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합니다.”


“...뭐?”


“못하겠습니다. 의미도 없고, 왜 저희만 조뺑이 깝니까?”


그래, 누가 제초작업을 좋아할까?


군대는 신기한 곳이다.

5월~6월은 더울땐 한여름 만큼 덥고

추울땐 눈이 내릴 정도로 춥다.


가을과 겨울처럼 하늘에서 쓰레기가 내려 쌓이지는 않지만

땅에서 무럭무럭, 쓰레기들이 끝없이 자라난다.


드넒은 대대 전 지역을 얼마 없는 인원들끼리 제초작업을 한다.

그나마도 누구는 경계근무로 빠지고

취사병이나 PX병도 근무로 빠지고

행정병이나 통신병도 최소인력은 남겨놔야하고…


이런 대규모 인력이 필요한 잡무에 동원되는건

언제나 전투병과다.


훈련이 있으면 훈련이라고 불려나가고

잡무가 있으면 잡무라고 불려나가고

만만한 것들 중에 제일 만만한게 111111이지.


전투병과에 1년쯤 복무한 상병 나부랭이가

갓 임관한 소대장 소위에게 항명을 한다.


소위가 무어라 부당한 지시를 하거나

무리한 요구를 소대원들에게 하달한게 아니다.


[작업지역이 드넓으니, 빨리 끝내고 다음 장소로 넘어가자]


고 말했을 뿐이다.


소대장이라고 이런 허드렛일을 하자고 군대에 임관한게 아니다.

나름 고등학교를 상위권으로 졸업하고

사관학교에 들어가서 전문 교육을 수료하고

남들은 꽃같은 대학생활을 즐길 때

딱딱한 정복을 입고 지하철이나 버스 좌석에 앉지도 못하며 고생을 한게 아니란 말이다.


소대장도 대위인 중대장이 내린 지시를 하달받아 작업을 한다.

중대장도 대령인 대대장이 내린 지시를 하달받아 작업을 한다.

갈수록 인원이 줄어서, 중대장도 어디선가 쭈그려앉아 잡초를 뽑는다.


대대장도 장군인 연대장이 내린 지시가 있진 않았지만…

언제라도 VIP가 부대에 시찰을 나오더라도 문제가 없게 준비하는게

20년 가까이 군대에서 복무한 대대장의 연륜이다.


소위인 소대장은 상병 나부랭이를 보면서 말을 잇지 못한다.

이걸 항명으로 보아 당장 문책을 해야하는지

아니면 살살 달래서 독려를 해야하는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해봤자 대학 학기중에 들어온 치들이 나이래봤자 스물 두세살 언저리다. 

군대에 일찍 들어왔다고 해봤자 꼴랑 1년 차이가 날 뿐이다.


저 상병 나부랭이가 당당하게 소위 앞에서 내세울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다. 

짬도, 경력도, 나이도, 전문지식도 그밥에 그나물이다.


날씨는 덥고 대치상황은 길어진다.


소위가 상병의 눈을 아무 말 없이 바라본다.

상병도 빨간색 코팅이 된 작업장갑을 낀 채로 소대장을 바라본다.

땀은 비오듯 흐르고, 적막이 20명 남짓한 소대원들 사이에 흐른다.


상병 위로도 병장이 두어명 있고

상병 밑으로도 열명 남짓의 사병들도 있다.


모두가 얼음이 되어서 상병과 소대장 사이의 허공을 바라본다.


“아 형, 왜그래. 소대장님도 그냥 하시는 말씀이잖아. 알면서 그래”


적막을 깨고, 하사 한 명이 나선다.

나이는 소대원들 사이에서 가장 어리다.

징집이 시행되는 대한민국에선 여러 사정의 여러 인간군상들이 모이지만

퍽 특이한 사례 중 하나다.


19살에,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군에 임관한 부사관.

이제 햇수로 1년이 지나서 나이는 20살.

술도 군대에 와서 처음 마셔보고, 사회생활도 군대에서 처음 해보는 햇병아리.

방금 입대한 어벙이 이등병들이 앞으로도 근 2~3년간은 자신보다 나이가 많을 사람.


사병들도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하사에게 꼬박꼬박 존대를 하고 경례를 하지만

하사도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사병들에게 사석에선 형이라 부르며 나름의 예우를 한다.


“박하사님, 하아. 그렇지 않습니까. 빨리빨리 해봤자

 맨날 저희만 조뺑이까고, 옆 소대 놈들은 뺀질거리다 대충 겨들어가고.

 뭡니까 이게?”


그제서야 상병이 불만사안을 하사에게 토로한다.


솔직히 말해서, 이 상병 나부랭이는 어디에나 한명 쯤 있는 폐급이다.

불만이 있으면 개기는게 아니라 보고를 하면 된다.

자신보다 나이가 네 살은 어린, 입대 시기도 비슷한 하사에게

하소연을 하듯 불만을 토로하는것도 모양새 빠지는 일이다.


넉살좋게 넘어갈 방법이야 얼마든지 있다.


[날씨도 덥고 힘든데, 쫌만 쉬었다 하면 안되겠습니까?]


라고 말한다 한들, 어느 지휘관이 견책을 할까?


하사를 제외한 다른 소대원들이 선뜻 나서지 못한것도

상병의 항명에 동조하는게 아니라

저 폐급과 엮여서 좋을게 하나 없어 말하지 못한 것이리라.


“15분간 휴식, 화장실 갔다 올 인원은 분대장이 인솔하도록”


소대장이 항명을 받아들인다.

하사까지 나서서 중재를 하려는 마당에

핏대를 새우고 바락바락 소리를 질러봤자

모양이 빠지는건 오히려 자신이다.


나중에 폐급 상병이야 따로 불러서 문책을 하던 구보를 시키던 굴리던 하면 된다.


“15분간 휴식”


소대원들이 소대장의 명령을 복창한다.

화장실 가는것도 분대장 인솔을 시키는게 초임 소대장 다운 답답함이라고 생각하지만, 

구태여 방금 폐급 상병처럼 항명하지 않는다.


담배를 피울 녀석들은 구석진 자리에서 라이터를 돌려쓰고

물을 마시고 자리에 앉아서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도 있고.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소대장만, 저 멀리 앉아서 허공이나 바라본다.


이럴 때마다 기운이 빠진다.

뭣하러 군인이나 한걸까. 

왜 사관학교 다닐땐 그 정복 입는게 그리 자랑스러웠을까.


사병들 사이에 앉으면 계급차에 나이차다 해서 불편하기만 하다.

사병들이야 괜한 꼬투리 잡히지 않기 위해 고개를 돌리고 입만 다물면 된다지만

지휘관의 입장에선 그런 사람들과 억지로 친해지고 이끌고 나가야 한다는 사실이

불편하고 힘들기 짝이 없다.


차라리 혼자 거리를 두고 쉬는게 저들에게도, 자신에게도 좋다.


“소대장님도 물 한 잔 하십시요. 탈수로 쓰러집니다.”


넉살좋은 박하사가 소대장에게 500ml 페트병을 건넨다.


“아. 고맙습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소대장님이 여자라고 깔보거나 하는게 아닙니다. 그냥…”


나이가 제일 어린 박하사가 소대장 옆에 풀썩 주저앉는다.

사병들 사이에 한자리 차지해 앉아있긴 박하사도 불편아긴 마찬가지다.

나이도 차이가 나고, 계급도 다르다.


20살짜리 꼬마애가 자신에게 위로를 해준다는게 

소대장은 괘씸하기보단 귀엽게 보인다.


“어머, 박하사님은 제가 여자로 보입니까?”


 “어..저..그게…”


맞다고 말하지도 못하고, 아니라고 말하지도 못한다.

난감한 질문에 얼굴이 벌게져서 고개를 푹 숙인다.


소대장은 방금 받은 페트병으로 박사하를 쿡 찔러본다.

페트병을 열고, 물을 마신다.


박하사에게 지금 마시던 물을 건네면

성희롱으로 잡혀가려나?


놀리고는 싶지만 상상만으로 그치는게

사회인의, 어른으로써의 상식이다.


“아 덥다….”


뭐, 인정한다. 

자신이 여자라서 더 소대원들도 불편하겠지.

웃통좀 까고 물을 들이붓고 싶은 놈들도 있을꺼고

상의를 치켜올려 펄럭이고 싶기도 할테지만


그건 이쪽이 하고싶은 말이다.

여자라고 더위를 덜 타거나 땀을 안흘리는게 아니라고!


—-------


“소대장님, 저도 이걸 합니까?”


“그럼, 박하사님은 소대원이 아닙니까?”


“그게 아니라… 소대장 상담은 사병들만 하는 줄 알았습니다.”


“소대원 인사기록카드 만드는걸 겸하는거니까. 전 인원이 대상입니다.”


일요일 개인정비시간.

오전에 있는 종교 예배도 마친 따사로운 자유시간.


일과중엔 일과하느라 시간이 없고

평일 저녁엔 개인 물품이며 부대 내부를 쓸고 닦느라 시간이 없고


처음으로 소대장 다운 일을, 일요일에나 해야한다니…


[그런 표정 짓지마, 나라고 주말에 이러고 싶겠니]


라는 말을 앞서 상담을 마친 소대원들에게 몆번이나 했는지 원.


“어… 뭘 하면 되겠습니까?”


“그럼 이름부터”


“하사 박 선 우”


“태어난 곳은?”


“경기도 광주시 입니다.”


“부모님께선?”


“두분 다 계십니다”


“아뇨아뇨. 부모님께선 직업이 어찌 되십니까?”


“저….목사…이십니다.”


“네? 박하사님 방금 저랑 법당에 다녀오셨지 않았습니까?”


오호 통재라.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대학에 진학한것도 아니고.

국방의 의무를 해치우기 위해 사병으로 빨리 입대한 것도 아니고

직업을 구한답시고 19살에 바로 임관한 갓난쟁이가.


부모는 목사님인데, 불교 법당을 출입한다?

각오를 다지고 가장 처음 상담을 진행한 폐급 상병도

생각보다 별 탈 없이 지나간 인사기록카드인데.

소대장은 머리가 지끈지끈 아려온다.


가장 멀쩡할 것 같았던 박하사가 폭탄이라니


“그…그런거 아닙니다. 그냥… 법당에서 주시는 간식이 맛있어서.”


소대장은 방금 박하사의 대답에 머리가 아파온다.


그런게 아니라는데. 도대체 그런건 또 뭔가?

모태신앙이 아니라고 말하는건지

아니면 그렇게 신실한 신자는 아니라고 말하는건지.


똑바로 말하면 될만한 사안들을 뭉뚱그려 뭉개버린다.


더군다나 법당에서 주는 간식거리가 맛있다고?


법당에서도 가끔 햄버거나 피자를 준비해서 나눠주시긴 한다.

