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쳤다.
그저 도망쳤다.

용기가 없다.
들을 용기가 없다.

경악에 찬 그의 목소리를.
진실에서 멀어지고자 발버둥치는 그의 목소리를.

그대로 나의 작은 방으로 도망쳤다.
혹여나 그가 찾아올까, 진실을 추궁해올까 두려웠다.

뜬 눈으로 밤을 지새며 문앞을 지나가는 발소리 하나에 숨을 숙였다.

그렇게 숨죽여가며 시간을 보내고 어느덧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시간. 보름달이 높이 뜨고 안도의 휴식을 취했다.

그녀가 말을 하지 않았을 거라고, 그는 아무것도 몰라는 희망을 비로소 품었다.

그리고 희망은 단순히 희망으로 끝날 뿐이었다.

며칠 뒤 그가 나에게 찾아왔다.

"도대체 왜... 왜 그랬나?"

"내가 그대를 신뢰한다는 걸 제일 알면서... 내가 그대를 아낀다는 걸 알면서... 왜? 왜?"

그의 슬픈 눈초리는 나에게 추궁을 해왔고 나는 그저 아무런 말도 못한 채 고개만을 숙였다.

그리고 그는 싸늘한 불신의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며 아무 말 없이 문을 닫았다.

이제 모든 게 끝났다.

모든 것이 나의 업보다. 사랑하는 상대를 보듬을 생각은 하지 않고 핍박한 대가이자 나를 신뢰하는 동료들과 부하들을 내버리고 내 조국을 적의 손에 넘긴 파렴치한 배신자에게 내려지는 벌일 뿐이다.

어떠한 변명도, 편지도, 무엇도 남기지 않은 채 성을 떠났다. 더 이상 주군에게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았다. 내가 남길 글이 주는 상처가 싫었고 후회가 싫었고 단순히 못난 배신잘 남고 싶었다.

성을 뜨고 성 뒤의 높은 산을 올랐다. 정처없이 떠돌던 나는 어느 허름한 산장을 발견했다.

산장의 안에서 단검을 꺼내들고 조용히 목을 그었다.

이제 다시는 만나지 못할 그를 추억하며.

Fin

전개가 잘 안 쓰여서 이런저런 생각하다 이번에 새로 쓰시는 분 보고 힘내서 한편 써봅니다. 자유로운 의견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