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먼 옛날에

한 왕이 아들과 함께

살았다네

 

세상을 두려워하면서

늘 왕자 걱정에

잠들 수가 없었지

 

왕은 말하곤 했지

 

이 세상은 파멸로 가득 찼다

난 결코 밖을 보지 않아

 

저 세상에서 널 지키겠다 하셨네

성벽을 높이고 문도 굳게 닫았네

 

하지만 뛰는 가슴 멈출 순 없어

왕잔 성벽 너머 세상 꿈꾸었네

 

어느 날 바람결에 실려온 속삭임

혼자 있는 왕자에게 속삭였네

 

북두칠성 빛나는 밤에

하늘을 봐

황금별이 떨어질 거야

 

황금별을 찾길 원하면

그 별을 찾아 떠나야만 해

 

자 여길 떠나 저 성벽 너머

그 별을 찾으러 여행을 떠나야 해

 

저 세상 너 사는 이유

이 모든 걸 알고 싶다면

너 혼자 여행 떠나야만 해

 

황금별이 떨어질 때면

세상을 향해서 여행을 떠나야 해

 

북두칠성 빛나는 밤에

저 높은 성벽을 넘어서

 

아무도 가보지 못한 그곳으로

저 세상을 향해서 날아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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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둔 하늘을 가로지르는 황금빛 유성이 

나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가슴속에 설렘의 파도가 일렁였다

 

황금별은 나를 어디로 인도하는 것일까? 

그저 별일까, 아니면 운명적인 신호일까?

 

그것은 저 별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히 알게 되겠지

 

망설임 없이 방문을 열고,

밤의 어둠 속으로 뛰어나갔다

그리고 성벽을 향해 나아갔다

 

하지만 곧 검은 그림자들이 내 뒤를 쫓았다 

수백 명의 경비병들이 

내 도망을 막기 위해 덤벼들었다

 

숨 막히는 추격 끝에, 

나는 마침내 성벽 너머로 몸을 던졌다

 

두려움이라는 성벽을 넘어선 순간, 

숨 막히도록 아름다운 새로운 세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밤하늘의 별빛 아래 펼쳐진 꽃밭을 바라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꽃잎들은 은은하게 빛나고, 

꽃잎에 맺힌 이슬은 마치 보석처럼 반짝였다

 

마치 요정들이 잠든 것 같은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나는 숨을 죽이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름다운 풍경을 눈에 담아두고 싶었지만, 

경비병들이 여전히 

자신을 쫓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금방 마음을 다잡았다

 

숲으로 들어가 도망치려고 했지만,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숲을 찾을 수 없었다

 

불빛이 모두 꺼진 도시의 거리를 헤매던 나는 

어느샌가 한 골목에 들어섰다 

 

숨 막히는 듯한 어둠이 감돌았고, 

숨이 막히는 듯했다

뒤에서 무거운 군홧발소리가 들려왔다

 

뒤돌아보니,

수백 개의 횃불이 

마치 거대한 불뱀처럼 나를 향해 몰려왔다 


나는 공포감에 휩싸였다

그들은 나를 발견하고 미소를 지었다

 

공포가 온몸을 휘감았다

뒤에서 다가오는 경비병들의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나는 도망칠 곳을 찾아

골목 안쪽으로 더 깊숙이 들어갔지만, 

골목의 끝에는 높은 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나는 절망에 빠졌다

 

하지만 그 순간, 

아스라이 낯선 목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내 이름을 속삭이는 듯한 부름이 들려왔다

 

그 소리에 이끌려 고개를 돌리니, 

작고 앙증맞은 소녀가

눈에 들어왔다

 

순수한 미소가 소녀의 얼굴을 가득 채웠다

작은 손이 내 손을 향해 쑥 내밀어졌다

 

-빨리, 여기로 와!

 

 소녀가 말했다


나는 놀랐다

 

나를 숨겨준 소녀는 낯선 얼굴이었다

소녀를 완전히 믿을 수 없었지만, 

왠지 모를 강한 끌림을 느꼈다

 

소녀는 벽에 숨겨진 문을 열고 

나를 밀어 넣으며 다급하게 말했다

 

-빨리, 문을 닫아!

 

나는 망설임 없이 문을 닫았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주변을 살펴보았다

 

작은 방 안에는 낡은 책과 장난감, 

그리고 그림들이 놓여 있었다

분명 소녀의 방이었다

 

구해준 소녀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었지만,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나를 그저 불쌍히 여겨 도와준 것일까? 