하지만 살생을 금기시하는 불교에서

고기가 들어간 간식거릴 계속해서 준비하는것도 웃기는 모양새리라.


법당에 출입하시는 스님께선

장병들의 건강과 균형잡힌 식생활을 위해 항상 양질의 과일을 준비하신다.


그게 법당의 인기가 교회보다 떨어지는 요인이다.


출입하시는 교회 목사님의 수완이 좋으신지

운영하시는 교회가 으리으리하고 십일조가 잘 걷히는지

목사님이 가져오시는 간식거리는 각종 튀김, 분식, 햄버거, 피자, 콜라, 사이다.

치킨, 닭강정, 아이스크림…..


일과가 끝나면 부대 밖을 자유롭게 노다닐 수 있는 자신이 보아도

군침이 뚝뚝 떨어지는데

혈기왕성한 20대 초반 남자들에겐 오죽이나 할까.


소대장은 다시 한 번 고민에 빠진다.


이걸 더 캐물어야 하는가.

아니면 이쯤에서 그만두고 덮어야 하는가.


“...”


“저… 소대장님?”


“네?”


“더 필요하신게 있으십니까?”


“하아… 무슨 일 있으세요?”


“그게… 축구를…”


“네?”


“좀 있다가 옆 소대원들이랑 축구하기로 했습니다.”


“푸훕. 뭡니까. 전 또 심각한 일이라고”


방금까지 어떻게 이야기를 진행시켜야 하나 고민하던 여자는 자신이 바보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어린 애구만.


“무슨 문제라도…”


“아뇨. 아닙니다. 소대원들 잘 인솔하시고.

 그리고 아시죠?”


“네?”


“저에게 경기에 대한 보고가 들어온 이상. 패배는 용납할 수 없습니다.

여기 카드 드릴테니까. 이기고 나서 아이스크림이라도 하나씩 사서 드세요.

이기고 나서”


“저…그게”


“남자가 거참 말 많네. 살인태클을 하던. 누굴 하나 담그던 신경 안쓸테니까.

꼭 이기고 오셔야 합니다. 

상대는 2소대죠? 

이소위님이 뻐드럭댈거 생각하면 하아… 아시겠습니까?”


“네!”


“목소리가 작습니다.”


“네!!”


“그만 가보셔요.”


남자는 카드를 받아들고, 소대장에게 경례를 한다.

여자는 하사를 바라보며 경례 대신 화이팅을 해준다.


카드를 건네주고도 혹여나 라보떼를 사다먹는 눈새가 있을까 걱정이 된다.

이미 떠나간 카드를 돌려받는것도 모양새가 빠진다.


“에휴. 당직비라도 잘 나오면 몰라”


여자는 다 떨어져가는 스킨토너가 걱정이다.

올리브영 할인이 언제더라…



“야 박하사, 도대체 왜 그러는데?
 넌 여기가 그리 좋드나?”


“아…아닙니다. 그게…”


“남들이 들으면 내가 부당행위 갑질이라도 하는줄 알겠다. 

 이유가 뭔지 말이라도 똑바로 해”


“그….저…”


“너 한번만 더 ‘저’ ‘그게’ 소리 내기만 해봐”


대대 행정실 내에서 행정보급관이 소리치는 소리가

복도까지 울려퍼진다.


복도를 걷는 사병들도 행정실 입구를 멀찍이 떨어져서 걷는다.

사병들 입장에서 년에 한 번이나 보는 장군들보다.

별 시덥지않은 이유로 열이 뻗친 행정보급관이 더 껄끄럽고 무섭다.


지긋지긋한 훈련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던 여자도

행정보급관의 쩌렁쩌렁한 소리에 기가 죽는다.


조금 있으면 원사 진급을 바라보는 상사.

꼰꼰함과 먼지 한톨도 내버려두지 못하는 부지런함으로 뭉쳐있는 전형적인 행정보급관.

그가 주말에 당직사관으로 서기라도 하면 사병들은 물론

간부 숙소에도 비상이 걸린다.


아침부터 모든 침구류를 꺼내고 쓸고 닦고 말리고 빨고…


그래도 인망이 두텁고 부대의 모든 업무가 행정보급관의 손을 거칠 정도로 능력도 출중하다.


행정병이 쓸데없이 야근하는 일도 없고

으례 있을법한 상급자의 휴가를 위해 하급자의 휴가를 밀어내는 일이 없다.


어줍잖게 비용을 아낀답시고 

전문가가 해야할 용접이나 배관작업을 병사나 부사관들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숨어있는 말년 병장들도 찾아내서 일을 시키지만

사회 진출을 위한 연등이나 컴퓨터 이용을 자유롭게 풀어주기도 한다.


간부의 급여가 괜찮던 시절엔 그의 밑에서 전문하사를 하고

대학등록금을 벌어가던 병사들도 여럿 되었다.


선진병영을 가장 예스러운 방식으로 부대 내에 안착시킨다.


군에서 보낸 시간이 20년이 가깝다.

어벙하고 머저리같은 사병들부터 하사들까지

어떻게든 이끌고 다독여서 키우고 제대를 시켜냈는데

살다살다 이런 초임 하사는 처음본다.


여자는 살며시 행정실의 문을 두드린다.

문을 열자 계급장을 확인한 행정보급관과 박하사가 경례를 한다.


“충성”


“충성”


“마침 잘 오셨습니다. 소대장님. 박하사한테 말좀 해보세요”


“무슨 일이신데 그러십니까? “


“아니. 남들은 휴갓날만 손꼽아 기다리는데

 쌓인 연가며 휴가며 안쓰겠다고 뻐대지 않습니까”


“네에?”


“대대장님도 아니고, 사단장님도 아니고, 

 국방부에서 연가보상비 줄여야한다며

 죄다 소진시키라고 지시가 내려왔는데. 이를 우짭니까?”


“박하사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저…그게”


“내가 ‘그게’ 말 하지 말라고 했지!”


드디어 꼭지가 돌아버린 행정보급관이 20살이 갓 넘은 하사에게 윽박을 지른다.

사병들보다도 어린 꼬맹이가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죄송합니다!”


“하아. 전 모르겠습니다. 살다살다 이런 새끼는 저도 처음 봅니다.

 소대장님 소대원이니까. 소대장님이 이야기좀 잘 해주십쇼.

 저같은 늙다리는 요즘 애들 마음을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MZ라 그런겁니까?”


“제가 잘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언제 내보내면 됩니까?”


“못해도 달에 하루는 써야 연말까지 소진되니까…

 이번주말에 내보내는게 가장 좋습니다.”


명분상 직급만 높을뿐인 여자는

경력도 나이도 한참이나 많은 행정보급관에게 굽신거리며 행정실을 나온다.


허우대만 멀쩡한 남자도

여자 뒤에 숨어서 겨우 행정실을 빠져나온다.


“하아…저번에 축구때문에 끊긴 상담이나 마저 할까요?”


“저…그…”


“아까 행정보급관님 말씀 잊으셨습니까?”


“죄송합니다!”


“자, 어깨 피고, 걸음도 똑바로 걷고.

 어디보자…흡연장도 사람이 많고

 사무실에도 보는 눈이 많고…

 식당에 가도 취사병이 있고.


 하… 저번에 그 상병이 어디서 숨어있었더라..”


“...”


“어차피 저도 치장물자 재고 실사 해야하니까.

 같이 하면서 이야기하죠.”


“네!”


“하아…참 내. 군수과는 뭐 하고 이런걸 내가 해야하냐고”


몇 개월 뒤면 제대하는 ROTC 출신 군수과 중위가

자신의 업무를 주변 소위들에게 죄다 밀어낸다.


저런 사람이라서 제대를 하는건지

저런 사람도 사회에 나가서 취직이나 할 수 있는지 참으로 궁금하다.



“방독면 필터 몇개라구요?”


“박스당 20개씩 5박스입니다.”


“다 해서 100개… “


“일반 마스크는 한박스에 50개씩 입니다”


박하사는 코로나 이후로 치장물자에 구비물품으로 들어간 KF마스크의 박스를 세아린다.


“그래서. 휴가는 왜 안나가십니까?”


“...”


“하아…장교와 부사관 사이는 상호존중이긴 합니다.

 저도 사관학교 시절에 ‘자네가 주임원사인가?’라는 유머를 안들어본게 아닙니다.


 저보다 먼저 입대하셨고. 박하사님을 존중하지만.


 그래도 명색이 소대장인데 말을 씹는건 너무하지 않습니까.

 아니면, 제가 여자라서 무시하는겁니까? 걔들처럼?”


“아닙니다!”


“그럼 똑바로 말해보세요.”


“저… 그게…”


“아까 행보관님 말씀 잊으셨습니까?

 한번만 더 ‘그게’ ‘저’ 라고 말하면 하면 저도 더이상 봐드리기 힘듭니다.”


“무섭습니다.”


“네?”


“밖에 나가기가 무섭습니다.”


박하사는 먼지구덩이 마스크 박스에 고개를 떨군다.


“아니. 여기는 밖이 아닙니까?”


“군대 밖을…나가기 무섭습니다.”


“네? 아니… 이해가 갈 수 있게좀 말씀해보세요”


“여기 있으면, 초소도 있고 경계병들도 있고. 사각지대엔  CCTV도 있고, 5분대기조도 있고.

 다들 저를 지켜주지 않습니까.

그것도 24시간동안…”


“참 내. 밖에 무슨 괴물이라도 있습니까?

 부대 밖에 나가면 그 괴물이 박하사님을 잡아먹기라도 합니까?”


“있습니다… 분명…”


“좀 알아들을 수 있게 말씀좀 해보세요. 빙빙 돌리지 말고!”


“엄마가… 절 잡아갈 겁니다.”


“네? 목사님이시라면서요. 부모님 모두.”


“엄마도 아빠도. 절 잡아가려고 분명 찾고 있을 겁니다.

 무섭습니다. 밖에 나가기 싫습니다.”


박스더미에 얼굴을 박고 있던 박하사가

이제는 두려움에 온몸을 덜덜 떤다.


“저… 박하사님?”


“저는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회개하라며 맞기도 더이상 싫습니다.

주중이고 주말이고 소리를 질러대며 성경을 외기도 싫고

알지도 못하는 아저씨한테 절하기도 싫습니다.


방학때마다 이상한 기도원에 끌려가서 밥도 못먹고 일하기 싫습니다.

학교 과학 숙제만 해도 이단이라고 혼나기도 싫고

믿음이 부족하다며 매로 맞는것도 싫습니다.


무섭습니다. 분명 절 찾고 있을겁니다.

부모님 친구라고 하는 그 사람들이

분명 밖에서 절 찾고 있을겁니다.


제가 군인이건 뭐건, 잡아가서 다시는 놔주지 않을겁니다.

