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를 추가합니다. 그림은 chat gpt로 임시로 만들어졌습니다.


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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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고의 국장이 그려진 마차가 우노가 머물고 있는 호텔 앞에 멈춰 섰다. 

 

직원 중 한 명이 절도 있는 걸음걸이로 마차에서 내려 방문을 두드렸다. 

 

직원은 만면에 미소를 띄우고 최대한 공손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박사님. 대단장 각하께서 저희들을 보내셨습니다."


 그의 말은 우노가 방문을 열자 중단되었다. 

 

우노의 얼굴에는 이사 준비로 인한 피로가 가득했고, 그 뒤로는 짐들의 산맥이 이어져 있었다.
 
 조금 흠칫 하긴 했지만, 직원은 프로페셔널한 미소를 유지하며, 

 

"이거 참, 대단히 긴 작업이 되겠군요."

 

라고 태연하게 말했다.
 
 그들은 곧 작업을 시작했다. 우노의 짐들 사이에는 정밀하고 망가지기 쉬운 계측 장비, 극도로 희귀한 시료 따위의 귀중품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우노는 그의 소중한 물건들이 망가질까 전전긍긍했지만, 직원들은 능숙하게 작업을 마무리 지었다.
 
 이사 짐을 싣는 작업이 끝나고, 우노는 마차에 올랐다. 이 마차는 최근에 보급되기 시작한 마력으로 굴러가는 특수한 종류의 마차였다. 

 

말이 없이 마치 자동차처럼 스스로 굴러가는 이 마차에는 아직 딱히 부르는 명칭이 없어서 그대로 '마차'라고 불렸고, 그것을 운전하는 사람도 여전히 '마부'로 불렸다.
 
 마차가 부드럽게 움직이기 시작하자, 우노의 머릿속은 이사 작업을 하는 동안 직원들이 나누었던 대화로 가득 찼다. 

 

그들은 레일라를 아메리고를 위한 헌신적인 지도자로, 구대륙의 전란에서 신대륙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로 묘사했다.
 
 우노는 마부에게 물었다. "각하가 어떤 분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마부는 잠시 고민하는 듯했지만, 곧 대답했다.


"각하는 우리 아메리고의 수호자입니다. 고립정책을 통해 우리를 외부의 혼란으로부터 보호하고, 연방 내부의 교역을 활성화하여 구대륙의 난리통에도 경제가 문제없이 굴러가도록 하셨죠. 신대륙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시는 분입니다."
 
 우노는 마부의 말을 들으며 한번 고개를 끄덕이곤 창밖으로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았다. 

 

다분히 프로파간다 적인 뉘앙스가 섞인 마부의 대답은 우노가 호텔 1층에서 커피를 축내며 읽던 신문의 내용과 그다지 다르진 않았다. 

 

혹시 그가 이렇게 대답하도록 교육받은 것인가, 하고 생각한 우노는 그 생각을 떨쳐버렸다.
 
 창문 밖의 풍경은 분명히 무너져 가는 구대륙 국가들에 비해 번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노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괴리감이 자리잡고 있었다.

 

스스로를 자살하며 자신을 협박하던 모습, 그리고 이상적인 지도자의 모습.

 

마차는 그의 상념은 신경쓰지 않고 묵묵히 대단장궁으로 향했다. 

 

총단장궁은 도시를 굽어보는 야트막한 검은색 언덕의 꼭대기 조금 아래에 위치해 있다. 

 
 우노가 대단장궁의 정문을 통과할 때, 그의 심장은 불안함으로 조금 빠르게 뛰었다. 

 

이곳은 이제 그의 새로운 거처가 될 곳이었다.
 
 그가 방으로 안내될 때, 그의 눈앞에 펼쳐진 화려함과 넓이에 순간적으로 숨이 멎는 듯 했다. 

 

우노에게는 다소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그는 방 한켠에 놓인 의자를 살피다가, 마치 그것이 자신의 불안과 혼란을 잠시나마 떨쳐낼 수 있는 방법이라도 되는 것 처럼, 의자를 중앙으로 끌어당겼다.
 
