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극들을 보다보면 

몇가지 공통점이 있다.

 

조선시대의 모습은 

대부분 19세기 최근세의 모습일 뿐이고


또 이게 삼국시대까지 

보편화된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러면서 희안하게 시대를 거슬러 올라갈수록

옷과 머리모양 등은 화려해지고


궁궐과 가옥, 가구들도 

점점 더 화려해지고 있다.

 

인류 역사란 모름지기

시간이 거듭될수록 발전하는게 인지상정 아니던가?

 

그리고 분명히 우리 역사는

삼국시대보다는 


고려, 고려보다는 조선시대가 

더 발전되고 풍요로웠다. 


▲ 드라마 '칼과 꽃'의 장면 : 고구려 시대에 복층가옥, 벽돌집, 포장도로, 운하의 모습

 

세부적으로 따져봐도

조선 초 세종대왕의 태평치세기보다


조선 말 세도정치 때의 

백성들의 생활이 더 풍족했다.

(생산력, 기술력, 화폐 경제 등등의 면면을 따져보면 그렇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사극을 보면

오히려 과거로 갈수록 


백성들의 삶의 수준은 높아지고 있으니 

아어리니하지 않을 수가 없다.

 

단편적인 예로 각 시대별

일반 평민들이 살았던 가옥의 모습을 살펴보자.

 

아래는 삼국시대의 일반 평민의 가옥이다.

드라마 속의 모습이다. 


여러 칸으로 구성된 흙벽집. 

사실 조선시대에는 


'초가삼간'이라고 하여 총 넓이가 3평 남짓했으니

일반 백성들이 사는 집은 저것보다 훨씬 작았다.

 

하지만 삼국시대의 가옥은

실제로는 이러했다. 


4세기 백제 평민들의 거주지.

백제 말기도 이와 비슷했다.



내부 모습은 이러했다. 땅 밑으로 움푹꺼진 수혈식 구조.

이곳에 온가족 3대가 모여 살았던 것이다. 




5세기 가야인들의 수혈식 가옥이다. 


 
5세기 한반도 남부의 고상 가옥.


사극에서 처럼의 '흙벽집'은

삼국시대 말기 ~ 통일신라 시기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아래는 고려시대의 가옥 모습이다.

 


그런데 이것도 

완벽한 사실은 아니다.

 

고려시대에는 그림과 같은 

온돌(쪽구들)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흙바닥 위에

널판지와 돗자리를 깔고,


추위를 막기 위해 

방 가운데 화로를 두고 살았다.



 

심지어 귀족들도 

온돌방에서 살지 않았었다.

 

당시 부유한 귀족들은 아래와 같은 '쪽구들'을 

벽난로 형식으로 달고 살았던 정도다.


온돌(온구들)은 18세기 들어 

대중들에게 보급되기 시작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