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혹의 죽림 채널

당신은 환상향을 살아간다 (58) 

당신은 환상향을 살아간다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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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도천. 무릇 생명 가진 자들이 마지막 숨결을 뱉어내고서, 영혼을 인도하는 사신을 따라 도착하는 이승의 마지막 장소

생에 대한 마지막 미련을 버리지 못한 자들이 나룻배에 타지 않기 위해 결사의 도주를...아, 물론 이미 죽었는데 결사란 

표현을 사용하는게 올바른지는 모르겠지만 이따금 도주하는 영혼들이 생겨나고는 하는 그 삼도천을 말하는 것이 맞다.


당신이 타고 건너가야 하는 나룻배에서도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서 도망친 이가 있었기에, 그 혼이 잡혀오기까지의

짧은 휴식 동안에 당신은 멍하니 삼도천 건넛편. 아득하게 아지랑이처럼 보이는 시비곡직청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마치 이승과 저승 간의 거리감을 알려주는 것처럼 고고히 흐르고 있는 삼도천. 이곳을 건너면 모든 것이 끝나고 말겠지


"뭐, 그 말대로네. 아주 가끔 사신의 명부에 오류가 생겨서 다시금 되살아나지 않는 이상, 한번 삼도천을 건너버린 이가

다시금 이승으로 돌아오는 일은 있을 수 없으니 말이지. 그쪽은 천수를 누렸으니까 그나마 미련이라던지 덜하지 않아?

왜, 아예 옳고 그름도 알지 못할만큼 어린 아이들과 노인들만큼 평온한 얼굴을 하고 배를 기다리는 이는 많지 않거든."


생각을 읽어내기라도 한건지 뭔지. 멍하니 강의 건넛편을 바라보고 있던 당신의 옆에 풀썩 주저앉아버리고선 넉살좋게

말을 걸어오는 사신. 이제는 흐릿한 기억의 흐름 속에서도 분명하게 떠올릴 수 있는 사신의 모습에 가만히 작은 미소를

지어보이고 있자니 사신은 당신을 향해 익숙한 주()향이 솔솔 풍겨오고 있는 도자기의 병목을 쥐라는 듯 내밀어왔다.


"그, 뭐냐...좀 신기해서 말이지. 조교전이란 귀물을 가지고 있으면서 죽을 때까지 그것으로 다른 이를 억지로 취하거나

그 힘에 취해서 난동을 부리지 않았다는게 말이야. 게다가 노잣돈도 지금 이 때까지 배를 몰면서 가장 많았다고나 할까.

시키님에게 "죄업" 이 무겁다 들었던 이가 어떤 일들을 거쳐서 이만큼 훌륭한 혼이 되었는지가 조금 궁금해져서 말야?"


먼 옛날. 조교전에 관해서 술을 강권하면서 물어보았던 일이 순간적으로 오버랩되는 그런 대화에 피식하는 웃음소리를

흘리며 술병을 입으로 가져가는 동안에도 빨리 진실을 털어놓으라는 듯한 사신의 시선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기에

당신은 결국 한모금을 끝으로 술병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이지 무척 맛없는 술이었단 불평은...덤이라 해두자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좋은 술이라면 살아있는 녀석들이 마셔줘야 하는게 당연하잖아? 성묘라던지 갈때도 시큼털털한

탁주 한 병을 들고가지, 맑은 청주를 들고가는 녀석이 몇이나 되겠어. 해서, 슬슬 이야기할 기분이 들었다고 봐도 될까?

왜 조교전을 얻고서도 그것을 사용하지 않았는지. 그러고 어떤 삶을 살았기에 그렇게 많은 노잣돈을 가졌는지도 말야."


사신의 지적에 바라본 전낭. 불룩하게 튀어나온 것으로도 모자라 당장이라도 터져버릴 것처럼 실밥이 팽팽한 부분들이

눈에 들어오는 것에는 아무래도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다. 저승이라던지에 대해 명확한 사실이 밝혀지지 아니하였던

바깥 세상에서야 노잣돈이란 의례적인 옛 풍습에 불과하지만, 환상향에선 실제로 이렇게 형태를 갖고 존재하는 것일까


"그래, 그래. 애초에 노잣돈이란건 말이지. 관짝에다가 구깃구깃한 지전을 넣어준다고 끝나는게 아닌 삶을 살아오면서

행했던 선행과 나눔의 증거니까. 대체 어떤 선행을 행했기에 그렇게나 많은 노잣돈을 얻을 수 있었는지가 궁금하잖아?

그것도 한때는 염마님이 "악행의 업" 을 걱정해서 선행을 베풀고 삶의 태도를 바꾸길 권유했었던 상대라면 더욱 말야."


그런 일...도 있었던가. 사실 옛날의 일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솔직하게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을 하더라도 이 사신이

그런 사정을 너그러이 이해해줄 것 같지는 않고, 조금 노력해서 기억을 떠올려보도록 하자. 구체적으론 메리와의 이별.

미요이와의 혼인 이후부터의 삶을 간략하게 축약해서 이야기하면 개중에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보라는 형태로 말이다.


