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흐음."


"저, 그. 뭐냐. 일단 총은 좀 내려 놓고......"


철컥.


"조용히."


"옙."


일단 손에 들고 있는 총이라도 내려 달라 요청했지만,

 여인은 총구를 내 머리에 겨누었다.


"일단, 너. 인간이지?"


"예. 뭐. 보시다시피 그렇습니다. 선생님."


"왜 여기 있는 거지? 아니. 어떻게 살아 있는 거야? 당신."


내가 여기에 있는 게 이상한 걸까?


인상을 찌푸리며 나를 심문 하는 여인.


"그, 음. 저도 잘은. 지하철에서 자다 깨니 여깁니다 만."


"..... 하아?"


"자, 잠깐 잠깐!! 선생님 일단 진정하시고!!"


내 대답이 농담이라 생각한 건지, 방아쇠에 손가락을 올린다.


"다음 대답은 신중하게 하는 게 좋을 거야."


"아니, 그렇게 말해도..... 그 꼬마 애한테 물어보시죠....?


그 애가 절 깨웠습니다. 저기 저 자리에서요."


"흐음..... 알비스가? 널?"


"그 애 이름이 알비습니까? 아무튼, 깨우더니 초코바를 주던데요."


아이의 이름이 나오자 조금은 누그러진 여인.


그 아이의 가족인가?


"..... 거짓말이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여인은 내게 경고를 남기곤, 여전히 총구를 내 머리에 겨눈 채로

 어디론 가 무전을 넣었다.


뒤이어 들려오는 소음.


"하아.... 뛰지 말라니까."


"해해햏! 대장님! 나 불렀어!?"


옆 칸에서 신나게 달려오는 백발의 소녀.


"알비스. 조용히 오라니까."


"아! 알겠어! 쉬이잇!"


여인의 말에 자기 나름 조용히 걷는다며

 우스꽝스럽게 걷기 시작하는 소녀.


"응, 응! 레오나 대장 말대로 조~용히 왔어!"


"..... 그래. 잘했어. 알비스."


순수한 소녀의 미소에 여인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상냥하게 소녀의 새하얀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알비스? 혹시. 저 사람 아니?"


"응? 응! 인간 님 알아! 나한테 초코바도 줬어! 착해!"


"그... 렇구나. 혹시, 처음 여기 들어왔을 때. 저 인간이 있었니?"


"응! 저기 저 자리에서 꾸벅꾸벅 자고 있었어!


그래서 알비스가 깨웠어! 잘했지!"


"응. 그래. 알비스 착하네. 자. 여기 상이야."


엣헴! 하며 우쭐하는 소녀에게 상으로 초코 바를 준 여인은

 이내 눈을 돌려 나를 바라봤다.


"일단 아예 거짓말은 아닌 것 같고. 당신 대체 정체가 뭐야?


어디 소속이지? 펙스? 아니면.... 철충의 신병기?"


".......? 그게 뭡니까?"


여인의 입에서 나온 정체 불명의 단어들.


펙스? 그건 대충.. .아니, 그 기계를 말하는 건 아닐 거고.


철충은 대체 뭔데? 철로 만든 벌레? 


"내가 뭐라고 했지?"


"아, 아니 진짜 모른단 말입니다!!


퇴근 길에 잠시 눈 감았다 일어나니 여긴데!?"


솔직히 내가 여인의 입장이라도 자고 일어나니

 여긴데요? 라고 말하면 못 믿긴 하지만... 그게 진짠 걸?!


"하아. 저걸 어떻게 해야 하나."


"대장님. 여기 저 사람의 물품으로 보이는 게."


그때, 다시 나타난 오드아이의 여인.


"응? 발키리. 이거 어디에서?"


"저기 자리 바닥에 떨어져 있더군요.


아마 제가 인간 님을 구할 때 떨어진 모양입니다."


"구해? 왜?"


"그게.... 인간 님이 저기로 나가시려 하셔서."


그렇게 말하곤 어색한 미소와 함께 부서진 지하철 문 너머

 낭떠러지를 가리키는 여인.


"... 그냥 미친 건가?"


내 평가가 떡락 하는 소리가 들리는 군.....


"음... 거기? 이거 뒤져도 되는 거지?"


"예. 뭐......"


최고의 설득 도구. 총을 이용해 날 설득한 여인.


".....흠. 이건."


가방에 박아 뒀던 물티슈와 담배, 껌과 각종 잡동사니 사이로

 무언가를 건져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한다.


"이봐. 이거. 뭐야?"


