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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우노는 대단장궁의 뒷뜰 구석진 곳에서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잠시간의 평온을 즐겼다.

 

하지만, 그의 휴식도 잠시, 다시 자료실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자료실로 돌아온 우노는 책상 위에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발견했다. 섬세한 포장과 함께, 레일라의 필체로 쓰인 메모가 그를 반겼다.

 

“레일라 레이븐릿지로부터, 우노 레이븐릿지에게.”

 

매일같이 이어지는 그녀의 선물 공세였지만 여전히 그는 이것이 부담스러웠다.

 

선물 상자를 열어보니, 작은 관상 식물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화분에는 '우노 레이븐릿지'라는 이름이 섬세하게 적혀 있었다.

 

“그래도 이건 크기라도 작아서 다행이군…”

 

그는 몇일 전 사람 키보다 큰 대형 천구의를 선물 받았던 것을 기억했다.

 

어떻게 해도 둘 곳이 곤란하자, 결국 그것을 그의 이름으로 신시가지 근처의 대학에 기증하는 것으로 타협되었다.

 

“그나저나 이걸 어디다 둔다…”

 

물론 책상에 올려 놓는다면 보기야 좋겠지만 귀한 자료가 가득한 자료실에 물이 필요한 것을 두기엔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우노는 화분을 들고 자료실을 나섰다.

 

잠시 후 그는 방으로 돌아왔다.

 

어디다 이 화분을 두어야 할지 잠시 고민하던 그에게 정원을 향해 나 있는 큼지막한 창문이 보였다.

 

햇빛도 잘 들고, 경치로 좋으니 이곳이 좋겠다 싶었던 그는 화분을 창가에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그는 잠시 창밖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우노는 자신이 입고 있는 옷, 신고 있는 신발, 심지어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까지 모두 레일라로부터 받은 것들이라는 사실을 상기했다.

 

그의 일상이 점점 레일라에게 점유되어가고 있다.

 

그러던 찰나, 그의 뒤로 조용한 걸음소리와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키르디아와 레일라였다.

 

“안녕, 우노.”

 

레일라는 싱긋 웃으며 인사를 건냈다.

 

키르디아는 우노의 앞으로 레일라의 휠체어를 옮기고 조용히 두 발짝 물러갔다.

 

“무슨 일이야?”

 

우노가 물었다.

 

“조금 있으면 점심시간이고 하니 같이 식사를 하는건 어때?”

 

우노는 잠시 망설였지만, 레일라의 제안을 거절할 명확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래, 나쁠 거 없지."

 

“히힛.”

 

평소의 웃음소리였다.

 

몇 분이 지나고 마치 모든 것이 미리 준비된 것처럼, 존이 식사를 가지고 들어왔다.

 

토스트, 베이컨, 샐러드, 커피.

 

그가 카페테리아에서 늘상 먹던 메뉴이다.

 

그 옆엔 레일라의 것으로 보이는 식사도 있었다.

 

작은 빵 한 조각, 수프, 그리고 작은 분량의 샐러드.

 

“점심 치고는 너무 양이 작은 거 아니야?”

 

우노가 물었다.

 

“'이렇게' 된 이후로 아무래도 제대로 먹긴 어려워서 말이야.”

 

레일라가 담담하게 답했다.

 

“…”

 

그녀의 담담한 대답에 우노는 속이 조금 쓰려졌다.

 

이윽고 존과 키르디아가 경례와 함께 방을 나가고, 우노와 레일라는 창가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물론, 휠체어에서 의자로 레일라를 옮기는 것은 우노의 몫이였다.

 

우노는 여느 때처럼 왼손으론 책을 쥐고 한 손으론 식사를 했고, 레일라는 빵을 조금씩 때어 수프에 적셔가며 천천히 식사를 즐겼다.

 

우노의 시선은 책에 꽃혀 있었지만 레일라의 시선은 우노에게 꽃혀 있었다.

