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식탁 위 한 가운데에, 유독 남다른 존재감을 드러내는 요리가 있다. 

 

커다란 백자 접시 위에 올려진 그 요리는 윤기부터가 남달랐다.

 

병에 걸리거나, 알코올과 니코틴에 절여지지도 않았고, 늙어서 비린 맛이 나지도 않는다.

 

먹음직스럽게 자라난 표유류 한 마리를 통째로 사용하였으며

 

사실, 이렇다 할 조리과정도 거치지 않았다.

 

‘마치 살아있는 것 같다.’는 직유를 넘어, 말 그대로 식재료가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요리사의 나태함을 방증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거기엔 요리사의 정성이 포함되어 있다.

 

엄격한 세척 과정은 물론, 베어 물때 피가 번지는 모습이 보기 좋도록 질 좋은 천으로 감싸는 일들은, 예상 이상의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최고의 신선함과 품질을 자랑하는, 이 세상에 더 없을 진미. 

 

그리고 그 미식의 이름은, 구태여 이름을 대야만 한다면,

 

다름아닌 나였다.

 

사실 그 점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나를 먹으려 하는 존재에게 있다.

 

바로 눈 앞에, 마침 그 존재가 있다.

 

기품있는 드레스, 아름답게 묶은 금발, 고운 이목구비 사이에 숨겨진, 선홍빛 눈동자와 긴 송곳니를 지니고 있는 존재. 

 

귀족적인 기품 사이로, 내면의 식탐을 드러내오며 나를 음미하려 하는 존재는 

 

물론 뱀파이어다. 

 

 

 

 

 

 



 

 

 

 

오랜 시간 고요함을 지키던 성에 손님이 방문한 것은, 실로 오래간만의 일이었다. 

 

거의 지워져가던 마법진이 얼마 남지 않은 마력을 내뿜으며, 그에 따라 동력을 공급받은 메인 홀의 샹들리에가 불꽃을 태우는 일 역시 마찬가지였다.

 

애석한 점은, 세월이 흘러 희미해진 불빛들이 충분히 내부를 밝히지 못해, 화려하다기 보단 음산한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일조하고 있다는 점 이었다.

 

그 희미하게 일렁이는 불꽃들은, 인간의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기에 더없이 충분했다.

 

그리고 나는 그 공포를 연료로 삼아, 욱신거리는 목덜미를 부여잡으며 달리고 있었다.

 

목깃을 걷자 드러난 살결 사이엔 선명한 송곳니 자국과, 시간이 지나 말라붙은 핏자국이 피부 위 붓질처럼 여전히 존재감을 맥동하고 있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비유하자면, ‘식탁 위 요리의 도주’ 정도라 할 수 있을까?

 

귀족 뱀파이어의 저택을 빠져나와, 그대로 영지를 벗어나고, 지금은 영문도 모르는 어느 성으로 도망쳐 들어오게 된, 이 싸구려 연극을 표현할 길은 그 정도일 것이다. 

 

“허억... 허억...”

 

하지만 며칠 동안 이어지고 있는 이 탈주극도, 이제는 무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큽... 푸학!” 

 

입에서 피를 쏟아내며, 만신창이인 몸뚱이와 90도가 조금 넘게 돌아간 발목을 억지로 재촉하며 움직이는 그 꼴은, 극의 종막을 향해 달려가는 생의 발버둥이나 다름 없을 테니까. 

 

하지만 명백히 죽기 직전인 모습임에도, 멈추게 되는 순간 정말로 죽을 것 만 같았기에, 나는 억지로 앞을 향해 내달렸다. 

 

그리고 설사 죽는다 하더라도, 아니 아마 이대로도 죽겠지만... 가문의 추적자에게 붙잡혀 죽는 것 보다야 홀로 죽는 편이 나으니까.

 

그렇기에 나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거워지는 발걸음을, 그저 오기로 떼를 쓰듯이 내딛어 갔다.

 

‘...정상까지 온 건가?’

 

성에 흐르던 마력이 세월의 마모를 견디다 못해, 더 이상 빛을 발하지 못 할 즈음이 되자,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걸음이 마침내 끝이났다.

 

거의 무의식에 몸을 기대어 몸을 움직이던 나는, 문득 성의 최상부 까지 도달했다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달을 수 있었다.

 

스스로도 믿기지 않았지만, 오랜 세월 탓에 무너진 벽 너머로 엿 보이는, 밤하늘 너머의 아찔한 높이가 그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긴 도주의 종착지에, 이제 성 꼭대기에 딸린 커다란 방의 문고리가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껏 거침없이 성 안을 헤집고 다녔음에도, 눈 앞의 문을 여는 것은 망설여졌다.