메리와의 이별을 고하고서 며칠이나 지났을 때였던가. 하루에도 몇 번씩 이게 올바른 일이라 스스로에게 되뇌이면서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해 술에 진탕 취하기만을 반복했던 어느 하루의 일이었을 것이다. 며칠이라는 시간이 넘어가도록

취해있는 모습을 받아주던 미요이가 흐린 얼굴로 "저기. 저를 선택한건 단순히 책임감, 때문인가요?" 라고 물어왔던건.


힘이라고는 좁쌀만큼도 담겨있지 않은, 이미 체념해버린 듯한 목소리로 말해온 내용은 연일 이어졌던 폭음으로 인해서

알콜에 찌들어버린 머리로도 쉬이 흘려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 결국엔 미요이를 선택했던 것은 당신-이었지

그것이 메리에게 죄를 짓는 일이라는걸 알고도 선택했을 때는 이게 최선이라면서 자위했던 주제에 이런 흉한 꼴이라니


아마 이전에 만났던 염마가 지금의 당신을 본다면 "구제할 길이 없는 죄인" 이라 단언할, 그런 쓰레기의 모습이 되버린

스스로의 모습에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선택이란 다른 누군가를 잘라내는 것. 같은 온갖 번지르르한 말을 하며

제 선택을 정당화했다면 끝까지 밀고 나갔어야지. 몇 년 뒤, 하다못해 몇 달도 아닌 며칠 뒤에 이런 꼴이 말이나 되는가.


이렇게나 마음이 흔들리고 있는 추태를 보이면서, 선인으로서 마음을 갈고 닦았다는 말은 우스갯소리도 되지 못하겠지

인정하자. 나는 선인이 될 수 없다. 재능을 가지고 있고, 좋은 스승을 가지고 있는 입장에서 이리 말한다면 복에 겨워서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의 가치를 모른다고 시샘하는 이도 분명 있겠지. 그럼에도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이다


본래 선인이라 함은 모든 욕망을 거세하고서 오직 "영생" 에 대한 욕망만을 남긴, 장생을 위해 존재하는 괴물을 뜻하니.

언젠가 다가올 죽음을. 한번 손에서 놓았었던 인연을 다시 한번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얄팍한 실타래 같은 희망을

움켜쥐고서 현생을 살아가겠다는 쓰레기 같은 발언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당신으로서는 선인이 되는게 불가능하다.


"아, 응...엄청 쓰레기 같은 발언이란건 알겠는데 말이지. 시간이 많지는 않으니까 그렇게 쓰레기와 같은 생각을 하고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최대한 간략하게 설명해주지 않을래? 예를 들어서 아내를 때렸다던지...자살의 기도.

이런 것을 일삼는 녀석이었다면 노잣돈이 두둑하기는커녕 이미 요괴에게 혼까지도 한입에 꿀꺽 먹혀버렸을텐데 말야."


기억을 더듬을수록 서서히 떠오르는 당시의 감정에 눈시울이 촉촉해지려던 찰나에 떨떠름한 표정으로 컷트! 를 외치는

사신에게 약간의 불만을 품지 않았다면 거짓이겠지만, 어쩌겠는가...삼도천에서 대빵은 뱃사공이나 다름없는데 말이다

지루하다는 것처럼 던져오는 질문이라 말을 할지라도 열과 성을 다해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요약해서 말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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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응. 대충 이해했어. 그러니까 지금 네가 말하는건 이거지? 네가 선택했었던 상대에게 "현생" 에서의 모든 감정들을

오롯히 건네주고 최선을 다해서 현생을 살았다고. 일단 거기까지는 상식적인 범위에 속하니까 이해한다고 치는데 말야.

대체 얼마나 최선을 다했기에 이렇게 많은 노잣돈을 받았는지는 아직 모르겠단 말이지...조교전의 이야기도 있고 말야."


말 그대로 최선을 다했다고밖엔 할 수 없는데. 조교전은 잊고 지내던 어느날, 창고를 정리하던 와중에 발견했던 것이고

원래의 요사스런 느낌이 전부 사라져버렸기에 그 이후로도 잊고 지냈을뿐이니까 따로 길게 늘어놓을 말은 없다 생각해

노잣돈은...글쎄. 아무리 작은 크기의 선행이라고 할지라도 오랫동안 꾸준하게 했으니까 주어진게 아닐까 싶은걸. 아마


"아아, 그렇지. 진짜 오래 살기는 했네...선인도 아닌데 주어진 수명이 이백 하고도 칠십이라. 11대 째의 아레의 아이가

먼저 죽어서 시비곡직청으로 돌아왔을 때는 염마님도 당황스러움을 금치 못했다고? 화과산 원숭이마냥 복숭아를 엄청

먹어대서 수명이 늘어난거라고 추정을 하기는 했지만 대체 어쩌다가 그렇게 많은 복숭아를 손에 넣을 수 있었던거야?"


그 이야기를 하려면 적어도 1시간은 걸릴텐데.


