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함) 뱀파이어 로드 안순이한테 도망치는 스폰 얀붕이 보고싶다 - 얀데레 채널 (arca.live)

ㄴ여기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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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 군주와 스폰의 첫 만남은 그들도 모르는 사이에 이루어졌다.


마리아 폰 발데마르가 위대한 뱀파이어 로드, 낮을 활보하는 데이워커가 되기 이전,


한낱 하찮은 스폰으로써 전전긍긍하던 그 때였다.


모두가 잠, 혹은 술과 약에 취해 나자빠지는 늦은 밤.


마리아는 온 몸을 가리는 어두운 색의 로브를 둘러매고 밤거리를 활보했다.


주인에 의해 찢기고 다시 붙여진 사지를 위해선 더욱 많은 피가 필요했다.


마리아는 밤거리를 내달렸다. 그리고 눈동자를 굴렸다.


그녀의 한 끼 식사가 되어줄 불운한 희생자를.


"멈추시오!"


뱀파이어 스폰의 창백한 발이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마리아는 불안한 표정을 감추려 노력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와 비슷한 체격의, 갑옷을 입은 젊은 기사가 그녀와 눈을 마주했다.


흐리멍텅하지만 밝은 푸른색 눈이 인상적인 그 하급 기사는 얼핏 보면 남자인지, 여자인지 헷갈릴 인상이었다.


목소리와 얼핏 보이게 기른 수염자국이 아니었다면 마리아는 어쩌면 그의 성별을 헷갈렸을지도 모른다.


"망토를 벗고 얼굴을 보이십시오."


그의 한 쪽 손에는 전단지가 들려 있었다.


마리아는 뛰지도 않을 심장이 덜컹거리는 것을 느꼈다.


"제, 제가 무슨 수상한 짓이라도..."


"검문 중입니다."


그는 왼손에 쥔 전단지를 움켜 쥐고 가볍게 흔들었다.


"최근 사람들이 실종되고 있다는 소문 모르십니까? 꽤 유명한 소문인데."


"저, 저는 몰라요."


"아하, 그러십니까. 그런데 그 소문이란 게 소문이 아니게 돼서 말입니다."


마리아는 또다시 멈춘 심장이 빠르게 뛰는 느낌을 받았다.


설마, 일 주일 전에 놓친 그 인간이?


그녀는 충혈된 붉은 눈을 불안하게 움직였다.


지금 도망쳐야 하나?


"그 목격자의 진술대로 몽타주를 그렸는데, 덕분에 밤에 죽겠습니다, 아주. 아니, 요즘 같은 시대에 뱀파이어가 어디 있다고?"


아니, 도망친다면 분명 수상하게 여길 것이다.


이미 목격자가 나왔다면 얼굴도 팔렸을 터.


마리아가 속으로 수많은 계산을 하는 와중에도, 기사는 실없는 이야기를 너불대는 것에 정신이 팔렸다.


"뭐, 그냥 대충 얼굴 보여주시고 이름 적고 가시면 됩니다. 저도 상부에 보고 안하면 짤리게 생긴지라."


기사가 말을 멈추었다.


이제 영양가 없는 이야기를 멈추고 본분에 들어간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얼굴을 보여 주시겠습니까?"


이 골목을 지나면 나오는 것은 널찍한 대로.


몸을 숨길 곳도 없고, 도망칠 곳도 없는 넓자락한 평지만이 나올 뿐이었다.


마리아는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로브를 걷었다.


아직 그녀의 주인이 얼굴에 새겨 놓은 화상 자국이 아직 남아있길 바라며.


"...어우."


기사가 마리아의 얼굴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이거 실례했습니다. 어휴, 내 살다살다 저런 화상은 또 처음 보네."


푸우, 깊게 한숨을 쉰 기사는 못 볼 광경을 봤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이름이 듬성 적힌 양피지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이름만 적고 가십쇼."


"저기... 제 이름을 남기기엔 조금 부담스러운데요."