 의자에 털썩 앉은 우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의 손은 자연스럽게 담배갑으로 향했고, 곧 그는 손가락을 한번 튕겨 불꽃을 만들어 내어 담배에 불을 붙였다.
 
 연기가 천장으로 피어오르는 것을 바라보며, 우노는 과거 레일라와의 기억을 되새겼다. 그녀의 비정상적인 애정과 집착. 

 

그녀는 자신을 붙잡기 위해 스스로의 목숨을 패로 삼았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아메리고를 이끄는 대단장이자, 수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지도자였다. 

 

담배 연기 속에서 우노의 눈은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흔들렸다.
 
 담배 한 개피를 다 피우자, 고요함을 깨며 뒤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럼 지금부터 짐을 이쪽으로 옮기겠습니다.”


 익숙한 목소리, 그가 머물던 호텔에 찾아왔던 그 직원의 목소리였다.
 
 우노는 의자에서 일어나 문가로 향했다.

 

"그렇다면, 이제 슬슬 짐을 들여놓아야겠군요,"


 짐들 중 하나를 들기 위해 손을 뻗는 그의 움직임은 직원에 의해 곧바로 제지되었다.
 
"손님께서 직접 그런 일을 하실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짐은 우리가 모두 옮길 테니, 잠시 이곳을 돌아다니며 대단장궁을 구경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물론, 이 제안의 진짜 목적은 그의 물건에 도청 마법과 추적 마법을 거는 것이었지만, 그 순간 우노는 오직 직원의 친절함만을 생각하며 방을 나섰다.
 
 우노가 대단장궁의 넓은 정원을 거닐며 신선한 공기를 들이켰을 때, 그의 앞에 휠체어를 탄 레일라가 나타났다.
 
"업무가 바쁠 텐데, 일부러 찾아와 줘서 고마워." 우노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히힛"
 
 그의 말에 레일라는 과거 그가 유학생활 때 자주 듣던 특유의 어린아이 같으면서도 익살스러운, 사람에 따라서는 다소 특이하다고 느낄 웃음을 터뜨렸다.
 
"유능한 정치인은 바쁘지 않아"


 레일라가 말했다.

 
"그저 밑의 일들이 잘 굴러가도록 조절하는 것 뿐이지.”
 
 우노는 주위를 둘러보며 비서나 다른 수행원이 보이지 않는 것을 알아챘다. 

 

그리고 레일라의 얼굴에 약간의 붉은기와 미세한 땀방울이 맺혀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순간, 우노는 레일라가 혼자서 휠체어를 움직여 이곳까지 온 것을 깨달았다.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우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레일라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중요한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서야. 당연한 일이지."
 
"나는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 아니야.,"


 우노가 겸손하게 말했지만, 레일라는 그의 말을 단호하게 끊었다.
 
"우노, 너는 극도로 중요한 사람이야." 

 

레일라의 목소리에는 강한 강조가 담겨 있었다. 

 

그 중요함이 우노에 대한 그녀의 마음 때문인지, 아니면 그가 제안했던 그 계획 때문인지 우노는 알 수 없었다.
 
“저기 그때 일은….”


 잠시간의 침묵이 흐른 후, 우노는 과거의 일에 대해 사과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레일라가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나도 같이 정원을 걷고 싶어 휠체어를 끌어줄래?"


 우노는 망설임 없이 레일라의 휠체어를 잡고 걷기 시작했다. 

 

그의 손에 전해지는 휠체어의 차가운 손잡이가 어딘지 쓰라렸다.
 

그녀가 자신의 우울한 표정을 볼 수 없다는 사실에, 그는 약간의 안도감을 느꼈다.
 
“우노”


 레일라는 우노의 표정을 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의 마음을 읽듯이 말을 꺼냈다.
 
"우노, 너는 후회하거나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어. 사과할 필요도 없어."


 레일라가 뒤로 손을 건내며 휠체어의 손잡이를 쥐고 있는 우노의 손을 감쌌다.


