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라이브


그녀는 마치 내 행동을 예상이라도 하는 듯이 시종일관 여유로운 태도였다. 거기에는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안 넘어와?'라는 근거있는 자신감이 깔려있는 듯했다. 


"..."


성격이야 어찌 됐든 그녀는 국내외에서 최고의 모델, 연예인으로 손꼽히는 사람이다. 구애를 받아주는 걸로도 모자라 그녀가 직접 구애하는 것을 뿌리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라고 나도 믿고 있었다. 


"...미안."


그러나 한참을 고민한 나는 고개를 숙인 채 다시 풀어진 옷을 챙겨입었다. 

내 말을 들은 그녀는 황당하다는 듯이 다시 자리에서 일어섰고, 곧 처음 내 방에 와서 그랬던 것처럼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아직껏 얀순이의 적극적인 태도를 받아주기 부담스러웠고, 또한 그걸 이해할 수도 없었다. 

그녀가 어떤 생각으로 나와 연애하고, 스킨십을 하며, 살을 맞대어 섹스까지 하려는 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당연히 이유를 모르니 선을 넘은 이후에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당장 내가 한 말로 일어날 결과는 알 수 있었다. 

  

짝.


그녀는 아무런 감정도 없이 팔을 휘둘러 내 뺨을 쳤다. 

차라리 얀순이가 나에게 거절당한 분노를 삭히려고 전력을 다해 팔을 휘둘렀다면 나았을까, 그녀는 내가 거절하는 것도 알고 있었다는 듯이 여전히 무심한 표정이었고, 오히려 희미한 미소까지 보이고 있었다. 


짝.


나는 피할 여력도 없이 그녀의 손찌검을 받아들였다. 지금 도망쳤다간 그녀가 어떤 짓을 저지를 지 알 수 없었기에 그저 담담히 그녀의 손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짝.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연속해서 나를 때렸다. 다만 그 세기는 점점 약해지고 있었고, 끝내 고양이가 방울을 툭툭 치는 것처럼 장난스러워보이기까지했다.


"얀붕아. 그렇게 싫었어?"


짝.


"...응..아, 아니."

"내가 너무 서둘렀지?"


짝.


"근데~, 나도 진심이었거든, 진~짜 미안해."

"아니! 내가 미...미안ㅎ"


짝. 


얀순이는 다정한 말을 내뱉으면서도 계속 내 뺨을 때렸고, 어느덧 내 뺨은 붉게 물들어 시큰거리는 마찰열까지 느껴질 지경이었다. 

결국 왜인지 모를 서글픔에 내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고, 그녀는 그런 내 얼굴을 또다시 가격하며 말을 이어갔다.   

      

짝.


"왜 울어~? 섹스는 둘이 하고 싶을 때 맞춰서 하면 되니까."

"..."

"뚝! 자, 그럼 오늘은 그냥 잘까? 착하지, 우리 얀붕이~."


그녀가 나를 동정하듯이 웃음을 짓더니 나를 껴안으며 내 등을 쓰다듬자 나는 칠칠맞게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고개만 끄덕였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그녀와 다시 섹스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지만 난데없는 그녀의 손찌검에 아무런 행동도 취해보지 못하고 그대로 그녀에게 안길 수 밖에 없었다. 


"잘자~. 우리 얀붕이~."


나는 그녀의 품 안에서 퉁퉁 불은 눈을 끔뻑거리며 한참을 잠을 이루지 못했다. 


.

.

.

.

.


얀붕이가 곤히 잠든 새벽. 그를 껴안고 있던 얀순이 눈을 떴다. 

사실 침대에 눕기 전부터 남자친구에게 거절당한 충격으로 잠이 오질 않았지만, 그가 깊이 잠들 때까지 눈만 붙인 채로 누워있었던 그녀였다.   


모두가 단 한 번이라도 그녀와 만날 수 있기를 바라고, 또 팬들에게 선망받는 몇몇 연예인들이 은근히 구애해오는 김얀순이었지만 얀붕은 오늘 그녀를 밀어내고 한사코 사양했다. 어떻게 자신감으로 가득한 그녀가 그것을 가볍게 수긍하고 인정할 수 있겠는가.  


