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아) 이런 내용은 어떨 것 같음? - 얀데레 채널 (arca.live)

전에 이 글 올렸던 얀붕이임. 원래는 금방 쓰려고 했는데, 친척분 장례식 참석이랑 계획 변경 문제로 조금 늦춰졌음.

일단 처음으로 써보는 사료인 만큼, 꼭 완결 낸다.


PC로 쓴 거라 모바일에서는 다르게 보일 수 있으니, 될 수 있는대로 수정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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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인드글라스가 빛나는 다락방.

 

얀붕은 십자가를 향해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악에서 구하소서……다만……악에서 구하소서”

 

얀붕은 속옷은커녕 피처럼 붉은 담요 한 장만 겨우 걸치고 있었다. 대상을 발가벗겨 심리적 우월감을 느끼는 건 학대 가해자들의 전형적인 수법이었다.

 

기도를 올린 지 얼마나 되었을까. 한 달? 두 달? 얀붕은 기억나지 않았다.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그는 이 방에 감금되었다. 그리고 매일 ‘회개’라는 이름으로 몽둥이찜질이 이어졌다.

 

스테인드글라스가 투과하는 빛에, 얀붕의 몸이 비쳤다. 머리는 부스스한 데다가 혈흔까지 남아있었다. 목 아래로는 붕대가 감기지 않은 곳이 없었으며, 두 눈은 생기를 잃은 지 오래였다. 채찍질을 받고 가시 왕관과 옷이 씌워진, 성서 속 ‘유대인의 왕’을 연상케 했다.

 

뚜벅. 뚜벅. 뚜벅.

 

발소리가 들려왔다. 나무판 삐걱거리는 소리가 커질수록 얀붕은 묵주를 더 세게 쥐었다. 기도하는 목소리도 빨라져서 발음을 알아들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나마 알아들을 수 있는 부분이라곤 이 부분이 전부였다.

 

“다만 악에서 구해주소서……!”

 

쾅!

 

다락방 문을 열고 들어온 건 얀붕의 아버지였다. 40대 정도로 보이는 이 남자는 한 손에 큼지막한 몽둥이를, 반대쪽 손에는 얀붕의 휴대전화를 들고 있었다.

 

“네가 저지른 죄를 알겠느냐?”

 

아버지는 그러면서 휴대전화 화면을 보여주었다. 천사의 고리가 띄워진 소녀 캐릭터들이 담겨 있었다. 아버지가 강제로 삭제했던 게임 화면의 캡처본이었다.

 

“다시는 게임을 하지 않을게요……. 즐겁게 살지 않을게요……. 아빠……. 제발 용서해 주세요…….”

 

얀붕은 눈도 못 마주친 채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고등학생이라기엔 너무나 작은 신체까지 합쳐져, 그 모습은 인간이라기보단 겁에 질린 소동물에 가까웠다.

 

“틀렸어.”

 

아버지는 이 말을 마치자마자 몽둥이를 휘둘렀다.

 

“네가 진짜 잘못한 게 뭔지 아냐? 학원을 빼먹은 거? 즐거움을 느껴보려는 거? 아니야. 이런 저급한 오락이나 처하고 노는 거? 아니야.”

 

퍽.

 

퍽.

 

퍽.

 

아버지의 입에서 문장 한 줄이 시작되고 끊길 때마다 몽둥이가 날아갔다. 아버지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학대에서 오는 가학성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몽둥이가 날아가지 않을 즈음, 아버지는 얀붕에게 조소를 날렸다.

 

“네가 잘못한 건 이 세상에 태어난 거 그 자체야. 네가 태어나지만 않았어도 네 엄마는 임신중독증으로 고생하다 죽지 않았을 거야. 그녀는 내 전부였다. 내 인생의 방주이자 구원자였다고, 이 자식아.”

 

얀붕은 눈물 흘리지 않기 위해 얼굴에 힘을 주었다. 아버지의 조소는 끊기질 않았다.

 

“그래서 난 그이를 앗아간 너를 용서할 수 없어. 네가 뭔 짓을 하든 간에 나는 하나도 마음에 안 든단다. 네가 앞으로 살면서 느낄 모든 즐거움을 빼앗아야만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아.”

 

얀붕은 대답할 기운조차 없었다. 몽둥이로 맞은 것보다, 아버지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소리가 더 고통스러웠다. 그 문장엔 얀붕이 지난 16년간 살면서 겪은 모든 증오의 원인이 녹아들어 있었다.

 

아버지는 다시 몽둥이 휘두를 준비를 했다. 얀붕은 그 모습에 생명의 위기를 느꼈다. 얼마 남지 않은 힘을 쏟아, 얀붕은 문을 향해 달려 나갔다. 다락방 밖으로. 집 밖으로. 마을 밖으로……. 

 

자신이 소속된 모든 공간에서 빠져나가기라도 하려는 듯이.

 

 

얼마나 달렸을까. 얀붕은 육교 위에 위태롭게 기댔다.

 

겨울 밤공기에 뼛속까지 얼어붙을 것 같았다. 얀붕은 체온을 아끼고자 온몸을 웅크렸지만 역부족이었다.

 

추위와 타박상으로 인해 얀붕은 의식을 유지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주여…….”

 

얀붕은 달빛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째서 저는 이런 의미 없는 고통을 이어 나가야 하는 겁니까? 저는 태어나자마자 제 어머니를 돌아가시게 했습니다. 하지만 이 아픔이, 그에 응당한 벌입니까? 아버지에게 사랑도 못 받고, 즐거움도 느낄 수 없습니다. 저는 그 죄로 인해, 진정 살 가치가 없는 존재인가요?”

