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라 대공비를 죽인 후로, 나는 저택에 틀어박혔다. 

 

오즈마 공작가의 이름을 버린 내가 처음으로 가진 나의 가문.

 

룬웨이의 가문 아닌, 나의 가문.

 

아스트라이오스 출신 신흥 귀족 사마엘리스 남작가. 

 

이 가문은 앞으로 마탑주가 꾸려갈 가문이었다.

 

마탑주의 자녀가, 그 자녀가 계속 ‘사마엘리스’의 이름을 잇겠지.

 

그랬을 터였다.

 

“지금은 불가능하겠지만…… 푸흐흐.

 

아기야, 네가 아들이든 딸이든 사생아인 네가 어떻게 내 이름을 잇니?”

 

처음에는 그 이름에 이끌려서 이 저택을 방문한 이들이 많았다. 

 

허나 내가 라파엘로 대공의 노리개로 전락한 후, 메타트론의 어떤 귀족도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평민들인 사용인들도 마찬가지라, 그들은 점차 명성을 잃어가는 나를 두고 하나 둘 떠나갔다. 

 

지금은 임신으로 거동이 불편해, 시중을 들어 줄 어린 하녀 하나만을 두고 있다. 

 

그녀도 내가 아이를 낳으면 다른 일자리를 찾아 떠나가겠지.

 

어쩜 그렇게 외로운 삶이 있을까.

 

그저, 나는 살아갈 뿐이었다. 

 

정절도, 명예도, 가족도 잃은 나는 시체나 다름없었다. 

 

거기에 더해 제국의 유일한 대공비를 살해한 더러운 살인마이기도 하지.

 

목숨만 붙어 썩어가는 시체.

 

누구라도 나, 칼리오페 사마엘리스를 그리 생각할 법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룬웨이……”

 

나는 마법사도 취할 법한 도수 높은 위스키를 연거푸 들이켰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그 아이의 환영.

 

아직 어린 그 아이가 미소를 지으며 나를 누이라 불러주는 환영이었다. 

 

“너를 다시 볼 수만 있다면 그 무엇을 주어도 아깝지 않을 텐데……”

 

투둑, 툭.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후회스럽다.

 

그 아이를 밀고한 것이, 그 아이를 배반한 것이 너무나도 후회스러웠다.

 

나는 분명 룬웨이를 위해 모든 악행을 저질렀는데.

 

그 아이가 행복해지길 바라서 손을 더럽혔는데.

 

어째서 그 모든 행동의 결과가 룬웨이의 죽음이라는 형태로 돌아오고 만 것일까.

 

“제발 이 누이에게 돌아와…… 다시는 배신하지 않을게……”

 

허나 몇 번을 불러도 그 아이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 아이를 살릴 수 있다면……

 

룬웨이 오즈마가 다시 한 번 내게 미소지어 준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

 

 공교롭게 대공비를 죽인지 하루 만에 서신이 왔다. 

 

서신의 수신인은 라파엘로 대공이었다. 

 

내용은 뻔했다. 

 

자신을 위해 손을 더럽혀 달라.

 

자신을 위해 나의 몸을 내놓아라.

 

대강 이런 내용이었지만, 마지막 장에 적힌 문장들을 보자 온몸이 바르르 떨렸다.

 

[카트라는 잘 처리해 주었다.

 

고결한 척하는 그 여자를 볼 때마다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지.

 

게다가 그년의 아이가 대공위를 잇기도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나의 비.

 

이 사실을 폐하께 고하면 네년은 어떻게 될까?

 

책임은 묻지 않을 테니 장례를 도와라.]

 

“하하하.”

 

나는 테이블에 놓인 위스키를 병째로 입에 들이붓고 허탈하게 웃었다. 

 

자신의 적처를 죽인 여자에게 그녀의 장례를 도와 달라고?

 

벌써 여자의 살내음이 그리웠나 보다.

 

창녀나 부를 것이지.

 

“미친놈.”

 

8클래스 저주를 카트라 공주가 아닌 대공에게 썼어야 했어.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은 나 자신이 가장 잘 알았다. 