소녀의 정체와 의도가 궁금했다

 

소녀는 나를 보고 따뜻하게 웃었다 

나의 불안한 마음을 눈치채고 안심시키려는 듯이,

 

-걱정하지 마, 여기서는 안전해

내가 너를 도와줄게

난 너의 친구야

 

소녀의 말을 들으며 어안이 벙벙했다

소녀의 말은 이질적이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닿았다

 

왠지 모를 위로와 희망을 느꼈다

그리고 소녀의 말을 들으며, 황금별을 떠올렸다

 

황금별은 소녀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그리고 소녀는 그 황금별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하지만 지금은 별로 상관이 없을 것 같다

나는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화답했다

 

-고마워, 친구야

 

나는 소녀에게 숲이 없는 이유를 물었고, 

소녀는 씁쓸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건 왕자가 도망칠 것을 두려워한 왕이,

도망칠 은거지를 없애기 위해 

숲을 모두 밀어버렸기 때문이야

그래서 숲이 없었던 거야

 

나는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까지 내가 도망칠 걸 대비하고 있었다니

 

소녀는 경비병들이 아직 근처에 있으니 

어서 도망가자고 말했다

 

나는 소녀를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었지만, 

다시 성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기에

묵묵히 소녀를 따라갔다

 

어느 정도 안전해졌다고 판단한 소녀는 

내게 다가와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는 얀순이야

 

나는 놀란 눈으로 얀순이를 바라보았다

그동안 속으로 삼키고 있었던 궁금증을 

풀 기회를 얻었다

 

-내 이름은 얀붕이야

 

-그래, 안녕 얀붕아

난 사실 네가 왕자라는 걸 알지만 

편하게 말하도록 할게

 

얀순이는 나의 눈을 직시하며 진심을 담아 말했다

 

-어떻게 내가 널 도울 수 있었는지 궁금해 하겠지?

그건 너도 얼마 전에 보아서 

알다시피 황금별의 인도 덕분이야

 

-황금별?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얀순이에게 물었다

 

-그래, 황금별 

그게 너를 도우라고 했어

 

얀순이는 내게 진실을 털어놓았다

 

-나도 자세한 건 알지 못해

 

그저 황금별의 인도에 따라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널 도와주라고 했고,

이후에는 마녀의 숲을 방문해 

도움을 받으라는 것만 알고 있어

 

나는 놀란 표정으로 얀순이에게 물었다

 

-마녀의 숲? 그게 실존했단 말이야?

 

-그래, 마녀의 숲은 아직 가본 적이 없지만

황금별의 인도를 따라가다 보면 언젠가 닿게 될 거야

 

얀순이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꿈꿔왔던 여행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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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병상에 누워 침음을 흘렸다

 

얀붕 왕자가 도망친 사실은 마음에 큰 상처를 남겼다 

그는 항상 세상을 두려워하며 얀붕 왕자를 걱정했다 

 

그는 얀붕 왕자를 

그러한 세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성벽을 높이고 문을 닫았다

 

하지만 결국 얀붕 왕자가 도망치는 것을 막지 못했다 

기사단장은 왕 앞에 무릎 꿇으며 

자신의 책임이라고 자신을 벌해달라고 했다

 

그의 뒤에는 수백 명의 경비병들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하지만 왕은 손을 힘겹게 휘저어 말했다

 

-어떻게 자네들 탓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저 젊은 혈기에 눈이 먼 아들을 잘못 둔 내 탓이거늘

 

왕은 병사들을 모두 물리고 

기사단장과 늙은 노마법사만을 남겨두었다 

 

노마법사는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제 떠오른 황금별은 역시 그 요물의 짓입니다

그 요물은 자신의 목숨을 제물로 삼아 

저하에게 저주를 걸었습니다

저주의 끝은 결국 서로의 죽음입니다

 

왕은 피가 섞인 기침을 하며 생각했다

어젯밤 갑자기 황금별이 떠오르고 자신이 쓰러졌다

 

그 결과 경비병들을 제대로 지휘하지 못하고 

왕자가 도망치는 것을 막지 못했다

 

평소 이러한 대비를 했더라면... 

그녀가 이렇게까지 악독할 줄은 몰랐다

하지만 후회는 아무리 늦어도 소용없었다

 

왕은 곧바로 냉정하게 마음을 가다듬고

노마법사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그 저주를 풀 방도는 무엇인가?

 

노마법사는 탄식하며 말했다

 

-그 요물을 죽여야만 풀리는 걸로 보입니다

하지만 위치를 알 수가 없습니다

 

충직한 기사단장은 분노에 이글거리며 말했다

 

-제가 그 마녀를 죽이겠습니다

 절 보내주십시오, 저하


왕은 기사단장의 말에 고개를 살짝 저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되면 누가 나의 곁을 지키겠는가?

노마법사 혼자로는 힘들겠지

그러니 자네가 꼭 필요하네

 

왕의 말에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한 기사단장은 

울분을 삭히며 

 

-명을 받들겠습니다

 

라고 말한 후 자리를 떠났다

 

노마법사는 그런 왕을

슬픈 기색을 띄며 말했다

 

-그 요물은 왕비님의 목숨마저 앗아간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저하의 목숨까지 빼앗으려 하다니,

 

 진작에 그 미친 것을 죽일 걸 그랬습니다..