 창백한 피부색과는 달리 그녀의 손은 따뜻했다.
 
"그 결정은, 나에게 있어 가장 옳은 선택이었어.”
 
“레일라…”


 무엇이 어떻게 옳았던 것일까. 그 말의 무게를 가늠하지도 못한 채, 우노는 말문이 막혔다.
 
 우노는 레일라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휠체어를 끌었다. 

 

침묵이 이어졌다. 그의 마음속은 복잡했다.
 
 그러던 중, 레일라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우노. 너의 얼굴이 보고싶어 내 앞으로 와줘."


 우노는 레일라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휠체어를 쥔 손을 놓고 그녀의 부름에 따라 천천히 그녀의 앞으로 걸어갔다.
 
 레일라의 손길이 따뜻하게 그의 손을 감쌌다.
 
"우노, 너에게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어."


 레일라의 목소리에는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
 
 그녀는 우노에게 한 장의 종이를 건네며, 그의 반응을 예의 주시했다. 

 

그 종이는 아메리고의 국적 수여장이었다. 

 

우노의 눈은 넓어졌다. 구대륙이 전란에 휩싸인 후 아메리고의 국적 취득은 극도로 어려워졌다.
 
 몇 개월에 걸리는 행정절차에 더해 신원이 보장되지 않으면 반려되는 경우도 잦았다. 

 

적어도 우노가 듣기론, 국적 수여장은 아메리고를 위해 큰 업적을 세우는 등의 사람들에게 대단장의 권한으로 특별히 수여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노가 놀란 것은 그 종이의 특별함 때문이 아니었다. 

 

우노의 눈길은 그 종이에 적힌 한 이름에 머물렀다.
 
‘우노 레이븐릿지’

 

레이븐릿지, 이 이름은 수도이자 항구도시의 이름일 뿐만 아니라 아메리고의 세습종신제 총단장의 성으로도 사용된다.
 
'까마귀의 능선'을 의미하는 레이븐릿지는 원래 이 항구도시를 내려다보는 야트막한 검은 언덕의 이름이자, 최초의 대단장인 클라우드 레이븐릿지의 성이기도 하고, 그의 뒤를 세습하여 대단장을 하는 그의 자손의 성이기도 하다..

 

즉, 레이븐릿지 라는 말은 그녀의 정체성 그 자체이기도 하다.
 
"레일라, 이건..."


 우노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는 이 세계에 온 이래 줄곧 평민으로, 성이 없었다. 

 

아메리고에서 국적을 등록하기 위해서는 성이 필요했는데, 레일라는 자신의 성을 우노에게 준 것이었다.
 
"우노, 이 나라에서 네가 활동하기 위해서는 이 이름이 필요해. 이제 너도 레이븐릿지의 일원이야."


 레일라의 말은 단호했다.


"알겠어, 레일라.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나는..."
 
 우노가 말을 잇기 전에, 레일라가 그를 가로막았다.


“이제부터 우리가 하게 될 일의 중요성을 이해해야 해. 이 나라에서 그 일을 순조롭게 진행하기 위해선 이 이름이 필요할 거야."
 
"하지만 이건 너무…"
 
“그냥 사무적인 절차로 이해해도 좋아 우노. 어쨌건 나는 이미 결정을 내렸어. 너는 이제부터 나와 함께할 거야. 나의 세계에서, 나의 이름으로."
 
 우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다시 태어나버린 이 새로운 세계에서, 그리고 그 이후에 당도하게 된 이 신대륙에서도 줄곧 자신의 위치를 찾아오기 위해 애썼다. 

 

결국, 그는 레일라가 건넨 국적 수여장을 받아들였다.
 
“히힛.”
 
 그녀의 독특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우노는 ‘우노 레이븐릿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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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생각보다 글이 빨리 써져 예정보다 조금 일찍 2화를 업로드 하게 되었습니다.


노벨피아에도 연재중이니 한번 들러주시면 정말 감사드리겠습니다.

https://novelpia.com/novel/257650

혹시 홍보 불가면 바로 지우도록 하겠습니다.