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에 데려온 스피치가 있다

하얀 솜뭉탱이에 까만콩 세 개 박은 새끼늑대처럼 생겼다

그 녀석 원래 심장비대증인가 그거 있어서 몇년째 약먹고 살고있는데

지난주에 갑자기 폐수종인가 그거 합병증 걸리더니

그저께 입원해서 오늘내일하고있다


처음 데려왔을때부터 언젠간 이별을 각오해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찾아올줄은 몰랐어

아니 아직 죽지는 않았는데

그...모르겠다

심장 판막이 이미 너덜너덜해서 얼마나 오래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한다

낫는건 불가능하고, 끽해봐야 할 수 있는게 심장에 무리가지 말라고 오줌 자주 누게 하는게 전부인데

이전같은 삶은 불가능해 보인다


처음으로 키운 아이라 처음에 교육이 많이 서툴렀고

그래서 친구도 못사귀고 평생 다른 개만 보면 왕왕 짖어댔지만

그거 외엔 정말 착한 녀석이었다

잘 짖지도 않고, 불만이 있으면 화장실이 아닌곳에 오줌테러를 하는 것 외엔 딱히 말썽도 안피우고

산책할때 자꾸 이상한거 핥아대서 못핥게 계속 뚫어지게 쳐다봐야하는 피곤한 녀석이고

예민한 녀석이라 택배아저씨만 오면 짖는데

우리집 초인종이 망가져서 눌러도 소리가 안나거든

그래서 배달음식 시켰을때 얘가 초인종 역할을 대신해줬다

농담삼아서 이 녀석 직책이 '택배감지견'이라고 불렀으니까


이건 아니야

목요일까지만 하더라도 호전되는 모습이라서, 오랜만에 산책할 수 있겠다 하고 산책하고

금요일에 일하러 가면서 나 금방 갔다올게 하고 빠이빠이했는데

그 뒤로 입원하고 못봤다

나는 걔를 볼 수 있었는데, 어째서인지 걔는 우리를 보면 안된다고 한다

걔는 지금 영문도 모른채 낯선곳, 낯선사람들이 잔뜩있는곳에서 이틀째 혼자 투병중이야

그 녀석은 불안해할때마다 내 팔을 핥으면 진정하고 그랬는데, 빨리 내 팔을 핥게 해주고 싶어 얼마나 불안하고 괴로워하고있을까


오늘 아침엔 온가족이 회의를 했다

보아하니 이대로 죽을때까지 병원에서 조치를 하다가 끝내 죽게 될거같은데, 그대로 병원에서 쓸쓸하게 죽게할건지

아니면 집에 데려와서 서서히 죽어가더라도 가족들 품안에서 죽게할건지

나는 평소에 그런날이 오면 옆에서 임종을 지켜줘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확신이 없다

집에 데려오더라도 분명 쓰러지거나 또 숨을 헐떡이면, 정신차려보면 끌어안고 또 동물병원에 가있을지도 몰라


생각해보면 죽을 위기를 여러번 넘긴 녀석이야

포도씨앗도 집어먹고, 초콜릿도 집어먹고, 심지어 닭뼈도 한번 먹었는데 여태 살아있으니 말이야

심장병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냥 매일 두 번 약주면 별 문제없는 그런 병이라고만 생각했다

안일했지 심장병인데 얼마나 큰 병이야

개들은 아파도 안아픈척 버틴다는데 정말 그랬나보다

생각해보면 요즘 불만이 있어도 테러도 안저지르고 얌전히 화장실에서 일을 봤는데

어쩌면 장난칠 여력이 없었다는 신호였을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강아지 케익인지 뭔지 그런것도 사주고 싶었는데

올해 생일까지 버틸 수 있을지 어쩔지 모르겠다


어제는 너무 슬픈데

그렇게 슬프게만 있으면 안될거같아서, 그 녀석이 집에 돌아오면 먹여주려고 사과랑 양배추를 사왔어

그 녀석 주방에서 사과써는 소리 들리면 하나만 달라고 펄쩍 펄쩍 뛰고는 했거든

제일 비싼 사과로 사왔어

근데 지금 병원에서 보내준 사진 보면 뭘 씹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괴롭고 힘들다

친구들에게 그저께부터 징징대고있는데

위로 받을 수 있는것도 한계가 있지, 걔들 분위기 계속 다운시키고 싶지도 않아. 즐거운 사람은 즐겁게 삶을 이어나가야지

하지만 나는 아직도 혼란스럽다

지난주만 하더라도 매일 아침 산책하자는 약속을 했는데

하루 이틀인가 하고서는 갑자기 산책시키면 안된다고 하고

이제는 갑자기 이별준비를 해야한다니


개같은거

다시는 키우고싶지 않아

지나치게 분에 겨운 사랑을 받았는데

그 사랑 돌려줄 자신이 없어서 꺼려하고 조금 내버려두고, 맨날 게임하고 딴일하느라 별로 놀아주지도 않고

그랬는데 미처 사랑을 다 갚지도 못했는데 갑자기 갈준비를 하고있어

왜그러는거야 도대체

잘못은 내가 했는데 왜 쟤가 아프고 쟤가 가야하는데

약 시간 매번 2~3시간 늦게 주고

내가 잘못했는데


괴로워

저 녀석은 아무것도 모르고있잖아

아니 대충은 눈치채겠지 상황이 심상치않게 돌아가니까


물론 이별할 준비를 하루도 주지 않고 갑자기 떠나는경우를 많이 겪어봐서 그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이건 진짜 싫어 아직 해주지 못한게 많은데


어딘가에는 말하고 싶었어

너무 괴로워서

그냥 빈말로 위로해줘도 되고, 뭔가 진지한 조언 남겨줘도 되고, 그냥...그냥 읽고 말없이 가도 돼

그냥....나도 뭔가 바라고 여기에 쓴건 아니니까

그냥 하소연하고싶었어 너무 분하고 괴롭고 어찌해야할지 모르겠어서

11시에 가족들이 병원에서 집에 데려오기로 했는데, 나는 오늘 오후 4시까지 일해야해서

빨리 보고싶다. 목요일에 "나 금방 올게 푹 자고있어 조금만 기다려"하고 말했는데

빨리 만나고싶다 만나서 팔이고 얼굴이고 눈이고 뭐고 마음껏 핥게 해주고싶다

사과도 주고 양배추도 주고싶다

괴로워

긴 글 읽어줘서 고마워


생각해보니 어떻게 생겼는지는 보여줘야겠구나

이건 나름 건강할때 찍은거

내가 사진을 잘 안찍는 성격이라 얘 사진이 많지 않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