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땐 드라마, 영화, 다큐할 것 없이 '투병'과 관련된 이야기들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이야기이면서도 동시에 나와는 거리가 먼 것처럼 느껴지는 이야기들이라고 생각했었음. 중2때 아버지가 췌장암 3기 진단을 받으셨고, 가족들이 어리다면 어린 나한테 필사적으로 그 사실을 숨기기 전까지는 적어도 그랬었음. 아버지는 췌장암 3기 진단을 받으시긴 했지만, 사실 이미 여러 장기들로 암세포가 전이 된 상태였고, 항암치료를 지속적으로 받으시긴 했지만 1년을 버티다 끝끝내는 돌아가셨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억지로 철 든 척을 해야했음 집에 남자라곤 나밖에 없었으니까. 친척, 아는 어른들 전부 어린 나한테 "네가 집 안의 유일한 남자니까 네가 잘해야 한다." 라는 부담 아닌 부담을 줬고, 나는 그게 당연한 일처럼 느껴져서 억지로 철 든 척을 해야했음. 중3때는 무난하게 학교 다니고, 졸업할 때도 장학금 받아서 학교 다닐 수 있다는 얘기에 조금 오지에 있는 학교에 가기도 했음. 근데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니까 정신적으로 많이 지쳤는지 무너지게 되더라 사춘기가 제 때 온 건지는 모르겠는데 그 때 가족들, 특히 엄마랑 많이 다퉜던 거 같음. 소화기관은 주기적으로 탈이나고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있었음


고2가 되고는 나도 정신을 좀 차리고 공부를 해야겠다 싶어서 조금씩 공부하는 시간은 늘렸지만 엄마 말씀 듣는 게 당시에는 좀 싫었던 거 같음. 다투는 일도 잦았고 어렸던 내 생각이랑 당신 생각이랑은 다른 게 너무 많았으니까. 암튼 집 분위기는 냉전에 가까웠고 나는 야자 참석해서 항상 집에 늦게 들어가고 일찍 나가고, 가족들이랑 데면데면한 사이로 지내고 있었음


이런 생활을 지내다가 내가 열이 엄청 심했던 날이 있음. 진짜 어지간하면 참겠는데 너무 아파서 죽을 상으로 당시 감독관이던 선생님한테 너무 아프다 얘기함. 당시에 열 쟀을 때 응급실 가는 게 좋을 거 같다고 보내준다는 거 걱정끼치는 건 또 싫었는지 한사코 거부하고 집에 비척비척 돌아감. 아픈 몸 자전거에 싣고 페달 밟고 있는데 몸이 너무 삐걱대기도 하고 너무 서러운 거임. 울면서 집에 도착해서 대충 씻고 누워서 잠 들었는데 내가 기억하기로는 잠들기 전까지 방에서 계속 끙끙대다가 잠들었던 걸로 기억함


내가 평소에 꿈을 잘 안 꾸는데 그 날은 그동안 너무 꾸고 싶었던 꿈을 꿨음


어릴 때는, 아버지랑 주말마다 목욕탕에 갔다가 바나나 우유 한 잔 마시고 중국집 들러서 둘이서 짜장에 탕수육 시켜먹고 산책갔다가 집에 가서 누워서 노래 듣는게 일상이었는데, 아부지가 아프고 난 뒤로는 한 번도 그러질 못했거든? 근데 꿈에 아버지가 나오더라. 목욕탕가서 생전 등 한 번 밀어달라는 소리 안하시던 아버지가 그날은 등도 밀어달라 하시고, 마사지도 해달라 하시고... 뭐 이것저것 해달라고 하셨는데, 꿈에서 투덜거리면서 다 해줬음 뭔가 그래야 할 거 같아서


목욕 끝나고 중국집 가서 평소처럼 밥 먹고 산책하고 집에 가는 길이었는데, 집 앞에 우뚝 서셔서는 생전 한 번도 본 적 없는 웃음을 짓고 계시더라. 그렇게 웃으면서 내 머리 한 번 쓰다듬고 천천히 사라지셨음. 목소리도 안나오고 몸도 안 움직이고 아무 것도 안 되는데 그냥 너무 서럽고 눈물이 나는 게 느껴져서 일어났는데 자면서 울고 있더라. 깨어 보니까 이마에는 아까 적셔서 올려놨는지 축축하게 젖은 수건이 있고 옆에서 엄마가 이불 깔고 자고 있더라. 그 모습 보고 한참을 소리 없이 울었음. 이렇게 싸우고 다퉈도 자식새끼라고 간호해주는 엄마를 보고 꿈에 나왔던 아빠를 생각하니까 그런 의미는 아닐지 모르겠지만 내가 아빠 없이도 잘 할 거라 믿고 있으니까, 가족들 잘 챙길 거라 믿고 있으니까 맘 편히 가실 수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싶더라


그 꿈을 꾼 뒤로 진짜 정신 차리고 아픈 거 참아가면서 공부했다. 엄마한테 사과는 낯부끄러워서 못했음. 나이를 지금까지 처먹으면서도 많이 다퉜지만 이제는 많이 친해짐. 과장 조금 섞으면, 엄마가 얘기하는 말이면 뒷 산에서 용이 승천했다 해도 믿어주려고 하는 편임. 어쨌든, 1학년 2학년 때 공부 안 한 거 메꾸겠답시고 기숙사도 들어가고, 우리학교가 시골 똥통학교긴 했는데 졸업할 때 수능 성적 전교 2등으로 졸업했음. 이런 거 보면 확실히 인생의 전환점이 되어줬던 꿈이지 나한테는


뭐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 없다고 하고, 내 얘기가 그렇게 특별한 얘기도 아닌 것 같지만 나는 사랑 받으면서 살았고 아직도 부모님의 사랑 받고 지내고 있다는 생각을 가끔 함. 그렇기에 저 꿈이 더욱 전환점이 되었던 거 같기도 하고...


이야기 푸는 재주가 없어서 감동도 재미도 딱히 없는 글이겠지만, 그래도 나는 이런 얘기 이제 덤덤하게 풀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 거 같아서 내심 뿌듯하긴 함.


글 이만 마치고 다들 좋은하루 되기를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