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키, 밤이 끝나면 여명이 찾아오듯이 이 세상은 그리 허무하진 않아. 그러니까 말이야ㅡ.'


"..."


무엇 때문에 그렇게 앞으로 내달렸을까? 자신의 뒤를 쫓는 추적자 무리는 없었고 두려운 것은 없었다. 아니, 하나 생겼다. 자신의 마음을 답답하게 만들며, 몇 번을 흐트러지게 만들고 아파하게 만드는 두려운 것. 


그저 가만히, 듣지만 않았다면, 헛소리로 치부했다면, 숨이 멎을 만큼 달리지만 않았다면ㅡ.


"하..." 


꼴이 우스웠다. 마치, 히요리가 보는 잡지 속의 '소녀'들과 같지 않은가?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 아무도 없는, 홀로 있는 이 폐건물에서 그의 이름이 자신의 목소리를 매게 삼아 울려 퍼진다. 스쿼드의ㅡ 우리들의 은인이자 고마운 어른, 그리고... 존경... 하는... 아, 나는 이렇게까지 그 사람을 신경 쓰는구나.


보고 싶다. 외로워. 나를 찾아줘. 가지마.


"..."


갈곳을 잃은 두 손은 난간 위로 둔다. 


바깥은 여전히 많은 비가 내리고 있다. 그 속을 헤쳐 나갈 수는 있으나, 분명 감기에 걸릴 것이다. 스쿼드는 물론 그 사람을ㅡ 선생님을 걱정 끼치게 할지도 모른다.


"기다릴 수밖에 없는건가..."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고서 난간에서 손을 뗀다. 그리고 뒤를 돌아 주위를 둘러본다. 주어진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면, 무기의 점검ㅡ 계획ㅡ 지역의 파악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 다 했다.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렇다면?


외투의 오른쪽 주머니에 손을 뻗어 휴대 전화를 꺼낸다. 액정이 깨져있다. 이걸 언제 받은 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전원 버튼을 한번 누른다. 모두와 함께 찍은 사진이 나를 반겨준다.


'모모톡'


모모톡을 켜자 등록된 프로필들이 나타난다. 사오리, 히요리, 아츠코, 선생님, 나는 선생님의 프로필을 누른다. 저번에 본 뒤로는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다들 힘내는 거야!'


"바꿨구나."


후, 웃음이 나온다. 그 사람다운 상태 메시지다.


나는 상태 메시지를 뒤로하며, 선생님과 주고받은 메시지들을 읽는다. 짧으면서도 긴, 일방적이면서도 특별한, 그리고 영원할 것 같았던 순간들을.


"추억... 인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마지막으로,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선생님을ㅡ.


아니, 소용없어. 선생님의 옆은 내 자리가 아냐.


하지만.


"..."


어쩌면...



[선생님, 여기로 와줘.]


[미사키? 무슨 일이야?]


미사키에게서 답장이 오지 않는다. 


"아로나, 여기로 날 안내해 줘."


"맡겨만 주세요!"



어두워지고 있다. 불을 피워야 한다. 선생님은? 그는? 아마,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을거다. 어른이란 원래 그런 거겠지. 기분이 좋지 않다. 어째서 나만...


"미사키!"


"아아..."


그가 나를 찾는다.


환청이 아닌 온전한, 듣고 싶었던 선생님의 목소리다. 그가ㅡ 선생님이 나에게 와준 거다. 별난 사람. 나 같은 애를 위해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다니... 어째서?


"어디 있는 거야 미사키!"


입을 움직여야 한다. 여기 있다고. 여기라고. 


"미사키!"


"...선생님."


"미사키?"


그와 눈이 마주친다.


"잠깐 기다려 금방 올라갈게!"


"..."


선생님의 발소리가 들린다. 


잊고 있었던 안도감이 찾아온다. 몸과 마음을 뒤덮었던 것이 덜어내진다.


"하아... 하아... 미사키."


"...바보 같아."


"맞아, 내가 좀... 바보긴 해. 응."


"어째서 여기까지 온 거야?"


"네가 걱정돼서 미사키... 그리고 날 불렀잖아?"


"..."


그가 길고 느릿한 한숨을 내쉰다. "옆에 좀 실례할게."


"..."


"다행이야."


"뭐가?"


"난 정말 미사키 한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거든."


"......미안해."


"어? 아니, 아니, 그러지 마. 미사키가 그러면 선생님은 마음이 아파요?"


"..."


"뭐야, 방금 웃은 거야? 이건ㅡ."


퍽.


"크으..."


"시끄러워."


"...들켰나?"


"그렇게 과장되게 행동하면 누구나 알아차려."


"그래? 좋아, 미사키한테 하나 배웠네." 그가 왼쪽 주머니 속을 뒤적거리며 말한다. "이거 받아. 상이라고 해야 하나 바구니에 남아 있던 거라고 해야 하나... 둘다 좀 그럴려나?"


"사탕..."


"응. 이것밖에 줄수 없어서 미안."


"..."


"다음에는... 미사키?"


나는 뭘 달라고 당신을, 선생님을 부른 게 아냐. 


"..."


"......그런거였구나." 


더 끌어안아 줘. 이 정도로는 부족해.


"미사키가 만족할 때까지, 안정이 될 때까지, 선생님은 떠나지 않을게."


거짓말, 선생님은 이미ㅡ.


"약속할게. 믿어줘. 선생님은 거짓말만 늘어놓는 어른이 아니니까."


"...떠나지 말아줘. 계속."


"응."



"저저저... 정말로 리더랑 선생님이 이곳에 계시는 걸까요?"


"응. 선생님과 밋쨩은 이곳에 있어."


"만약, 누군가가... 선생님과 리더를 제압해서... 함정을 판거라면요...?"


아츠코가 고개를 젓는다. "정말 그렇게 생각 하는거야?"


"여... 역시, 그렇...겠죠?"


"응."


"헤, 헤헤... 그런데 리더는 정말... 먼 곳까지 가셨네요..."


'맞아. 무슨 말이라도 해줬다면 좋았을텐데... 그래도, 선생님이 밋쨩은 무사하다니까."


"네, 네... 아, 다 왔어요."


"..."


"리더ㅡ."


쉿, 아츠코가 히요리의 입을 막는다."저길 봐." 히요리의 고개가 서서히, 아츠코가 가리킨 곳으로 움직인다. 


"아..."


"좋은 광경이지?"


아츠코가 묻는다.


히요리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인다. 


"기다리자."


"네..."


아츠코는 두 사람을 쳐다본다. 서로를 의지하며 기댄 모습, 보기가 좋다. 이 모습을 삿쨩도 같이보면 좋았을 텐데...





미사키 순애는 최고다. 애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