"그럼 듣지 않는걸로. 하아...왠지 맥이 빠져버렸어. 수명도 무척이나 긴데다가, 원래는 지옥 확정이던게 어느 순간부터

달라진다는 염마님의 말씀을 들어서 기대하고 있었는데 말이지. 결론적으로는 길게 사는 동안에 도움의 손길을 냈던게

차곡차곡 쌓이고 쌓여서 이런 결과가 되었다는 이야기잖아? 틀린건 아닌데 기대와는 무언가 다르다는 기분이 드는걸."


기대를 배신하는 꼴이 되어서 미안한걸.


"뭐, 사과를 받는 것도 꼴이 이상하니까 그정도로 좋겠지...아, 그래. 강을 건너기 전에 꼭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있는데

이번 생은 네게 있어서 어떤 의미였을까? 후생을 위한 준비 과정? 아니면 맡은 책임을 다하고자 살았을뿐인 삶이었어?

그게 아닌 제 3의 답도 무척 환영할 수 있으니까 편하게 답해도 좋아. 이건 심판에 아무 영향도 끼치지 않는 질문인걸."


그냥 살아갔을뿐이야? 꿋꿋하게 제 줏대를 내세웠다고는 죽어도 말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삶을.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조금 다른 길이 있지 않았을까. 더 좋은,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이 있지 않았을까 정도의

아쉬움만을 남길만큼 치열하게. 후생에 대한 기대감은-그렇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조금은 있었던 것 같기도 한걸.


"솔직하네. 응, 솔직해. 괜히 뜨끔해져서 제 삶을 포장하려 하는 이들의 시궁창 같은 태도도 아니고, 달관했다는 것처럼

허허로운 어투를 흉내내는 이들 같지도 않고, 나름대로 좋아한다고. 그런 솔직함은. 그래서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만 더.

그래서 네가 죽은 이후에도 계속해서 쇠락해갈 환상향이라는 세계와 그녀에게 남기고 싶은 말은 없어? 대신 전해줄게."


유언은 전부 전했었던 것 같지만 가능하면 "술벌레는 일주일에 한번씩 술독 안에 넣어 볕을 쐬게 해주는게 좋다." 라고

갑자기 술맛이 바뀌면 미요이가 내 부재를 느끼고서 한층 슬퍼할 것 같으니까 가능하면 그걸 전해주길 부탁해도 될까?

아, 물론 공짜로 해달라고는 하지 않을게. 적어도 미요이에게 내가 잊혀질 때까지는 공짜술을 받아가는 조건으로 해서.


"웃샤, 거래 성립! 그럼 슬슬 탈주자도 잡혀왔고 노잣돈도 두둑하고! 지난 생에 대해 나쁜 기억이건 좋은 기억이던간에

전부 삼도천에 눈물로서 흘려보내고 가보자고! 그렇게 열심히 살았던게 진실이라면 염라님이라고 해도 강력한 처벌을

내리시진 않을테니까 말야. 만약에 말하지 않았던 죄업이 있다면, 그렇네. 머리가 회오의 봉에 깨지지 않도록 조심해?"


배가 나룻터를 떠나고 흘러간다. 미요이의 모습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괜찮다. 미요이와 함께한 삶의 순간들은

눈을 감더라도 훤히 떠올릴 수 있으니까. 울면서 "요괴가 되어서라도 같이 있어주세요." 라고 말한 이를 놓고 떠남이란

무척이나 마음이 아픈 이야기지만 세상은 게임이 아니고 설령 게임이래도 엔딩은 존재하는 법이니...그래-그걸로 좋다.


보다 좋은 결말이 있지 않았을까. 다른 이들과도 함께 행복해진다는 그런 결말이 있지 않았을까. 그런 후회의 감정들을

모두 투명한 눈물에 담아 삼도천의 격류에 흘려보내면서 무척이나 치열하게, 한때는 또 편협하고도 부끄럽게 살아왔던

시간을 떠올리던 당신은 문득 떠오른 문장을 천천히 내뱉었다. "아아, 나는 환상향에서의 삶을 무척 사랑했구나." 라고.


당신은 환상향을 살아갔으며, 환상향을 떠나지만, 언젠가는 다시금 환상향으로 되돌아올 "Player" 가 될거라는-어딘가

예언의 측면이 있는 문장을 누군가가 귓가에 대고 속삭이는 것과도 같은 감정을 느끼면서 당신은 삼도천의 철썩거리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 후의 이야기는...글쎄. 언젠가의 기회가 온다면 풀어놓을 수도 있겠지.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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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A The World. ~End No. 001. 캐릭터 개별(오쿠노다 미요이) 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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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적미적거리다가 드디어 완결화를 올렸습니다. 오늘 끝내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계속 쓰지 못할 것만 같아서 거슬리는

부분들과 어색한 내용들이 있더라도 그냥 썼습니다. 그동안 곽환의 여정을 함께한 모든 분들에게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Era 플레이어들은 언젠가 결국 Era 로 다시 돌아오는 법이니까, 곽환 또한 언젠가 환상향에 돌아오게 될 거라 생각해요


말하고 싶은건 많지만 에필로그도 못써놓고 뒷말이 길면 이상할테니까 여기서 줄이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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