싫습니다.

아빠가, 엄마가 무섭습니다.”


여자의 눈 앞에 있는건 

20살 짜리 남자도 아니고

2중대 3소대 박하사도 아니고

사이비 종교에 내몰려진 아동학대 피해자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언제나 자신의 편이고 항상 자신을 지켜줘야할 부모가

가장 무서워서 벌벌 떠는 어린애가 있다.


이런 이야기를 차마 행정보급관에게도 말할 수가 없어서

‘그게’ ‘저’만 말하고 있던 것이다.


20살이면 법적으로 성인이다.

부모가 사이비 교인이네 목사네 어쩌네 해도

어른이 되어서까지 부모님 옷자락에 휘둘린다고 말하기도 힘들다.


하물며 나라를 지키고 조국을 수호하는 군인이

엄마아빠가 무서워요 라고 벌벌 떨고 있으면

좋게 봐줄 상급자가 얼마나 있을까.


“괜찮아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여자는 남자의 떨리는 등을 토닥인다.

별 일 아닐거라 생각한 가정사에

이런 일이 있었다니…


“아닙니다. 분명합니다. 대한민국에 교회마다 추수꾼이니 서리꾼이니 있습니다.

 저같은 배교자를 잡는답시고 문자를 돌리고 정보를 공유합니다.


 나가면 분명 잡힙니다. 

 다들 제 얼굴을 알겁니다.

 잡히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합니다.

 여기가 제일 안전합니다.”


“괜찮아요. 박하사님은 내가 지켜줄게요.”


여자는 계속해서, 떨리는 남자의 등을 토닥여준다.


 

—--


“3소대장”


“소위 성민아”


“하아…그런 거 아니지?”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나도 잘 모르겠다.

 함부로 말하면 나도 군기문란으로 상벌위원회 회부될 거 같아서 모르겠다.

 

 그냥…”


“...”


“하아.... 3소대장”


“소위 성민아”


“군법에 따르면, 남녀간의 교제나 연애는 군 내에서도 자유롭네”


“...”


“3소대장?”


“소위 성 민 아”


“그… 렇지만 같은 부대, 하물며 직속 지휘계통 이내에서 이성교제는 이야기가 달라.

 군법에 어긋나는거야.”


“...”


“하아… 3소대장.”


“소 위, 성   민   아”


“그런거 아니지?”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박하사 휴가 맞춰서 같이 나가고, 싸고 도는거. 그런거 아니지?”


“그런게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야. 3소대장”


“소위 성민아”


“하…씨 확 까놓고 물어볼수도 없고”


“...”


“좋다. 니가 끝까지 발뺌하고 모른척 하니까.

나도 어련히 알아서 하겠거니 생각한다.


박하사가 제대를 하던 장기로 여기서 조뺑이 까던

몇 년 있으면 넌 타부대로 전출갈거니까.


니들이 사귀던지 말던지, 그..썸? 뭐시기던지 난 신경 안쓴다.

하지 말라고 해봤자 로미오와 줄리엣이 되어선 사고치는놈들 많이 봤고, 봐왔다.

남정네들끼리도 붙어먹는데 오죽이나 할까.”


“중대장님, 저와 박하사는 그런게 아닙니다.”


“대답 똑바로 해라. 지금 우리는 ‘그런게’ 뭔지 모르는거니까”


“...”


“박하사 챙겨주지 말라던가, 거리를 두라던가 말하지 않겠다.

 니들을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만들 생각 없다.


 내말 무슨 뜻인지 알지?”


“네”


“좋아. 내일 외박 나간다고?”


“네”


“박 하사도 외박 나간다고?”


“네”


“씨발 지금 나랑 장난쳐? 내 말 알아 들었다며!”


“...”


“하아…씨발…내년에 소령 진급심사인데 씨발..

 쌍으로 이딴 것들이 바로 내 밑에 걸려가지고 씨발….”


“...”


“야”


“소위 성민아”


“외박은 다음주에 나가고, 외출만 해. 이틀 연속으로 외출해도 신경 안쓸테니까.

 위수지역 넘어가지 말고. 눈에 띄지 말고” 

 

“...”


“대답 안해?!”


“네. 알겠습니다!”


“...”


“...’


“나가. 씨발 내가 니들 부모도 아니고.”


여자는 경례를 하고, 중대장실의 문을 닫는다.

뚜벅뚜벅, 네걸음 멀어져서 중대장실을 한 번 뒤돌아본다.


세 번이다. 3달동안 딱 3번 박하사를 데리고 외박을 다녀왔다.


위수지역을 못넘어가니까

적당히 읍내 카페에서 커피 마시고, 롯데리아에서 햄버거를 사먹었다.


하나로마트 가서 과자와 콜라를 사고

CGV에 가서 영화를 한 편 봤다.


영화보고나면 먹어본게 밖에서 라면밖에 먹어본 적 없는 남자를 데리고 

돼지고기집도 데리고가고, 술집도 데려가고. 횟집도 데려간다.


숙소 각자 잡아다 잠을 자고, 아침에 콩나물국밥을 같이 먹는다.

여자가 다 떨어져 가는 스킨로션을 올리브영에서 사고, 

남자는 옆에서 멀뚱멀뚱 구경만 한다.


다른 날은 부대로 복귀하는 길에 올리브영 대신 서점에 들리고.

하다하다 사병들이 부탁하는 물품들을 사러 시내 상권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멋도모르는 이병과

폐급 상병의 심부름을 하면서

가정사가 울적한 하사의 휴가보조를 했더니


‘그런거’라니


어이가 없어서 맷돌이 돌아가지가 않는다.

어처구니었나?

아무튼.


물론 재미가 없다면 거짓말이다.

다람쥐마냥 이것저것 잘도 받아먹는 하사에게

여러 음식을 사맥이는 재미도 있고.

혼자 보기 깨름찍한 영화도 간만에 남자덕에 해치워 낼 수 있었다.


무거운 짐도 번쩍번쩍 잘 들고다니니 편하기도 하고,

나이 많은 아저씨가 아닌 풋내나는 남자애와 술마시는 것도 좋았다.


딱 거기까지다.

어디서 소문이 퍼진건지

뭐가 소문이 될만했던건지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소문이 부대 내에서 돈다.


휴가를 안내보내면 행정보급관이 난리고

휴가를 혼자 보내면 박하사가 덜덜 떨고.

국방부는 연가 다 쓰라 그러고

중대장은 개소리나 하고

어느 장단에 맞춰서 춤을 추라는거야.


“하…힘들다.”


박하사에게 무어라 이야기 해야할까?

이미 주말 일정을 다 잡아놓았는데 어그러지게 생겼다.


읍내에 새로 입점한 프렌차이즈 카페에도 가봐야하고

만화방에서 시간 좀 때우다가

칵데일바 안가봤데서 저녁에 가보기로 했는데..


“이러니까 진짜 데이트 같잖아”


자신이 말하고도 입을 틀어막는다.

4살이 넘게 어린 남자애한테 관심이 있는게 아니다.


암, 그렇고 말고.


—-


“박하사님, 잠시만…”


“하사 박선우.”


“쉿. 쉿, 조용히 조용히…”


“어...네”


조용한 목소리로 작업중에 수군거려봤자

소대원들 귓가엔 모든 내용이 들려온다.


오늘도 땅에서 자라나는 초록색 쓰레기들을 뽑던 소대원들이

모두가 숨을 죽이고 귀를 쫑긋거린다.


예나 지금이나 불구경 물구경 싸움구경, 그리고 남의 연애구경은

훌륭한 관심거리다.


 “내일 저는 외박은 안될거 같아요.”


“아. 네”


“중대장님이 뭐라 하셔서…”


“괜찮습니다.”


“혼자 잘 있을 수 있죠?”


“그렇…습니다.”


“모레 아침에 일찍 나갈테니까. 칵테일바는 다음 기회에…”


“상관 없습니다.”


“왜 또 말을 그렇게 해요. 가보고 싶었어요?”


“어…아닙니다. 가보고싶긴 했는데.. 저…”


“다음에 날 맞춰서 같이 가봐요. 중대장님한테 잘 말씀드려….”


남자와 계획을 세우던 여자가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든다.

소대원들이 일시에 고개를 돌려 쓰레기가 자라나는 땅바닥을 바라본다.


“저… 소대장님?”


“하아…아닙니다. 나중에 이야기하죠. 나중에”


이래서 그런건가.

소문이 날대로 전부 퍼진건가.

하물며 소문의 근원지는 등잔 밑이 어둡다고… 같은 소대원들인가.

아니면… 자신의 행실이 남들이 보기에도 오해를 살만한가?


“10분간 휴식. 날도 더운데 쉬엄쉬엄하자.”


“10분간 휴식”


이제는 시키지 않아도 분대장들이 알아서 병력들을 인솔한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도 삼삼오오 구석자리에 모여 라이터를 나눠 쓴다.

오해를 사지 않도록, 다른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사병들과 멀리 떨어진 자리에서 여자는 휴식을 취한다.


“하아…”


하늘을 바라보고 한숨을 푹 쉰다.

이러려고 죽어라 공부해서 사관학교에 들어간게 아닌데.

이러려고 학생때도 정복을 입고 버스에서 자리에도 앉지 못한게 아닌데.

계속해서 윗사람의 눈치를 보고, 아랫사람의 눈치도 본다.


“소대장님도 물 드셔야죠. 여기 있습니다.”


눈치가 있는건지 없는건지

아니면 돌아가는 상황 자체를 모르는건지

남자는 여자에게 생수를 챙겨 건넨다.

딱 잘라 거절할 수도 없고. 이제는 물 한병 받는것도 눈치가 보인다.


“저 챙기는건 다른 사병들 시키세요. 박하사님이 구태여 이런것까지 직접 하실 필요 있나요”


완곡하게 박하사를 밀어내본다.

가슴이 뜨끔뜨끔 하다.

박하사는 잘못한게 하나도 없는데…


“소대장님 불편하다고 저한테 부탁합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요즘 MZ들”


그 MZ들중에 가장 어린 양반이 MZ를 들먹인다.

뒤를 돌아 소대원들을 살펴보자

담배를 피던 소대원들도, 앉아서 물을 마시던 소대원들도 일시에 고개를 돌린다.

딴청을 피운다.


그래, 물구경 불구경 싸움구경, 그리고 남의사 연애구경이 제일 재밌지.

하물며 그게 같은 부대에 얼마 없는 여군과 가장 나이가 어린 하사니까. 얼마나 재밌을까?


같잖은 배려에 구경거리로 전락한 기분이 든다.

화를 내고 싶지만, 어떻게 화를 내야할지도 모르겠다.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태연하게 있는 박하사의 모습이 보인다.


