 수 밖에 없었다.


저렇게 흥미가 생긴 마당에 제안한 쪽에서 맥을 끊을 순 없으니까.


“마왕, 네 년이 용사가 되어야 할 이유는 무려 두 가지도 아닌 한 가지나 있다.”


“오호라? 두 가지도 아닌 한 가지라면 다단계 네트워크 사업 제안이라 해도 흘려 들을 수 없겠군.”


“병신 같은 년…네 년이 말한 막고라는 어디까지나 마족과 마족간의 힘의 논리에서 일어나는게 아닌가?”


“그 말이 맞다.”


“그런데, 단순 무력으로 맞 붙었다면 네 년이 비서년에게 맞다이로 패배할 일은 없었을태고.”


“그것 또한 맞는 말이다. 그 아이 정도 수준이면 뺨싸대기 날려서 턱 돌아가게 만들어, 평생 나물죽만 먹게 할 수 있을태니까.”


“그렇다면, 네 년이 밀린 이유는 무력이 아닌 정치 싸움에서 패배…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네 년의 편이 없기에 벌어진 사단이로군.”


“…쿠후후. 그것이 짐이 말한 ‘또 다른 힘의 논리’ 일세.”


이 몸의 명확한 문제 파악에 그저 씁쓸한 미소를 머금는 마왕.


그 미소를 비유하자면, 카카오 99% 함유 초콜렛을 씹어먹은 후 진한 에스프레소를 털어먹은 것 보다 더 한 쓴 웃음이었다.


“자고로 정치질이란 개개인의 힘이 아닌 쪽수가 중요한 법이다. 이 몸이 앰생백수 꼬라지가 된 이유도 그런 맥락이지.”


“이게 말로만 듣던 반면교사로구나! 정말 훌륭한 자로다!”


“비아냥 삼가고 아가리 여물도록. 즉, 네 년이 다시 왕좌를 차지하기 위해선 네 년과 뜻을 ‘동조’ 해 줄 세력이 필요하다.”


“과연, 옳다. 실제로 막고라의 단계에 다다르기 까지 사천왕을 비롯한 마왕성 간부 그 누구도 짐의 편을 들지 않았으니 말일세.”


당연히 그럴 법도 하다.


마족의 대표이자, 우두머리의 역할을 수행해야 할 년이 정사를 돌보기는 커녕, 부하에게 짬통 때리고 본인의 소확행만 챙겨댔으니까.


물론, 가끔은 그러한 향락을 누리는게 잘못 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적당히 눈치 껏 할 일은 하고 했어야지, 눈치없이 직무유기하고 저질렀으니…


마왕년의 밑에서 온갖 개고생을 하며, 예하 마왕군을 관리하던 간부들은 당연히 배알꼴려서 반란을 일으킬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네 년이 세력을 긁어모으려면 어디서 긁어 모아야겠나?”


“흐으음…”


이 몸의 질문에 귀를 쫑긋거리며 고민에 빠진 전직 마왕년.


“크흐으음…스칼렛과 뜻이 맞지않은 부류들이지 않겠는가?”


“60점짜리 대답을 했군.”


나름 머리를 굴려가며 최적의 답안을 제출했으나, 아쉽게도 그 답안으론 이 몸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허면, 용사 그대가 생각하는 만점짜리 답안은 무억인게냐?”


“우선, 신 마왕 세력에 반대하는 부류가 있어도 소수에 불과하겠지. 애당초 쿠데타를 일으킬 정도면 전군 99%는 포섭했을태니까.”


“그렇다면 동조 가능성이 있는 세력은 고작 1%겠구나.”


“아쉽게도 그정도의 소수를 모은다 한 들, 바위에 계란깨는 격이다. 때문에 남은 99% 를 채울 수 있는 유일한 수는…”


“유일한 수는?”


“외부세력을 포섭하는 길 뿐이다.”


“…외부세력?”


지금 마왕의 상황은 소위 말해서, 찬밥 더운밥을 가릴 처지가 아니다.


진심으로 왕위 복권을 하고 싶으면 죽은 자식 부랄이라도 만질 심산으로 임해야하니까.


“물론, 외부세력이라고해서 왕국세력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뭐, 왕국 역시 비서년의 손아귀에 놀아났으니 의미도 없겠지만.”


“…그렇다면, 그대가 말하는게 마왕군에 속하지 않은 이종족들을 의미하는겐가?”


“정확하게 짚었군. 그 말이 맞다. 정확하겐 신 마왕군체제에 피해받는 부류들이지.”


“과연…숫자가 제법 될 것이라네. 스칼렛은 마왕군 소속이 아닌 이종족들을 차별해야한다 주장했으니…물론, 짐은 한사코…”


여기서 드러난 또 다른 내막.


마왕의 낯색이 씁쓸한 것으로 보아, 아마 본인은 그러한 정책 입안을 완강히 거부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동시에 마왕이 비서에게 힘 싸움에서 완전히 밀렸음을 상정하는 부분이기도 하고.


“…아무튼, 그러한 외부세력들을 포섭할 것이고, 포섭하기 위한 대외활동을 할 것이다.”


“그러한 대외활동을 하기위해 용사가 되라는 의미로구나.”


“그렇다. 용사가 된다면 ‘정의사회 구현을 위한 봉사’ 라는 명목으로 각종 의뢰를 도맡을 수 있지.”


