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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화 : (대충아카) 환생자의 아카데미 생활기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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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회차서부터는 PC에 가독성이 맞춰집니다. 가능하면 PC 환경을 사용해서 내용을 읽어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 아논의 일러스트가 바뀌었습니다. 한번 확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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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논 ] 상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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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논 ] 의 현재 스테이터스입니다

근력 D / 민첩 D / 체력 D / 마력 D / 정신 C / 매력 D

[ 아논 ] 의 성장 잠재력입니다

근력 C / 민첩 C / 체력 C / 마력 C / 정신 EX / 매력 C 

[ 아논 ] 의 보유 재능입니다

사격술(신화), 술법(영웅)

[ 아논 ] 의 보유 특성입니다

재생력(E-)

[ 아논 ] 의 보유 포인트입니다

소지금 100P

[ 아논 ] 의 보유 아이템입니다

1000P 월정액(1달), 사주세요(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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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에게 배정된 기숙사 침실. 최고급품임이 분명한 푹신함을 자랑하고 있는 침대에 지친 몸뚱이를 뉘이고서 멍청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얼마나의 시간을 헛되이 흘려보냈을까. 불현듯 찾아온 허기에 몸을 일으켜세워 바라본 시계는 어느덧 자정이 지났음을 알려오고 있었다


식당이 문을 열기까지는 아무리 빨라도 5시간은 기다려야 할테고, 아카데미 내에 24시간 동안 운영되는 편의점이나 매점 같은게 있는지 그 여부조차 모르는 상황에서 괜히 아카데미 부지를 이 시간에 헤매고 다녀봤자 배고픔만 한층 더 가속화될 터. 뭔가 좋은 방법이 없을까


작디작은 소망 한줄기를 붙들고서 찬장을 열심히 뒤져봤지만 나오는 것이라곤 각설탕 몇 개가 담긴 바구니와 가루 커피가 담긴 병 하나뿐. 어디 시골의 모텔이라 하여도 이것보단 충실한 어메니티를 갖고 있을 것이란 생각에 쓴웃음을 지으며 포트에 물을 부은 직후의 일이었다


무심코 고개를 돌려 바라본 벽면. 아직 총기를 보급받고 채 이틀의 시간도 지나지 않았던만큼 타공판을 설치하지 못했기에 임시 방편으로 옷걸이에다가 멜빵을 묶어 어설프게나마 걸어둔 보급 총기 -돌격 소총의 형태를 하고 있는- 의 모습이 이쪽의 눈에 들어왔던 것은 말이다


물론 혹시 모를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탄창은 빼둔데다가 잔탄 확인까지도 완벽하게 마친 상태이긴 하지만, 어렵잖게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무기가 자신이 생활하는 방에 아무렇지도 않게 놓여있단 것에서 낯섬을 느끼는 이쪽은 어찌보면 이곳에서는 이질적인 존재일지도 모른다


어디까지나 수박 겉핥기로 공부한 수준에 불과하긴 하지만 거의 100년. 1세기가 넘도록 마계와 사투를 벌여온 이 세계에선 전생의 미국. 흔히 레드넥이라 불리는 이들과 총기 규제 반대를 외치는 이들이 거의 항상 입에 달고 사는 수정헌법 2조가 무색하지 않을테니까 말이다


아, 뭐. 그렇다고 해서 아무에게나 무기 소지가 허가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가디언이 되기 위해서 아카데미에 입학해 수련을 행하는 생도들에게는 "무기를 자기 근처에다가 두는게 꺼림칙하지 않나." 라는 이쪽의 당연한 의문은 이상하게 여겨질 가능성이 많다고 봐야겠지


체계적으로 가디언을 양성해내는 이런 기관이 존재하고 있는데 아포칼립스를 운운하는건 좀 이상할지도 모르지만 아포칼립스 상황에서 자기 손에 익은 무기 하나조차도 없이 쭐레쭐레 맨몸으로 돌아다니는, 그야말로 정신이 나가버린 이를 찾아볼 수 없는 것과 같이 말이다