“하아…”


“농담입니다 소대장님. 그걸 또 믿으시면 제가 뭐가됩니까.”


“그런 거 아닙니다.”


중대장 말대로, 이제는 도대체 ‘그런게’ 뭔지 모르겠다.



“그럼, 만화카페부터 가실까요? 아니면 롯데리아?”


여자는 부대 입구에서 남자와 외출 일정을 조율한다.


“저번에 열었다던 폴바셋부터 가보시죠. 사람이 몰려서 일찍 안가면 줄서서 기다려야 할겁니다.”


“식사도 안하셨잖아요. 배 안고프세요?”


“카페에서 빵이나 샌드위치도 파니까요. 제가 살께요.

 소대장님도 가보고싶어 하셨잖습니까”


“뭐…그러면”


후딱 밥먹고 만화카페에서 시간이나 때우다 부대로 복귀하려 했는데

이 남자는 잊고 있던 프렌차이즈 카페부터 이야기한다.


배려심? 뭐든지 간에 상사에 대한 아부는 합격점이다.

이 남자도 별 다른 뜻이 있는건 아니겠지.


구태여 카페 가자는 이야기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오늘 입고나오신 옷 잘 어울리시네요. 아, 귀걸이도 예쁘다.”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부대 안에서부터 나오면 보는 눈이 많다.

노출이 많은것도 아니고, 색깔이 화사한것도 아닌 평범한 치마다.

그냥, 카페도 가고 읍내도 돌아다닐거니까 기분만 내본거다.

귀걸이도 같은 느낌이다.


남자의 이야기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고맙네요”


여자는 고개를 훽 돌려서 카페 방향으로 향한다.

성큼성큼 앞서 걸어가는 소대장을 하사가 뒤쫒는다.



“음. 아침밥도 안먹고 군것질부터 하는 이 배덕감, 끝내주는데요”


남자는 커피속에 섞인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행복한 웃음을 짓는다.

한 잔에 8천원씩이나 하는 아이스크림 라떼

거기에 디저트와 샌드위치까지


작디 작은 하사 월급으론 감당하기 힘들텐데

구태여 남자가 산다며 박박 우겼다.


이렇게 보면 덜덜 떨던 그날의 모습은 메소드급 연기인가 싶기도 하다.

밖을 돌아다니는 것도 무서워하지 않고

남자를 알아보는 사람이 나타나지도 않았다.


어린게 누나 한번 놀려보겠다고 수를 쓰는건지 뭔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박하사 손아귀 위에서 놀아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보기보다, 여자 다루는 솜씨가 능숙하다.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때로는 약점마저도 교묘하게 어필하는 모양새가

학생때 여자 여럿 울리고 다녔을 것 같다.


이러기 위해서 미팅이고 뭐시고 내팽겨치고 사관학교를 다닌게 아닌데...


“다음부턴, 혼자서도 나갈 준비를 해야죠. 언제까….박하사?”


“하…하사 박선우”


“왜 갑자기 그래요. 아이스크림 먹고서 배아파요?”


“아..아무것도 아닙니다.”


“하. 보자보자 하니까. 혼자 휴가가라고 했다고 지금 수쓰는거…박하사?”


“하.사….박선우”


“왜그래요 갑자기. 어디 아파요?”


“저..그게..”


“제발 저랑 있을땐 ‘저’든, ‘그거’든 ‘그게’든 하지 말라고 했죠. 똑바로 말하세요”


“뒤…뒤에 계신 다른 손님들이…”


“네? 저 뒤에 다섯 쯤 되는 저사람들이요?”


갑자기 아이스크림을 퍼먹던 남자가

브레인프리즈가 온 것마냥 인상을 찌푸리고, 식은땀을 흘린다.


뒤편에 있는 손님이라곤 다섯명 쯤 되는 중년 남녀들.

하나같이 옷차림이 단정하고, 몸짓이나 행동도 품격이 있어 보인다.


말을 나누며 웃기도 하고, 책이나 서류를 펼치고 이야기를 하지만

시끄럽거나 경박한 느낌은 없다.


뭐, 사업설명회라도 하나? 보험모집인이 엉업이라도 뛰나?


“그…저사람들 입니다.”


“뭔데요. 똑바로좀 말해봐요. 그냥 좀 있어보이는 사람들이구만,

 비싼 프랜차이즈라 그런가?”


“아니에요. 맞아요.  그 사람들입니다.

 저…그…”


“박하사”

참다 못해 여자가 남자의 떨리는 손을 붙잡는다.

시선을 바로 잡지 못해 피하는 얼굴을 어거지로 바라본다.


그제서야 남자가 여자의 눈을 바라본다.


“하사 박선우”


“말해봐요. 저분들이 누구죠?”


“추….추수꾼입니다.”


“어떻게 알죠?”


“오…오늘은, 토요일입니다. 교회 가는 날은 내일인데

 이런 시간에 카페에 모여서 성경공부 하는 사람들은 추수꾼 입니다.

 내일… 자기네들 교회로 오게 하기 위해서…

 주일 전날에 다른 교회 신자를 서리합니다.”


여자는 남자의 손을 붙잡은 채로

중년 남녀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확실히, 투자설명회나 보험상품, 시사에 관련된 야이기가 아니다.

뜨문뜨문 주님이나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만

사이비 교리와 관련된 내용은 들리지 않는다.


박하사의 과거를 들은 뒤로 그 사이비 종교를 검색해보았다.

포교 방법, 전도하는 내용. 주요 교리, 신도들의 특징.

기존의 주요 기독교, 개신교와 비슷한 교리를 가지면서도

그들의 가려운부분을 긁어내는 듯한 시원한 교리들.


힘든 사람들에게 가장 힘이되는


‘왜 하나님은 지금 당장 자신을 구원하지 않는가?’


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그냥그냥, 어디서나 있을법한 종교와 사랑과 자애에 관한 이야기로 들린다.

부처님도 중생들을 사랑하고 보듬어주듯

예수님도 어린양들을 따스히 보살펴주시겠지


“그런게 아닌거 같은데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런 사람들이 어디 흔하겠어요?”


옷차림이나 품행도 사이비 신도들에게서 보일 법한 광신적인 부분이 보이지 않는다.

점잖고, 격식있다.

호호호 웃는 중년 여성의 모습이 흡사 드라마에나 나올 법 하다.

불교 신자인 자신이 보아도 저렇게 나이를 먹고 행동하고싶다.

군대가 웬수지 원…


“아..아닙니다. 맞습니다. 화..확실합니다.

 교회가는 날은..내..내일입니다.

 오늘은…토요…일”


박하사가 눈을 가누지 못한다.


그래 일요일은 교회가는 날이기도 하고 

절에 가는 날이기도 하지

이슬람들도 모스크에 가는 날이다.


지구의 공전 기간인 365일을 달의 운동과 맞추어 쪼개다보니

어느 종교 어느 교리에서나 7일과 30일은 1주일과 1달을 뜻한다.

하물며 그 옛날에도 약간의 오차를 잡아내기 위해서 

각 달력마다 윤달이 있고 윤년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신의 말씀과 결부짓는다.

망원경도 없던 시절의 천문학자들이 존경스럽다.


우연의 일치일 뿐이다.

타이밍 좋게 PTSD가 온 것마냥 벌벌떠는 남자를 보며

수를 쓰는건가 싶기도 하다.


이걸 속아 넘어가줘야 하나.

아니면 진짜 그러는거야…


에라 모르겠다.


“박하사 불편하면, 남은 빵은 포장해서 만화카페나 갈까요?

 거기 있으면 다른 사람들 마주칠 일도 적잖아요”


박하사가 여자 다루는데 능숙하고 

온갖 연기를 해가며 자신을 으슥한 곳으로 끌고가려는라면

나중에 따귀를 올려 쳐줄 것이다.


자신도 당당한 직업 군인이다.

남자던 여자던 자신에게 해코지를 하려는 사람을 제압할 방법은 무궁무진하게 알고 있다.

설령 상대방이 같은 군인일지라도.


“네…네!”


“정리는 내가 할테니까. 매장 밖에서 잠깐만 기다려요. 박하사도 그게 편하죠?”


“감사합니다.”


남자는 헐레벌떡 자신의 짐을 챙겨서 매장 밖으로 향한다.

여자는 자리를 정리하고 쓰레기를 버린다.


언제까지 이렇게 부하들의 뒤나 봐줘야하나…


“아아아아아아앆!!!!!”


다 먹지도 못한 음료를 들고서

퇴식구에 버려야하나 한 입이라도 더 마셔야 하나 고민을 하는데

밖에서 사람 비명소리가 들린다.


유리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박하...사?”


남자가 뒤로 엉덩방아를 찧은 자세로 넘어져 있다.

남자의 앞에는 팜플렛을 들고 있는 젊은 남녀가 어쩔줄을 몰라한다.


여자는 쟁반을 내려놓고 쏜살같이 튀어나간다.


“왜 그러세요. 선생님. 괜찮으세요?”

젊은 남녀중 여성이 남자를 달래기 위해 고개를 숙인다.


“아…아아아아.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도망간거 아니에요. 잘못했어요.

아니에요. 그런게 아니에요. 잘못했어요. 엄마… 아냐…잘못했어요.

말 잘들을게요. 말대꾸도 안할태니까 제발 그러지 마요.

아냐… 그런거 아니란말야”


주저앉은 박하사가 이젠 양 팔로 얼굴을 가린다.

자꾸 그런게 아니라며 변명을 한다.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얼굴은 콧물에 침 범벅이다.


“당신들 뭡니까?!”


유리문을 열어제낀 여자가 젊은 남녀에게 소리를 친다.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 설문조사를 하려고…여기 남성분께 말을 건넸는데 갑자기.”


여자는 젊은 남녀가 들고있는 팜플렛을 바라본다.

익숙한 문구가 보인다.


토마토

수강신청서

창세의 뱀과 선악과

역사적 예수

과학과 성경

….


박하사의 말이 정말이군,  


“너희들, 신천지야?”


여자가 젊은 남녀에게 질문을 하지만

그 둘이 대답을 하기도 전에 남자가 먼저 울음을 크게 터뜨린다.


“으..으아아아아…흐어어어어엉. 잘못했어요.

 그런거 아니에요. 그런게 아니란말이에요. 잘못했어요”


남자의 앞에서 단어를 잘못 골랐다.

신천지라는 단 한마디가 결국 남자의 정신을 무너뜨린다.

도대체 이 남자에게 무슨 일이 있었단 말인가.

남자가 말하는 ‘그런 거’란 뭐란 말인가


주변 사람들이 수군거리고

사이비라던가 신천지라던가 하는 말들이 지속해서 들려온다.

대번에 젊은 남녀가 팜플렛을 들고 도망을 간다.


여자는 길바닥 한가운데서 애처럼 우는 남자를 한참이나 달랜다.