“그 의뢰들을 해결하다보면 세력에 합류할 인원들이 생기겠군. 그런데 말이다…”


말 끝을 흐리며 무언가 미심쩍은 부분, 아니 단순한 의문이라도 있는지 말문을 흐리는 마왕.


저렇게 귀를 쫑긋거리는게 꼭 쓸대없는 질문을 할 것 같다만, 일단 들어보기로 마음먹었다.


맥 빠지는 질문을 하면 그 때 뚝배기를 부숴버리면 그만이니까.


“마왕인 짐이 용사가 되는게 사회에서 용납되겠느냐? 차라리 그대의 이름으로 대외활동을 하는 편이 좋지 않겠는가 싶다만?”


“흠…”


이 몸이 예상했던 바와 달리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 마왕.


용사는 돈벌이가 되는가? 라던지 용사가 누리는 복지혜택이 있는가? 같은 쓸대없는 질문인 줄 알았건만…


제법 질문다운 질문을 던진 모양새가 저 년…나름 진심으로 임할 생각으로 사료된다.


“우선, 이 몸은 마왕군의 뒷 공작질로 용사에서 제명당한 상태다. 즉 공식적으로 용사질을 할 수 없지. 그리고…”


“그리고?”


“대륙의 99.9% 는 네 년이 마왕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니, 신분세탁에 대해선 걱정하지않아도 된다.”


“…그게 무슨 말이더냐? 짐이 왕위에 있었는지도 어연 5년이나 흘렀건만?”


저 방구석 히키 여우년은 진심으로 믿지 못하는 눈치다.


어떻게보면 당연하겠지.


나름 마왕군의 최고 결정권자로서 군림했으니까.


그렇다면, 마음 아프지만 저 여우년에게 냉혹한 현실을 깨닫게 해줘야 할 때다.


“네 년은 5년동안 부하들에게 짬처리시키고 방구석에서 농땡이피우고 공식석상에서도 일절 모습을 비추지 않았다.”


“…그건 사실이긴 하나, 표현이 좀 그렇구나! 짐은 그…그래! 부하들의 자율성을 보장한 것이라네!”


“지랄하네.”


“…”


“오죽 쳐박혀 있었으면, 대도서관 세계수 위키에도 여전히 전대 마왕이었던 느그 애비가 아직까지도 현재 마왕으로 나온다.”


“…그게 참 말 이더냐?”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당혹감을 심하긴 느낀 마왕년.


아무래도 장례식까지 치른 애비가 인터넷 세상 속에선 여전히 살아있다는 아이러니한 현실을 못 받아들이는 것으로 비춰진다.


“역설적으로 대부분 세상 사람들은 네가 마왕이라는 사실을 모르기에, 네 년 용사 지원서를 넣어도 전혀 문제가 없다.”


첨언하자면 대도서관에서 ‘에멜드’ 라는 이름 석자를 찾아도 나오는게 없는 상황.


저 년이 왕세녀시절부터 지금 마왕에서 강제 폐위당한 순간까지 얼마나 일을 내팽겨 쳤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설령 뽀록나더라도 느그 개잡종새끼들이 왕국에 로비해서 재정된 ‘마족 차별 금지법’ 을 운운하면 법적으로도 문제없지.”


“…”


“그러니 잠자코 용사가되어 많은 선행을 쌓도록. 그 선행들이 하나 하나씩 쌓아가면 세력이 될 것이고, 세력이 쌓이면 비서년과 맞다이를 뜰 수 있을 태니까.”


“…끄응. 알겠다네. 그대의 뜻대로 따르겠네.”


이로서, 글러먹은 방구석 히키코모리 여우년을 복권시키는 완벽한 솔루션을 선보인 이 몸.


물론 말로는 쉽게 쉽게 설명했으나 사실, 그 과정은 결코 녹록치 않다.


어디까지나 이 몸은 여우 년을 훌륭한 용사로 태어나게 해 업적을 쌓게 해줄 수 있으나, 저 년이 못 받아 쳐먹으면 말짱 도루묵이니까.


‘그래도 선택지가 없다. 비서년이 이빨을 완전히 드러내기전에 무슨 수라도 써야하니까.’


이 와중에 불행 중 다행인건, 저 여우년은 이상하게만치 이 몸의 말을 잘 따른다.


진짜 싸가지 밥 말아먹은 왕족이라면 본인의 몸에 흐르는 로열 블러드의 반작용 때문인지, 곧 죽어도 남의 말을 안들어 쳐 먹으니까.


‘그래. 잡다한 생각은 이제 멈춘다. 오직, 저 여우년을 용사로 만들고 종국엔 마왕성 왕좌에 앉힌다. 오직 그것에만 집중하자.’


…게다가, 저 길바닥에 내쫒긴 뇌가 순수한 여우를 차마 모르쇠 할 수 없는 노릇이기도 하고.


“자, 마왕이여. 쇠뿔도 뺀김이라는 말이 있으니 어서 이동하도록 한다.”


“어디로 갈 것인게냐?”


“중앙 용사 길드. 우린, 이곳에서 대장정의 서막을 올린다.”


그렇다.


빨리 이동해야한다.


왜냐하면, 중앙 용사 길드 공무원 새끼들은 점심 시간 이후론 일 안하려고 밍기적 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