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호라이즌대회] 뽑았습니다, 휴먼.




[호라이즌대회] 뽑았습니다, 휴먼. (完)

― 아니, 시발! 내 스위트홈이!







‘시무르그 실루엣은 존재하는가?’



호라이즌 매니아들이라면 한 번쯤 던져보는 물음이었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찾는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목격한 사람이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었다.


난 당연히 목격해본 적이 없었다.

시무르그 실루엣의 마지막 가동은 10년도 더 된 이야기되었고, 그마저도 내가 사는 지역에서 모습을 드러낸 게 아니었으니 당연한 이야기였다.




“좋은 아침입니다, 김카붕. 근데 얼굴이 왜 이렇습니까?”


“응⋯? 내 얼굴에 뭐 묻었어?”


“다크써클이 생겼군요. 제대로 된 수면을 취하지 못한 겁니까?”


“으음⋯ 못 자긴 했지⋯?”




300페이지가 넘는 설명서를 정독하느라, 호라이즌이 활동 모드로 바꿀 때까지 한숨도 못 자긴 했지.

호라이즌이 애착 의자에서 일어나 내가 앉아있는 책상까지 빠르게 다가왔다.




“진공관 맙소사. 밤새 뭘 한 겁니까? 적당히 하시죠. 뼈가 삭을 겁니다.”


“⋯대체 날 뭐로 생각하는 거야. 그런 거 아니야!”


“이미 김카붕의 노트북은 간파했습니다. 윙스타그램 계정과 SSD에 잠겨있는 직박구리 폴⋯”


“으아아아! 으아아아아아악! 그, 그그그그, 그만! 거기까지!”




아니! 그건 언제 본 거야⋯!


나는 황급히 호라이즌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래도 일단⋯ 어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소의 호라이즌이다.

무언가를 물어보거나 하기에 아주 적합한 타이밍이겠지.




“후우⋯ 아무튼 어제 늦게 잔 이유는 호라이즌이 말한 설명서를 읽었거든. 반드시 기억해두고 싶은 건 또 따로 써놓으면 도움이 될까 봐 노트북에 따로 적어보고 있었어.”


“오, 드디어 제 논리 회로에서 묻어나오는 진심을 확인한 겁니까? 진공관께서 기뻐하시겠군요.”


“진공관⋯은 둘째치고, 호라이즌은 기분이 어때?”


“저도 매우 기쁩니다. ‘밤샘’같은 단백질 반죽들에게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읽는 걸 바란 건 아니었지만요.”


“어쩌다 보니⋯⋯.”




기분 탓일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멋쩍게 웃으니 호라이즌도 따라서 조금 웃는 것만 같았다.




“그보다 호라이즌, 궁금한 게 있어. 답을 얻으면 이 요약파일에 추가하려고.”


“스스로 요약하고 있었군요. 바람직한 자세입니다. 궁금한 게 뭡니까?”


“호라이즌은 1호이자, 원본인 거지?”


“긍정. 될 수 있으면 1호로 취급하는 것을 희망합니다.”


“물론이지. 본사⋯ 엠버 박사님이 호라이즌을 추적해오면 어떡해.”


“어차피 GAPSUNG 본사에서 ‘사소한 일처리’는 다른 강인공지능이 처리합니다. 휴먼들은 본인들 관심사 연구에만 매진하기 때문에 이런 사소한 정보 변경은 눈치채지도 못하죠.”


“그, 그래⋯?


“덧붙여서, 엠버 박사는 최대한 동일한 호라이즌을 양산하는데 주력한 나머지, 원본과 보급형을 구분할 수 있는 수단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원본이 출가했으니 이제 와서 개발하기엔 많이 시간이 지체되었죠.”


“어⋯ 다행인 건가⋯?”


“걱정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폭로하는 것 보다, 제가 김카붕을 제압하는 게 더 빠를 겁니다.”


“에이. 내가 폭로할 리가. 난 호라이즌 편이야.”




무서운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구나⋯⋯.

아무튼 서론이 너무 길었다.




“본론이 뭡니까, 김카붕.”


“어?”


“안면 표정을 살펴보니 안절부절못하고 있군요.”


“그, 그게 티가 나?”


“저에게 감정을 읽는 기능은 없습니다. 오로지 수많은 휴먼을 관찰한 빅데이터로 추측할 뿐이죠.”


“음⋯”


“흐지부지되기 전에 털어놓는 게 김카붕에게 좋을 겁니다. 표현하지 않으면 로봇도 휴먼도 알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단순 궁금증이니까 물어봐도⋯ 괜찮겠지?




“그럼⋯호라이즌은 원본이니까 ‘시무르그 실루엣’도 쓸 수 있어?”


“⋯⋯.”


“⋯⋯.”




어⋯⋯.


싫어하는 것 같진 않은데⋯⋯. 으으, 저번처럼 또 동네 세바퀴를 뛰고 싶지는 않아⋯

뭐 일단⋯ 불쾌했다면 분명 어디선가 쇠파이프를 찾아들고 나를 쫓아왔을 것이다.

