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용사는 태어나지 않는다. 만들어진다.

1화 : https://arca.live/b/monmusu/101007593


2화 : https://arca.live/b/monmusu/101007626


3화 : https://arca.live/b/monmusu/101007657


4화 : https://arca.live/b/monmusu/101007688




“쿠후후…! 용사여, 짐이 한 가지 묻겠네.”


“서류 접수 및 검토 시간이 부족하니, 간결 명료하게 말하도록.”


싱글벙글한 마이아 대륙의 평화를 지키고자, 마왕을 용사로 탈바꿈 하는 계획에 입안한지 어연 30분 후.


중앙 용사 길드에서 한창 ‘용사 지원서’ 를 작성하던 마왕은 무언가 찝찝한 구석이 있는지, 귀를 쫑긋대며 이 몸을 빤히 바라봤다.


“직업란은 어떻게 쓰면 되겠는가?”


“뭘 어떻게 적어. (전) 마왕군 최고통수권자 마왕이라 적으면 되지. 정 부담스러우면 (현) 방구석 히키새끼라고 적어도 무방하다.”


“크으음? 마왕이라 적어도 무방하다는게냐?”


“마왕이 용사질 하는 건 아무 일도 아니다. 애엄마도 슬라임도 거미도 심지어 온천이나 자판기도 용사하는 세상이니까.”


“아니, 애엄마고 슬라임이고 고사하고 미생물이 용사를 하다니? 그게 물리적으로 가능한 일이더냐?”


“그렇다. 소위 말해, 개나 소나 용사하는 세상이다. 이젠 용사가 치킨집보다 많을 지경이니.”


“하긴! 그대같은 모쏠아다도 용사랍시고 거드럭대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니구나!”


“이런 여우년이?”


저 여우 년…오래 전 부터 느꼈지만, 한 대 먹으면 기여코 한 대 먹이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그 모습을 한 편으로 보면, 아직까지 주제파악 못하고 정신 못차린 꼬라지지만…


다른 한 편으로 보면, 기 죽지 않고 덤벼대는게 용사가 될 깜량을 가진 년이라고 반증한다.


“용사여, 이것도 좀 보겠는가?”


“이번엔 뭐지? 그리고 나이란은 네 년의 희망 나이를 적는게 아니다.”


“…칫! 그건 그렇고, 이건 상당한 난제로구나.”


당혹함과 뻘쭘함이 한 70퍼센트, 그리고 뻔뻔함 30퍼센트로 점철된 여우 년의 면상.


보증 써달라고 부탁 할 법한 자세로 이 몸을 빤히 응시하는게 예사롭지 않았으니…


“흐음? 도대체 무엇이길래 저 지랄이지?”


그리고, 그 눈빛은 자연스래 이 몸의 시선을 신청서로 향하게 만들었다.


“계좌번호…?”


“그렇다. 계좌번호로다.”


“그거야 네 년이 보유하고 있는 통장의 번호를 적으면 되건만…설마?”


“쿠후후! 용사여, 그대가 짐작한 바로다.”


직업란에도 애로사항을 겪더니, 이젠 하다하다 계좌번호란도 애로사항을 겪는 저 여우년을 보라.


어지간한 꼬맹이도 저축한답시고 개설한, 개나소나 가지고 있을 계좌가 없으신건가?


그것도 나이 줄 쳐먹을만큼 쳐먹고, 게다가 마왕자리에 앉아 꺼드럭거렸던 년이?


“네 년은 도대체 인생을 어떻게 산거냐? 뒷 골목 창녀도 옆 골목 건달 새끼도 지 명의로 된 통장 하나 쯤은 있을터인데?”


“짐을 뭘로 보는게냐? 당연히 있었다!”


“그렇다면 그걸 적으면…아니, 뭐라고? 있었다? 그 말은 즉슨…?”


“그렇도다! 비서가 짐의 계좌를 동결 시켰노라. 역시 이 몸의 핏줄 답게 참으로 치밀하지 않느냐?”


“치밀이니 자시고 여러모로 사람 놀라게 만드는 년인건 확실하다. 헌데, 네 년은 무슨 짓을 했길래 계좌동결을 당한거지?”


“…쿠후후! 그건 중요한게 아니도다. 용사여, 그대가 말하지 않았는가? 시일이 촉박하니 어서 접수를 해야한다고.”


여우 특유의 눈매로 어물쩡 넘기는 꼬락서니가 무슨 일이 있음을 명백히 들어났으나, 저 년의 말마따나 지금은 접수가 우선인 상황.


“그래. 용사 지원서 접수와 함께 처리해야 할 서류도 있으니까.”


게다가 지금 이 몸의 손에 쥔 그득한 서류 역시 한 번에 처리하지 못하면, 몇 차례고 재 방문 할 불상사가 발생하기에 우선 불문에 부치기로 마음 먹었다.