신용카드 크기의 무언가를 잡고 내 앞에 들이민다.


"... 주민등록증 말입니까? 그게 제 겁니다 만.....?"


"그럴 리가. 여기, 2001년 1월 17일이라 적혀 있는데."


"예,,,, 뭐. 다들 17 살 넘으면 만드니까요. 뭐가 문제입니까?"


"... 당신. 올해가 몇 년도인지 말해봐."


"? 2023년 아닙니까?"


"이게 무슨......"


내 대답에 황당하다는 듯 머리를 감싸는 금발의 여인.


"그, 인간 님. 지금은 2172년 입니다. 인류가 멸망한지....."


금발의 여인을 대신해, 진실을 이야기하는 오드아이 여인.


"자, 잠깐. 인류가 멸망했다고요?"


"..... 예. 한 분만 제외하고."


"이제 두 명이지. 아직은. 발키리."


"..... 이거 철 지난 만우절 농담은 아니죠?"


"내가 지금 농담하는 얼굴로 보여?"


황당한 진실에 나도 모르게 말이 나왔지만, 두 여인의

 표정은 진지하기만 하다.


즉. 진짜로 인류가 멸망.....?


"혼란스러우시겠죠. 인간 님. 하지만... 저희를 믿어 주셨으면 합니다.


여긴 아직 안전이 확보된 곳이 아닙니다. 소란을 피우면 철충이

인간 님 의 뇌파를 감지해 몰려 올 겁니다."


".... 잠시만. 잠시만 생각을 정리할 수 있을까요?"


너무 많은 말을 들어서 인지, 머리가 아파온다.


잠시 혼자 생각을 정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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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키리. 대원들은?"



"합류 포인트에 모두 도착했습니다.


저희만 이동하면 됩니다만......."


그렇게 말하며 힐끗 어딘 가를 바라보는 발키리.


저기 지하철 자리 구석에 앉아서 머리를 싸매고

 있는 인간이 신경 쓰이는 걸까.


"신경 쓰여?"


".... 예. 아무래도."


"일단 사령관에게 보고 해야 해. 합류 지점까지는 데려 갈 거야."


"까지는, 말입니까."


"어쩔 수 없잖아. 신분도 확실하지 않은 인간을

 함부로 오르카 호에 탑승 시킬 순 없으니까."


발키리는 그 말에 동정 어린 눈빛을 인간에게 보내고 있다.


"..... 너무 마음에 담지는 마. 발키리.


착해 빠진 사령관이면 맨몸으론 안 보낼 거니까."


"하지만..... 저분은 저희를 인간처럼."


"아직 모르지. 언제 본색을 들어낼지."


그렇게 발키리와 잠시 대화를 나누는 사이, 알비스가

 어디론가 후다닥 달려가 버렸다.


"아, 알비스!?"


다급히 알비스를 불렸지만.


"인간 님! 기분이 안 좋아 보여! 초코 먹을래?"


너무 늦었다. 알비스는 인간의 앞에 서서 초코 바를 내밀었다.


심장이 덜컥 내려 앉았다.


저 인간이 알비스에게 해를 끼친다면.....!


다급히 총을 겨누려고 했지만.


".............음. 그거. 아니다. 너 먹어라. 난 먹으면 소화가 안돼서."


"애애. 그게 뭐야. 이상해."


"너도 늙으면 알게 될 거다. 꼬마야."


그자는 쓴 웃음을 지으며 알비스의 머리를 쓰다듬을 뿐이다.


바이오로이드라고 욕설을 하거나, 폭행을 하는 게 아니라.


"어, 음.... 대장님?"


발키리도 나와 비슷한 심정일까.

안도와 당황이 서린 얼굴로 두 사람을 보고 있다. 


"그..... 죄송합니다. 제가 시간을 잡아 먹었네요. 그러니까....."


알비스를 쓰다듬은 그는 이내 일어나 우리에게 돌아왔다.


정중하게 사과하는 건 덤이고.


"... 이해가 안 가."


"예? 뭐가....?"


"왜 사과를 하는 거지?"


"예? 뭐..... 문제라도?"


"당신. 인간이잖아."


"예. 그렇죠?"


"그런데 어째서 우리에게 사과 하는 거지?"


".............?"


내 말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남자.


"... 설마. 당신. 바이오로이드를 모르는 거야?"


"어, 음. 죄, 죄송합니다?"


내 말에 민망한지 머리를 만지작거린다.


....... 저 인간. 진짜로 2020년대 사람인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