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가 너무 잘생긴 남자가 지나가는 걸 봤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테지만, 뭔가 운명적 만남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지금이 딱 그때인 거 같았다. 놓치면 안될 거 같아서 그 남자를 붙잡았다.

 

 

“ 저기요. 너무 마음에 들어서 그런데 번호 좀 주시면 안 될까요? ”

 

 

남성의 옷깃을 붙잡아 핸드폰을 들이밀었다.

그러자 남성은 꽤 놀랐는지 떨리는 입으로 말을 꺼냈다.

 

 

“ 누나... 말씀은 고마운데요. 저 고등학생인데요? ”

 

 

이런 씨발. 

고등학생이었다. 졸지에 순진한 미성년자를 꼬셔 버리려는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다.

원조교제도 아니고, 아무리 그래도 고등학생은 절대 건들면 안 된다.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 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잘 넘길 수 있을까?

 

 

“ 그런게 아니고. ”

“ 학생 혹시 아이돌 해볼 생각 없어? ”

 

 

전날 새벽에 보고 잔 드라마 내용 때문인가. 

아이돌 캐스팅 관계자인 척 연기를 해봤다.

번호를 안 주면 그냥 가면 되고.

번호를 준다고 해도 연락을 안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좋은 대처였다고 생각했지만.

인생은 원래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는 법이라고 했던가.

 

 

“ 네 있어요! ”

 

 

예상과 달리, 남자아이는 내 두 손을 잡고서는, 

일순간 두 눈망울이 동그랗게 커지며 내게 간절하게 부탁했다.

 

 

“ 저 정말 아이돌이 하고 싶어요! ”

“ 제발 부탁드려요! ”

 

 

얘. 아이돌이 꿈이었나보다.

누가 봐도 얼굴에 간절함이 묻어 나왔다.

 

 

“ 제가 노래 부른 거 핸드폰으로 녹음한 게 있는데 보내드릴까요? ”

“ 저 춤도 꽤 잘 춰요! 틱톡에 영상 올리면 조회수 좀 나오는 편이에요! ”

 

 

꽤. 아니 정말 진심인가 보다.

어린아이의 순진한 마음을 짓밟을 수는 없었기에,

조금은 맞춰준 다음에 피하는 게 맞는 거 같았다.

 

 

“ 핸드폰 녹음본은 음질이 안 좋아서 판별하기 어려워요. ”

“ 일단 번호 주시면 나중에 연락드릴게요. ”

 

 

하지만 남자아이는 이 기회를 절대 놓치면 안 된다고 생각한 건지.

 

 

“ 그럼 근처에 노래방이 있는데 말이에요. ”

“ 같이 노래방에 가서 제 노래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 ”

“ 딱 한 곡만이라도 어떻게 안 돼요....? ”

“ 제발 부탁이에요.... ”

 

 

아까 내가 운명적인 만남에 대해서 말했던가.

아무래도 이 아이는 지금이 그때라고 생각하는 거 같다.

나를 놓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여기서 거절해야 했지만, 

슬픈 고양이 눈을 하는 남자아이의 부탁을 차마 거절 할 수가 없었다.

결국 졸지에 같이 노래방에 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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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애의 노래가 끝나고 노래방에서 나왔다.

남자애는 노래를 정말 잘 불렀다. 진짜 재능이 있는 아이였다.

왜 대형 연예 기획사에 캐스팅이 되지 않았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솔직히 더 듣고 싶었지만. 

더 이상 빠져들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거 같아서.

더 이상 남자아이에게 헛된 희망을 심어주면 안될 거 같아서,

한 곡만 듣고서 노래방을 나왔다.

 

 

“ 어떠셨나요? 제 노래? ”

 

 

남자애는 우수에 찬 눈빛으로 나의 평가를 기다렸다.

 

 

“ 재능있네요. 좋았어요. ”

 

 

“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남자애는 기뻐하는 표정을 숨겨보려고 한 거 같지만.

다 숨기지 못했는지. 얼굴 겉으로 행복하다는 미소가 드러났다.

 

 

“ 더 판단해 봐야 알 거 같지만. ”

“ 좋은 결과가 있을 거예요. 연락할게요. ”

 

 

“ 고맙습니다! 연락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급하게 건물 밖으로 나가려고 발걸음을 빠르게 옮겼지만.

이상하게 남자아이는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았다.

노래방 시간이 남아있어서 더 부르고 나오려고 하나?

궁금해서 뒤를 돌아봤더니.

 

 

남자아이는 내 쪽으로 90도로 인사를 하고 있었다.

이런 행동까지 한다니. 정말 간절한가 보다.

이렇게까지 아이돌이 하고 싶은 걸 보면,

뭔가 깊은 사연이 있는 게 아닐까? 

 

 

일단 집에 도착했지만, 마음이 편안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아이는 내 연락만 기다리고 있을 거다.

죄책감이 물밀듯이 몰려오는 것만 같았다.

 

 

아마 일주일이 지나도 한 달이 지나도

어쩌면 1년이 지나도 내 연락만 기다릴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도 진실을 말해줘야 할까.

하지만 진실을 말하면, 내가 그 아이의 간절한 마음을 짓밟아 버리는 건 아닐까?

어쩌면 나로 인해 꿈을 접을지도 모른다.

 

 

오늘 있었던 일들이 내 머릿속에서 계속 반복 재생이 되었다.

그 아이의 간절했던 마음과 희망에 가득 찬 표정을 

잊으려 해도 도저히 잊을 수가 없다.

 

 

머리가 정말 아프다.

결국 깊은 고심 끝에 나는 한가지 결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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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남자애 실망하게 하지 않으려고 자기가 직접 1인 기획사 차린 다음에.

머리가 터지도록 소개서 쓰고, 오디션 프로그램 내보내고, 직접 뛰어다니면서 홍보하고, 스토커 수준으로 방송국 PD들 찾아다녀서 영업하고, 결국은 데뷔시키는데 성공했는데.

 

 

데뷔하고 얼마 뒤에 유명 여배우랑 스캔들 났다는 뉴스 기사 보고

갑자기 죽은 눈 되는 거 없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