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이 나갔다.

메이르를 사고 늦은 새벽에 여관을 잡은 난 아침이 오도록 계속해서 기침했다.

원하는 바였지만 타X레놀 하나 없는 이 세계에선 감기의 위력을 절절히 느낀 밤이었다.

그렇게 한 방을 쓰는 동안 기침이 옮지 않게 천으로 입을 가리고 있었는데 마스크란 개념이 없는 이 세계에선 되려 이게 이상하게 보인 모양이다.

 

“뭔가요? 그 천은… 기침을 할거면 시원하게 뱉던가 내가 다 답답하네.”

“컥컥… 조,조용히 있어. 너 때문이니깐….”

“…….”

 

메이르는 내가 경계 되는지 바닥에 깔아준 이불에 눕지 않고 구석 모서리에 앉아 하루종일 날 노려봤다.

하긴 그럴 만하다.

이 세계를 혼돈에 빠뜨리는 운명이라 예언을 받고 부모님에게 버림받은 것도 모자라 오른팔이 짤리고 겨우 추적을 벗어났더니 노예상에게 잡혀 이 먼 이아가르 공국까지 흘러들어왔으니.

그 고단한 삶의 아픔을 활자로만 이해한 내가 완전히 이해했다고 말할 순 없다.

 

“제 몸에 손끝 하나 댈려고 했다간 자지를 물어서 짤라버릴 거예요! 알았어요?!”

 

그렇기에 이런 반응은 예상했다.

애초에 손댈 생각도 없기도 했고 몸은 이래도 머리는 가슴 큰 여자가 취향인 성인이니깐.

 

“하아…. 환기 좀 시키고 손 씻고 올테니깐. 잠깐 나갔다 오자.”

“어디로 가는데요?”

 

나는 매서운 눈으로 날 쳐다보는 은발의 소녀를 쓰다듬고 싶었지만 물리고 싶지 않았기에 참았다.

 

“옷 사러 가자. 갈 길이 머니깐.”

 

나의 시선이 메이르의 허름한 노예 옷에 닿았다.

 

 

 

 

********

 

 

 

 

시장에서 움직이기 편한 옷과 하급 포션을 사자 그 많던 골드가 거의 바닥을 드러났다.

나는 근처 식당에 들어가서 바싹 익힌 스테이크 두 개를 주문했다.

메이르가 의자에 앉지 않고 말했다.

 

“설마 노예인 제 것까지 시킨 건가요?”

“그럼 내가 먹는 거 구경이나 하게?”

“…당신은 이상한 사람이네요. 하지만 겨우 이깟 걸로 내 호감을 사려는거든 포기하는 게 좋아요. 당신은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요.”

“알았으니깐. 일단 앉아.”

“…….”

 

메이르는 잠자코 앉았다.

노예를 상징하는 목의 검은 목줄은 갈색 가죽 상의로 가린 상태였다.

음식이 테이블에 나오자 우리 둘은 아무 말 없이 고기를 썰어먹기 시작했다.

 

“…과연 싸구려 고기군요. 질감도 그닥이고 이거 제대로 익지도 않…… 음?”

“흑흑흑! 너무 맛있어! 하인살이 하면서 고기가 얼마나 먹고 싶었는지! 흑흑흑!”

 

고기를 한 입 베어먹는 순간 나도 모르게 황홀감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3년 동안 내가 먹은 밥은 신병훈련소에서 훈련병에게 취사병이 만든 성의 없는 식사보다 더 맛이 없고 빈약했다.

그것을 꾸역꾸역 먹으면서 이제는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보다.

스테이크 한덩이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러자.

 

“…자, 여기요. 제 꺼도 드세요. 아까 보니깐 돈도 다 떨어졌던데…….”

“흑흑흑! 고마워…. 고마워. 너무 맛있어! 흑흑!”

“……살다살다 이런 사람은 처음 보네. 보기만 해도 배부르겠어.”

“응? 뭐라고?”

 

메이르가 한숨을 쉬고 일어나더니 테이블에 놓인 손수건으로 내 입가에 묻은 스테이크 소스를 닦아주고 다시 앉았다.

 

“…좀 천천히 먹어요. 그리고 먹으면서 들어요.”

“응!”

“그때 왜 망토 안에 아무것도 안 입고 있었나요?”

“…….”

 

우물우물.

순식간에 다 먹은 나는 별로 먹지도 못한 메이르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앞으로 동행하는 입장이니깐 솔직하게 말할게. 메이르. 난 추격당하고 있어.”

“…추격이요?”

“그래. 곧 이곳 공국령을 뜰 거야. 그러기 위해선 얼굴부터 목소리까지 바꿀 필요가 있어. 무슨 말인지 알지?”

“목소리가 쉬었으니 그건 알겠네요. 하지만 얼굴을 바뀌었다니 뭘 바꿨다는 거죠? 어색한 부분이 없는데….”

“잠깐만. 보여줄게.”

 

주변에 관심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나는 가변술을 발동시켜 원래 평범한 외모였던 얼굴을 곱상한 축에 속한 원래 루크의 얼굴로 바꿨다.

 

“!”

“이게 내 얼굴이야. 기억해둬. 메이르.”

 

그리고 다시 귀족 레이의 얼굴로 돌아왔다.

 

“노,놀랍네요….”

 

메이르는 두 눈을 껌뻑거리며 단호한 성격에 어울리지 않게 말을 더듬었다.

그야 나도 익히고 처음 써봤을 때 그 사기적인 성능에 놀랐으니깐.

 

“그런데 그 정도로 완벽한 외관을 바꿨는데도 옷을 벗을 정도면 추격하는 상대가 만만치 않다는 애기군요?”