 

현재 ‘사마엘리스 여남작’에게 말이라도 걸어주는 귀족이 라파엘로 대공 말고 따로 있던가.

 

내 뒤를 봐주던 대공까지 사라진다면, 나는 그랑 강 강바닥의 돌멩이나 다름없는 신세가 될 것이었다. 

 

나는 더러운 계집이다.

 

그래도 살고 싶었다. 

 

설령 죄 많은 내가 죽어야 하더라도, 죄 없는 아이는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룬웨이…… 너 말고 내가 죽었어야 했어.”

 

내 특화 마법이 저주가 아니라 소생(蘇生)이었다면, 어떤 제물을 바쳐서라도 그 아이를 살릴 수 있었다.

 

어떤 제물이든.

 

“레이웨이 오즈마. 왜 하필이면 저주였니. 왜 하필이면 그런 역겨운 마법을 배웠니.”

 

나는 자신에게 그리 물으며 옷을 갈아입고 그 위에 로브를 걸쳤다. 

 

그리고 나는 술에 취한 채로 비틀거리면서 대공성으로 가는 마차를 탔다. 

 

제정신으로 어떻게 애를 가진 채 놈이 원하는 짓거리를 다 해줄 수 있단 말인가.

 

대공 놈은 그 사실조차도 모르겠지만.

 

“어서 오십시오, 마탑주.”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뒷문에서 기사가 대가하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벌레라도 보는 눈이었다. 

 

짜악-!

 

나는 온 힘을 다해 그의 뺨을 때렸다. 

 

내가 더러운 여자라는 건 잘 알고 있지만, 평민 출신이라서 창녀 뒤치다꺼리나 하는 기사가 할 눈빛은 아니었다. 

 

“푸흐흐…… 어디서 기사 따위가 남작을 그따위로 바라봐? 미쳤어?”

 

“많이 취하셨습니다, 사마엘리스 남작.”

 

“네놈이 나라도 이런 짓을 제정신으로 할 수 있겠니?”

 

“대공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따라오시죠.”

 

기사는 나와 더 이상 대화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겠다는 듯, 내 팔을 잡고 나를 끌고 갔다.

 

“놔! 나 혼자서 갈 수 있어!”

 

나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앞장서는 기사를 따랐다. 

 

나를 더럽힐 진창으로.

 

나를 한없이 떨어뜨릴 수렁으로.

 

그다음에 일어날 일을 뻔했다. 

 

대공은 제 취향껏 나를 범했고, 나는 저항했지만 저항할수록 더 많이 맞을 수밖에 없었다. 

 

“요즘 들어 저항하는 맛이 늘어 귀엽군. 내일부터는 카트라의 장례를 도와.”

 

“……네, 전하.”

 

필사적인 저항이 놈에게는 아양을 떠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나 보다.

 

나를 안내해 주었던 기사를 따라 대공성의 뒷문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벌레를 보는 듯한 기사의 눈빛은 여전했다. 

 

“이제 숙소로 돌아가시면 됩니다.”

 

기사는 그 한마디를 남기고 근무지로 돌아갔다.

 

“춥네……”

 

어느새 눈이 내리고 있었다. 

 

아, 이곳은 수도가 아닌 대공령이지.

 

첫눈이 빨리 내릴 법도 했다.

 

나는 숙소로 돌아가는 대신 성벽에 등을 대고 천천히 주저앉았다.

 

이대로 얼어 죽으면 좋을 텐데.

 

“룬웨이.”

 

나는 그 아이의 이름을 불러 보았다. 

 

살아가면서 고결하고 아름다운 일만을 해온 그 아이와 같은 곳으로 갈 수는 없을 것이었다. 

 

그래도 저세상으로 가면 나를 가엾게 여긴 신이, 아니 악마라도 그 아이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보여주지 않을까.

 

“……”

 

그 순간, 익숙한 마기가 훅 끼쳐왔다. 

 

눈에 보이는 마기는 짙은 자색이었고, 그 마기는 남자로 보이는 한 인영을 둘러싸고 있었다. 

 

“아스트라이오스?”

 

나는 멸망한 고국의 이름을 되뇌었다. 

 

주변에 아스트라이오스 출신 백성이 있다. 