"에헤이, 이름 적는 게 뭐 그리 힘든 일이라고 그러십니까?"


기사는 혀를 끌끌 찼다.


"말했잖소. 이거 안 채우면 짤릴지도 모른다니까? 안 그래도 자고 있는 사람 깨워서 이름 적게 해도 모자를 판에."


"저, 약소하지만 이걸로..."


마리아는 투덜대는 기사에게 작은 손을 내밀었다.


창핵산 손바닥 위에서 달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금화 세 냥.


은은한 금빛은 흐릿해진 기사의 눈빛을 맑게 하기에 충분했다.


"흠, 흠."


그는 헛기침을 하고는 금화를 낚아채듯 가져가 주머니에 넣었다.


"뭐, 무슨 일인진 모르겠지만 그렇게 험한 꼴을 겪었으니 이름을 밝히는 게 힘들 수도 있지요. 세상살이 그런 거 아니겠소?"


기사는 표정을 감추려 애쓰고 있었지만 새어 나오는 미소는 참기 힘든 모양이었다.


"가 보십시오."


그는 엄지로 가볍게 손짓하곤 콧노래를 부르며 골목 너머로 사라졌다.


마리아 역시 기사가 사라지는 것을 보자마자 쏜살같이 골목을 빠져나왔다.


그녀는 오랫동안 기사의 얼굴을 잊고 있었다.


단지 스폰 시절, 사람들을 납치해 피를 빨다가 발각될 뻔한 적이 있다는 정도.


마리아가 아이작이라는 하급 기사에 대해 품고 있는 기억은 그 정도의 기억이었다.


그녀가 승천 의식에 필요한 성물을 취하기 위해 작고 초라한 수도원을 습격하기 전까지는.


"젠장..."


그는 역시 그녀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듯했다.


하지만 마리아는 그의 눈동자를 보자마자 단번에 그를 기억해냈다.


마치 달빛과도 같은, 맑고 푸른 눈동자.


하지만 그 날의 흐리멍텅한 눈빛과는 달리 맑게 빛나는 눈을 하고 있었다.


그녀에게서 금화를 받은 그 때의 맑고 투명한 눈빛.


그 금화만큼의 가치가 저기 초라하게 떨고 있는 양떼들에게 있다는 것인가?


마리아는 기사의 등 뒤에 떨고 있는 늙은 수녀와 아이들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아, 아이작..."


"수녀님, 애들을 데리고 빨리 빠져나가세요."


"그럼 너는!?"


"헤, 어떻게든 되겠죠 뭐."


아이작이라는 기사는 양손으로 검을 쥐고 눈 앞의 뱀파이어를 향해 겨누었다.


"인생이 뭐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애써 태연하게 말하는 그와는 반대로 애처롭게 떨리는 손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수녀는 울부짖는 아이들을 이끈 채 어두운 통로로 빨려가듯 들어갔다.


마리아는 그 가냘픈 모습을 보고 혀를 찼다.


그 곳으로 도망친다 한들 출구는 없다.


그녀의 충성스러운 해골 기사가 목이 빠져라 희생양을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런 결말을 알 리가 없는 아이작은 호기롭게 소리쳤다.


"덤벼라, 이 피빨이 년아!! 죽어도 여기는 못 지나간..."


기사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그의 배에 사람의 주먹이 들어갈 만한 통로가 뚫렸다.


"커헉!!"


입에서 피를 토처럼 뿜어내며 아이작은 쓰러졌다.


하지만 쓰러지는 와중에도 칼을 놓치는 법은 없었다.


"여긴... 못... 지나가... 허억."


아이작은 꺼져가는 촛불처럼 위태로운 생명줄을 붙잡고 뱀파이어를 노려보았다.


여전히 그의 눈빛은 영롱한 달빛처럼 투지를 태워냈다.


"아악...!!"


이미 중상을 입었음에도, 죽음의 강을 건넜을 법한 상처에도 기사는 꿋꿋이 일어나 힘없이 칼을 겨누었다.