"PiPiPi-♬"


물이 다 끓었음을 알려오는 포트를 들어올리고 천천히 그것을 기울여 가루 커피들이 들어있는 머그컵에 붓는 순간 방 전체로 퍼져나가는 익숙한 향기. 세계는 다르지만 변함이 없는 그 향기를 만끽하며 각설탕을 듬뿍 집어넣고 티스푼을 휘젓기 시작한지 1분 정도나 지났을까


각설탕이 완전히 녹아내린 그것을 목구멍으로 넘긴 순간 혀끝에서부터 느껴지는 쌉쌀함과 달콤함을 그 속에 품고 있는 따뜻함은 이쪽으로 하여금 긴장을 풀도록 만들기에 무척이나 충분한 것이었기에 가벼운 한숨을 내쉬면서 침대 가장자리에 다시금 걸터앉은 직후의 일이었다


이쪽에 대한 의문.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미 결론을 내렸다고 생각했던 질문 -이쪽이 갑작스레 전생을 떠올린 환생자인지. 아니면 누군가. 알리시아 그레이스의 오빠란 아론 그레이스에게 빙의한 빙의자인지- 에 대한 것이 불쑥 튀어나와서 복잡한 기분이 되어버린 것은 말이다


과거에 대한 기억이 편린이나마 남아있었다면 이런 고민을 할 필요도 없었을텐데. 자신이 누군가의 몸을 빼앗아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기생충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잊으려 노력을 해봐도, 알리시아가 보여준 앨범은 이쪽으로 하여금 그를 부정할 수 없게 만들고 있었다


그래,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어린 시절의 외모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데다가 주관이 섞인 평가이긴 하지만 목소리까지도 그대로 빼닮았다니 그게 어디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 이쪽이 우연히 그녀의 오빠를 닮았다는 것보다는 이쪽이 그 오빠에게 빙의했다는게 그나마 현실적일 터


...하지만 그것을 마음 속에서부터 인정해버리면 이 세계를 살아가는 것에 있어 자신은 기억도 하지 못하는 겉껍데기를 뒤집어쓰고 평생을 빌빌거리며 남의 껍질에 맞춰진 삶을 사는, 소라게와도 같은 존재가 되어버릴 것만 같았기에 애써 그것을 부정하고 있는 것뿐이고 말이다


아마 루시아가 이쪽을 생각보다 쉽게 놓아준 것에도 그러한 연유가 있을 터.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침울함이 묻어나는 얼굴을 한 상대를 억지로 붙잡고 "왜 여자 기숙사 방에서 나왔냐" 라던지 "알리시아 선배와는 무슨 사이냐" 라며 섬세하지 못한 질문을 해댈 이가 아니니까


물론 "...나중에 제대로 대답할 수 있는 상태가 되면 숨김없이 말해줘야 해? 친구끼리는 원래 그런거잖아?" 라고 묘하게 압박을 주는 말을 남기기는 했지만, 그거야 루시아의 성정이 워낙 남에게 참견하길 좋아해서 그렇게 말을 한 것이라 한다면 이해하지 못할 부분은 아니겠지


과연 나. 아논(Anon) 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이는 어떤 존재인걸까. 익명(Anonymous) 의 Anon? 그런 것이라면 정말로 슬플텐데. 자기 자신을 증명하는데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이름마저 제대로 된 것을 갖지 못한 존재가 뭔가를 해내는게 가능할 것 같지는 않으니까


...스스로가 어떤 존재인지를 정하는 것은 활자 몇 획의 조합에 불과한 이름이 아닌, 그 사람이 지금껏 쌓아온 과거와 과거가 될 현재라는 옛말도 있기야 하지만 범죄를 저지르고 탈옥을 한 것으로도 모자라서 빌런 연합에까지 들어간 사람의 과거가 좋아봤자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 이유들이 있기에 이쪽이 알리시아 그레이스의 오빠. 이름이...그래, 아론이라고 했었지. 아론 그레이스에게 빙의한 것만은 아니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지만 지금 당장에 이쪽이 빙의자가 아니라고 증명할 방안 따위는 어디에도 없다는게 가장 큰 문제라고 해야할 것이다