하아… 이러려고 사관학교에 들어온게 아닌데.



흙먼지가 잔뜩 묻은 바지를 결국 새로 사 입히고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얼굴을 물티슈로 닦아주고

화장실에서 세수 한번을 시킨 다음에 

겨우 만화카페에 당도한다.


부디 휴가나온 군인들이 자신들을 알아보지 않았으면…

중대장에게 또다시 불려간다면 골치가 아프다. 


만화카페 가장 구석진 곳에서

반투명 블라인드도 반쯤 내려놓고 자리에 앉는다.


“죄송합니다.”


“말을 잘못했네요. 박하사님이 뭘 잘못했다구요. 다시”


“...감사합니다.”


“그래요. 감사하게 생각하세요”


“...”


“… 아는사람입니까 혹시?”


“아뇨, 부모님의 친구분들이거나. 교회에서 본 적 있는 사람들은 아닙니다.”


“그사람들도.. 그…교회 사람들이 확실해요?”


여자는 성급하게 신천지라는 단어를 내뱉지 앉는다.


“네. 아까 저희 뒤에 있던 중년 일행들도.

그 설문조사 한다던 2명도. 확실합니다.”


“괜찮아요.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어떡하죠? 혹여나 부모님한테 제 인상착의가 흘러들어간다면..”


“에휴. 군인 아저씨들 착각중에 하나가. 자기 자신만큼은 특별하다 생각하는거에요”


“어…네?”


“박하사님, 어디로 보아도 영락없는 군인아저씨에요

 옆하고 뒷머리는는 허여멀건하게 빡빡밀어서 모자나 푹 눌러쓰고.

 입는 옷도 유행에 2~3년 뒤쳐진게 정말”


“이거… 이소위님이 골라주신 건데…”


“거봐요. 군인 아저씨들 안목이라곤 정말. 에휴.”


“하하.”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알았죠?”


“네. 감사합니다. 

 그래도 소대장님도 기껏 외출나오셨는데 저 때문에.”


“아휴, 신경쓰지 마요. 오늘만 날인가”


“그래도, 기껏 옷도 예쁘게 입으시고, 귀걸이도 잘 어울리는데..”


“꿀꺽.”


확실하다

이 남자, 학교에서든 그 신천진지 뭐시긴지 하는 교회에서든

여자 깨나 울렸다.


자신이 들어도 얼굴이 다 빨개지고 남사스러운 발언을

얼굴 하나 안변하고 울상인 표정으로 내뱉는다.


초등학생땐 중학생 누나를 후리고

중학생땐 고등학생 누나를 후리고

고등학생땐 그냥 누나를 후리고 다닌게 분명하다.


그러지 않고선 설명이 되지 않는다.


“혹시, 집에 누나 있어요? 막내?”


“아. 아뇨, 외동입니다. 저 혼자…”


이젠 거짓말도 술술 뱉는다.

저건 외동아들이 할 법한 언변과 행실이 아니다.

위로 누나만 셋쯤 있어서

태어났을때부터 누나들한테 이쁨만 왕창 받아야 나오는 기술이다.


“가서 만화책이나 가져와요. 제것도 같이”


“어… 소대장님은 뭐 보십니까”


“알아서 좀 가져와요. 적당한걸로!”


여자는 남자가 시야에 보이지 않자

그제서야 빨개진 얼굴을 테이블에 쳐박는다.


“군인 아저씨는 생긴게 다 그 밥에 그나물인데…

그래야 하는데…”


자신도 ‘여군’이라는 단어 자체를 싫어할 정도로 성차별에 학을 떼는데다가

편향적이고, 잘못된 생각이라는걸 십분 알고는 있지만


역시, 남자는 어린게 깡패다.


“하아… 그런게 아닌데”


자꾸 중대장의 잔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다음 날,

일요일 아침.

여자는 옷장을 앞에 두고 한참이나 고민한다.


이놈의 부대엔 남군 여군 할거 없이 독신자 숙소가 영내에 있다.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부대 밖으로 나가는 길이 부담스럽다고 했지

옷장 안에 짧은 옷이 없다고 하진 않았다.


딱 한벌 있는 하늘하늘한, 새하얀 테니스 스커트.

내가 미쳤다고 이걸 샀지.

미쳤다고 한번도 안입은걸 버리지도 않고 있었지.

이거랑 어떤 상의를 입을건데?

왜 아침부터 멍청이마냥 거울 앞에서 있는건데?


“야. 이 기집애야. 주말인데 잠좀 자자. 또 데이트 하러가냐?”


“아...아닙니다.”


자신보다 나이가 몇살 더 많은 간호장교.

병사의 수는 준다는데 어째 아픈 놈은 줄질 않는다.

격무에 시달리다 겨우 비번인 주말인데

룸메이트로 들어온 소대장 쏘가리가 아침 댓바람부터 난리다.


“아니긴 뭐가 아냐. 손에 든 그 치마는 뭔데?

 이야. 걷기만 해도 엉덩이 다 보이겠다.”


“그런거… 아닙니다. 대위님”


“하. 좋을 때다. 나도 너만할땐 나 한번 보겠다고 

의무실에 사병들부터 간부들까지 죄다 줄서고 그랬는데.”


“...”


“선임이 웃자고 하는 소린데 안웃어?”


“하하하…”


“됐다. 걔 만나러 가냐? 박하사?”


“네?”


“시치미 떼지 말고. 부대 내에서 모르는거 너밖에 없다”


“뭘요?”


“뭘요? 하…그래 요즘은 다르다 그랬지. 니가 박하사 좋아하는거요.”


“아... 아닙니다”


“아닙니다는 적어도 그 엉덩이 다 보이는 치마는 내려놓고 말하던가.

 어린게 좋긴 하지?”


“...”


“잘했어. 너 여기서 대답했으면 내 손에 죽었어 임마”


“...”


“나도 연애 안해본것도 아니고, 하사 만난다고 뭐라 하는건 아닌데.

 걸리지 않게만 해. 죽어도 잡아떼란말야”


“...”


“어차피 몇 년 있으면 타부대로 전출갈건데. 그때 대놓고 사귀면 되잖아”


“...중대장님도 비슷한..”


“야. 내가 대답하지 말랬지. 죽고싶어?”


“...”


“그리고 멍청아. 여기서 입고 나갈게 아니라. 들고 나가서 갈아입으면 되잖아.”


“아.”


“아는 개뿔이. 시끄럽게 하지 말고, 빨랑 가.”


여자는 가방에 테니스 치마를 쑤셔넣는다.

문을 열기전에 룸메이트 상급자에게 경례를 한다.

이불 속에서 간호장교 대위가 손만 흔든다.


나름 간호사로서 전문 교육을 받았다.

성인 남녀가 몰래 사내연애를 할 때 필요한건 가장 잘 안다.

이런건 말로 길게 설명해봤자 알아먹지도 못하고

동성끼리도 성추행이다.


콘돔은, 어젯밤 몰래 쏘가리 가방속에 넣어놨다.

언제쯤 발견하려나. 고마워는 하려나.

괜한 오지랖인가.


남자들이 득실득실한 군대에서도

간호장교 대위는 외로움에 이불 안에서 꼼지락거린다.

역시, 이불 밖은 위험해. 



“어…소대장님”


“잘 잤어요? 오늘은 뭘 할까요?”


“안녕하십니까. 덕분에 잘 잤습니다.”


“오늘은 어제 못먹어본 햄버거 먹으러 갈까요?”


“그. 좋죠.”


“저녁엔 칵테일바에서 딱 한 잔씩만 하죠. 박하사도 나도 복귀하는 날이니까”


“네… 그리고.”


“그리고? 왜요?”


여자는 용기를 내서 남자를 압박한다.

한발짝 가까이 다가갔다가. 시야에 가려 보이지 않을까 다시 뒤로 물러선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한바퀴 돌아볼까?

아무리 그래도 그건 미친 짓이란 생각이 든다.


“오늘 입으신 치ㅁ… 옷이 참 잘 어울리십니다.”


“고마워요. 그리고!”


“그리…고?”


“밥먹고나면, 가장 먼저 박하사님 옷부터 사러가죠”


“네? 제 옷은 이미 충분히…”


“이소위님이 골라주신거 말구요”


“...”


“오늘 저도 나름 용기내서 입고 온건데

 박하사님은 그렇게 입고 돌아다니시려구요?”


“이소위님이 요즘 이게 잘나간다고…”


“진짜. 남자가 변명이 참 많네. 제발. 이소위님 여자친구 있는거 봤어요?”


“아뇨”


“그럼 내말대로 해야겠죠?”


“네”


“좋네요. 밥부터 먹죠. 나도 배고프다.” 


딱 1cm.

느낌상 딱 1cm만

어제보다 남자와 1cm만 가까이 걷는다.


남은 2~3cm 남짓이

남자와 여자를 그렇고 그런 사이가 아니라

소위와 하사로 만들어준다.


다음 발령지가 천해의 벽지만 아니면 된다.

아니, 설령 백령도 끝자락으로 발령이 난다 그래도 괜찮을거다.

여기 지금, 이 부대만 아니면 된다.


그 때 까진, 이 1cm만 좁히는 선에서 끝내도록 하자.




“성소위, 나 한번만 부탁하자”


“소위 성민아”


“내일 나랑 당직좀 바꿔줘라”


“네?”


“갑자기 약속이 생겨가지고, 미안한데”


“이소위님, 죄송합니다만 저도 내일 약속이…”


“박하사 때문에 그래?”


“그런 거 아닙니다.”


“푸합. 진짜네. 너한테 뭐 부탁할땐 박하사 이야기만 하면 된다더니”


“네?”


“어쨋든, 내일 당직좀 바꿔줘.

 나라고 하루 전날에 너한테 주말 당직 미루는게 맘이 편하겠니?”


“저...그게”


“박하사한테는 내가 잘 이야기 해둘테니까”


“그런거 아닙니다. 저랑 박하사는…”


“그럼 괜찮지?”


“네. 제가 내일 당직 서겠습니다.”


“고마워. 후배. 면회자 정리는 내가 다~~아 해놨으니까, 경계병 총기수불만 하면 된다고”


“감사합니다.”


“그래, 나 같은 선배가 어디있다고”


하아…잘 숨긴다고 숨긴 것 같은데

티를 내는건 무조건 부대 밖에서, 단 둘이 있을때만

부대 내에선 소대장과 소대원의 관계를 잘 유지한다고 생각했는데


도대체 왜 다 아는걸까.


중대장의 눈초리가 여기까지 느껴지는듯 하다.


내일 영화표부터 일정 다 잡아놨는데

쌩으로 취소하게 생겼다.

위약금이나 수수료가 나오는것도 아니니까 괜찮긴 하다만…


“하아… 이놈의 군대는 정말.”