뇌물을 받아먹던 그 날의 밤과는 사뭇 다른, 진정한 기사의 모습이었다.


마리아의 멈춘 심장이 시큰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변태스럽고 잔혹한 그녀의 주인의 머리통에 말뚝을 쑤셔 박고, 이미 수백 수천 명의 피를 빤 그녀에게 인간의 정이란 이미 찾아볼 수 없었다.


연정 역시 그러리라 생각했다.


마리아는 자신도 모른 채 아이작의 투명한 사파이어같은 눈빛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녀가 그의 허수아비같은 몸뚱이를 발로 차 넘어뜨리고,


"크윽...!"


"너. 이름이 뭐지?"


그의 이름을 물었을 때,


그제서야 그녀가 품은 감정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더러운 뱀파이어에게... 알려줄 이름 따위는...!"


"저기 도망친 아이들. 살려줄까?"


기사의 눈빛이 흔들렸다.


"뭐...?"


"살려줄까?"


기사의 얼굴이 혼란으로 젖어들었다.


하지만 이내 간절함으로 바뀌었다.


"사, 살려줘...! 저 아이들은... 부모도 없어... 더 잃을 게 없다고...!"


"그럼, 저 아이들만 살려준다면 뭐든지 할 수 있어?"


"그래...! 허억."


아이작은 배를 움켜쥐며 고통스럽게 외쳤다.


"뭐든지...!"


"좋아."


그녀의 날카로운 송곳니가 달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내 이름은 마리아 폰 발데마르. 기억해두는 게 좋을 거야."


덥썩, 콰악.


그 칼날같은 이빨은 기사의 목덜미를 덮쳤다.


"컥, 으윽, 끄아아아아악!!!"


기사가 고통에 몸부림쳤다.


심장이 멈추고, 피가 딱딱해져 간다.


그의 자랑과도 같았던 푸른 눈동자는 서서히 붉게 물들어 간다.


비명을 지르는 남자를 가볍게 밀치고, 마리아 폰 발데마르는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네 주인이 될 여자의 이름이니까."


그녀는 입을 닦고 작은 통로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쿵, 쿵.


절그럭.


끼익,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거구의 해골이 온몸에 피를 두른 채 나타났다.


뱀파이어 로드의 충직한 해골 기사, 월터는 수백 년 동안 그녀를 섬기면서 처음 보는 광경을 둘이나 보게 되었다.


그녀가 처음으로 스폰을 만드는 모습을,


그리고 그녀가 웃는 모습을.


•••


마리아는 투명한 유리 술잔에 담긴 피를 가볍게 디캔딩하듯 흔들었다.


촛불을 받아 더 붉은빛을 띄는 피를 한 모금 마시며 그녀는 기분 좋은 상상에 스스로를 맡겼다.


"그래도 오늘은 좀 심했나?"


스폰의 등가죽을 벗긴 일을 떠올리며 그녀는 후훗, 작게 웃음을 흘렸다.


채찍을 다뤘다면 당근을 흔들어줘야 하는 법.


한낱 노새를 다루는 법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스폰이라고 해서 다를 바는 없었다.


"등가죽이 다 돋으면 조금 귀여워해 줘야겠어."


그녀의 주인이 그랬듯, 그녀의 연심도 망가지고 뒤틀려 있었다.


고통을 주고, 실낱같은 희망을 보여줬다 빼앗으며, 스스로에게 의지할 수 없게 환경을 만드는 것.


마리아가 그렇게 혐오하던 주인에게서 배웠던 유일한 사랑의 방식이다.


그의 몸이 치유되는 대로 느긋하게 침대 위에서 즐길 여흥을 고르느라 마리아는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 날 그녀의 하인이 꾸미는 일은 꿈도 꾸지 못한 채로.




반응이 의외로 좋아서 생각해놨던 빌드업 부분 써왔음

더 쓸지는 몰라레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