말 그대로 이쪽의 눈앞에서 아론 그레이스. 빌런 연합에 속해있다는 알리시아 그레이스의 '오빠' 가 나타나고, 이쪽이 그의 클론 같은 것이 아니라는걸 마력 패턴 검사니 하는 것으로 입증해낼 수 있다면 또 모를까. 지나치게 가능성이 낮다 못해 0에 수렴하는 정도이니까 말이다


그나마 아직까진 정신력이 버텨주고 있기에 괜히 자포자기를 해서 되는대로 삶을 구가한다던지의 말도 안되는 생각을 진지하게 하는 일이 없다는게 유일한 위안이라고 할까. 이쪽이 택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지는..."PiPiPi~♬" ...이런 늦은 시간에 대체 누가 통화를 걸어온거지?


"아, 저기. 이런 늦은 시간에 전화로 연락을 드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혹시 지금 전화를 받으신 분이 1학년 생도인 아논 군이 맞으신가요?"


등록되지 않은 번호 -등록이 된 상대라고 해봤자 루시아, 현상현. 그리고 알리시아 셋 정도밖에 없지만- 로 걸려온 연락에 순간 첩보 영화. 기억을 잃어버린 특수 요원의 클리셰를 떠올리면서 통화 수신 버튼을 누른 순간이었다. 익숙한 목소리가 스피커로 들려왔던 것은 말이다


"아. 제대로 연락이 간 모양이네요. 늦은 시간에 이렇게 연락을 하게 되어서 정말로 미안해요. 자고 있던걸 제가 깨웠다던지 한건 아니죠?"


신노아. 이쪽이 택한 무기인 총기를 가르치는 교수가 왜 이렇게나 늦은 시간에 연락을 취해온 것인지에 대해서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잠시. 일단 이쪽에게 뭔가 중요한 용건이 있으니까 문자가 아닌 전화로 연락을 취한 것이겠지-하고서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때였다


"다름이 아니라 내일이 주말이잖아요? 일단 1학년 생도들은 3월 동안에는 몇몇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주말 외출이 허용되지 않는만큼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건데 말이에요. 내일 다른 일정이 있는게 아니라면 추가 레슨을 받는건 어떤가요? 물론 단순히 권유니까요. 권유."


아, 벌써 주말이 훌쩍 다가와버린건가. 최근엔 워낙 밀도 높은 이벤트들이 연속으로 들이닥쳤던만큼 시간 감각이 다소 마비되어 있었지만 벽면에 걸린 달력은 내일. 더 정확히 말하면 방금 전, 자정이 지났으니까 이미 주말의 시작을 알리는 토요일이 되었음을 알려오고 있었다


"아논 군에게 다른 사정이 있다면 강요할 생각은 없지만 말이에요. 아논 군이 알리시아 양의 방까지 찾아갈 정도로 총기에 대해서 열의를 보여줬다는걸 우연히 알게 되었던만큼, 혹시 아논 군이 원한다면 제가 시간을 내서 아논 군에게 도움이 될 것들을 알려주고 싶었거든요."


...알리시아 그레이스의 방에 이쪽이 들어간 것을 알고 있던건 루시아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루시아는 괜한 가십을 떠들어대서 상대를 곤란케 만드는 것을 즐기는 악한이 아니란 점을 감안하면 누군가. 이쪽이 눈치채지 못한 누군가가 사진 같은거라도 찍었던걸까?


"알리시아 그레이스 양에게도 일단 물어보긴 했는데, 알리시아 양은 내일 다른 일정이 있어 아논 군의 교육에 참석하기가 어렵다 하네요. 만약 알리시아 양이 참석이 가능했다면 멘토링을 포함, 제가 도와줄 수 없는 부분에서도 보충이 가능했을테니까 좀 아쉽기는 하지만요."