학군단 출신의 저런 사람도 곧 중위에 진급을 하니까.

사관학교 출신인 자신은 장성까지 진급하는데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한다.


“박하사 한테는 뭐라고 말하지.”


혼잣말을 내뱉고선 자신의 입을 틀어막는다.

혹여나 싶어 듣는 귀가 있는지 주변을 둘러본다.


조심스레 입을 꾹 다물고

박하사가 어디 있는지를 찾는다.


별게 아니다. 

그냥 내일 일정이 취소되었음을 알려주고 돌아오면 된다.

다른 뜻은 없다.


식당을 지나서

PX를 둘러보고

혹여나 싶어 생활관에 들어갔다가

독신자 숙소를 기웃거려도 남자가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야. 너희들 혹시..”


“충성”


“충성. 그게…”


“박하사 말입니까? 아까 흡연장에 있었습니다.”


“아니. 박하사가 아니라…”


“네?”


“아니다. 됐다. 볼일 봐.”


이제는 소대원에게 물어봐도 대번에 박하사부터 나온다.

여자는 관자놀이를 부여잡는다.

아니… 분명히 숨긴다고 숨겼는데…왜?


그리고

흡연장?


박하사는 분명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뛰지는 않는다.

경박하게 보이기도 싫고, 부대 내에서 남자놀음이나 한다고 보이긴 죽어도 싫다.

이건, 소대원의 급작스런 심경의 변화를 알아보기 위해서 가는 것이다.

담배는 건강에도 좋지 않으니까. 상급자로서 말려야 할 의무가 있다.


한달음에 흡연장으로 가 보았지만 박하사는 보이지 않는다.


그럼 그렇지, 

박하사가 담배를 피울리가 없지.


여자는 마지막으로 둘러보지 않은 치장물자 창고로 향한다.

문을 열자 예상대로 박하사가 그곳에 있다.


“이야. 박하사님. 짬좀 찻나봐? 창고 안에 숨어도 있고?”


“충성”


“충성”


“아닙니다…그…”

남자는 한 쪽 손을 뒤로 숨긴다.


“그거 뭐야. 손 내밀어봐요”


“저…그게…”


“제가 ‘그게’ 라는 말 쓰지 말라 했죠?”


“죄송합니다.”


남자는 어렵사리 숨겨놓았던 물품을 꺼낸다.


담배 한 개비와 다 써가는 라이터 하나.

여자는 담배를 피우지도 않는데 머리가 어지럽다.


“박하사님”


“하사 박선우”


“이거 어디서 났어요?”


“이소위님이 한 대 피워보라고…”


“하아… 그 새끼 진짜.”


“꿀꺽”


“이리 내놔요”


“네?”


“담배, 피워봤자 좋을거 하나도 없는거 잘 알잖습니까.

 피울 생각조차 하지도 말고, 내놓으세요”


“네.”


“좋네요.대답은 짦고 간결한게

 대신 다음번엔 ‘한 번에’ 끝내도록 하죠”


“네”


“지금처럼. 그리고. 무슨 일 있습니까? 담배는 갑자기 왜?”


“아닙니다.”


“흡연은 흡연장에서, 애초에 피울생각도 하지말고. 

 알겠습니까?”


“네”


“좋아요. 하…이소위 이새끼 진짜.. 당직도 바꾸더니만 하아…”


“...”


“내일 일정은 아쉽지만 취소입니다. 미안해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어머, 나 혼자만 바보같이 아쉽나봐요? 앞으론 혼자 연가 외박 잘 나가도 되겠네요”


“아닙니다..그게… 저도 방금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네? 제가 당직인걸 누가 알려주던가요?”


“이소위님이…그..”


“그 새끼 진짜 안되겠네…”


박하사가 자신의 남자친구도 아니고

하물며 상급자도 아닌데

당직을 자신에게 미루네 마네 하는것조차 박하사에게 먼저 이야기했다?

하물며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어린 애한테 담배까지 쥐어주면서?


여자는 이를 까드득 씹어댄다.


“괘..괜찮습니다. 소대장님.”


“그래요. 전 하나도 안괜찮은데. 박하사님이 괜찮다면 괜찮은거죠”


“그게 아니라…”


“제가 ‘그게’ ‘저’ 라고 말 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


“사람 하는 말이 우습나요?

제가 박하사 앞에서 아양떨고 그러니까 사람이 하찮아보여요?

사람 바보만드는것도 어디 한두번이지

어쩜 박하사님까지 저한테 그러십니까!”


“...”


“뭐라고 그 잘난 입으로 변명이라도 해보던가요 쫌!”


“...”


“하아. 하아…”


여자는 지금까지 쌓인 온갖 불만을 남자에게 쏟아낸다.

안다. 박하사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다.

자신을 남자에게 홀린 병신 취급하는것도 이 남자가 아니고

여자에 쏘가리라고 무시하는것도 박하사는 그러지 않았다.


그냥, 이 남자와 약속이 파토낫다는 사실에

자기 혼자만 아쉬워하는 작금의 상황이

자신이 보아도 너무나 바보같다. 


남들이 보는 시선이 틀린게 하나 없었다.


“죄송합니다.”


잘못한게 하나 없는 박하사가 소대장에게 사과를 한다.

이래선 방금까지 욕하던 이소위보다 잘난게 하나도 없다.

그보다 질이 더욱 좋지 않다.


나이가 너댓살이나 많은 이성의 상급자가

부하에게 사랑이나 갈구하고 윽박을 지른다.


자신의 한심함에 눈물이 난다. 

남자는 여자에게 손을 뻗다가. 이내 되돌린다.


“미안해요. 괜찮아요.”


“...”


“그냥…아니에요. 하하… 그런게 아니에요”


중대장한테 하던 변명을

막상 당사자 앞에서 말을 하려니 가슴이 찢어진다.


“...”


“그냥…아니에요. 그런거 아니니까…”


남자친구도 뭣도 아닌 남자는

여자친구도 뭣도 아닌 여자에게 아무런 위로도 해주지 못한다.


남자는 하사고

여자는 소위다.

아무것도 아닌, 소대장과 소대원이다.


남자는 한참동안이나 치장물자 창고에서

여자가 울음을 그칠 때 까지 가만히 서있는다.


—-


“하아…”


당직사관 완장을 찬지 단 3분만에 한숨이 나온다.

인수인계도 모두 받았고

특이사항도 별거 없다.


주말 당직사관은 무언갈 하는게 문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경계 근무를 서는 병사들에게 총기만 따박따박 건네주면 된다.


청소나 일광건조를 시키는건

행정보급관의 경력과 권위가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대번에 마음의 편지가 한트럭은 나올 것이다.


‘주말에 당직사관인 성소위가 쉬지도 못하게 괴롭힙니다’


라고


“하아…”


완장을 찬지 3분 30초만에 한숨을 더 내쉰다.


병신도 이런 병신이 따로 없다.

어제 남자의 앞에서 온갖 추태는 다 부렸다.

부끄러워서 얼굴도 제대로 못보겠다.


남자의 약점을 교묘하게 파고들어서

환심이나 사겠다고 쥐락펴락하다가

제 마음대로 풀리지 않으니까 소리나 버럭 지르고

그다음에는 눈물 콧물을 질질 짜댔다.


객관적인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서를 써서 올린다면

자신이 있을 곳은 이곳이 아니라 군사재판소고

9시 뉴스에 대문짝만하게 자신의 얼굴이 실루엣에 가려져 나올 것이다.


“아 또 미안하게 한숨 푹푹쉬면 어떡하라고”


이소위가 지통실의 문을 연다.


“충성”


“충성”


“그런게 아닙니다. 이소위님”


중대장과 면담한 그 다음부터

비슷한 변명을 계속해서 반복한다.


“내가 그래서 자잘한 업무도 어제 다 해놨잖아.”


“여긴 어쩐일이십니까?”


“간부도 출타시엔 지통실에 보고는 하고 나가야지”


“아…네”


“박하사가 면회 인원들 인솔한다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네? 박하사가 그걸 왜”


“너 정말 아무것도 안봤구나?

 인수인계 못받았어? 오늘 면회 리스트”


여자는 대번에 서류를 펼친다.


휴가자 명단

복귀자 명단

금일 근무표


그리고 면회자 명단이 주르륵 이어진다.

그리고 올라올리 없는 부사관의 이름.


출타가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간부들은 면회를 할 필요가 없다.

부대 내 면회시설을 사용하느니 밖에 나가면 된다.


“여기 박하사 이름이 왜…”


“몰라? 부모님한테 부대 자랑이라도 하려나보지”


“네?”


“아 왜자꾸 그래, 성소위가 더 잘 알거아냐.

 박하사 부모님한테 인사라도 하려고?”


“박하사 부모님이 찾아왔습니까?”


“그래. 참 신기한거 있지?

 주말마다 오시는 교회 목사님이 박하사를 대번에 알아보는거야.

 저 사람, 박선우씨 맞냐고.


 어떻게 아시냐고 그랬더니 예전에 같은 교회를 다녔다고하는데

 박하사가 떡하니 법당을 들어가는걸 보니까 

 와… 내 얼굴이 다 화끈화끈 하더라”


“이소위님이 말씀하셨습니까?!”


“야. 뭐. 내가 못할말이라도 했어? 어따대고 소리를 질러. 이게 미쳣.. 야! 어디가!”


어제 담배는 그것 때문이었나?

심란하긴 자신이 더 심란할텐데

소대장인 자신에게 왜 말 한마디조차 하지 못하고…


아니다.

말하고 싶었을텐데 윽박을 지르고 눈물로 남자의 입을 막아버린건 자신이다.


어제의 자신에게 화가 난다.

눈물이 나려고 하지만 꾹 참아낸다.


지금 그런게 중요한게 아니다.

무전기를 들고 한걸음이라도 빨리 부대 정문에 위치한 면회시설로 달려간다.


[치직,  저…당직사관님 정문 경비초소장 김중사 입니다. 오바.]


[하아. 말씀하세요 오바.]


[와보셔야 할거 같습니다]


[하아. 하아. 지금 가고 있습니다. 오바]


젠장 나쁜 예상은 벗어난 적이 없다.

당직사관이 차야하는 완장은 왜이렇게 거치적 거리고

총도 없는데 탄띠는 왜 매고 있어야 하는거야.


무거운 군홧발로 열심히 부대 정문을 향해 달려간다.


“하아….하아…”


부대 정문은 아수라장에 난장판이다.


“아…잘못했어요…엄마..제발..엄마..그런거 아니니까”


“이새끼가. 마귀에 사탄이 들려서는. 이 버르장머리 없는 새끼가.”


부대 정문에서 면회객이 박하사를 구타하고 있다.

주저앉은 박하사는 어떠한 반항도 하지 못한다.


