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괴물이다.


상반신은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하반신은 표현조차 하기 어려운 그런 괴물.


아마, 그녀의 하반신을 묘사하려면 세간의 유명한 작가들 정도는 되어야하지 않을까 싶은...그런 괴물이다.


그녀는 나를 사랑한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다.



나는 그녀를 떠났다.


그녀는 나를 기다린다.



나에게 무한한 사랑을, 나에게 영겁의 시간보다 더 한 사랑을 배풀어준 그녀.


나는 그녀의 사랑을 받아들였지만, 종국엔 그녀의 넘치는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녀의 사랑을 받아들일 나의 그릇은 유리컵에 불과했으니까.


그녀는 유리컵이 넘쳐 흐르고도 그 유리컵이 이내 둥둥 떠다닐정도로 많은 사랑을 배풀었지만


나의 그릇은 고작 작은 유리컵에 불과해서 그녀의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으니까.


그래서, 난 그녀에게 도망쳤다.


너무 무서웠다.


그녀의 분에 넘치는 사랑을 내가 받아들이기엔 너무 무서웠다.


하지만...


내가 도망치는 그 순간까지 그녀는...



웃었다.


그녀는 웃고 있었다.


그저, 자신의 곁을 떠나는 나의 뒤편으로


그저, 자신의 곁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나의 그림자 너머로


가녀린 손을 흔들며, 나를 떠나보냈다.


'다녀와, 기다릴게.'


라는 말을 남기면서...


.

.

.

.

.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또 흐른다.


그녀의 곁을 떠난 이후 난 다시 평범한 삶으로 돌아왔다.


다람쥐 챗바퀴 돌 듯, 그저 순환대로 흘러가는 여타 사람들과 같은 그런 삶으로.


난 그 삶에 순응했다.


비록 진부하지만, 그것이 평범한 삶이니까.


작은 그릇을 가진 나에게 있어서 그러한 삶은 당연한 삶이니까.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사실, 난 그 삶에 순응했다고 스스로 여겼던 것이다.


순응했다고 스스로 세뇌 한 것이다.


그녀가 마지막에 남겼던 한 마디.


'다녀와, 기다릴게.'


이 한 마디는 신체 내부에 깊숙히 박힌 작은 가시처럼 내 몸에 자리잡아, 내 삶에 영향을 주고 있었다.


그렇다.


나에게 평범한 삶이란, 더 이상 추구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미 그녀와 접촉을 하고


그녀와 교감을 나누고


그녀와 사랑을 나눈 이후


나는 결코 평범한 삶을, 챗바퀴를 돌릴 수 있는 자격 따윈 없었던 것이다.


.

.

.


난 결국 그녀에게 돌아간다.


그녀를 무서워 도망쳤던 나는 그것이 결국 나의 길이라는 것을 깨닫고 다시 그녀에게 향한다.


사형수가 단두대로 향하듯이, 저 위로 올라가면 다시 지금의 삶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을 알고서도


난 그녀에게 발걸음을 향한다.


사실, 이미 나의 삶은 정해져있었으니까.


그것을 그저 망각하고 일탈한 것에 불과하니까.



"다녀왔어? 기다렸어."


그녀가 나에게 말을 건낸다.


떠나기 전 그 때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그 때 처럼 싱그러움과 기괴함으로 가득찬 웃음으로 나를 맞이한다.


"..."


"즐거웠어?"


"..."


"어서 가까이 다가와. 당신의 숨결이 느껴질 수 있도록, 당신의 심장박동이 느껴질 수 있도록."


나에게 두 팔을 벌리는 그녀.


그녀에게 발걸음을 향하는 나.


마치, 거대한 음극에 양극이 이끌리듯


나는 그녀에게 점점 이끌려간다.


"사랑해. 다시 돌아와줘서 고마워."


"...나는."


"괜찮아, 난 당신을 사랑하니까. 당신을 사랑하니까 모든 걸 다 이해하고 수용해줄 수 있어."


"..."


"나에게 사랑을 속삭인 당신, 나를 버리고 떠난 당신, 그리고 나에게 다시 돌아온 당신...난 모든 걸 사랑해. 이 모든 행위의 주체는 당신이니까."


"..."


"언제든지, 내가 지겨우면 다시 떠나도 좋아. 그리고 다시 돌아와서 나를 안아도 좋아."


"..."


"난 당신을 사랑하니까 당신이 하는 모든 선택도 사랑할 수 있어."



그녀는 나를 사랑한다.


나는 그녀를 사랑해야한다.



나는 그녀를 떠났었다.


그녀는 나를 기다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