이쪽을 제 친오빠라고 여기고 있는 탓에 이쪽으로 하여금 한층 더 거북한 기분을 느끼게 만드는 천적. 알리시아 그레이스와 멘토링이라니.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는 말은 이런 때야말로 어울리는 것이겠지. 알리시아가 일정이 있던 탓에 무산된 것이 다행인걸


"아, 그래도 혹시 중간에 시간이 생기면 확인을 하기 위해서 와준다고는 했어요. 알리시아 양이 꽤 아논 군에 대해 신경을 쓰는 것 같던데, 역시 총을 사용하는 후배는 아카데미 전체를 통틀어 총 다섯을 넘기지 않으니까 그만큼 후배를 더 아껴주는 것이겠죠. 알리시아 양도요."


...신은 죽었다. 아니, 적어도 이쪽을 이상한 세계에 던져넣고 이런 시련을 겪게 하는 신은 죽었다. 안 죽었으면 내가 직접 죽여버릴테니까


"아논 군도 딱히 일정은 없는 것 같고, 그럼 내일 오전 8시. 아니, 식사를 할 시간은 있어야 하니까 9시까지 사격 동아리 부실로 와주세요. 저번에 같이 가봐서 위치는 알고 있죠? 올 때는 보급 총기만 챙겨서 오도록 하세요. 탄창 클립 같은 것들은 제가 전부 준비해둘테니까요."


존재하는지 여부조차 불확실한 신에 대해서 꿍시렁꿍시렁 불만을 토해내던게 너무 길어졌던 탓일까. 침묵을 승낙의 뜻으로 여긴 것인지 졸지에 내일의 일정이 정해져버리고 말았다. 시간을 내어서 도서관에라도 한번 가볼까 했던 계획도 마찬가지로 파탄이 나버렸고 말이다


"그럼 내일 아침에 봐요. 아논 군."


지금이라도 말을 번복하는게 맞을지 고민을 하는 아주 잠시의 여유도 주지 않고서 튀어나온 인삿말. 뒤늦게 "잠깐만요!" 를 외쳐보았지만 검게 물든 화면은 상대방이 통화를 끊었음을 드러내고 있었기에 이쪽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망연자실하게 워치를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이쪽의 의사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지만, 일단 내일의 일정이 정해진데다가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여야만 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커피. 차갑게 식어서 설탕 알갱이가 보이기 시작한걸 마시는건 절대 도움이 되지 않겠지. 이 몸의 카페인 내성이 어떤지도 잘 모르니까 말이다


아아, 정말로. 교수에게 사적으로 "보다 공부를 봐주겠다." 라는 식의 연락이 오면 대학원에 가야만 하는 경우가 많다던 옛 지구의 불길한 격언이 왜 지금 떠오르는 것인지 그 이유는 생각하고 싶지 않고, 억지로라도 잠을 청하도록 하자. 이미 벌어진 일을 되돌릴 수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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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곱 시. 세신을 마치고 단정한 교복으로의 환복 후 조식-오늘의 훈련이 얼마나 힘든 수준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일단 아침서부터 오후 늦게까지 굴러댈 가능성이 높다는걸 생각하면 든든하게 먹어두는게 좋겠지-을 위해 식당으로 내려가던 계단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뭐야?"


건들거림이 묻어나는 언행. 껌을 짝짝 씹어대면서 한쪽 발은 쉬지 않고 틱 장애라도 걸린 것마냥 바닥을 두들기고 있는 붉은 머리의 소년. 명찰에 "안재원" 이란 이름이 적혀있는 1학년 생도와 눈을 마주친 것은 말이다. 분명히 이 상대를 어디선가 봤던 것 같은데, 누구였더라?


"...용건이 있는게 아니면 꺼져. 젠장, 있는 엘리베이터나 탈 것이지. 쓸데없이 계단으로 내려오는 놈들은 왜 이렇게 많은거람. 하 씨X..."


분명 백서아의 신입생 선서. 그 전이었던가, 그 후였던가에 강단에서 봤던 것 같기도 하지만 이쪽에 대해서 불퉁한 태도를 드러내고 있는 상대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겠답시고 아침부터 골을 앓기는 싫으니까 적당히 피해가는게 좋겠지. 굳이 싸움을 벌일 이유는 없지 않은가?