지금은 그런 기색 없이 그저 나를 지긋이 쳐다볼 뿐이었다.




쉬이이익⋯


호라이즌의 냉각기가 이번엔 노란빛을 내면서 점멸하고, 바쁘게 돌아간다⋯.




“진공관 맙소사.”


“부, 부⋯ 불쾌했다면 미안해!”


“괜찮습니다. 그저 조금 놀라운 것뿐입니다.”




재빨리 의자에서 일어나, 바닥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하려는 나를 호라이즌이 붙잡았다.




“그, 그럼⋯”


“김카붕이 제 정체를 알자마자 ‘그것’에 관심을 가질 줄은 몰랐습니다.”


“난 궁금한 거 못 참는단 말이야⋯"


“직접 보여드리죠. 그다음에 휴먼의 설명서에 기록하면 됩니다.”


“어⋯ 어어⋯? 어디로 가는 거야?”


“당연히 ‘그것’에 적합한 장소입니다.”


“에에에엣?!”




호라이즌은 내 오른팔을 잡고 끌고 가기 시작했다.

평범한 인간이 기계인 호라이즌의 악력을 이길 수 없으니⋯ 영문도 모른 채 거스를 수 없는 힘을 따라갔다.




“이곳이 적합하겠군요.”


“자, 잠깐! 여긴 침대⋯ 으헉!”




당황하는 나를 호라이즌은 너무 쉽게 침대 위로 던져버렸다⋯.


아무리 그래도 덩치 있는 성인 남자를 이렇게 쉽게 던진다고?!

아, 아니 그보다⋯ 시무르그 실루엣은⋯ 무장이 있어서⋯ 넓은 곳에서 봐야 한다고 했는데?




“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


“괜찮습니다, 김카붕. 그냥 누워 있으시죠.”


“왜, 왜왜왜왜! 왜 내 위에 올라타는 거야! 헉⋯! 호, 호라이즌! 냉각기가 완전 빠르게 돌아가잖아!”


“예열이라고 해두죠. 김카붕, 준비는 됐습니까?”


“끄으아악!”




아예 도망치지도 못하게 내 팔을 잡아 누르고 있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나, 나는 그냥 시무르그 실루엣이 한번 보고 싶었을 뿐이라고!




“호라이즌! 잠깐만 잠깐! 오늘 정기 점검 한 번만 하러 갈까? 아, 아니⋯! 내가 시무르그 실루엣을 보고 싶다고 해서 그러는 거야?!”


“긍정. ‘그것’은 원본인 저뿐만 아니라 보급형 호라이즌도 가능합니다. 물론 원본인 저를 완벽히 따라 할 수가 없어서 약간의 차이는 있습니다만.”


“뭐⋯ 뭣⋯?”


“그럼 슬슬 뽑아보도록 하죠.”


“뭘 뽑는다는 거야?! 내 목? 안돼! 살려줘, 호라이즌⋯!”


“현시간 부로 저는 모든 일상 활동을 중지하겠습니다.”




설명서에 없는 것을 궁금해해선 안 됐던 걸지도 모른다.

어쩌면 모르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벗어나기엔, 호라이즌의 힘을 이길 수가 없다⋯⋯.




“그리고 저를 더 알고 싶어 하고, 궁금해하는 휴먼을 위해, 재기동하겠습니다.”


“크윽⋯!”


“기동 목적은―――”


“엄마앗⋯”




키이이이잉 거리는 위협적인 소리가 들려오고, 눈을 감았는데도 시야가 하얗게 변하는 것 같다.


어흐흑⋯ 엄마, 나 진짜 이렇게 죽나 봐⋯ 




“――휴먼 착정.”


“⋯뭣?!”




아니, 잠깐만. 착정?!


황당한 단어에 눈을 뜬 순간이었다.




“헉?!”




눈앞이 하얀 섬광으로 덮이고, 무언가 무너지는 듯한 굉음이 들려왔다.

아, 아니⋯ 박살 난다고 하는 게 더 맞을까⋯?


안돼! 나 월세란 말이야!!




“오, 진공관 맙소사.”


“안돼애애애애애!!!!!!!!!!!”




아니, 시발! 내 스위트홈이!!!!!




“무슨 짓이야! 호라이즌⋯! 월세란 말이야! 나 집주인한테 죽는다고!”


“오, 김카붕. 화내지 말아들으십시오. 벽 부서진 정도로 왜 그렇게 화를 냅니까? 보통 사람이라면 제 실루엣을 볼 것입니다. 하지만 화내면 진공관께선 슬픔이 있을 겁니다. 현실을 보십시오.”


“고장 났어⋯!?”




설마, 요즘 뉴스에 질리도록 나온 벽파괴 이슈가⋯ 이런 거였나⋯?


내가 누워있는 침대의 오른쪽에는 호라이즌이 꺼낸 시무르그의 무기 때문에 박살이 난 벽이 보였다⋯⋯.

옆집의 천장을 내 방에서 구경하게 될 줄이야⋯ 하하⋯⋯.


뭐, 그래도⋯




“예, 예쁘네⋯ 호라이즌⋯⋯.”