 

그는 구원을 바라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겪은 이 모든 고통을 들어줄 이가 필요했다. 얀붕은 그 누군가를 향해, 필사적으로 기도를 올렸다.

 

“다시는 어른의 말을 어기지 않을게요……. 다시는 반항하지 않을게요……. 희망을 품지 않을게요……. 행복해지고 싶다고 기도하지 않을게요…….”

 

얀붕의 목소리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그러니 부디, 제발 자비를……베풀어 주세요…….”

 

대답은 없었다. 얀붕도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그렇기에 더욱 서러웠다. 이 넓은 세상에서 자기 말을 들어주는 이가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에, 얀붕은 마지막 끈마저 놓쳐 버렸다.

 

‘앞이 잘 안 보여. 하긴 방 안에선 제대로 먹지도 못했지.’

 

얀붕은 눈이 감겼다.

 

‘나는 그냥……이 세상에 고통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인 걸까.’

 

그러나 잠에 빠지기 직전,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늦지 않았어. 어서 가자. 선생님.”

 

얀붕은 그 직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기억나지 않았다.

 

누군가가 자기를 자전거에 태워 어디론가 데려간 것.

 

어느 눈부신 방 안에서, 치료를 집도하는 목소리와 울음소리가 가득했다는 것.

 

이게 그가 그나마 기억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얀붕이 깨어났을 땐 낯선 천장이 눈앞에 들어왔다.

 

“괜찮아?”

 

이어 은발에 파란 눈을 가진 소녀가 보였다. 희한하게도 한쪽 눈동자는 검은색인데 다른 쪽은 하얀색이었다. 다소 차분한 인상이었으나, 저 두 눈만은 묘하게 날카로운 분위기를 풍겨 꼭 늑대의 눈 같았다.

 

“일단 더 자. 회복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테니까.”

 

소녀가 방문 밖으로 나서자마자 얀붕은 다시 의식을 잃었다.

 

 

소녀는 방 밖으로 나서자마자 무전기를 켰다.

 

“여기는 아누비스. 바알과 네임리스, 네프티스는 응답하라.”

 

“시로코 짱? 여기서도 코드명으로 부르지는 말자고요? 그리고 아누비스라고 하면 다른 세계의 시로코 짱이랑도 헷갈리니까요.”

 

“미안. 노노미. 좀 흥분했어. 선생님이 방금 깨어나셨거든.”

 

“정말요?! 거짓말 아니죠? 다행이다. 선생님, 그렇게 고생하셨는데……. 시로코 짱이 선생님을 모셔 왔을 땐 히나 씨가 기절하셨잖아요. 미카 씨는 당장 아버…아니 그 남자를 족치겠다고 날뛰어서 겨우 진정시켰고. 선생님이 얼마 만에 깨어나신 거죠. 사흘만인 것 같은데.”

 

“응. 하지만 다 괜찮아. 이제 선생님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어. 노노미도 조금 쉬어.”

 

소녀, 아니 시로코는 무전을 끊었다. 그녀가 들어간 곳은 모니터와 서류로 가득한 어느 방 안.

 

분홍빛 머리의 소녀와 대두에 백발을 가진 소녀가 그녀를 맞이했다. 둘 다 소식을 들은 건지, 얼굴은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눈에선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선생님께서 깨어나셨어. 미소노 미카. 너는 이런 중요한 순간에 책이나 읽고 있는 건가?”

 

미카는 머리카락을 넘기며 대답했다.

 

“미안. 하지만 지금 읽고 있는 대목이 흥미로워서.”

 

그녀는 성서를 들고 있었다.

 

“무슨 내용이길래 이런 경사에 집중하지 않는 거지?”

 

히나는 특유의 보라색 눈을 번뜩였다.

 

“우리의 계획이 독선일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선생님한테는 그 독선이라도 필요하다고. 고통으로 가득한 이 세계에서, 선생님이 우리를 믿게 만드는 게 이번 작전의 핵심이야. 그런데 지금 상황에 딱 어울리는 대목을 찾아서 말이야.”

 

미카는 목을 가다듬더니 성서의 한 구절을 읊었다.

 

난 이 백성이 완고하여 내 말을 듣지 않을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유배의 땅에서 마음을 돌려, 

내가 그들의 하늘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면 난 그들에게 올바른 마음과 들을 귀를 주고, 

그들은 유배의 땅에서 나를 찬양하고 내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바룩서 2장 30절~32절

 

“나름 이 상황이랑 맞긴 하군. 트리니티의 핵심 전력다워.”

 

“헤에? 게헨나는 고작 책 구절 찾아주는 거로 그런 평가를 내린단 말이야? 과연 의심병 기획부장을 둔 선도부장답네.”

 

평소 같으면 꽤 짜증 날 도발이었지만, 히나는 웃어넘겼다. 그들의 하늘. 그들의 선생님을 확보한 것 자체만으로 작전은 반쯤 성공한 것이었으니.

 

히나는 책상에 설치한 마이크를 켰다. 그녀의 목소리는 파동이 되어 차원 이동 장치를 지나, 학원도시의 모든 소녀에게 전달되었다.

 

“여기는 선도부장 소라사키 히나. 선생님의 신원 확보 및 의식 회복에 성공했다.”

 

히나는 눈물을 닦고는 말을 이어 나갔다.

 

“지금 이 자리에서 선포한다.”

 

그리고 이 뒤에 따라온 말이 끝나자마자,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오퍼레이션 ‘예리코’를 발동한다!”

 

그리고 모두가 기쁨에 사로잡힌 사이, 이 지하 시설의 한 소녀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가라앉은 것은 떠오를 것이고, 떠오른 것은 가라앉으리라. 추악함은 깊은 곳에서 꿈꾸며 기다리고, 부패는 인간들의 위태로운 도시들로 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