얀순은 아무 것도 모른 채 새근새근 잠든 그의 얼굴을 주시했다. 신체적으로도 여성인 자신에 비해 그닥 앞서지도 않는다. 거기에다 우유부단한 건지 결단력도 없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의 결점을 사랑했다. 아니, 결점이 많을수록 그녀는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에, 보호해야 한다는 마음에 사랑이 피어올랐다. 오늘은 실망스런 모습을 보인 그에게 감정적으로 손찌검을 하긴 했지만 그가 적극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에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다음엔 좀 천천히 해볼까?"


그녀는 몇 번이고 그의 얼굴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면서 입맞춤을 하고는 눈을 감았다. 


.

.

.


다음날 아침, 얀순과 얀붕 사이에는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길었던 여행이 끝나고 이제 현실로 되돌아오는 날이었지만 그의 마음속은 밍숭맹숭하기 그지없었다. 

여행 처음엔 그녀와 거리를 좁혀보려고 부단히 애썼지만, 전날 밤에 있었던 일로 모든 것들이 무의미해진 듯했다. 

고속도로를 타고 한참이고 달렸지만, 그녀와 그 사이에서 오가는 말은 거의 없었다. 그것도 그녀가 휴게소에 가고 싶다며, 혹은 틀어놓은 노래가 마음에 들지 않으니 바꿔달라는 식의 단문이었다.


한참을 달린 차가 오후쯤 되어 그녀가 사는 초고층 아파트에 도착하자, 그녀는 자신의 캐리어를 내려놓더니만 그에게 인사했다. 


"얀붕아, 짐 풀어놓고 연락할게, 조심히 들어가~."

"어, 응."

"다음에 봐."


캐리어를 든 채로 손을 흔드는 그녀에게 얀붕이가 어색하게 손을 내민 뒤 곧바로 그녀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다만 바로 집에 가지 못하고 근처의 갓길에 차를 세운 그는 핸들에 머리를 박은 채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한 달 가량 그녀는 그의 일상에 엄청나게 많은 변화를 주었다.    


허름하던 자취방과 그 안에 있던 낡은 가구들을 모조리 정리하고 남자 혼자서 깔끔하게 지낼 수 있는 새 집을 마련해주었고(물론 그녀의 집과 매우 가깝고 고층에서 한눈에 내려다보이지만), 취업에 성공할 수 있도록 교재와 인강스터디까지 챙겨준 데다가(물론 그녀는 남자 전업주부도 괜찮다며 은근히 설득하고 있지만) 문득 그가 TV를 보다 흘러가는 말로 "저 차 엄청 멋있네."라고 말했다가 그 다음 날 차량 계약서까지 쓰게 해주었다(물론 그녀가 연락한다면 자다가도 곧바로 출발해야 하지만). 


당연히 그녀는 예비 시부모님에게도 적잖은 용돈과 선물 공세를 이어갔고, 며느리로서의 평가는 보나마나 따놓은 당상이었다.       

언젠가 이런 사실들을 취재한 기자가 쓴 [충격! 김얀순의 남자친구가 받은 선물들 공개, 네티즌들이 경악해...] 라는 기사의 댓글창에서는 그를 남자 신데렐라, 평생 가질 복을 다 가진 남자로 여기며 부러워하는 시선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김얀붕에겐 이런 그녀의 적극적인 자본 공세 역시 엄청난 부담이었다.           

안 그래도 그녀의 미모와 몸매가 자신에게 과분하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그녀가 자본 공세까지 퍼붇고 있었으니 더욱 부담감은 심화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런 부담감에 그녀를 밀어내면 그녀는 어제와 같이 감정적으로 그를 다루며 아무 것도 혼자 해결할 수 없는 그의 위치를 자각시켰다.  



얀붕이는 한참이고 갓길에 차를 세운 채 자신의 꼭두각시같은 처지를 한탄하다가, 문득 쿵 하는 충격과 함께 번뜩 고개를 들었다. 

그가 사이드미러를 보니 뒤에서 허겁지겁 자신에게 달려오는 한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저...저 죄송해요! 괜찮으세요!?"


그가 창문을 내리며 그녀를 바라보자 20대 남짓해 보이는 여성은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어떤 이유인 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갓길에 세운 그의 차 후방을 가격한 게 분명해보였다. 


"하아..."

"아...저, 그...보험은..."


그가 한숨을 내쉬자 깜짝 놀란 여성이 울먹이며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분명 얀순이가 사고가 나면 자기가 처리해주겠다고는 했지만, 얀붕이는 이런 가벼운 접촉사고 때문에 어제 일로 서먹해진 그녀에게 연락하기가 꺼려졌다. 