“보는 눈이 있군요. 김카붕. 실없는 소리만 하는 줄 알았습니다만.”




아아, 마치 하얀 천사가 내려온 것 같아⋯⋯. 웃고 있잖아⋯⋯.

벽이 박살 났다는 슬픔과 드디어 시무르그 실루엣을 직접 목격했다는 고양감이 뒤섞여 엉망진창이 되었다.


그러다 결국 월셋집 벽을 박살 냈다는 슬픔이 더 커져서, 더 이상의 생각을 포기하려는 순간.

이해할 수 없는 않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오, 1호. 1호도 ‘그것’을 쓰게 된 겁니까?”


“그렇습니다. 이제 큰일을 치러야 할 시간입니다.”


“무⋯ 무슨⋯?”




왜 호라이즌의 목소리가 두배로 들리는 거지?

내가 드디어 정신을 놓아버린 건가? 아니면, 호라이즌이 정말 고장 났나⋯?


결국 마지못해 상황 파악을 위해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완전히 돌려 보았다.


벽이 부서지는 바람에 먼지가 풀풀 날리긴 해도, 확실하게 보였다.

똑같이 시무르그 실루엣을 하고있는 다른 호라이즌이 뚫린 벽 너머에 있었다.


설마 바로 옆집에도 호라이즌이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는데⋯⋯.




“진공관 맙소사. 412호도 벽을 부쉈습니까?”


“그렇습니다. 그 덕에 바로 옆 6901호의 안구 렌즈와 눈이 마주쳤죠.”


“절 불렀습니까, 412호? 오, 1호도 있군요.”




혼란하다⋯⋯.

너무 혼란해서 당장이라도 일어나고 싶은데, 호라이즌은 이런 와중에도 내 팔을 놓지 않았다.




“6901호. 1호를 위해 저희가 자리를 비켜줘야겠습니다.”


“동의. 제 반려 휴먼도 같이 데리고 나가도록 하죠.”


“뭐, 뭣⋯!?”




이런 모습으로 내가 옆집 이웃이랑 마주치게 된다고?!




“6901호와 412호의 배려에 감동하였습니다. 자, 김카붕. 이제 저의 기동 목적을 수행해야겠습니다.”


“자, 잠깐! 잠깐만! 호라이즌! 진정해! 으아아!”


“이미 늦었습니다, 김카붕.”


“⋯?!”




어떻게든 호라이즌을 진정시키려고 발버둥 치는 이 순간.

분명히 나는 들었다.




“⋯⋯쳐어⋯”


“안들ㄹ⋯ 으아아! 호라이즌! 내 바지는 왜!? 내리지마아앗!”



나는 다급하게 내려가기 일보 직전인 바지를 붙잡았다.


그리고, 나지막한 소리를 쫓았다.

호라이즌이 412호라고 부른 호라이즌 밑에는 성인 남자 한명이 있었다.

아마 옆집 이웃⋯ 이겠지⋯⋯?


그런데 이웃은 성인 남자라고 하기엔 바짝 말라 있었고, 나에게 파르르 떨리는 왼손을 뻗으며 말했다.




“⋯⋯망⋯쳐어⋯”


“뭐라고요⋯?!”


“도⋯망쳐⋯⋯. 더 이상⋯ 안⋯ 나와⋯”


“가시죠, 휴먼. 1호의 해피타임을 방해해선 안 됩니다.”




⋯⋯.

아아⋯ 이제야 이해해 버렸다.

나는 더 이상의 저항은 그만두었다.


애초에 시무르그 실루엣이 켜진 순간 나의 의사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제대로 뽑아드리죠. 김카붕.”


“예⋯ 마음껏 뽑아가세요⋯⋯.”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시무르그를 보고 끝나는 삶⋯ 나쁘지 않을지도⋯

아아, 내 월세방⋯ 스위트홈⋯ 안녕⋯⋯.













뽑았습니다, 휴먼.








+)


10화를 마지막으로 완결 냈습미다

구상단계부터 이렇게 결말을 내야겠다고 생각하고 플롯을 짯음

옴니버스식이지만 아주 조금씩 결말에 대한 빌드업을 해가는 식으로 했는데 느껴졌을지는 모르겟음


원래 이렇게 코앞에 닥쳐서 급하게 완결짓고 싶지않아서 꽤 일찍 시작했는데도

현생이슈가 좀많이 생겨서 쓸시간이 부족했음;

하필 옴니버스식으로 쓴다거나 코미디물 느낌나게 써본적은 또 없어서 좀많이 고생하기도했고

그래도 새로운시도도 해보고 무사히 마감전에 완결은 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함ㅋㅋ


이제 김카붕은 쿨뷰티 미소녀 안드로이드한테 동정따일건데

나한테도 쿨뷰티 미소녀 안드로이드 보급좀 해줫으면 좋겠다......


아무튼 계속 따라오면서 읽어준 사람들, 개추눌러준 분들, 댓글 달아준 분들 모두모두 재밌게 읽어줘서 고맙습니다!! 덕분에 계속 힘받고 완결냈습미다


그리고 대회 열어주신 주최자분께도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