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은 모두 하교하고 텅빈 시간대인 오후 5시.


나른한 햇빛이 들어오는 교실에서 얀붕이는 선생님과 함께 수학문제를 풀고 있었다.


"끄으응...쌤! 이거 잘 모르겠어요."

"그래? 흠..이건 먼저 이렇게..."


얀붕이는 속으로 한숨을 쉬며 선생님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큰눈, 오똑한 코, 앵두 같은 입술, 미성의 목소리는 완벽한 얀붕이의 이상형이었으나 되려 얀붕이는 선생님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하아..지금쯤이면 벌써 도착했겠다."


왜냐하면 얀붕이는 방학 기념으로 친구들이랑 2박3일 바닷가로 놀러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번엔 얀순이도 온다고 했느...'


짝!


"악! 쌤!"

"김얀붕. 너 또 집중 안하지?" 


'아야야...'


얀붕이는 등을 문지르며 박얀진 선생님을 째려보았다.


"그러게 너가 평소에 잘좀 하지 그랬니"

"쌤 그래도 이건 아니죠~저 놀러가는것도 아시잖아요."

"너 그러면서 맨날 보충수업 빼먹었던거 몰라?"

"...."

"그럼 똑바로 해."

"거기서 얀순이한테 고백하기로 했는데.."


빠직


얀진 선생님이 쓰시던 두꺼운 샤프가 더위사냥처럼 뚝 꺾여버렸다.


'앗..실수로 말해버렸다...들으셨나?'


"얀붕아."


얀진 선생님이 처음 듣는, 낮은 목소리로 얀붕이를 불렀다.


"네..넵?"


항상 웃어주시고 귀엽던 얀진 선생님이 내는 이런 분위기에 얀붕이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샤프 있니?"

"아, 아아~ 넵 여기요."


원래의 밝고 순수한 분위기로 돌아온 선생님이 얀붕이에게 샤프를 하나 빌렸다.


2시간 뒤, 보충수업이 끝난 얀붕이는 학교를 나오고 있었다.


"하..지금이라도 바닷가에 갈까..."


위잉위잉


얀붕이의 폰에서 전화벨이 울려 얀붕이가 받으니 얀붕이의 부랄친구 얀돌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마쳤냐?"

"...그래. 하..."

"ㅋㅋㅋㅋㅋ개불쌍하네 ㅂㅅㅋㅋㅋ"

"넌 뒤졌다 ㅅ발놈아."

"근데 나랑 얀준이랑 딴애들도 다 같이 보충수업 들어야하는데, 왜 니만 남김?"

"그니까 왜 나만 갈굼?"

"ㅋㅋㅋ 아, 얀순이 안 온거 앎?"

"어? 아니? 걔 오늘 학교에서만 해도 놀러간다고 들떠있었잖아?"

"니 얀진 쌤한테 잡혀간 뒤에 갑자기 못 가겠다 하던데?"

"어? 저거 얀순이 아냐?"

"뭐? 진ㅉ..."


뚝-


"얀순아!"

"어? 얀붕이? 우.연.히 만났네?"

"넌 왜 안 놀러갔어?"

"아..갑자기 몸이 아파서.."

"아...지금은 괜찮고?"

"응..고마워"


얀순이가 눈웃음을 지었다.


'헙..와..진짜 이쁘다...'


상긋한 눈웃음에 귀가 녹을거 같은 웃음소리. 여기에 안 넘어갈 남자가 있을까.


갑자기, 분위기에 휩쓸려서인지 얀붕이에겐 지금이 유일한 기회라고 느꼈다.


'여자한텐 생일에 고백해야 성공률이 높다는데..아니야! 지금이 기회야!'


"..얀순아."

"응?"

"..사귈ㄹ.."


빠악--


.

.

.


"으...으음..."


얀붕이가 눈을 떴을 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 앞이 안 보여...내 눈...!"


얀붕이는 눈을 만지려 팔을 들려 했으나, 온몸이 의자에 묶여있어 움직일 수 없었다.


"아, 안돼...! 대체 뭐야 이게..!"


또각또각


여자의 구두 소리가 3m쯤 거리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저, 저기요! 도와주세요..! 앞이 안 보이고 온몸이 묶였어요!"


그녀는 계속 천천히 걸어오더니 얀붕이의 바로 앞에서 멈춰 얀붕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얀붕아. 눈은 그냥 안대 씌운 거니까 걱정마."


천사 같은 목소리는 얀붕이에게 한 사람을 떠올리게 했다.


"야, 얀..."


그녀는 기대하며 빙긋 웃었다.


"얀순이?"


순간 그녀의 표정이 돌처럼 굳었다.


"..뭐?"


그 목소리만으로도 얀붕이는 느낄 수 있었다.


"야, 얀진 쌤...?"


자기도 딱 한번 들은, 잊은 수 없는 얀진 쌤의 목소리라는 걸.


그리고 지금, 좆됐다는걸.


파앗


얀붕이의 안대가 벗겨지고 밝은 빛이 얀붕이의 눈을 강타한다.


그 실눈으로 보이는건 얀진 선생님의 실루엣.


"뭐라고? 정얀순 그년?"

"쌔,쌤 왜 이래요... 쌤 원래 안 이랬잖아요..."


얀진 선생님이 피로 얼룩진 셔츠 단추를 하나하나 풀며 말했다.


"닥쳐. 내가 기분 풀릴 때까지 넌 내 전용 딜도야."

"네, 네?"


사흘 밤낮으로 얀진 선생님의 대저택에선 최첨단 방음시설을 뚫고 나올 정도로 큰 얀붕이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사흘 뒤, 얀붕이는 이제 울음을 터뜨릴 힘도 없었고, 그저 침대에 기력이 빠진 채로 누워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