 

식사를 하는 동안 계속.

 

그다지 격식을 차리지 않고 조금 빠르게 접시를 비워낸 우노는 이내 레일라와 시선이 마주쳤다.

 

우노는 그녀의 시선이 조금 부담스러워 눈길을 피했지만, 레일라는 빵을 수프에 적셔가며 계속 우노를 쳐다볼 뿐이었다.

 

우노가 그녀를 피해 향한 시선은 창밖의 정원으로 향했다.

 

가을의 선선한 바람이 불어 들어오며 커튼을 조금씩 흔들었다.

 

가벼운 바람소리 사이로 레일라의 말소리가 들어왔다.

 

“위원회의 준비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

 

우노는 잠시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사람이 필요해.”

 

그녀는 수프에 빵을 적셔 먹던 것을 멈추고 우노를 직시했다.

 

“사람이라면 충분히 많지 않아?”

 

우노는 레일라 쪽으로 조금 몸을 기울이며 목소리를 낮췄다.

 

"내가 필요한 건 더 전문적이고, 지식이 풍부한 사람들이야. 특히 학자 같은 사람들이, 아주 많이."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 나는 이미 모든 보고를 검토했어. 증원될 사람들에 대해서도 말이지."

 

레일라는 태연하게 빵을 한 조각 뜯으며 말했다.

 

우노는 그녀의 말에 만족하지 못한 듯 책상으로 걸어가 한 장의 종이를 들고 왔다.

 

그 종이에는 수십 명의 이름이 열거되어 있었다.

 

특이한 점은 몇몇의 이름에 빨간 줄이 그어져 있었다.

 

빨간 줄이 그어진 이름들은 전부 여성들의 이름이다.

 

우노는 레일라를 향해 그 종이를 내밀며 말했다.

 

"여기, 여기서 배제된 사람들도 필요해."

 

레일라는 그 종이를 받아들며 잠시 명단을 살폈다.

 

레일라의 눈빛은 잠시 어둡게 변했다가 곧바로 평소의 온화함으로 돌아왔다.

 

레일라는 다시 빵을 한 조각 떼어 수프에 적신 후 입에 넣었다.

 

"이건 참모들과 충분히 논의하여 결정된 사항이야. 배제하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낫다고 결론 내렸어."

 

우노는 한숨을 쉬고 말했다.

 

"이 인력 없이 위원회가 기능할 순 없어. 이걸 이해해야 해, 레일라."

 

레일라의 눈빛이 서늘하게 변했다.

 

이번엔 그녀는 눈빛을 숨기지 않았다.

 

그녀가 다시 빵조각을 수프에 담그었다.

 

"우노, 나는 이 일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길 바래. 하지만 그 사람들을 추가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어. 내가 왜 그렇게 결정했는지 이해해줘."

 

“하다못해 이유라도 말해줄 수 없어?”

 

“국가 안보와 관련된 문제야. 아무리 너라고 해도 말해줄 수 없어.”

 

우노의 얼굴에는 점점 분노가 서려갔다. 그는 조금씩 목소리를 높여가며, 필요한 전문가들의 분야를 열거하기 시작했다.

 

"'소피아 밀러' 초고압과 초고온 상태에서의 마법재료 분석 전문가야, '안나 라미레스' 마석과 화학 재료 간의 반응에 대한 전문가, '엘레나 모라' 정밀 마법장치 제어의 전문가, 그리고 '이사벨 스미스' 극미량의 마력 계측 전문가지... 이런 사람들 없이 어떻게 계획을 진행하라는 거야?"

 

레일라는 그의 말에도 불구하고 완강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차가웠고, 그녀의 결정은 확고했다.

 

"나는 이미 결정했다고 했어, 우노. 국가 안보와 관련된 문제로 인해 이들을 포함시킬 수 없어."

 

그렇게 몇 분간 논쟁이 이어졌다 그리고.