“우선, 계좌는 별 다른 뾰족한 수가 없으니 임시적으로 이 몸의 것을 사용하도록 한다.”


“쿠후후! 이렇게 짐을 예속시키다니…나중엔 밤 시중도 들라고 하겠구나! 마치 자네가 애지중지하는 얇은 책 처럼 말이지!”


“이 몸은 빠가사리에게 박는 성적 취향이 없으니 아가리 여물어라.”


이 년이 어떤 영문으로 이 몸이 소지중인 서적의 행방을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만, 그것 역시 중요한 사안이 아니다.


…이 이상, 저 년의 멍청한 소리에 장단을 마추다간 정말 늦어버리고 말태니까.


마치, 사후피임약 복용 시기를 놓쳐 원치않은 임신을 해버린 원나잇녀와 같은 신세가 될 수 있으니까.


“용사여, 다 큰 성인이 그런 것 쯤 본다고 무엇이 부끄럽겠는가? 허나 이왕김이면 여우 수인이 주인…”


“병신 같은 년…아가리 여물고 저 쪽 탕비실에 놓인 믹스커피나 타오도록.”


그렇게, 이 몸의 성적취향을 사방팔방 고로시 치려는 여우 년을 뒤로 몸을 향한 이 몸.


“흠.”


그곳에 이 몸을 마주하고 있는 건, 가로 일 열로 줄지어진 수 많은 안내 데스크.


그 안내 데스크 내부에서 수 많은 민원인들의 민원 접수를 받고 있는 공무원들.


무릇, 범인이라면 아무 생각없이 빨리 끝내겠다는 심산으로 무수한 줄 무리에서 적은 곳으로 향하겠다만…


“흐으음.”


허나 이 몸은 범인이 아닌 대 영웅이시자 용사이신 몸.


과학적인 기반으로 다져진 관상학을 토대로, 표독스러운 년을 거르기위해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렸다.


모름지기 얼굴이 사납고 표독스러운 년일 수록 생리질이 심해서, 온갖 트집잡이로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태니까.


“…좋다. 저 년이 적당하군.”


잠시 후.


이 몸의 시선에 포착된 어느 하얀 양 수인 한마리.


눈매도 동글동글하고, 서글서글 웃는 모양새가 딱 이 몸의 취향 파라미터에 들어갔다.


필시, 저 년이라면 대충 흝어보곤 승인도장을 찍어줄 터.


그렇게 빨리빨리 업무처리가 완료되면, 예상시간보다 더 여유롭게 ‘다음 중대사’ 에 착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서류 접수 두 건 하러 왔다.”


“네! 반갑습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우선, 신입 용사 지원서부터 처리하도록 하지.”


“신입 용사 지원서 말씀이신가요? 알겠습니다! 혹시 지원자는 본인이신가요?”


“아니. 저 쪽에서 믹스커피 타고있는 병신같은 분홍머리 여우 년이다.”


“헤에~ 지원서에 작성된 대상자와는 어떤 관계이신가요?”


“…관계라?”


상정 외의 변수.


오랜만에 접수하다보니 ‘대리 접수 시에는 지원자와 관계를 명시해야한다.’ 라는 규정을 망각해버렸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지인 내지 친구 같이 무난한 선택지를 고르겠다만,


저 년과 그런 밀접한 관계라는 사실을 공표하기엔 몸에서 흐르는 용사의 피가 그것을 거부했으니…


부득이하게 다른 선택지를 고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선택이란…


“저기, 선생님?”


“애완동물이다.”


“네?”


“생각해보면 저 년을 먹이고 재우고 키워줘야 할 입장이니 큰 범주로 봐선 틀리지 않다. 그러니 애완동물로 처리하도록.”


“…아…음…아! 네! 알겠습니다…!”


적잖게 당황스러운 낯색을 비췄으나, 어떻게든 맨탈을 붙잡고 서류 처리를 시작한 양 수인 공무원.


역시, 별의 별 좆같은 민원을 상대한 짬밤은 어디 안간다는 걸 여실히 증명했다.


“…승인 되었습니다. 서류상에 약간 이상한 부분이 있던데, 별 중요한 건 아니니까 적당히 처리하겠습니다. 괜찮으시죠?”


“그렇게 하도록하지.”


“네! 자격증 출력까지 한 1~2분 정도 소요되니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약간의 사소하면서도 앙증맞은 찐빠짓이 발생했으나, 역전의 용사답게 무사히 넘긴 이 몸.


타타타탁

 

다다다닥

 

다르르르르ㅡ!


마력 복사기 내부에 충진된 특유의 잉크냄새와 구동부 돌아가는 소리를 잠시 감상하며, 마무리의 마무리 절차를 차분히 기다렸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여기 자격증 받으시고요, 자격증 취급 규정은 아래 동봉된 서류에 있으니 꼭 확인해주세요!”


“고맙다. 이어서 다음 서류를 처리하도록 하지.”


