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 https://arca.live/b/yandere/99646011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것이 꿈만 같다.

이 세상은 깨지 않는 꿈일까, 아니면 잠들 수 없는 현실일까?

모르겠다. 더는 구별이 되지 않는다.

그럴 필요성조차 느끼지 않았다.


몇 날 밤을 보내고 또 몇 날 밤을 지새웠어도

그녀는 그 자리에 있었으니까.


"사랑해요."


가장 먼저 들었던 말은 기억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기억나지 않는다.

수많은 목소리가 내 뇌를 스쳐 지나갔지만,

그 중 어느 것이 그녀였는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분명히 내 기억 속 누군가의 음성을 빌려서 말했을 터인데.

살면서 누군가 내게 사랑한다 말해준 적은 없었다.

그녀는 도대체 누구일까?


그녀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해 주변인들을 여럿 만나 의논해 보았으나

애석하게도 그들은 내가 미쳤다고 말할 뿐이었다.

그중 일부는 나를 정신병원에 끌고 가려는 사람도 있었지만, 

요새 잠을 제대로 못 자서 그런 것이라 일러두니 대개는 잠잠해졌다.

나를 동정하는 듯한 그 눈빛들이 보기 싫어졌기에,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와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녀를 만나러 가야 한다.


허나 애석하게도 나는 잠이라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지 못한 채

그 경계 위를 그저 한없이 부유하고 있을 뿐이었다.

몸의 절반을 잠 속에 담궈놓고 어느 한쪽으로라도 끌어당겨지기를 바라는 신세.

생각해 보면 예전부터 그래왔었지...

카페인을 아무리 먹어봐도 잠을 깨지 못했고

수면제를 아무리 투여해도 잠에 들지 못했다.


나는 정녕 어느 세상의 존재인 걸까?

무엇이 내게 현실인 걸까?


그런 고민을 하는 사이 어느새 나는 잠에 들어 있었다.

여전히 그녀는 그곳에 서 있었다.

다시금 내게 말 한마디를 건넨다.


"사랑해요."


그날따라 유독 생각이 많았던 지라, 나는 처음으로 그녀에게 말을 건네 보았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요?"


그녀는 싱긋 웃더니 별 고민하는 기색 없이 덧붙였다.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


"이런 나인데도?"


"그런 당신이기에."


다시 한번 웃음 짓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무어라 말을 더 건네보려 했지만 아쉽게도 꿈이 끝나버리고 말았으니,

잠에서 깨어났을 때 이미 그녀는 온데간데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알게 된 것이 있었다.

이제야 알았다.

그녀가 있는 곳이 내 현실이다.

나는 허겁지겁 아무 약통을 집어 약들을 입에 쑤셔 넣었다.

이건 카페인이었을까, 아니면 수면제였을까?

무엇이든 좋았다.

한 알 한 알을 씹어 삼킬수록 그녀의 모습이 점점 더 선명해지는 것 같았다.

그녀가 장롱 속에서 뛰어나온다.

그녀가 내 손을 잡는 게 느껴진다.

헌데 어째서 약을 뺏어가는 것일까.


그만둬.

멈춰.

지금 네게 가고 있잖아.

뭐 하는 거야.


그녀가 내 입에 손을 넣어 억지로 약을 토해내게 했다.

하지만 이미 약발이 들고 있었던 탓에 내 눈은 서서히 감기고 있었다.


나를 끌어안은 그녀의 온기가 무색하게, 내 몸은 온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과연 실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이조차도 내 꿈의 조각인 것일까.

모르겠다. 더는 구별이 되지 않는다.

그럴 필요성조차 느끼지 않았다.


몇 날 밤을 보내고 또 몇 날 밤을 지새웠어도

그녀는 그 자리에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