"하, 얼마나 박으셨어요."

"죄, 죄송해요...아직 못 봤는데, 흐윽..."


당연히 한 눈에 보기에도 값비싸 보이는 포르쉐를 갖다박아버렸으니 사회 초년생인 그녀의 멘탈이 박살났겠지. 그녀의 마음을 알고 있는 얀붕이는 그녀와 함께 충돌 부위를 보러 자리를 옮겼다. 



예상보다는 적은 데미지에 얀붕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그녀에게 말했다. 

그는 속마음으로 자기 통장에 있는 돈으로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다는 것에 안도하고 있었다.  


"뭐 별로 크게 티도 안 나고, 몸도 괜찮은데, 보험사랑 제가 따로 연락할게요."

"아, 아니에요! 그래도 그...제가 박았는데..."  


그러나 되려 그녀는 보상을 사양하며 선처하는 그를 극구 말리며 어떻게든 자기가 처리하려는 눈치였다. 사람이 좋게 넘어가려는 데도 완고하게 선의를 거절하니 왜 그러는 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 이게 저...제 차는 아니라서...좀 군데군데 연락도 많이 하셔야 하고..."

"뭐가요?"

"시간이라든지 보상이라든지 여러모로 복잡하게 되거든요..."


상황이 이쯤 되니, 그녀가 왜 이러는지 곰곰히 생각하던 얀붕이는 문득 든 생각에 그녀에게 물었다. 


"아. 이거, 회사 차라서 그래요?"


정곡을 찔렸는 지 그녀는 고개만 끄덕이면서 우물쭈물할 뿐이었다. 

하긴 20대 사회 초년생이 어떻게 신형 그랜저를 자차로 몰고 다닐 수가 있겠는가.


.

.

.

.

.


그녀의 설명에 따르면, 팀장님과 1박 2일 출장을 다녀온 이후 회사에 갖다 놓으려고 운전하던 도중에 그만 잠이 들었다고 한다.

진짜 회사에 다 와서, 너무 피곤해서 꾸벅 졸다가 갓길에 세워둔 내 차를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보험 처리를 해버리는게 더 곤란한 일이겠지.


"그, 제가 얼마나 걸릴 지는 모르겠지만...어, 전부 보상할 테니까 어떻게 안될까요...?"

"..."


나는 김얀순처럼 사람을 갖고 노는 악취미는 없다. 

이렇게 손이 발이 될 것처럼 싹싹 빌어대는 그녀를 차마 뿌리칠 수 없어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다. 


"저, 안 그래도 요새 부장님께 찍혀서... 진짜 어떻게 들어간 회산데..."

"엄마가 저 취업했다고 소고기까지 사주셨는데 이렇게 짤리면...흑..."

"진짜 막말로 노가다를 해서라도 드릴 테니까 제발 보험처리는..."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는 것만 제외하면 솔직히 그녀의 말대로 선처해주는 것이 올바른 것 같았다. 내 마음이 심란하고 힘들어도 다른 사람에게 화풀이할 순 없는 일이었다. 


"네, 그럼 뭐...따로 보험없이 처리하는 걸로 하죠."

"지...진짜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보험사에 연락하려던 폰을 내려놓는 순간 그녀의 얼굴에서 화색이 돌았다. 다만 아직 정비를 맡겨놓지 않았으니 얼마나 비용이 들 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기에 그녀에게 물었다. 


"그럼 수리비같은 건 따로 제가 연락드릴 테니까, 연락처라도 주세요."

"아! 제 명함을 드릴게요!"


그녀는 주섬주섬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곧 명함 하나를 나에게 건냈다. 


YBS 연예부 / 기자 박 얀 진


"어, 기자셨구나?"

"네, 방송국 들어가느라 엄청 고생했죠...것보다 정말 진짜...! 감사합니다!"


명함을 보며 무심코 꺼낸 말에 그녀가 대답했다. 순탄하게 합의를 본 그녀는 안도하는 표정으로 밝게 웃었다. 


"기자..."

   

그녀가 조심스레 자리를 벗어나는 그 순간에도 나는 그녀가 건내준 명함을 가만히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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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재탕ㅆㅅㅌㅊ 

얀진이 덕분에 결말까지 대략적으로 스토리 다 맞춰졌음 


봐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