 저하의 자비를 이렇게 원수로 갚다니..

 

왕은 창백한 안색으로 억지로 웃었다

 

-차라리 다행이지

그 마녀의 목숨을 가져가는 대가로 

내 목숨값이야 싼 걸테니.. 

하지만 얀붕이가 걱정되는구나.. 

 

얀붕이가 마녀의 마수에 빠지지 않도록

지금껏 성안에서 보호하고 있었건만,

어떤 바람이 불어서 

그 착한 아이의 마음을 누가 흔들었을꼬..

 

왕의 얼굴은 수심으로 가득찼다

제발 얀붕이가 무사하기를

 

다시 얀붕이를 찾을 때까지 

자신의 목숨줄이 붙어있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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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밤, 

나는 얀순이가 낡은 책을 보며 

답답해하는 것을 발견했다

 

뒤에서 힐끗 보니 그것은 글자책이었다 

하지만 얀순이는 글을 알지 못하는 듯했다

 

얀순이의 자존심이 상처받지 않도록,

밝고 명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이건 내가 어렸을 때 공부했었던 책이구나

가나다라마바사...

 

깜짝 놀란 얀순이는 책을 뒤로 숨겼지만,

곧바로 흥미를 보였다

 

-이걸 읽을 줄 알아?

 

나는 얀순이에게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응, 얀순아

네가 허락한다면 읽어보고 싶은데, 

잠시 빌려줄 수 있겠어?

 

얀순이는 순순히 낡은 책을 내게 건네주었다 

 

나는 얀순이 앞에서 하나하나 소리 내어 낭독했다 

얀순이는 똑똑하고 영특했기에, 

낭송하며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글자를 파악하게 되었다 

 

몇 번 더 읽어주자,

얀순이는 놀랍게도 바로 글자를 떼게 되었다

 

이 일을 계기로 얀붕이는 얀순이에게

틈틈이 다양한 학문을 가르쳐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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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순이는 자신의 곁에서 잠이 든 

얀붕이의 볼을 쓰다듬으며 과거를 회상했다

 

자신은 버려진 고아였다

그러다가 우연히 마녀의 눈에 띄어 거두어졌을 뿐

그것은 행운이 아닌 새로운 고통의 시작이었다

 

마녀는 최소한의 먹을 것만 주고, 

황금별이 떠오르면 얀붕이를 

도우라는 명령만을 반복했다

 

그 외에는 일절 자신과 말도 섞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런 교양이나 학문을 가르쳐주지 않았고,

독방에 갇혀 외부와의 교류도 

완전히 단절된 외로운 삶을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책장 속 방치된 낡은 단어책을 발견하고

독학을 시도했던 날이 있었다 

 

세상에 대한 지식을 갈망했던 얀순이에게 

그것은 희망의 빛이었지만,

그 모습을 마녀에게 들켰고 

죽지 않을만큼 얻어맞았다

 

이후부터 자신의 배움을

병적으로 싫어하며 끊임없이 방해했었다

그래서 배움을 단념했었다

 

마녀의 명령에 따라 

수백, 수천 번 외운 정해진 대사를 

읊는 답답한 일상 속에서 

작은 반항심을 키워갔다

 

-얀붕이라는 사람은 

내 친구가 되어줄 수 있을까

 

수만번을 입에 넣고 굴린 그 말을 

처음 만난 그 날에 문득 내뱉고 말았다

 

-난 너의 친구야

 

거절당할까, 무시당할까 두려움이 온몸을 휘감았다

하지만 얀붕이의 눈빛에서 따뜻한 미소를 발견했다

 

-고마워, 친구야

 

얀붕이의 진심 어린 답변에 내 마음은 벅차올랐다

 

얀붕이와 만난 후 

처음으로 따뜻한 가르침과 진정한 배려를 경험했다 

 

얀붕이는 부모처럼 다정하게 지도하고, 

내가 성장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도왔다

 

내 첫 친구이자, 선생님이자, 부모이자, 

이제는 연인이 될 사람..

 

그 순수함과 헌신에 

자신은 사랑이라는 걸 배워버리고 말았다

 

영원히 몰랐으면 모르되, 

한 번 발을 디딘 이상 다시는 빼앗기지 않으리라

 

무지했던 과거와 다르게 

이제는 마녀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말았다

 

얀붕이의 볼을 쓰다듬는 

얀순이의 손에 힘줄이 불거졌다

처음 맛본 낙원을 마녀에게 빼앗기지 않겠다

 

나는 얀붕이를 지키기 위해 

마녀와 맞서 싸울 결심을 굳히며,

곧바로 손에 힘을 풀고 얀붕이의 볼을 마구 비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