“네? 제가 더 도와드릴게 있나…요?”


기껏 업무처리를 했더니, 쉴 틈도 없이 다음 업무를 해야한다는 압박감 때문일까?


양 수인 공무원의 헤실헤실거리던 눈동자가 살짝 출렁거린게 포착되었다.


물론, 반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좆같은게 당연하다만 어쩔 수 없다.


지금 이 몸의 석자가 코 앞이니까.


“길드를 만들고자한다. 서류 작성은 이미 다 완료했으니, 검토바란다.”


“길드 말씀 이신가요? 아…음, 네 알겠습니다.”


그렇다.


이 몸의 또 다른 계획은 다름아닌, ‘길드 창설’.


정확하게는 앞으로 활동을 영위하기 위한 사업장을 개설하는 것이다.


“으음…이건 참견으로 보이시겠지만, 길드 창설보다 기존의 길드에 가입하는게 낫지 않을까요?”


“흐음?”


“아아앗! 어디까지나 제 생각이에요! 제가 길드 창설 및 폐업 신고절차를 자주 하다보니까…”


양 수인 공무원의 우려 섞인 참견.


이 몸은 그녀의 의견을 충분히 이해한다.


아무래도 용사로서 첫 발걸음을 내 딛는데 있어서는 이미 터가 잘 닦인 대형 길드에 소속하는 편이 좋으니까.


대형 길드가 지니고 있는 수 많은 인적 네트워크가 만들어낸 막대한 의뢰수주와 그 의뢰들을 수행 할 수 있는 자본력은 무시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평범하게 용사질을 하겠다는 범부에게나 통용되는 법칙.


지금 이 몸과 저기 혼자서 믹스커피 5잔 째 때리고 있는 여우년은 단순히 돈벌이 하고자 용사질을 하는게 아니다.


‘대형 길드는 의뢰수주가 쉽지만, 그 만큼 걸려있는 제약이 많지.’


‘조금이나마 리스크가 있으면 맡으려고 하지 않는다. 더더구나 그 상대가 마왕군이라면 더욱 그럴태고.’


대부분, 아니 대형 소형 막론하고 모든 길드는 정치권과 얽히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


일단 누군가의 편을 든다면, 정치공학적으로 나머지 반대편과는 척을 질 공산이 높으니까.


비단 그 문제가 아니더라도, 정치권에 얽히는 순간 까닥하다간 정치권의 예하 사조직화로 변질 될 우려가 있으니…


이러한 이유로 길드들은 정치라는 민감한 영역엔 확실히 선을 긋는다.


길드가 정치에 얽혀서 좋지않은 결말을 맞이한 사례가 많은 건 본인들도 잘 아는 일이니까.


‘이 몸과 저 여우년의 목표는 마왕군이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으면 당연히 활동에 제약에 생기는 법이지.’

또한, 이 몸과 여우년 머리 위에 누군가가 있어선 안된다.


누군가가 머리 위에 있다는 건, 다르게 말하자면 꼴리는대로 할 수 없다.


“…아, 음.”


“음? 무슨 문제라도 있나? 분명 서류는 완벽히 작성했을텐데?”


그 때, 곤란한 듯한 안색을 내비치며 연신 신음을 토하는 양 수인 공무원.


그 신음소리는 저절로 이 몸의 좌뇌와 우뇌에 의문증을 품게 만들었으니…


“아뇨! 아뇨! 서류는 문제 없습니다! 다만…”


“다만?”


“…하아! 이걸 말해도 될 지 모르겠지만…결론만 말하자면 지금 당장은 길드 창설이 불가능합니다.”


“뭐라?”


예상치못한 변수의 발생.


서류에도 결격 사유가 없는데, 도대체 무슨 연유로 길드 창설이 불가능하다는건가?


“아아! 그게 고객님의 문제가 아니라 저희측의 문제라서요…”


“무엇이 문제지?”


“그게…”


계속해서 곤란한 뉘앙스를 풍기며 말 끝을 흐리는 양 수인 공무원.


내부 문제라는 점에서 말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하는 모양새가 상당히 이 몸을 신경쓰게 만들었다.


“어서 말하도록. 길드 창설에 방해되는 요소라면 이 몸이 다 부술태니까. 설령, 그것이 국왕이라도 할 지라도.”


“끄응…! 그렇단 말이죠?”


그렇게 한 참동안 시름앓는 소리와 함께 생각 정리에 들어가더니…


“…후우! 정확한 사유를 말하는 것도 공무원의 업무니까…알겠습니다.”


드디어 생각을 굳혔는지, 말문을 이어갔다.


누군가가 들을까봐 노심초사한 심정을 담아 상당히 낮은 톤으로.


“…최종 승인권자이신 시장님께서 암컷타락을 하셨어요.”


“뭐라고?”


“암컷…타락을 하셔서 승인이 불가능합니다.”


양 수인 공무원의 주둥이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반려사유가 튀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