"...ㄱ...를 사용...특례...불릿의 친인척이라도 되나?"


한시라도 빠르게 저 상대와 떨어지고 싶단 마음으로 걸음을 재촉하던 이쪽의 등 뒤에서 들려오는 중얼거림. 목소리가 자그만한 것도 있고, 이쪽이 계단을 몇 개씩 껑충껑충 뛰어다니며 멀어진 탓에 제대로 된 내용을 듣지는 못했지만...뭐, 그다지 중요한 내용은 아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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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시. 식사를 천천히 마치고 경보로 사격 동아리. 그 사이에 청소 업체를 부르기라도 했던 것인지 먼지 한 톨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말끔해진 그곳에 발을 들였을 때는 이미 수십 여 종의 총과 총탄들. 다양한 형상의 과녁 사이에 서있는 교수님이 이쪽을 기다리고 있었다


"딱 맞춰 왔구나? 조금 일찍 왔으면 사격 전에 몸을 푸는 것부터 시작해서 자신만의 루틴을 만드는 것에도 조금 도움을 줄 수 있었을텐데. 일단 오늘은 넘어가도록 하지만, 다음 번. 그러니까 강의가 시작한 이후론 가능하면 10분...아니다, 20분 전까지는 자리에 있도록 해둬."


영화나 게임 같은 곳에서 본 사격장과는 사뭇 다른 풍경. 인간형의 과녁도 꽤 있지만, 어딜 봐도 인간과는 동떨어진 형태의 과녁판들에다가 온갖 특이한 형상의 탄환들까지. 지난번과 비교해도 배 이상의 숫자들로 늘어나버린 그것들에 그저 고개만을 갸웃거리던 찰나의 일이었다


"탄환에 대한 것들부터 가르치는게 맞을지. 아니면 총기의 종류별 장단점에 대해서 가르치는게 우선일지를 고민해보기는 했는데 말이지. 그것들은 정규 강의 시간에 가르치면 되는 것들이니, 오늘은 아논 군의 사격을 보고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를 살펴보는걸 우선할까 해서."


하긴. 언제 배우던지간에 조삼모사에 가까운 내용이라 하더라도 굳이 휴일에 정규 강의 커리큘럼을 따르면 손해를 보는 기분이기는 하다. 주말에 교수가 직접 봐주는 특강이라 하면 자신의 시간을 헛되이 보냈단 기분은 들지 않지만, 정규 강의를 다시 듣는건 좀 그렇지 않은가


"신입생 대련회에서 보였던 모습은 살짝 아쉬움이 있었어. 물론 머리를 노려서 상대의 주의를 이끌어낸 뒤에, 방어하기가 어려운 부분들. 복부와 흉부 아랫쪽의 경계를 집중적으로 공격한건 높은 점수를 줘도 괜찮겠지만...탄창의 교체가 사격술에 비해 상당히 서툴렀으니까."


현역으로 뺑이를 칠 때는 탄창을 교체하면서까지 사격을 이어나갈 일이 손에 꼽을 정도밖에 없으니까. 란 말이 목구멍 끝까지 올라온 것을 다시 꾹꾹 눌러삼키고서 잠자코 이쪽에게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 교수님이 늘어놓는 일장연설을 듣기 시작한지 얼마나의 시간이 지났을까


처음 한 시간 동안은 "예, 알겠습니다." 라던지 "예, 제게 그런 부분이 부족했군요." 같은걸 말하며 상대에게 호응하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거의 탈곡 수준으로 이쪽의 사격에 부족한 부분을 짚는 것을 세 시간이 넘도록 듣자면 저도 모르게 짜증이 솟구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이런 사격 태세를 유지하다 보면 이 타임 딜레이. 얼핏 보면 1초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지만 이게 탄창을 갈 때마다 누적되면 추후에는 거의 한 탄창을 갈고도 남을 정도의 격차가 생기고 마니까 무척 위험해. 총기 사용자는 탄창을 새로 결합할 때 가장 취약한걸."