 

우노의 분노가 절정에 달했다.

 

그의 목소리는 이제 거의 외치다시피 했다.

 

"그렇다면, 이 계획을 진행하는 건 무리야. 나는 여기를 떠나 잉글로리아로 가서 다시 계획을 건의해 보겠어."

 

레일라의 얼굴은 순간적으로 사색이 되었다.

 

그녀의 동공이 커질대로 커지고,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눈에서는 거의 눈물이 흘러내리기 직전이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아….”

 

하고 아연하게 벌어진 입에서 공포에 질린 신음만을 내뱉었다.

 

그리고 잠시 후, 공포의 기색이 사라지고

 

그 빈자리에 전부 분노가 자리잡았다.

 

그녀가 공포에 질렸던 만큼, 그 빈자리에 잡은 분노의 크기는 컸다.

 

그녀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얼굴에는 분노를 숨길 의사가 전혀 없었다. 우노를 직시하는 그녀의 붉은 눈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침묵 사이에서 분노로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렸다.

 

장시간의 침묵이 흐른 후, 레일라는 마침내 억지로 말을 토해내며 우노의 요청을 승낙했다.

 

"좋아, 네 말대로 해. 하지만 이건 네가 책임져야 할 일이야."

 

우노는 순간적으로 안도감을 느꼈다가, 곧 레일라의 표정을 보고 자책했다.

 

분노, 공포, 슬픔, 그리고 급소를 비수로 후벼판 듯한 고통이 그녀의 표정으로부터 느껴졌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녀의 트라우마를 자극해 버리고 말았다.

 

"미안해, 레일라. 내가… 말을 심하게 했어. 그런 말을 해서는..."

 

이어지는 우노의 사과를 무시한 채, 레일라는 키르디아를 불렀다. 키르디아가 조용히 레일라의 휠체어를 끌고 나가는 동안, 우노는 그녀를 바라볼 수 없었다. 그들의 사이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남아 있었다.

 

레일라가 떠난 자리에는 그녀가 먹다 만 빵과 수프만이 쓸쓸히 남아 있었다. 우노는 창밖으로 눈길을 돌렸다.

 

‘피로스의 승리라고 하던가 아니 이건…’

 

창밖의 정원은 평화로웠지만, 우노의 마음은 혼란스러웠다.

 

 

 

 

 

우노는 저녁 무렵, 레일라의 방으로 향했다. 그의 마음은 사과의 말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레일라의 방 앞을 지키고 있던 키르디아의 모습이 그를 맞이했다.

 

키르디아는 우노의 접근을 막았다.

 

“오늘 대단장 각하께서 접견을 허가하지 않으셨습니다."

 

"잠깐이면 됩니다. 그냥 말 몇 마디만 나눌 뿐입니다.”

 

“각하의 명령입니다.”

 

우노가 간절하게 부탁했지만, 키르디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순간, 방 안에서 물건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뒤를 이어 오열과 분노에 찬 울부짖음이 우노의 귀를 찔렀다.

 

그 소리는 연약한 소녀처럼 보이는 그녀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큰 고통을 담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키르디아의 눈빛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담담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다시 오도록 하겠습니다…”

 

우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녀의 방에서 들려온 소리들이 그의 귀를 떠나지 않고 울리는 듯 했다.

 

 

 

다음날, 이례적으로 레일라 레이븐릿지 대단장은 통보 없이 업무를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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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201입니다.


우선, 연재가 뜸해진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본의 아니게 생업이 바빠져 글을 쓸 시간이 부족하였습니다.


하지만 장기간의 연중, 또는 미완성작으로 남을 일은 없을거라 단호히 약속드립니다.



아울러,

부족한 글이지만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소설을 써본 경험도 배움도 부족하여 글이 많이 부족합니다.

많은 조언 부탁드립니다.




노벨피아에서도 연재중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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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들러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