 

짙은 마기를 지녔다면 필시 귀족 출신일 터.

 

왠지 모르게 그를 놓치고 싶지 않아 손목을 잡았다. 

 

“당신, 아스트라이오스 출신이죠?”

 

나는 대공가의 기사가 쥐어주었던 램프를 들어 남자의 얼굴을 비추었다.

 

감옥에서 새어 버린 듯, 하얗게 변한 머리카락에 온몸에 새겨진 무수한 흉터. 

 

그리고 짙은 보랏빛 눈동자.

 

“룬웨이?”

 

내 예상을 확실히 하려면 램프를 옮겨 남자의 팔다리가 멀쩡한지 확인하면 됐다.

 

허나 그럴 필요는 없었다. 

 

이 남자는 나의 유일한 아우, 룬웨이 오즈마다.

 

어떻게 이 아이가 살아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법사의 감이 그리 말해주고 있었다. 

 

“룬웨이. 누이란다. 어떻게 살아 있니? 라리에트 황제가 자비를 베풀어 준 거니?”

 

남자는 대답이 없었다.

 

너무나도 답답해 그의 팔을 잡고 흔들었다.

 

“제발 아무 말이라도 좀 해봐!”

 

그는 기사의 예를 취하는 대신, 길거리에서 귀족을 만난 평민처럼 양 무릎을 꿇고 절을 올렸다. 

 

“미천한 백성이 메타트론의 위대한 귀족을 뵙습니다.”

 

“왜 그래, 룬웨이. 나는 네 누이잖니. 왜 평민인 척을 해? 장난치지 말고 어서 일어나.”

 

내가 그를 억지로 일으키려 했지만 남자는, 룬웨이는 석상마냥 그 자리에 멈춰 있었다.

 

그는 자신의 소매에서 용병증을 꺼내 내게 보여주며 고개를 숙였다.

 

“고귀한 분이시여. 저는 당신의 아우가 아닙니다.”

 

“윈드……?”

 

“네. 그것이 소인의 미천한 이름입니다, 나으리.”

 

“거짓말! 라리에트 황제, 그 사특한 계집이 네 기억이라도 몽땅 지운 거니?”

 

“나으리.”

 

순간 용병 윈드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아무리 동향 출신을 만나 반갑다 하시더라도, 그 발언은 반역을 하겠다는 말로 들릴 수 있습니다.”

 

“아니야! 제발, 제발…… 내 말을 들어 줘.”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고귀한 분이시여. 그럼 소인은 이만.”

 

남자는 몸을 일으켜 등을 돌렸다.

 

안 돼.

 

두 번은 후회할 수 없어.

 

반드시 잡아야 해.

 

“내, 내가 너의 행복을 위해 얼마나 애썼는데! 룬웨이 오즈마! 이렇게 누이를 버리는 거니? 돌아와, 당장!”

 

그 순간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행복?”

 

“그래. 행복. 너의 행복을 위해 이 누이는 정말 힘냈단다. 오즈마 가문을 메타트론의 귀족가로 만들고, 네 목숨을 살리기 위해 대공의 노리개가 되었어. 그런데도 이렇게 매정하게…… 어떻게 네가 그럴 수 있어…… 응?”

 

나는 눈물을 흘리며 아이의 망토를 붙잡았다. 

 

그 모습이 안쓰러웠던 듯, 남자는 검은 장갑을 낀 손으로 내 손을 잡았다. 

 

따뜻했다. 

 

“나으리.”

 

“그놈의 나으리 소리는 그만두렴. 나는 네 누이잖니……”

 

그는 내 손을 한참을 붙잡고 있다가 물었다. 

 

“아우분께서 나으리께 그리 해달라고 부탁이라도 했습니까?”

 

룬웨이는, 아니 평민 용병 윈드는 매몰차게 내 손을 떼어냈다. 

 

“룬웨이! 아니 윈드! 어떤 이름이든 좋으니까 돌아와! 부탁…… 아니 명령이야!”

 

나는 애타게 아이의 이름을 불렀지만, 남자는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 - -



다음화부터는 다시 윈드상의 시점으로 돌아가는 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