부모로 보이는 중년의 남녀가 박하사를 멍석말이 하듯 구타한다.

경계병들은 총기를 들고도 제지를 하지 못한다.


[지통실!!!!]


[치직. 지통실입니다 오바]


[5분대기조 불러!!! 정문에 거수자가 부대원을 폭행한다!]


[네?]


[5분대기조 쳐 부르라고!!!!!]


여자가 무전기에 대고 소리를 바락 바락 지른다.

드디어 머나멀게 느껴지던 정문에 당도한다.


여자의 모습에 남자의 부모도 잠시 행동을 멈춘다.

상황을 해결하지 못한 경계병들도 정문에 도착한 당직사관만 바라본다.

부모를 떼어네지 못해 고전하던 김중사가 겨우 박하사를 챙긴다.


그리고 5분대기조의 출동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린다.


“뭡니까? 부모가 자식 교육시키는것도 죕니까? 당신들이 뭔데?”


남자의 어머니로 보이는 여성이 대뜸 여자에게 질문을 한다.


“김중사님, 하아. 당장 하아. 이 사람들 체포하세요.”


“안됩니다. 당직사관님. 

 신원이 불명확한것도 아니고

 오늘 면회객으로 등록되어 출입증이 있는 민간인을

 저희가 함부로 체포할 수 없습니다.”


“그럼 박하사님이 저렇게 쳐 맞고만 있는걸 보고 있으라고요?”


“저…그게…”


“제발 여기 부대 남자란 사람들은 저나 그게 밖에 말 못합니까?!”


여자가 자신보다 나이도 경력도 한참이나 많은 김중사에게 소리를 버럭 지른다.

자네가 주임원사인가? 보다는 나을지 모르지만

그에 버금가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경계병들이 바짝 얼어붙는다.


“하아…당직사관님. 경계초소장은 면회객으로 오신 손님들을 함부로 체포할 ‘권한’이 없습니다.”


“그래서요? 저보고 이 상황을 뒷짐지고 바라만보는 김중사님을 이해해달란겁니까?”


“치졸하고 치사한거 아는데. 말씀 조심하십쇼.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건, 그 잘난 완장 차고 있는 성소위님이시니까.


 군대는, 철저하게 상명하복입니다.

 이 나이 먹고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지휘권은 저희 부사관이 아니라 장교들이 가지고 있습니다.”


“어….”


여자는 아직, 김중사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야 박하사! 말해!”


지금 상황도 열이 뻗치는데,

김중사는 나이가 한참이나 어린 쏘가리가 자신에게 윽박을 지르는 상황에 피가 거꾸로 솟는다.


그래도, 나이가 있는 어른이면 자라나는 새싹들을 이끌어 갈 줄 알아야한다.

화를 내는건, 그 다음이어도 괜찮다.


“하사.. 박…”


“관등성명은 됐으니까 말하라고! 저딴 놈들 부모도 아니고 모르는 사람이라고.

 도와달라고 말하란 말야!”


“군바리 새끼들이 보자보자하니까 미쳤나. 여기 지휘관 누구야?!”


남자의 부모가 시끄럽게 울려퍼지는 사이렌에 자식을 패길 그만둔다.

주변에 자신을 둘러싼 군인들을 바라보면서 소리를 친다.


“접니다.”


그제서야 김중사의 깊은 뜻을 이해한 여자가 남자의 부모를 향해 다가간다.


“내가 몇년도 군번인지 알아? 군인이 민간인한테 이렇게 막 대해도 되는거야?

 하. 세상이 말세다 말세야. 여자가 병정놀이나 하고 앉아있질 않나”


세상에서 가장 잘한게 군대를 36개월 다녀온 남자의 아버지가

여자의 어깨를 툭툭 밀친다.


“박하사”


“하사 박선…흐윽…우”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그대로 따라해”


“이여자가 미쳤나. 내말 안들려?”


남자의 아버지가 여자를 한번 더 세게 밀친다.


“이 사람들 모릅니다. 도와주세요. 말해!!”


여자의 뒤로, 5분대기조가 출동한다.

하필이면 5분대기조도 2중대 3소대. 여자와 남자가 속해 있는 소대다.


나이가 남자와 가장 가까워서, 소대에서 남자와 가장 친하게 지내는 이등병도

허구헌날 소대장에게 개기고, 무시하고, 어린 박하사에게 푸념을 늘어놓는 폐급 상병도

은근슬쩍 소대장의 뒷바라지를 떠넘기는 말년 병장도


하나뿐인 소대의 막둥이가 묵사발이 난 상황에 얼굴이 울그락붉으락 한다.

몽둥이와 포승줄을 쥐고선 힘을 풀지 않는다. 


“이…사람들 뭐..뭔데? 군인들이 민간인 치겠다?”


“이 사람들 몰라요! 도와주세요!!!”

남자가 여자에게 소리친다.


“5분대기조. 폭도들을 제압하고 박하사 구해내! 책임은 내가 진다!”


한낮 쏘가리가 무슨 책임을 진다고.

하지만, 이미 이성의 끈이 끊겨버린 소대원들은 소리를 지르고 달려간다.


“와아아아아아!!”


“어..뭐야. 악!! 앆!! 놔, 이거 안놔?! 군인이 민간인을 패도 되는거야?!

 야!! 보지만 말고 오라고! 밟아! 아. 아!! 야!!!”


몽둥이에 흠씬 두드려 맞고 포승줄에 묶이는 남자의 부모가

부대 바깥을 향해 소리친다.


주차되어 있던 스타렉스에 시동이 걸리고

굉음을 낸다.


정문을 향해 빠르게 다가온다.


“어…어…김중사님…저거”

경계병이 다가오는 차량을 가리킨다.


“뭐…뭐야. 미쳤나. 쏴!”


“쏴도 됩니까?”


““쏘라고!!””

거의 동시에, 김중사와 성소위가 경계병에게 명령한다.


경계병의 공포탄 소리가 울려퍼진다.


—---


“허허허. 잘했네. 아주 잘했어”


사건 발생 30분만에 부대에 방문한 사단장이 경계병들에게 칭찬을 건넨다.

가장 먼저 총을 발사한 경계병에겐 7박 8일의 포상 휴가가.

나머지 경계병들에겐 4박 5일의 포상휴가가 주어진다.


부대 내에서 군인을 폭행하는 잔악무도한 폭도들을 제압한 5분대기조에게도

각각 2박 3일의 포상휴가증이 주어졌다.


군부대로 경찰이 출동하고

뒤이어 보고를 받은 상급부대 헌병단이 도착하고


잔악한 폭도들중 재수가 좋은 누군가는 경찰차에 태워지고

재수가 없는 누군가는 헌병단 군용 수송차량에 태워진다.


군 내부로 신원불상의 차량이 진입을 시도한 초유의 사태다.


다행히도 현장에 있던 경계초소장과 당직사관의 빠른 대처로 

진입은 실패하고 괴한들은 모두 체포되었다.



“아이고, 울지말고, 많이 아프지?”


간호장교는 피떡이 된 박하사를 치료하느라 바쁘다.

눈두덩이에 알콜을 바르고 숨을 호호 불어넣는다.


치료받는 박하사를 앞에 두고, 성소위가 사단장 예하 간부들에게 전후 사정을 보고한다.

중간중간, 간호장교 대위가 날숨을 불어넣을 때마다. 성소위의 말이 끊긴다.


“그러니까. 부모로 ‘추정’되는 괴한이 박하사를 두들겨 팼다.

 5분대기조가 출동하니 밖에서 대기하던 괴한들이 침입을 시도했다.

 체포된 사람들은 누군지 잘 모르겠다?”


박하사의 집안 내력

사이비 종교와 박하사가 도망치듯 입대한 경위

그간 성소위가 박하사를 싸고 돌며 출타를 하던 이유

작금의 벌어진 사태


모든것을 보고받은 사단장이 적당히 앞뒤를 잘라내고 이어붙여서 말한다.


“네! 그렇습니다.”


사단장보다 10분 빨리 도착한 대대장이 대답한다.


“ 내가 파악한 그대로의 보고서를, 30분 내로 송신하도록, 대대장”


“네!”


잘못 일이 흐트러지면

부대를 방문한 장병의 부모를 군인들이 때리고 체포한 초유의 사태가 된다.


사실관계야 어떠하든

기자들과 대중들은 자신들이 믿고싶고 자극적인 입맛대로 상황을 받아들인다.


시간싸움이다.

경찰에 힘을 쓸 수는 없으니, 헌병단과 입을 맞춰야 한다.


한시라도 빨리, 국방부 출입 기자들에게 알맞게 간추려진 내용이 전달되어야 한다.

그것이 자신의 살 길이다.


사단장 예하 간부들이 그것을 모두 이해하고 있다.


“이래서 사이비 이단 새끼들은 안돼”

사단장이 손목에 걸고 있던 염주를 만지작거린다.


—-----------



다행히 군부대의 비상연락체계가

종교단체의 연락망보다 한 발 빨랐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사이비 종교단체 간부로 재직중이던 남자의 부모는 

구속 수감이 되어서 재판을 기다린다.


뉴스 기사가 한 줄 나오고.

대중들은 어처구니가 없는 종교단체의 행태에 혀를 쯧쯧 찬다.

그리고 다른 기사에 눈을 돌린다.


상황도 정리가 되었고

남자의 붓기도 금방 가라앉았다.


중대장에게, 소대장이 보고를 마치고 박하사를 찾아간다.


“박하사님”


“하사 박선우”


“이번 주말에도, 저랑 같이 나가죠. 허가 받아놨습니다.”


“어… 괜찮습니까?”


“그럼요. 중대장님에게도 잘 보고드렸습니다.”


“저…그… 소대장님”


“네?”


“이제. 괜찮습니다. 한 번쯤은, 저 혼자서 밖에 나가보겠습니다.”


“...”


“언제까지 소대장님한테 기댈 수도 없고

 그…부모님도 잡혀가서 나올 수 없고

 혼자서 밖에 나간다해도, 괜찮을 겁니다


지금까지. 감사했습니다.”


“박하사님”


“하사 박선우”


“정말 괜찮겠어요?”


“아마… 네. 괜찮을겁니다.”


"그래요. 좋네요!
 그니까... 중대장님이 뭐라 그랬더라...
 위수지역 넘어가지 말고, 사고치지 말고!
 

 잘 할수 있죠?"


"네!"


남자는 여자에게 씩씩하게 대답한다.

여자는 남자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려다 뻗치던 손을 되돌린다.

대신, 축구경기를 하러가던 그 때처럼, 화이팅을 해준다.


여자는 남자를 지나쳐서, 터덜터덜 

아직 작성하지 못한 훈련 보고서를 마무리하러 간다.


---


"괜찮아. 좋아. 아무런 일도 없을거야."