만약 이쪽이 총기를 몇 년 동안이나 계속해서 붙들고 있었던 것이라면 저런 식으로 조목조목 짚어가며 잘못을 따져도 할말이 없었겠지만, 이쪽이 이 세계에서 눈을 뜬 이후로 사격을 연습했던 것은 끽해야 사흘에 불과한데 지나치게 과한 잣대를 들이대는거란 생각은 없는걸까


그나마 교수님이 이쪽에게 치욕을 주기 위해서 저렇게 꼬장꼬장한 태도를 보이는게 아닌, 자신에게 배움을 청한 생도가 하나뿐이란 점에 더해 초임 교사 특유의 열의까지 합쳐진 것 때문임을 이해할 수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이미 한계가 와도 옛저녁에 왔을 터


"그리고 앞으로 사용하게 될 마탄 말이지? 단순히 마력을 담아 파괴력을 상승시키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에도 주목을 해둬야 해. 물론 대부분의 마탄이 파괴력을 최종 목표로 삼기는 하지만, 세부 사항에 따라 마탄을 다루는 방법에도 전부 차이가 있으니까 말야. 이해했지?"


그러니까 데이비 크로켓(핵 포탄) 과 일반적인 9mm 파라블럼 탄을 같은 방식으로 정비하려는 생각을 하지 말라는 의미로 말을 하는걸까?


"예를 들어서 이 드래곤 브레스. 직격한 상대에게 화염 마법을 풀어놓는 마탄의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발사할 경우에는 불발률이 꽤 높아서 사전에 마력을 주입하거나, 혹은 총탄의 뒷부분을 손가락으로 눌러 뇌관을 작동시킨 상태에서 발사하는게 훨씬 효과적이라 할 수 있는걸."


드래곤의 숨결이라. 원래 있었던 세계에서도 들어본 적이 있는 이름의 탄환에 호기심을 갖고서 집중력을 끌어올린게 좋게 보여진 것일까. 조심해서 한번 확인을 해보란 말과 함께 이쪽의 손에 넘겨진 총탄은, 꽤나 묵직한 무게를 가지고 있었다. 이게 생명의 무게라는 것이겠지


"아논 군의 근력이 어떤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보는 정도라면 뇌관이 작동할 일은 없을테니까 그렇게까지 조심해서 손바닥 위에 올려놓을 필요는 없다고 봐. 뭐...어차피 나중에는 한번씩은 전부 써서 그 사용법을 완벽하게 숙지하게 될 예정이기도 하고."


...아무래도 교수님의 열의. 자신이 교수가 되고서 처음으로 맡은 단 하나의 제자에게 조금이라도 더 많은 것을 완벽하게 알려주고 싶다는 열의가 사그라들기까진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뭐, 그래도 저녁 시간이 되기 전에는 아마 끝날테니까 집중해서 듣는게 좋겠지


식당이 완전히 문을 닫아걸 시간이 되어서야 "아직 더 가르치고 싶은게 많았는데...아무리 그래도 연이틀 주말을 뺏는건 미안하니까." 라는 말과 함께 강의가 갈무리될 것임을 알았더라면 꾀병을 부려서라도 빠져나가야만 했었노라고 깊은 후회를 하기까지 열 시간 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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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자의 아카데미 생활기 12화는 아논의 고민 한 스푼에다 신노아 교수님 두 스푼. 안재원 조우 이벤트 1/4 티스푼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이번 화도 재밌게 읽어주셨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충분한 감상들과 추천은 작가가 다음 화를 쓰는데 뭣보다 가장 큰 의욕 촉진제가 됩니다

다음 화를 도서관 방문 + 시보라 조우로 처리할지. 아니면 신노아 교수님과 함께하는 야식 타임이 될지는 아직 확정이 나지를 않았습니다

+ 제가 생각하는 신노아는 사적인 부분에서는 반 존대를. 강의 진행 중에는 반말을 하는 스위치형 공사 구분을 하는 타입이라고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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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아 FAC51C 신노아 378a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