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라이브

수많은 사람들이 판타지 소설 쓰기에 입문한다.

별도의 자료 조사가 필요 없으며, 무엇보다 자신만의 세계관을 짜고 설정놀음을 하는 것이 재미있으며,

나만의 세계관에 빠진 독자들이 열광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즐겁기 때문이다.


그러나 판타지 소설의 수는 그런 꿈을 가진 이들의 수가 무색하리만큼 적고,

그 중에서도 그럴듯한 판타지소설은 손에 꼽게 적다.

필자도 예전에 판타지 소설에 도전해 본 적이 있으나, 반도 못 가 그만두고 말았다.

여러 번의 실패를 겪으면서 필자가 깨달은 것들을 써 본다.


1. 판타지소설에 관한 흔한 오해- 판타지소설이 쓰기 쉽다.

이런 오해의 대부분은, 판타지소설이 자료 조사의 필요가 다른 소설들보다 적다는 데 기인한다.

어느 정도의 비합리적인 부분이 등장해도, 마법이나 미래기술로 대충 넘어가면 되기 때문이다.

사실 여기서 떨어져 나가는 독자들이 굉장히 많다.

세계관의 작은 흠 하나하나까지 완벽히 숙지되어야 만족하는 독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세계관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고, 'XX마법진 발동!!' 하며 모든 일이 해결되는 모습은 상당히 불합리하다.


그러므로 판타지소설 한 편을 완성하려면 나만의 세계관도 치밀해야 하고, 나만의 세계관에 관한 숙지도 완벽해야 한다.

독자들은 마법 한 방에 모든 일이 해결되는 고전 시대의 신화를 보러 온 것이 아니다.

치밀한 스토리 구성과 서스펜스는 현실적인 것들 혹은 미리 제시된 것들에 기반해야 하며, 마법이나 이종족은 그저 약간의 양념에 불과하다.

판타지 소설이 쓰기 어려운 이유는, 자신의 상상력이라는 생각보다 협소한 공간 안에서 자료 조사를 '완벽하게' 해 내야 하기 때문이다.


2. 설정놀음과 명장면 짜기는 소설의 완성에 큰 도움을 주지 않는다. 방대한 소설은 처음부터 짜지 마라. 작은 소설부터 시작하라.

1화 이후에는 연재되지도 않을 방대한 소설의 

주인공이 극적으로 희생해서 대의를 이루고 죽는 장면,

이종족간 금단의 연인들이 극적으로 재회하는 결말을 구성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는 사랍들을 본 적이 많다.

파울로 코엘료 같은 사람들이라면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장면을 빼고 나머지 소설의 99%에 애착을 갖지 않는다.

항상 프롤로그나 1화에서 소설을 끝내는 사람들을 보았는가? 필자도 그 중의 1인이다.

자신이 짜 놓은 설정을 매력적으로 받아들이고는, 딱 거기서 만족하는 것이다.


예를 들기 위해, 1화의 마지막 대사같은 글을 하나 써 보겠다.

'예전의 세상은 그 녀석들에게 정복되어 이제 더 이상 없으니까. 이 세상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싸워야 한다...."

그리고 그 글은 더 이상 올라오지 않는다.


이런 글을 쓰는 사람들의 내면을 살펴보면, 많은 경우 그저 사람들의 오오....하는 반응이 보고 싶을 뿐, 전혀 소설의 완성에 관심이 없다.

그리고 흔히 하는 변명, 소설이 너무 방대해서 쓰기 어렵다.

이런 사람들에게 해 주고 싶은 조언이 있는데,

"처음부터 방대한 소설을 쓰지 마라. 작은 소설에서 시작하여 점점 크게 나아가라. 더 크게 끝낼 자신이 없다면 크게 시작하지 마라. 용두사미같은 결말도 결국 처음보다 끝에 소홀했기에 만들어지는 것이다."

"설정은 결국 소설의 1화에 불과하고, 명장면은 결국 소설의 매력적인 1%이다."


그렇지 않은가? 딸기케이크의 포인트는 꼭대기의 잎까지 다 붙은 딸기지만,

그 딸기 하나만 가지고 딸기케이크라고 할 순 없는 것이다.


3. 말투, 과도한 디테일은 예상외의 진입장벽이다.

"응응. 확실히 그러네요!"

"흠흠. 이런 적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랄까?"

"XX기능이 탑재된 XX권총의 정확한 6발의 총성이 내 귀에 들린다. 제기랄! 녀석은 끈질기군..."


판타지 소설의 큰 매력 중 하나는, 저런 이상향에 가까운 현실이 내가 사는 현실과 생각보다 가깝다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위의 표현을 최대한 지양하고 글을 쓰려고 한다.

현실에서 저런 표현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런 인위적인 표현은 읽는이로 하여금 거부감을 일으킨다. 필자는 그런 표현이 도드라지는 소설을 '실패한 판타지'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이상향을 추구하는 본능에 접근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씹덕같다.

그게 진입장벽으로 작용해서, 당신의 열과 성이 들어간 판타지 한 편에 사람들이 접근하는 것을 방해한다.


"씹덕이던 무슨 덕후던 일반인의 눈높이에 있는 사람이 썼다고 생각이 되는 표현을 써라. 자료조사는 틀리지 않기 위해 하는 것이지, 네가 많이 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진짜로 마법이 우리 곁에 있다고 생각해 보라. 마법이 그저 학교에서 과학처럼 배우는 하나의 과목인 사회. 여기서는 마법을 쓴다고 무슨 특별한 사람 대우를 받지 않는다. 천재 과학자도 우리 눈에서는 알 수 없는 기호를 사용해서 놀라운 결과를 해내는 사람들이다.

과연 그 사람들이 엘리트주의에 빠져 보통인들과 다른 말투를 사용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자연스럽게 마법사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4.뻔한 스토리라인

판타지의 스토리라인은 크게 몇 갈래가 있지 않는가?

이세계 전생물, 아포칼립스물, 모험물, 전쟁물, 비극의 연인물....

창소챈만 해도 이 4가지 안에 대부분의 판타지 소설이 커버가 될 것이다.

(잘 쓴 소설들도 몇몇 보입니다. 그런 분들에게 하는 말 아닙니다...!)

왜 새로운 시도가 잘 보이지 않을까?

피카레스크는? 일상적 연인물은? 최소한 등장인물만이라도 "남자 주인공, 여자 조력자, 상사(아포칼립스물에 주로 등장)" 바꾸면 안 될까?

소외당한 주인공은? 최강자와 경쟁하는 주인공은? 

영화 인 타임처럼 시간이 곧 화폐가 되는 세상은?


스토리라인의 다각화는 중요하다. (일례로 800조의 나는 80억의 당신을 사랑합니다가 올라왔을 때, 

염색체 내의 유전자들이 우리에게 말한다는 참신함에 감탄했다. 지금 생각해도 절제미가 돋보이는 희대의 명작이다.)



여기까지 한 글자 한 글자 읽었다면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다.

판타지 소설을 쓰는 사람들에 대한 비난의 의도가 아니다. 아예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다.

여러분이 한 편 한 편 써가며 언젠가 대작이 하나둘쯤 나올 거라 기대하고 있다.

꼭 그런 소설이 머지않아 나오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