남자는 지휘통제실에 출타보고를 마쳤다.

대번에 당직을 바꿨다 큰 사고가 나버린 이소위가 당분간 주말 당직을 도맡아 한다.


물론 신천지 끄나풀인지도 몰랐던 목사에게

나불나불 부대원의 신상정보를 알려준건 이소위의 잘못이 아니지만.


비공식적인 처벌을 겸하여 1달간 주말 당직은 모두 이소위가 책임진다.


"후우. 스읍. 후우. 스읍"


남자는 지통실에서 나와 부대정문을 향해 차근차근 걸어간다.

괜찮다. 괜찮을 것이다.


위수지역 이내에 있다는건

반대로 군부대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다는 뜻이다.


궁시렁대며 당직실에 있는 이소위도

언제나 자신을 지켜주던 소대장도

자신의 능력 범위 이내에서 최선의 해결책을 만들어준 김중사도

무턱대고 숨어만 있는게 능사가 아니라는걸 알려준 행정보급관도

남자의 일을 마치 제 일인냥 같이 화내주고

자신을 해치려는 괴한들과 부모까지 내쫒아준 동료 소대원들도


모두가 선뜻 나서서 도와주었고, 도와줄 것이다.


"충성"


"충성"


남자는 정문에서 오늘도 경비초소장을 서는 김중사에게 경례를 한다.


"김중사님은 주말에 안쉬십니까?"


"야, 너도 결혼해봐. 차라리 여기있는게 쉬는거야"


"..."


"그래도, 짜식. 능력 있네. 좋겠담마, 잘 다녀와라."


김중사는 굳이 밖으로 나와서

남자의 어깨를 툭툭 친다.


"감사합니다. 잘 다녀오겠습니다."


"뭔일 있으면 연락 하고. 뭔일 없어도 문자 하나는 넣고"


지난 20년을 부모가 부모 노릇을 제대로 못해주었기에

이제는 주변 어른들이 남자의 부모님 노릇을 나누어서 한다.


그것이 젊은이들을 이끌어가는 어른의 책임이다.


남자는 경계병이 열어주는 바리케이트를 바라본다.

표시된 점선 앞에 맞추어 멈춰선다.


앞을 바라본다.

자신의 시야에는 아스팔트 도로와 풀숲 뿐이다.


아무것도 없다.

자신을 지켜줄 CCTV도, 총기도, 화약도, 철책도


아무것도 없다.

자신을 해칠 광신도들, 이름만 가족인 부모, 악몽같았던 교회도.


남자는 한발짝, 자신의 의지로 한 걸음을 내민다.

발바닥을 바라보며 천천히 걷는다. 

대신, 멈추지 않는다.

지면과 신발 사이의 마찰력을 이용해서 지속적으로 나아간다.


바람이 분다.

휘날리는 머리카락을 매만지다. 다시 정면을 바라본다.

아무것도 없다.


"하...하하..."

웃음이 나온다. 별 것도 아니구만.

자신은 20년간 이 아무것도 아닌 일에 뭐가 그리 무서워서 덜덜 떨었는지!


"하하. 하하하하."

웃음이 나온다.

자신의 과거가 바보같아 보여서 웃음이 나오고

드디어 홀로 걸을 수 있음에 웃음이 나온다.


"뭐가 그리 웃겨요?"


불쑥 남자의 앞에서 여자가 나타난다.


"충성"


"충성"


"어... 소대장님도 나가십니까?"


"그럼요. 저도 박하사님이랑 나갈 줄 알고 외박신고 다 해놨는데

 그냥 부대 안에 있을 순 없잖아요?"


"아...그게..."


"제가 '그게' 라고 말 하지 말라 그랬잖아요 정말.

 박하사님 탓하는거 아니니까. 괜찮아요"


"네"


"그래서."


네?"


"그래서, 오늘 일정은? 계획이 있나요?"


"잘...모르겠습니다."


"헐, 그러면 1박2일동안 밖에서 그냥 허송세월 하려구요? 뭐라도 해야지!"


"하하... 잘 모르겠습니다. 

 계획 세워놓은것도 없고, 어디 멀리 나갈 수 있는것도 아니니까.


 소대장님은 어떤거 하십니까?"


"글쎄요. CGV에서 영화 한 편 보고,

 만화카페 가서 저번에 보던 책이나 마저 보다가

 저녁에... 오랜만에 파스타라도 먹을까 생각중이네요."


"하하...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남자는 여자를 지나쳐서

다시, 남들에겐 작지만 자신에겐 위대한 한 걸음을 내딛는다.


여자는 떠나가는 남자의 등 뒤를 바라본다.

넓고, 듬직하고, 단단한 등.


남자가 자신에게서 멀어져 갈 때마다.

아쉬움이 그만큼 두 배, 세 배가 되어간다.


남자는 아직, 그 이야기를 여자에게 해주지 않았다.

부끄러움도 무릅쓰고, 부대 정문을 지나 여기까지 와서

남자를 기다렸것만


남자는 어떠한 이야기도 해주지 않는다.


상상에만 그치고, 행동에 옮기지 않는게 현대인의 상식이다.

혼자 나가려는 남자에게 섭섭함도 있고 걱정도 되었다.

그래도, 남자를 믿으려 했다.

괜찮을 줄 알았다.


하지만, 여자 자신은 전혀 괜찮지 않았다.

여자는, 어제 밤 늦게까지 찾아본 내용을 남자에게 내민다.


"박하사님!"


"하사 박선우."


남자가 가던 길을 되돌아 여자를 바라본다.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에 콩닥콩닥,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는다.



“이거 한 번 보시겠어요?”


여자는 스마트폰을 남자의 눈 앞에 내민다.


“이건..”


“읍내에.. 아니지, 저희 위수지역 내에 있는 교회 목록이에요.

 지도로 보면…어디보자..

 이만큼이나 되네요.


 대한민국에 가장 많은 프랜차이즈가 뭔지 알아요?

 스타벅스? 롯데리아? 국민은행? BHC?”


 바로 이 교회입니다."


"아, 네. 그렇군요..."


여자는 남자에게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걸까?

 

"그리고, 교회마다 신천지 추수꾼이 들어가선 서리를 한다고

 박하사님이 말씀해 주셨죠?”


“네…맞습니다.”


“무서운게 뭔지 알아요?
 이 수많은 교회들 중에서

 어디가 신천지 교회고

 어디가 신천지 교회가 아닌지 모른다는거에요.


 다른 교회 가보셨어요?

 거기서 목사님들이 하는 말씀 들어보셨어요? 

 저희 부대가 출입하는 목사님이 신천지인지 아닌지 왜 몰랐을거 같아요?"


"저...소대장님? 무슨 말씀이신지..."


여자가 건네는 질문이 너무나도 많다. 

남자는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다 똑같아요.

 하는 말이나. 전도하는 말씀이나. 들고있는 성경이

 신천지나. 장로회나 감리교나

 전부 똑같아요.


 자기들 말곤 죄다 이단이고

 세상은 사탄들에게 오염되어서 썩어 문드러지고

 곧 요한의 묵시록이 당도할 것고.


 이럴때일수록 우리가 똘똘 뭉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던 천국을 위해 행동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네 이웃을 사랑하고

 전도를 하고

 십일조를 내라.

 

 다 똑같아요”


“소대장님 괘...괜찮을 겁니다. 부모님도 구속수사중이고...경찰들도 순찰 강화한다고 했고...”


“저도 나이롱이지만 불교 신자라 잘 압니다.

 종교에서 가장 미워하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요?


 이단?

 불신자?

 박하사님이 더 잘 아실텐데?”


“배교자…입니다.”


“맞아요!

 그 신천지 버러지 새끼들 입장에선

 박하사님이 불구대천의 원수에요.


 주요 간부도 잡혀가

 매스컴에선 연일 난리야.


 그리고, 그 사건에 중심에

 먹여주고, 재워주고. 키워준 부모를 고발한

 배은망덕한 배교자가 떡하니 있다니”


“...”


“박하사님?”


“하사 박선우”


“박하사님은 괜찮을거라 생각할지 몰라도.

 전 아니라고 봐요.


 아니 부대 내 모든 사람들이 아니라고 봐요."


“그…그래도… 저기…그게”


“행정보급관님이, 아니, 제가 그 말 하지 말라고 했죠?”


“죄송합니다.”


“박하사님, 정말 혼자서 나가봐도 괜찮겠어요?”


“그..그게.. 저기…”


“박하사님!”


“모..모르겠습니다! 

 교..교회가 그렇게나 많습니까?

 거기에도 다 추수꾼이 있는겁니까?


 제…제가 그사람들한테 블랙리스트라도 올라간겁니까?

 

 막 저번처럼 길거리 한가운데서 저한테 달려들고, 죽이려들고 그러는겁니까?

 어쩌죠? 밖에는 5분대기조도 경계병들도 없는데.

 저…혼자서 괜찮을까요?”


방금까지 있던, 늠름한 모습의 청년은 온데간데 없다.

남자의 눈에 그제서야 건물들이 비친다.

 

가장 가까이 있는 상가에도

바로 뒤 오피스텔에도

건너편 다른 빌라에도

읍내에서 가장 큰 건물에도

하나씩, 빨간색 LED로 빛나는 십자가가 높게 솟아있다.


남자가 당장 확인할 수 있는 십자가의 수만 헤아려도 족히 7개는 되어보인다.

공포가 밀려온다.

저 건물 창가에서 누군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을 것 같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왔던 길을 뒷걸음쳐 되돌아간다.


“제가. 같이 있어드릴게요.

 마침, 영화표도 2장 예매했거든요. 어때요?"


여자는 남자가 더이상 도망가지 못하도록

떨리는 남자의 손을 잡아챈다.


시선을 바로 잡지 못하는 남자의 눈길을

여자가 자상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괜찮을까요? 문제 없겠죠?

 저..저기도! 교회가 있어요.

 저기도.... 저기도! 

 모르겠습니다. 소..소대장님."


"저랑 같이 있으면 그 사람들이라도 함부로 하진 못할거에요.

 그러니까. 음. 한번 더 물어볼게요.

 

 영화 보러 갈까요?"


"네..네!"


남자는 그 큰 덩치를, 자신보다 훨씬 작은 소대장 뒤에 숨기려든다.

여자가 잡아준 손에 매달리듯 엉겨붙는다.

빨리, 저 십자가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자리를 옮기고 싶다.


여자는 자신의 옆에 딱 달라붙은 남자에게 다른 질문을 건넨다.

여자는 아직, 남자에게 듣고싶은 한 마디를 듣지 못했다.


"어때요? 오늘 제가 입은 옷. 예쁘죠?"


창피를 무릅쓰고 부대 안에서부터 입고 나온 원피스.

여자는 그 한마디가 듣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