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을 포기하고자 한지 이제 3달째


다행히도 생각보단 이 사랑이 잘 접히는 거 같아


저번에 너에게 생일선물을 주면서 카톡을 주고받었을 때도 아무 감정도 들지 않았거든


근데 그 과정에서 수없는 자기학대로 도려낸 마음이 제대로 아물지 못했는지 날 아프게 만들더라


마음 한 켠이 공허하고 불현듯 우울감이 날 찾아오는데


이걸 떨쳐내기가 쉽지 않더라


대체 어디서부터가 잘못된 거였을까?



아니야


사실 난 알고 있었지, 이 이야기의 결말은 이런 식으로 끝나게 될 거라는 걸


너에게 잘 보이기 위해 했던 노력은 그저 이 짝사랑의 황혼이였다는 걸


난 너에게 잘 보이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고


난 너와 좋은 관계가 되고 싶어서 대인관계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섰어


난 너와 한 마디라도 더 대화하고 싶어서 너가 좋아하지만 내가 싫어하던 술도 마셨고


난 너와의 유일한 공통점인 인디 음악을 좀 더 적극적으로 듣기 시작했고


난 너와 조금의 접점이라도 유지하고 싶어서 별로 하지도 않던 SNS도 시작했어


하지만 이 이야기의 끝은 나도 알아


이제와서 시작해봤자 넌 날 봐주지 않을 거란 걸


아니 애초에 내가 노력한다는 사실조차 넌 알지 못하잖아?



우리의 시간은 짧게 스쳐갈 거란 걸 나는 알고 있었지.


모두에게 사랑받고, 자신이 세운 목표라면 뭐든 이루었던, 이제 대학에서 벗어나 직장에서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네 입장에선


실패만을 거듭한 아싸에 매력 하나 없고 뭐 하나 내세울 게 없는 내가 눈에 차기나 할까


아니지, 생각해보면 난 너와의 연애에 자신이 없었던 거야


나조차 사랑하지 못하는 데 어떻게 널 사랑할 수 있겠어


그래서 이 마음을 도려냈어


난 행복하게 만들어줄 자신이 없었던 거야


누군가는 고백이라도 해보라고 말하겠지만


마음에도 없는 사람에게 고백받는 입장에서는 나 편하자고 하는 이 행위가 얼마나 힘들고 짜증나는 일이겠어


나도 그 상황이 되면 많이 곤란해할 거 같은데


적어도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없으면 불행하게 만들지 말아야지




도려낸 마음에 무엇을 채워야 할까


나는 잘 모르겠어


하지만 적어도 내가 짝사랑을 했다는 걸 이젠 부정하고 싶지 않아


이걸 친구로써의 호의라던지


인간적인 호감이였다고 나 자신을 속이고 싶지 않아


그럴 거였으면 다른 여사친들에게도 똑같이 이런 기분을 느꼈어야지


만약 인연이 닿고 우연이 겹쳐서 널 다시 만나게 된다면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너와 떠난 뒤로, 난 내 외견을 가꾸기 시작했어. 그동안 항상 튀지 않으려고 했는데,


나 자신을 보기 좋게 꾸민다는 게 오히려 상대에 대한 예의라는 걸 알았거든.


대인관계의 벽을 허물기 시작했어. 비록 겁이 나지만 발을 내딛을 가치는 있는 거 같거든.


인디 음악이 좀 더 좋아졌어. 아, 그러고보니 최근에는 듣는 장르도 넓히고 있어.


말투도 바꾸려고 노력했어, 욕이나 비속어는 이제 유치해.


새로운 취미도 생겼어. 맛있는 커피를 찾아 떠나는 그런 취미 말이야.


책도 다시 읽기 시작했어. 게임만 하며 시간 보내는 것보단 유익할 거 같고


무엇보단 난 인싸는 되지 못해도 내 바운더리의 사람들에게 믿고 의지할 만한 사람이 되고 싶어. 


책이라도 읽으면 뭐라도 지식 하나 얻어서 좀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겠지.


다 네 덕분이야. 널 만나지 못했다면 난 아직도 어둠 속에서 허우적 거리면서 살았을 거야.


난 너에게 해준 게 없다고? 너의 행동 하나하나가 나를 자극해서 움직이게 만들었다고.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이야.



후...


비록 내 곁에는 있을 수 없었지만 내 인생의 별로 남아준 건 고맙네.


근데 술은 도저히 못 마실 거 같아


이젠 너가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