 

정신이 나간 채 걷기만 하느라 생각할 겨를이 없었지만, 뒤돌아 생각해 보면 의아한 점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이런 커다란 성이 있다는 소문을 듣지 못한 점이나, 끈질기게 추격하던 가문의 뱀파이어들이 어째서 도중에 사라져 버렸는지, 이 만신창이인 몸으로 어떻해 성의 정상까지 오를 수 있었는지, 여러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어쩌면 나는, 지금 커다란 함정에 빠진 게 아닐까?

 

아니, 그게 사실이라 해도 지금 처지에 달라질 것은 없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 받아들일 수 밖에.

 

나는 불안감을 삼키며 양쪽으로 난 문의 고리를 힘겹게 쥐고, 힘을 주어 그것을 밀었다. 오래 된 문이 끼익- 거리는 소리를 내며 틈새를 벌려갔다. 

 

점점 커지는 문틈 사이로, 방 내부의 모습이 점점 시야에 들어왔다.

 

“크다...” 

 

방 안의 모습을 한 마디로 표현하지면, 말 그대로였다. 커다란 것을 넘어 광활하다고 까지 표현 할만한 크기였다.

 

천장의 높이는 어림짐작해 내 키의 3배 쯤은 되어 보였고, 넓이는 어지간한 강당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렇게 커다란 공간임에도 잡다한 가구따위는 놓여져 있지 않았다.

 

그저 단 하나의 사물이, 창 너머의 붉은 달빛을 받고 있는 관 하나가 유일하게 자리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저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기에, 나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 관을 향했다. 

 

그리고 응시함과 동시에, 나는 저도 모르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고급스러운 검은 색 바탕에, 가운데 부분을 크게 점유하고 있는 하얀 십자가 그림.

 

그 안에 있을 존재가 무엇일지는, 제아무리 어린 아이라 해도 짐작하기가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 나를 끌어당기는 것만 같았고, 두려움과 의아함은 그 힘에 아무런 제동도 걸 수 없었다.

 

‘드륵-’

 

중간 정도까지 다가가자, 관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동시에 관의 틈새로, 어디서 나온 것인지 모를 붉은 피가 조금씩 내부로 스며들고 있다는 사실도 발견 할 수 있었다. 

 

고개를 숙여 아래를 바라보니, 멎은 줄 알았던 상처가 조금 벌어져, 나의 온 몸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흐르는 피가 관을 향해 끌려가듯, 바닥에 붉은 자취를 그리며 흘러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발걸음은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 내가 조금씩 다가갈수록, 내 몸의 피가 관으로 향하는 속도도 점차 빨라졌다.

 

창문 너머로 높이 떠 있는 붉은 달이, 피투성이가 되어 걷고있는 내 몸을 비추었다. 

 

한 걸음 내딛어 창가를 벗어나자, 벽이 달빛을 가로막아 그림자가 몸을 덮었다. 

 

걸음을 내딛는 어느 순간부터, 피가 흘러내리는 것을 넘어 공중에 부유한 채로 직접 관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피가 새어갈수록, 몸의 기력도 함께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런 식으로 다음, 또 다음 걸음걸이를 행하는 사이 나는 관의 바로 앞까지 도달하였고.

 

관으로 끌려들어가던 피는 돌연히 움직임을 멈췄다.

 

동시에 관뚜껑이 기괴한 파열음을 내며 그 아가리를 열었다. 기울여진 관뚜껑은 중력에 이끌려 긁는 소리와 함께 그대로 바닥에 닿았다.

 

관 내부에 누워 있는 한 인영이,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실오라기 하나 없는 새하얀 나신인 그것은, 젊은 것을 넘어 어린 소녀에 가까워 보이는 형상이었다. 

 

피부는 도화지처럼 새하얗고, 허리를 일으키면서 흐트러진 긴 머리칼도 마찬가지로 하얀 색이었다. 

 

일어나는 것이 다소 힘에 부치는지, 관 안의 소녀는 한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으며, 나머지 한 손으로 바닥을 집고 일어나려 애쓰고 있었다. 

 

애써 반 정도 일어났지만, 가냘픈 다리가 심하게 떨리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러다 가까스로 견뎌내던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소녀는 그대로 주저앉으려 했다.

 

저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양 팔을 뻗어 소녀의 몸을 껴안아 지탱했다. 품에 있는 것에 온기는 없었다. 마치 시체를 안은 것처럼, 차가운 감각만이 전해져 왔다.

 

부르르 떨리던 소녀의 눈꺼풀이 떠지더니, 일순간 눈에서 붉은 안광이 일었다가, 이내 은빛을 띄었다. 

 

그 은색 눈동자와 시선을 마주했다. 품에 안긴 소녀는 천천히 얼굴을 들어 올리더니, 무어라 입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누구?”

 

옥석이 굴러가는 듯 한 그 목소리가, 나의 뇌리에 박히자

 

가까스로 움직이던 나의 몸이 마침내 힘이 다하며, 시야가 암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