 

메이르는 점점 흥미가 동하는지 스스로 생각해 정답을 도출했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속으로 생각했다.

 

‘…프렌. 그 신속함을 일컫어 창공의 암살자로 까지도 불리는데……. 지금쯤이면 분명…….’

 

 

 

 

**********

 

 

 

임무를 하달받은 프렌이 가장 먼저 찾아간 것은 하인장 볼츠였다.

때는 저녁이었고 볼츠가 막 침대에 앉아 쉬고있을 때였다.

갑자기 나타난 검은 인영의 등장에 놀란 볼츠가 일어서 소리를 지르려는 순간.

 

“조용해라. 볼츠.”

 

프렌이 볼츠의 혈도를 짚어 그대로 선 채로 굳어버렸다.

 

“심부름 나간 루크가 아직도 안돌아왔겠지? 네 협조가 필요하다. 소리를 지르면 성대가 울리기도 전에 목이 분리 될 것이다.”

 

낮은 저음은 위협적으로 볼츠의 귓구멍을 가득 채웠다.

프렌이 혈도를 다시 짚자 몸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말은 할 수 있게 되었다.

 

“…무,무엇이든 협조하겠습니다…!”

“특이사항. 루크에게 있는 특이사항을 모두 말해라.”

 

볼츠는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대답하려고 애썼지만 잘 나오지 않았다.

 

“남자새끼치고 기생오라비처럼 생겼고, 수전노인 거 빼면은 특이한 건 없었습니… 아.”

 

볼츠가 무언가 생각난 듯 다시 말했다.

 

“원래는 더 활발하고 싹싹한 성격이어서 부려먹기 딱 좋았었는데 3년전부터 쯤인가… 갑자기 농땡이치는 일도 많아졌고 내 말을 안 듣기 시작한 것 같았습니다….”

“음.”

 

3년 전?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프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네게 더 물어볼 건 없을 것 같군. 살려주도록 하지.”

“아, 예예! 정말 감사합니…”

“나머진 네 뇌에서 뽑아주지.”

 

프렌이 순식간에 한 손으로 볼츠의 얼굴을 꽉 잡더니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파지직 거리는 전기가 볼츠의 두개골로 흘러들어갔다.

잠시 후 루크의 얼굴,목소리,체형까지의 모든 이미지가 프렌에게 흘러들어왔다.

간편한 술법이지만 잘못 까닥하면 피술자의 뇌에 굉장히 안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

 

“자업자득이라 생각해라. 다 뒤져본 건 아니지만 하인들에게 폭력이 일상이었군.”

 

볼츠는 대답하지 못하고 혀를 늘어뜨린 채 그대로 주저 앉았다.

그에게 얻을 수 있는 정보를 모두 뽑은 프렌은 저녁 노을에 비치는 자신의 그림자에서 자기와 똑같이 생긴 3명의 인영을 만들어내 그들을 동남북으로 보냈다.

그리고 자신은 직감이 맹렬하게 울리는 서쪽으로 쏜살같이 움직였다.

 

 

 

 

********

 

 

 

 

식당을 나온 나는 메이르를 끌고 마굿간으로 향했다.

 

“이제 떠나는 건가요?”

“아니. 떠나는 건 내일이야. 도와주는 사람이 있거든. 난 다시 돌아가려고.”

“어디로요?”

“추격하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

 

메이르가 날 믿지 못하겠다는 듯 따라오다 멈춰섰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돌아가겠다니?”

“잘 들어봐. 메이르.”

 

내 키가 메이르보다 한뼘 더 컸기 때문에 자연히 내려다보며 말했다.

 

“추격하는 입장에서는 쫓기는 사람이 숨어있거나 도망가고 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어.”

“네. 당연히 그렇겠죠.”

“날 쫓는 사람은 그걸 찾는데 굉장히 전문적이야. 그래서 난 굳이 숨거나 도망다니지 않고 확실한 방법을 찾고 있는 거야.”

“다시 돌아가는 게 확실한 방법이라고요?”

“정확히 말하면 돌아가는 척 하는 거야. 내 예상이면 아마 지금쯤 이곳에 도착할 거야. 직감이 귀신같은 여자니깐.”

“여자요? 뭐 자세한 사정은 궁금하지도 않으니 알겠어요. 당신이 죽으면 난 자유니깐요. 그때까진 순순히 따라갈게요.”

“응. 그거면 충분해. 고마워.”

“…이상한 사람.”

 

메이르를 설득해 마굿간에 도착한 나는 놀고 있는 마부에게 마지막 남은 돈인 30실버를 건넸다.

돈을 받은 마부가 웃으며 말했다.

 

“나에기님의 도시로 가겠다고? 지금 가지. 그런데 창문 달린 마차가 없는데 이를 어쩌나….”

 

구석에는 창문이 고장났는지 밖이 훤히 드러난 마차 한 대밖에 있지 않았다.

오히려 잘 됐다.

 

“그거면 됩니다. 서둘러 가죠.”

 

마차에 올라타 서로 마주 보는 의자에 앉자 덜렁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말이 마차를 몰며 얼마나 지났을까.

순간 번쩍임이라고는 밖에 설명할 수 없는 스침이 있더니.

 

“잠깐.”

 

검은 인영이 순간 뒤를 돌고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

 

“잠깐 검문이 있겠다. 사람을 찾고 있거든.”

“예예! 알겠습니다!”

 

마부는 검은 인영이 보여준 이아가르 가문의 검은 매 문양을 보고 곧바로 대답했다.

프렌이 마차에 올라탄 소년소녀에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